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 <열린 토론실>입니다. 다비안들의 부담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사랑채>와는 달리, 보다 진지하고 깊이있는 이야기나 주제를 나누고 싶은 분들을 위한 게시판입니다. 가급적 예의를 갖추시고 열린 마음으로 대화에 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울러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토론과 대화는 다비안을 비롯한 여러 네티즌들의 온라인 상에서의 자유로운 것이기에 그 방향과 정체성이 반드시 다비아와 일치하지는 않음을 밝혀둡니다.
글 수 253
초대교회의 위대한 목회자이신 사도바울은 천막 만드는 일을 하면서 소아시아 각처를 전도하면서 수많은 교회를 세우고 가르치는 와중에 질병에 걸려 고생하면서도 성도들의 헌금에 의존하지 않고 생계를 유지하며 전도활동을 했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한국교회 대부분의 목사들은 세속적인 직업을 가지지 않고 더군다나 한번도 직업을 경험하지 못하고 바로 목사란 성직의 직업을 평생직장으로 생각하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흔히들 목사를 하나님의 성직임을 강조하여 목사는 일반 직업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만 전심전력으로 연구하고 설교해야하는 사람이 돈 버는 직업을 가져서는 안 되고 교회와 성들에게 아무런 유익이 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물론 현대사회의 특성인 전문성, 기능성, 분업적인 사회시스템과 경제시스템을 보면 일리가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성경에서 제시하는 목회의 원형은 나 몰라라 하지는 말자입니다. 다른 것은 성경대로 하자고 그토록 강조하면서 왜 사도바울의 목회모범은 따르지 않는지 의문이 갑니다. 모두가 아전인수의 달인인 것 같습니다. 사실 대부분 목사들은 세상의 직업이 없습니다. 그저 목회활동을 하며 생계를 유지합니다. 신학교 다닐 때 부터 세상의 직업을 갖지 못하고 목회를 시작한 목사들은 세상물정과 돈벌이의 어려움과 고충은 모릅니다. 개중에는 세상직업을 가지고 살다가 중간에 소명감으로 목사가 된 분들은 그나마 다행입니다, 성도들의 삶과 고충을 알기 때문에 목회급여에 신경 쓰지 않고 교회 살림살이를 검소하고 절약하는 애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물정과 철모르는 목사는 교회 돈을 자기 돈인 냥 마음대로 청구하여 쓴다고 합니다.
이런 목사님도 있다고 합니다. 스스로 일을 하시며 장애인과 고아를 돌보며 목회를 한다고 합니다. 물론 성도들의 헌금도 있지만 예산의 상당부분은 스스로 노동을 통해 번 돈으로 섬긴다고 합니다. 이렇게 몸으로 섬기는 모습이 진짜 사도바울의 후배이자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목회를 하시는 게 아닐까요? 왜 한국교회의 목사들은 일하기 싫어할까요? 스님들은 스스로 텃밭을 가꾸며 농사짓고 , 일일 삼가식(하루에 세집이상 구걸하지 말아라는 계율임, 땡 중은 이 계율을 어기고 있음)으로 살아가고, 성당의 신부님도 가끔 주말농장에서 농사를 짓는데 왜 유독 기독교 목사들만 일하기 싫어할까요? 땀 흘려 일하는 것을 천하게 생각하여 나라를 망하게 한 조선시대의 유교적, 양반의 옷을 입은 영향이 아닐까 여겨집니다.
사도바울은 우리 기독교에 있어서 가장 모범적인 목회원형을 실천하신 하나님의 진정한 종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은 복음을 전한다는 명분으로 어떠한 호사스런 대우나 대가를 받지 않았습니다. 지금의 한국교회의 부흥사들과 브랜드목사들은 이런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로 해외유학 ,박사학위 소유의 목사라는 상위계층의 신분의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은 이방종교의 관습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들의 모습을 본받아야만 복음전도자의 신분적 권위와 존경을 받을 것이고 추락한 목사의 신뢰도가 되살아 날 것입니다.
