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자주의 시대




성경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어라

기독교인에게야 성경이 매우 중요한 책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모세가 홍해를 가른 이야기, 태양을 멈춘 이야기, 물고기 두 마리로 수많은 사람의 배를 채워 준 예수의 기적 이야기, 사람이 물고기 뱃속에 들어간 이야기 등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로 이루어진 책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특히, 현대 과학을 신봉하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초자연적인 이야기들을 믿는 기독교인들이 잘 이해가 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이야기들을 허무맹랑하다고 치부해 버릴 수 없습니다. 성경은 그들이 믿는 하나님과 예수님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거의 유일한 책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삼삼오오 모여 성경을 공부하고 목사님이 성경을 손에서 놓지 않기를 권유하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에게는 한 가지 과제가 주어집니다. 그것은 성경을 바람직하게 이해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경의 몇몇 구절을 인용해 사람들의 몸과 마음, 그리고 돈을 뜯어내는 무시무시한 사이비 종교에 빠져들거나 “내가 하나님이다. 내가 예수다.”라는 사람들처럼 자기 자신이 스스로 하나님이나 예수님이 되어 “나를 믿어야 구원받는다.”고 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성경을 바람직하게 이해하는 것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아 왔으며, 이에 대한 크고 작은 논쟁도 있었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바람직한’ 성경 이해는 “말씀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자”는 문자주의 해석입니다. 즉 성경 구절이 문자 그대로 참이며 오류가 없기 때문에 성경을 문자 그대로 신뢰하여 해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윌리엄 블랙스톤은 《축자적 해석Literal Interpretation》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성경을 공부하는 사람이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 성경 해석 방법이 필요합니다. 문자적인 해석방법은 성경 말씀을 말씀하신바 그대로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견해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문자적인 해석은 성경의 계시는 말하는 사람이나 기록하는 사람이 명확한 언어를 사용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했다고는 믿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씀을 계시해 주셨으며, 그 계시는 인간의 대화를 관장하는 보편적인 법에 의해 기록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방법은 바르고 정직한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에서 문자주의 해석이 가지고 있는 권위와 파워는 막강합니다.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성경에 그렇게 써져있어.”라는 말보다 더 권위 있는 말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서로 거친 논쟁이 오갈 때에도 이 말과 함께 그에 해당하는 성경 구절을 보여주면 상대방은 입을 다물어버립니다.



성경이 틀렸다?

문자주의 해석의 성경적인 근거는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씌어졌다고 말하는 디모데후서 3:16절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으로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을 유능하게 하고, 그에게 온갖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16)

문자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구절을 많이 인용합니다. 영국의 유명한 목회자 마틴 로이드 존스는 그의 저서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에서 “디모데후서 3장 16절에 의하면 성경은 성경 중에 특정한 책들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았고 다른 책들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지 않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모든 성경 문자는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졌다.”고 말합니다.

66권의 작은 책들로 구성되어 있는 성경은 약 40여명의 사람들에 의해 기록됐습니다. 신약성경만 보더라도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이 4권의 복음서를 기록하였고 바울이 여러 개의 편지를 썼으며 베드로와 야고보 등도 성경을 기록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자주의에 따르면 성경을 쓴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그대로 받아 적었을 뿐입니다. 로이드 존스의 말대로 성경의 모든 문자는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저자는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따라서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은 성경 저자가 아니라 ‘기자記者’입니다. 이에 대해 몇몇 교회에서는 성도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다음과 같은 비유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떤 할아버지가 손자를 불러 먼 친척에게 편지를 쓰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잠시 후 편지가 완성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편지는 누구의 편지가 되는 것입니까? 당연히 그것은 할아버지의 편지이지요. 비록 손자가 그것을 썼어도 내용을 읽는 사람은 그것이 손자가 보낸 편지가 아니라 할아버지의 마음이 기록 된 할아버지의 편지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처럼 성경은 하나님이 당신이 택하신 사람들로 하여금 기록하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혜림교회 《새가족 성경공부 믿음과정》)

문자주의에 의하면, 하나님은 성경 기자들을 도구삼아 직접 문자 하나하나에 영감을 불어넣어 쓴 성경에 오류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실수가 없는 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로이드 존스는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한다. 나아가 하나님께 영감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성경의 권위는 바로 이 하나님의 영감에 기초한다. 성경이 주장하는 바는 성경에 포함된 모든 것이 영감된 기록이고, 따라서 무오無誤하고 틀림이 없는 기록이라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문자주의, 즉 성경 축자 무오설의 주장처럼 성경의 기록은 틀린 것 없이 문자 그대로 완벽 할까요? 성경의 모든 기록은 사실만을 말하고 있을까요?

축자 무오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유감이지만 성경의 문자 기록들에는 많은 오류와 모순이 있습니다. 이 오류들은 기독교인이던 기독교인이 아니던, 성경을 자세히 보다보면 언젠가는 마주칠 수밖에 없는 오류들입니다. 지금부터 성경에 나타나는 오류와 모순들을 몇 개 살펴보겠습니다.


-문자주의 비판 2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