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 <열린 토론실>입니다. 다비안들의 부담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사랑채>와는 달리, 보다 진지하고 깊이있는 이야기나 주제를 나누고 싶은 분들을 위한 게시판입니다. 가급적 예의를 갖추시고 열린 마음으로 대화에 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울러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토론과 대화는 다비안을 비롯한 여러 네티즌들의 온라인 상에서의 자유로운 것이기에 그 방향과 정체성이 반드시 다비아와 일치하지는 않음을 밝혀둡니다.
글 수 253
이른바, '십일조'.
구약 율법서의 규정에 따르면, 하느님 백성 된 신앙고백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스라엘의 야훼 종교를 꾸려나가기 위한 재정적 토대를 위한 제도였습니다.
물론, 고대 사회에 보편적이었던 세금 제도의 연장이라고 봐야 하겠습니다.
구약의 율법이고, 율법은 폐지되었으니,
(율법의 정신과 '보편적' 도덕률까지 폐지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아무튼,)
십일조는 낼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있고,
성서는 곧이곧대로 하느님의 영감에 의한 말씀이고,
따라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보편성을 가지므로,
당연히 십일조를 바쳐야 된다는 입장도 존재합니다.
아무래도, 한국의 주류 개신교는 후자의 입장인 것 같고,
말라기 예언서의 말씀까지 갖다붙이면서
십일조를 축복의 방편으로까지 추켜세웁니다.
그리고, 전자의 주장은 이에 반발한 몇몇 분들이 펴고 있구요.
그런데, 저는, 십일조에 대하여
종교적으로 지나친 의미 부여를 해 오지 않았느냐는 불만이 있습니다.
어느 조직이든 운영에는 돈이 필요하며,
그 재정은 구성원들이 충당해야 되는 것입니다.
더욱이, 그 조직이 종교단체라면, 신앙심이 뒷받침되는 것은 당연하구요.
이런 의미에서, 옛 구약 시대의 제도적 장치인, 소득의 1/10이라는 비율을
그대로 축자적으로 고집하여 '십일조'라고 이름붙이는 것부터가 부당해 보입니다.
그저 천주교처럼, '교무금'이라고만 하면 되리라 생각합니다.
소득의 몇분의 몇이라고 할 것도 없고,
회비 개념으로, 월 또는 분기에 따라 자기 형편에 맞게 얼마씩이라든지,
소득 대 비율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1/10이라고 못박을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성서는 일점일획 틀림없는 하느님 말씀이니 십일조는 내야 하며,
(그러면서 왜 선지국에 돼지고기는 잘도 드시나)
십일조 잘 내면 축복받는다는 부적절한 설명은 이제 그만 하자는 겁니다.
굳이 종교적으로 의미부여를 할 필요가 없는 부분에까지 떡칠 그만하고,
상식 선으로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 부분은,
상식으로 설명하자는 거지요.
회비, 교무금, 이렇게 설명해도 사람들 충분히 납득하리라고 봅니다.
구약 율법서의 규정에 따르면, 하느님 백성 된 신앙고백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스라엘의 야훼 종교를 꾸려나가기 위한 재정적 토대를 위한 제도였습니다.
물론, 고대 사회에 보편적이었던 세금 제도의 연장이라고 봐야 하겠습니다.
구약의 율법이고, 율법은 폐지되었으니,
(율법의 정신과 '보편적' 도덕률까지 폐지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아무튼,)
십일조는 낼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있고,
성서는 곧이곧대로 하느님의 영감에 의한 말씀이고,
따라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보편성을 가지므로,
당연히 십일조를 바쳐야 된다는 입장도 존재합니다.
아무래도, 한국의 주류 개신교는 후자의 입장인 것 같고,
말라기 예언서의 말씀까지 갖다붙이면서
십일조를 축복의 방편으로까지 추켜세웁니다.
그리고, 전자의 주장은 이에 반발한 몇몇 분들이 펴고 있구요.
그런데, 저는, 십일조에 대하여
종교적으로 지나친 의미 부여를 해 오지 않았느냐는 불만이 있습니다.
어느 조직이든 운영에는 돈이 필요하며,
그 재정은 구성원들이 충당해야 되는 것입니다.
더욱이, 그 조직이 종교단체라면, 신앙심이 뒷받침되는 것은 당연하구요.
이런 의미에서, 옛 구약 시대의 제도적 장치인, 소득의 1/10이라는 비율을
그대로 축자적으로 고집하여 '십일조'라고 이름붙이는 것부터가 부당해 보입니다.
그저 천주교처럼, '교무금'이라고만 하면 되리라 생각합니다.
소득의 몇분의 몇이라고 할 것도 없고,
회비 개념으로, 월 또는 분기에 따라 자기 형편에 맞게 얼마씩이라든지,
소득 대 비율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1/10이라고 못박을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성서는 일점일획 틀림없는 하느님 말씀이니 십일조는 내야 하며,
(그러면서 왜 선지국에 돼지고기는 잘도 드시나)
십일조 잘 내면 축복받는다는 부적절한 설명은 이제 그만 하자는 겁니다.
굳이 종교적으로 의미부여를 할 필요가 없는 부분에까지 떡칠 그만하고,
상식 선으로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 부분은,
상식으로 설명하자는 거지요.
회비, 교무금, 이렇게 설명해도 사람들 충분히 납득하리라고 봅니다.
2007.02.14 23:26:55
이 글도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쟁토방으로 옮깁니다. 지난 번 공지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사랑채는 앞으로 부담없는 다비안들의 담화공간으로 꾸미고, 진지한 대화와 의견 교류는 이곳 쟁토방을 통해 꾸려가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2007.02.15 11:19:11
목사들이 구약을 억지해석 한것도 있지만 교회다니는 사람도 십일조든 무엇이든 바치면 복 받을수 있는 방법을 원하는 것도 큼니다.앞으로 천주교 처럼 교무금 식의 헌금을 거둡시다.그렇게 용기 있는 목사가 있을까 싶습니다.마찮가지로 교인들도 이제껏 낸 십일조가 부도?맞는 것이 아닌가 충격에 빠질검니다.십일조 정신을 말하지 않고 일단 바치고 다음달 또 바치면 이어서 내었다는 자기의와 마음이 그곳에 있습니다.십일조가 쌓이는 그곳입니다.자기 면류관 마저 내려놓고 찬양을 하는 그곳이 아니라 말입니다.신약시대 지금은 깨끗하게 벌수 있는 돈이 없습니다.나의 경제활동 또는 백수라 할지라도 누군가 다른사람에게 피해를 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어떤 의를 생산해 낼수 없음에도 열에 하나는 하나님 꺼라는 종교아이디어는 목사와 한국교인의 바램이 만들어낸 교회펀드입니다.십일조정신으로 물질을 버는것,또 거둔 십일조를 십일조 정신으로 쓰지 않으면서 십일조를 하는 것은 교회의 몸집과 기업화를 만들어낸 근거일것 같습니다.판돈이 있어야 고스톱이 재미있듯 하나님것 내것 구분지어 헌금해 내는 자신을 바라보며 또 교회에서도 인정받는 자신을 느끼면서 강팍해지는 대다수의 한국교인의 의식은 십일조를 개혁하더라고 고침받을수 없을것 같습니다.너무 많이 시간이 흘렀고,판돈이 너무 큼니다.
2007.02.16 11:31:11
신약 어디에도 십일조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구교에서도 십일조는 없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십일조가......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가" 원칙이 아닐까요(고후 9:7)
그래서 구교에서도 십일조는 없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십일조가......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가" 원칙이 아닐까요(고후 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