바나바와 바울이 옷을 찢어가면서 까지 안타까운 질책은 이스라엘 백성들(루스드라 사람들)의 잘못된 신앙의식구조를 안타까워하며, 잘못된 복음이해를 바로잡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의 질책은 인간의 능력에 촛점을 맞추기 보다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능력임을 알아라는 절규이고 외침이었던 것입니다. 자신은 죄인중의 괴수로 고뇌하고 삶으로 실천하는 이런 겸손한 행위가 사도바울이야 말로 이 세상 복음역사에 우뚝 선 위대한 인물이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목회원형을 회복하는 영젹 쇄신 운동이 일어나야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교회로, 진정한 교회로 환골탈태가 되는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한국교회안의 성도들은 바나바와 바울을 신으로 섬기려 했던 루스드라 사람들과 같은 잘못된 신앙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인간의 심리를 이용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과 은사를 자신의 목회성공과 사리사욕의 목적에 이용하는 현상들을 보게 됩니다. 한국교회 안에서는 인간이 만든 많은 목회성공철학과 신학, 경영학적, 마케팅의 테크닉으로 포장한 실용적 복음이 예수그리스도의 복음과 동등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많은 목회성공, 대형교회 성장의 영적성취의 열매들이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고 그 열매를 독차지 하고 자식에게 까지 세습하고 있습니다. 그런 목사들은 거짓 목사입니다.
앞서 말한 바울의 모습은 복음을 빌미로 어떠한 위장도, 가식도, 거만도, 영광도, 철저히 부정한 인간적인 모습을 가지신 분이었습니다. 복음전도자의 참된 모습을 실천하신 분이었습니다. 바울은 신으로 떠받들고 섬기려는 무리를 향해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면서 결코 신이 아님을 분명히 말했습니다. 속된 말로 그냥 가만히 있으면 50점은 따고 들어가는데 바울은 자원해서 0점을 받았습니다. 우리로서는 결코 흉내내지 못하는 바울의 위대한 복음의 고백임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의 고백은 인간은 결코 신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빌미로 어떤 영광과 댓가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모델이었습니다. 복음전도자의 대선배이신 바울의 고백이 이러할진대 자본주의 사회의 편한 세상에서 복음을 전한다는 명분으로 성도들로부터 섬김을 받으려는 한국교회의 목사들은 대오각성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언제부터인지 교회는 피라밋 모양의 구조를 가지게 되어서 그 정점에 목사들이 서 있고 모든 교인들은 그 정점에 있는 목사를 중심으로 해서 교회를 이루는 형태로 변모하고 말았습니다. 그런 풍조는 복음주의자들에게도 심각한 유혹이 되었습니다. 일단 목사라는 호칭을 사용하면 권위가 따라오고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목사라는 호칭은 그래서 기독교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이며 필수적인 직함이 됩니다. 장로보다는목사란 호칭이 더 상위의 개념으로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집사는 목사의 발가락의 때만큼도 여기지 않지요. 그런 냉소적인 반응을 경험하고 나면 목사라는 달란트의 변질정도가 심각함을 깨닫게 됩니다.
거짓 목사들은 대개 목사의 신비한 권위(?)를 연출하기 위하여 온갖 인간적 노력을 다합니다. 제스춰는 물론이고 발음, 억양, 부흥사 특유의 쉰듯한 저음의 약장사 목소리(거룩한 목소리로 착각)는 가증된 목소리입니다. 기도원에서는 거짓목사가 되기 위한 이런저런 정보도 많이 접하게 됩니다. 따라서 방언을 하고 환상과 계시를 본 경험도 조작 간증하여야 하고 혹은 치유능력이 있다고, 투시하는 영안을 가졌다고 하여 나는 평신도들인 당신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신분적 우월감을 강조하면서 교인들에게 신비감을 주기도 합니다.
이렇게 인간의 목회테크닉으로 해서 숫자가 많아진 교회는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교회는 아닙니다. 교회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교회가 아니라 인간이 경영하는 교회 즉 장사하는 교회로 만들어 버리는 성황당과 같은 조직이 되어 버립니다. 아니면 사교단체와 같이 조직으로 움직이는 체계화된 교회가 되어버리고 말지요.
