1.

도올선생께서 구약의 야훼 종교를 우리네의 성황당 신앙에 비긴 것을 두고
여기저기서 크게 반발하고 있는데요,
19세기 종교사학파가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갖는 전제인 그리스도교 신앙을 일단 괄호 안에 넣어두고,
구약성서와 유대 종교를 객관적으로 접근하면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의 우리가 알고 있는 구약성서와 유대 종교란,
처음부터 완성 상태로 하늘로부터 뚝 떨어져 존재했던 게 아닙니다.
모세오경만 하더라도, 오랜 세월동안 구전 전승을 거쳐
바빌론 포로기 때에 와서야 문자로 편집, 기록된 거잖습니까.

제 생각으로, 야훼 하느님을 단지 자기네 민족의 안녕과 풍요를 위해 섬기는
그런 수준의 유대 종교라면,
야훼 신앙 역시 다른 중동 민족들의 이방 종교와 다를 바가 없을 것이고,
도올선생께서 (한국의 민족신앙인) 성황당과 비교하신 것도 타당하다고 봅니다.
야훼 종교를 성황당 끝자락 잡고 매달리는 그런 속류적인 신앙으로 전락시킨 잘못을,
분명 구약의 이스라엘은 범했고,
그러한 민족이기주의적 흔적이 구약성서 자체에도 내재되어 있습니다.
사실, 고대 유적을 출토해 보면, 같은 산당 안에
남신인 야훼 상과 여신인 아세라 상이 함께 있는 경우도 발견됩니다. 이런 유적들은 많습니다.
그런 수준의 야훼 신앙이라면,
꼬리표만 하느님을 믿고 예수를 믿는 신자지, 다른 사람들보다 나을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리스도교는 예수 선포의 계시의 빛에 비추어,
구약성서와 야훼 신앙을 그렇게 해석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선포의 핵심은 '하느님의 나라'였고,
구약의 핵심 사상 역시 '하느님의 다스림'이었습니다.
하느님의 다스림의 완성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임박한 하느님의 나라인 것이지요.

따라서, 야훼 신앙과 그리스도교를 신봉하는 우리들은,
편협한 소아적 집단주의, 배타성과 이기주의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근본주의자들의 비복음성이 바로 이 지점에서 드러난다고 봅니다)
우리가 믿는 그분과, 우리의 신앙의 우주적 보편성을 깨닫고,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고 평화와 생명을 이루어가는 데 힘쓰는
주님의 도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도올선생의 성황당 비유는, 비단 구약의 야훼 신앙 뿐만 아니라,
예수를 잘못 믿을 때에도 언제든지 함몰될 수 있는 위험인 것이죠.  



2.

하지만, 구약성서를 폐기해야 된다는 도올선생의 주장은 지나친 말씀이긴 합니다.
일단, 성서 정경 범위의 확정권은 그리스도교에 주어져 있기 때문에,
비신자가 무엇이라 할 발언권이 없습니다.

그리고, 도올선생의 논지를 다른 고대 신화, 설화들에 적용한다면,
그것들도 마찬가지로 다 평가절하되어야 할 것입니다.
다른 종교의 경전이라고 무사하겠습니까?
불교 경전들이 강한 여성차별성을 띤다고, 불경들을 다 폐기해야 되나요?
아니거든요. 현재의 우리가 알아서 새겨들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성서 역시 마찬가지지요.

다만, 구약성서에 깃든 고대 야훼 신앙의 속류적인 모습들까지
축자적으로, 심지어, 축자적으로 하느님 말씀이니, 오히려 이러한 부분들만 편식해서
자기합리화를 일삼는 작금의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들 때문에,
도올선생의 구약성서 폐기론과 같은 과격한 주장이 나온다고 봅니다.

나름대로 짐작컨대, 도올선생이 종교철학이나 조직신학이 아니라,
성서 강의를 하는 까닭은, 성서 강의를 하다 보면,
자연히 근대 이후의 성서비평학의 연구 성과들을 집중 거론해야 될 것이고,
그러다 보면 한국의 주류 근본주의 개신교의 토대인
성서의 축자영감론이 허구임도 자연히 대중들에게 전달될 거거든요.

성서를 일점일획도 틀림없이 정확한 하느님 말씀이라고 믿는 입장은,
얼핏 보기에는 철저히 하느님 중심의 신앙인 것 같지만,
어떤 텍스트도 문자 그대로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언어의 속성 자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온전히 드러내지 못하고,
일단 사실이나 개념, 사상 등이 글로든 말로든 텍스트화하면,
그것은 청자, 독자의 해석의 대상으로 돌려지는 것이지요.
게다가, 언어의 저변에는 세계관과 언어/텍스트 구성의 양식이 깔려 있습니다.
이것을 무시하고 축자적으로 해석하겠다구요? 웃기는 소리죠.
게다가, 한 사람에 의해 완성된 것도 아닌,
수천년간 구전되고 종합, 편집된 성서라는 고대 문헌을 축자적으로 해석한다?
넌센스입니다.

어차피 화자/필자와, 그가 산출한 언어 텍스트 사이에 거리가 발생하며,
텍스트와 청자/독자 사이에도 해석의 공간과 거리가 발생합니다.
그런데도, 이 '해석'의 문제를 일축해버리고,
곧이곧대로 순수하게 읽을 수 있다고 장담할 때,
결국 자기 자신의 시각으로 독선적인 독해를 하게 되는 건 당연지사입니다.

축자영감론에 입각한 이같은 독해는 자연히,
사물과 현상들을 인식하는 세계관에 있어서도,
비판과 의문을 제기하는 변혁의 해석학이 아니라,
기존의 체제와 권력을 보수하고, 주변자들을 억압하는
권력적 해석학으로 이어지고,
겸허한 자기 객관화와 반성, 비판의 정신은 실종되고 맙니다.
개신교 보수근본주의권이, 신앙의 지성적 성찰행위인 신학,
특히 윤리신학(기독교윤리학)이 약하며,
사회참여와 의식 또한 뒤지고 보수수구성향에 쏠리는 편이고,
(종교사회학자들의 대체적인 분석이지요)
걸핏하면 교회 내 분규와 추문, 범죄로 사회의 지탄을 받는 것이 이유 없지 않다고 봅니다.
스스로 사면을 꽉 막아놓고 살면서,
정작 그 안에서, 세속 못지 않게 타락한 수구근본주의 개신교의 현재의 모습은,
바로 이 축자영감설의 신봉에 원인이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도올선생은, 한국의 기독교(아마도 주류 개신교를 지목하신 듯)가
정도를 가도록 북돋아주고 싶으며,
기독교인들이 깨어나서 타자를 포용하고,
자기 신앙만이 유일하다는 독선도 타파하고,
더 이상 민중들을 기만하지 말고,
주체적으로 신앙을 바르게 갖도록 도와야 한다는 생각에서 이 강의를 한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렇다면, 성서라는 텍스트를 읽는 방법이라는,
가장 근본되는 부분을 건드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신 게 아닌가 나름대로 짐작해 봅니다.

도올선생을 썩 좋아하지는 않고,
이러한 발언이 순전히 진심어린 것이라기보다,
한국 사회의 반개신교적 정서(이것은 순전히 우리 책임입니다)에 호소하고
근본주의적 주류 개신교의 반발을 유도함으로써
그 사이에 발생하는 이익을 챙기기 위해
굳이 자극적인 표현을 쓰는게 아니냐는 못마땅한 느낌도 있습니다만,
(만약 그렇다면, 기회주의적 처신이라 해야겠지요)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이번 성황당 발언은, 마냥 비난만 할 것도 아니다 싶어
횡설수설 적어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