작은 교회에 다니면 여러 가지로 보이지 않는 부담이 많지만 큰 교회로 가면 이미 웅장한 예배당 건물에 유명한 목사가 있고, 각종 조직과 프로그램들이 있어서 그저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어느 한 곳에 몸을 내맡기기만 하면 저절로 신앙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승진시스템에 따라 집사, 장로, 권사가 되어 그 속에서 일종의 조직생활에 익숙해 지는 것이지요. 그것이 신앙생활인지 조직생활인지 잘 모르지만 대형 교회를 다니면 어느 정도 부담 없고 모든 욕구를 충족시켜주니 만족스러운 것입니다. 그런 교인들의 마음속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보다는 보다 브랜드목사의 메시지와 브랜드교회라는 경제적 비교우위의 충족과 스타 동일시 현상의 충족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목사가 너무도 많습니다. 왜 그리 하나님의 종이 되겠다고 서원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종은 자신이 선택하시는데 그와는 반대로 인간 스스로가 종이 되겠다고 일방적으로 자원한 결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목사가 희소한가 봅니다. 마태복음에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도 말고 지도자로 칭함을 받지 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 선생은 하나이고, 우리는 다 형제이고, 우리 지도자는 한분 오직 예수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현재의 교회제도를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 선생이나 목사, 지도자의 직무가 생태적, 은사적, 청지기로서의 하나님 심부름을 하자는 것입니다. 즉 군림하거나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복음이 선포되어지고 행동하자는 것입니다.
진정한 권위는 내가 주장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은사와 삶을 통한 인격에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런 권위가 없으니까 제도나 복장을 통해서 인위적으로 권위를 나타내려고 하는 것이 오늘날의 교회세태입니다. 권위를 강요하는 것은 권위주의가 되어버립니다. 제사장으로 군림하는 목회는 대부분 독재의 옷을 입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도들간의 정보통제와 표적설교로 사상과 생각을 통제하려하고 사적인 감정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참으로 한심한 목회현장입니다. 유치원 같은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우리 모두가 미성숙한 영적 상태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만 교사인 목사가 항상 유치원 교사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어 버리는 것이지요.
다시금 사도바울의 고백을 반추하여야 할 때입니다. 인간적인 기준으로 교회를 운영해서는 안 됩니다. 자본주의 세계관에서 높이 평가되는 액세서리들이 신앙의 모습을 구현 할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인간을 구원할 수도 없습니다. 복음은 아무 것도 내세울만한 것이 없어도 하나님께서는 귀중한 택한 백성으로 삼으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단지 우리가 자랑할 것은 구원과 은사를 선물로 주신 예수그리스도뿐 입니다. 허지만 세상 사람들은 교회는 출세하고 돈이 있어야 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착각을 하게한 책임은 교회가 원인 제공한 것임을 알고 석고대죄 하여야 할 일입니다. 특히 대형교회와 개그, 탈선부흥사, 빗나간 브랜드목사들이 그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성경에서 제시하는 목회의 원형은 나 몰라라 하지는 말자입니다. 다른 것은 성경대로 하자고 그토록 강조하면서 왜 사도바울의 목회모범은 따르지 않는지 의문이 갑니다. 모두가 아전인수의 달인인 것 같습니다. 사실 대부분 목사들은 세상의 직업이 없습니다. 그저 목회활동을 하며 생계를 유지합니다. 신학교 다닐 때 부터 세상의 직업을 갖지 못하고 목회를 시작한 목사들은 세상물정과 돈벌이의 어려움과 고충은 모릅니다. 개중에는 세상직업을 가지고 살다가 중간에 소명감으로 목사가 된 분들은 그나마 다행입니다, 성도들의 삶과 고충을 알기 때문에 목회급여에 신경 쓰지 않고 교회 살림살이를 검소하고 절약하는 애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물정과 철모르는 목사는 교회 돈을 자기 돈인 냥 마음대로 청구하여 쓴다고 합니다.
이런 목사님도 있다고 합니다. 스스로 일을 하시며 장애인과 고아를 돌보며 목회를 한다고 합니다. 물론 성도들의 헌금도 있지만 예산의 상당부분은 스스로 노동을 통해 번 돈으로 섬긴다고 합니다. 이렇게 몸으로 섬기는 모습이 진짜 사도바울의 후배이자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목회를 하시는 게 아닐까요? 왜 한국교회의 목사들은 일하기 싫어할까요? 스님들은 스스로 텃밭을 가꾸며 농사짓고 , 일일 삼가식(하루에 세집이상 구걸하지 말아라는 계율임, 땡 중은 이 계율을 어기고 있음)으로 살아가고, 성당의 신부님도 가끔 주말농장에서 농사를 짓는데 왜 유독 기독교 목사들만 일하기 싫어할까요? 땀 흘려 일하는 것을 천하게 생각하여 나라를 망하게 한 조선시대의 유교적, 양반의 옷을 입은 영향이 아닐까 여겨집니다.
사도바울은 우리 기독교에 있어서 가장 모범적인 목회원형을 실천하신 하나님의 진정한 종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은 복음을 전한다는 명분으로 어떠한 호사스런 대우나 대가를 받지 않았습니다. 지금의 한국교회의 부흥사들과 브랜드목사들은 이런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로 해외유학 ,박사학위 소유의 목사라는 상위계층의 신분의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은 이방종교의 관습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들의 모습을 본받아야만 복음전도자의 신분적 권위와 존경을 받을 것이고 추락한 목사의 신뢰도가 되살아 날 것입니다.
바나바와 바울이 옷을 찢어가면서 까지 안타까운 질책은 이스라엘 백성들(루스드라 사람들)의 잘못된 신앙의식구조를 안타까워하며, 잘못된 복음이해를 바로잡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의 질책은 인간의 능력에 촛점을 맞추기 보다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능력임을 알아라는 절규이고 외침이었던 것입니다. 자신은 죄인중의 괴수로 고뇌하고 삶으로 실천하는 이런 겸손한 행위가 사도바울이야 말로 이 세상 복음역사에 우뚝 선 위대한 인물이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목회원형을 회복하는 영젹 쇄신 운동이 일어나야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교회로, 진정한 교회로 환골탈태가 되는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한국교회안의 성도들은 바나바와 바울을 신으로 섬기려 했던 루스드라 사람들과 같은 잘못된 신앙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인간의 심리를 이용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과 은사를 자신의 목회성공과 사리사욕의 목적에 이용하는 현상들을 보게 됩니다. 한국교회 안에서는 인간이 만든 많은 목회성공철학과 신학, 경영학적, 마케팅의 테크닉으로 포장한 실용적 복음이 예수그리스도의 복음과 동등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많은 목회성공, 대형교회 성장의 영적성취의 열매들이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고 그 열매를 독차지 하고 자식에게 까지 세습하고 있습니다. 그런 목사들은 거짓 목사입니다.
앞서 말한 바울의 모습은 복음을 빌미로 어떠한 위장도, 가식도, 거만도, 영광도, 철저히 부정한 인간적인 모습을 가지신 분이었습니다. 복음전도자의 참된 모습을 실천하신 분이었습니다. 바울은 신으로 떠받들고 섬기려는 무리를 향해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면서 결코 신이 아님을 분명히 말했습니다. 속된 말로 그냥 가만히 있으면 50점은 따고 들어가는데 바울은 자원해서 0점을 받았습니다. 우리로서는 결코 흉내내지 못하는 바울의 위대한 복음의 고백임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의 고백은 인간은 결코 신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빌미로 어떤 영광과 댓가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모델이었습니다. 복음전도자의 대선배이신 바울의 고백이 이러할진대 자본주의 사회의 편한 세상에서 복음을 전한다는 명분으로 성도들로부터 섬김을 받으려는 한국교회의 목사들은 대오각성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언제부터인지 교회는 피라밋 모양의 구조를 가지게 되어서 그 정점에 목사들이 서 있고 모든 교인들은 그 정점에 있는 목사를 중심으로 해서 교회를 이루는 형태로 변모하고 말았습니다. 그런 풍조는 복음주의자들에게도 심각한 유혹이 되었습니다. 일단 목사라는 호칭을 사용하면 권위가 따라오고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목사라는 호칭은 그래서 기독교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이며 필수적인 직함이 됩니다. 장로보다는목사란 호칭이 더 상위의 개념으로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집사는 목사의 발가락의 때만큼도 여기지 않지요. 그런 냉소적인 반응을 경험하고 나면 목사라는 달란트의 변질정도가 심각함을 깨닫게 됩니다.
거짓 목사들은 대개 목사의 신비한 권위(?)를 연출하기 위하여 온갖 인간적 노력을 다합니다. 제스춰는 물론이고 발음, 억양, 부흥사 특유의 쉰듯한 저음의 약장사 목소리(거룩한 목소리로 착각)는 가증된 목소리입니다. 기도원에서는 거짓목사가 되기 위한 이런저런 정보도 많이 접하게 됩니다. 따라서 방언을 하고 환상과 계시를 본 경험도 조작 간증하여야 하고 혹은 치유능력이 있다고, 투시하는 영안을 가졌다고 하여 나는 평신도들인 당신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신분적 우월감을 강조하면서 교인들에게 신비감을 주기도 합니다.
이렇게 인간의 목회테크닉으로 해서 숫자가 많아진 교회는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교회는 아닙니다. 교회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교회가 아니라 인간이 경영하는 교회 즉 장사하는 교회로 만들어 버리는 성황당과 같은 조직이 되어 버립니다. 아니면 사교단체와 같이 조직으로 움직이는 체계화된 교회가 되어버리고 말지요.
작은 교회에 다니면 여러 가지로 보이지 않는 부담이 많지만 큰 교회로 가면 이미 웅장한 예배당 건물에 유명한 목사가 있고, 각종 조직과 프로그램들이 있어서 그저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어느 한 곳에 몸을 내맡기기만 하면 저절로 신앙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승진시스템에 따라 집사, 장로, 권사가 되어 그 속에서 일종의 조직생활에 익숙해 지는 것이지요. 그것이 신앙생활인지 조직생활인지 잘 모르지만 대형 교회를 다니면 어느 정도 부담 없고 모든 욕구를 충족시켜주니 만족스러운 것입니다. 그런 교인들의 마음속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보다는 보다 브랜드목사의 메시지와 브랜드교회라는 경제적 비교우위의 충족과 스타 동일시 현상의 충족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목사가 너무도 많습니다. 왜 그리 하나님의 종이 되겠다고 서원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종은 자신이 선택하시는데 그와는 반대로 인간 스스로가 종이 되겠다고 일방적으로 자원한 결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목사가 희소한가 봅니다. 마태복음에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도 말고 지도자로 칭함을 받지 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 선생은 하나이고, 우리는 다 형제이고, 우리 지도자는 한분 오직 예수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현재의 교회제도를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 선생이나 목사, 지도자의 직무가 생태적, 은사적, 청지기로서의 하나님 심부름을 하자는 것입니다. 즉 군림하거나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복음이 선포되어지고 행동하자는 것입니다.
진정한 권위는 내가 주장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은사와 삶을 통한 인격에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런 권위가 없으니까 제도나 복장을 통해서 인위적으로 권위를 나타내려고 하는 것이 오늘날의 교회세태입니다. 권위를 강요하는 것은 권위주의가 되어버립니다. 제사장으로 군림하는 목회는 대부분 독재의 옷을 입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도들간의 정보통제와 표적설교로 사상과 생각을 통제하려하고 사적인 감정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참으로 한심한 목회현장입니다. 유치원 같은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우리 모두가 미성숙한 영적 상태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만 교사인 목사가 항상 유치원 교사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어 버리는 것이지요.
다시금 사도바울의 고백을 반추하여야 할 때입니다. 인간적인 기준으로 교회를 운영해서는 안 됩니다. 자본주의 세계관에서 높이 평가되는 액세서리들이 신앙의 모습을 구현 할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인간을 구원할 수도 없습니다. 복음은 아무 것도 내세울만한 것이 없어도 하나님께서는 귀중한 택한 백성으로 삼으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단지 우리가 자랑할 것은 구원과 은사를 선물로 주신 예수그리스도뿐 입니다. 허지만 세상 사람들은 교회는 출세하고 돈이 있어야 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착각을 하게한 책임은 교회가 원인 제공한 것임을 알고 석고대죄 하여야 할 일입니다. 특히 대형교회와 개그, 탈선부흥사, 빗나간 브랜드목사들이 그리해야 할 것입니다.
2007.11.30 00:22:42
어쩜 그렇게 제가 하고싶은 말을
일목요연하게도 잘하시는지 감사합니다 ^^
그렇지만 꼭 들으셔야 할 분들(?)께옵서 과연 들으실지요...^^
시원하네욤~
일목요연하게도 잘하시는지 감사합니다 ^^
그렇지만 꼭 들으셔야 할 분들(?)께옵서 과연 들으실지요...^^
시원하네욤~
2007.11.30 09:02:28
7년을 무임으로 목회하다보니 빚이 거의 7천정도 지더군요.
지금은 비정규직 정도의 페이를 받으며 예전보다 안정된 생활을 하는 목회자 중 한명입니다.
바울의 직업이 정말로 천막수리공 일까요?
천막이 아니라 빵과 포도주도 팔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겁니다.
바울은 다소학파의 당대 훌륭한 학자였습니다.
글의 내용이 무엇을 전하는지 잘 알겠습니다만 예가 잘못된것 같습니다.
작은 교회의 일년 예산이 괜찮은 직장을 가진 가정의 일년 예산보다 적습니다.
우리나라는 아직은 잘못된 목사 보다는 바른목사가 많은 나라입니다.
대형교회와 개그, 탈선부흥사, 빗나간브랜드 목사는 목사가 원하는 것보다 비뚫어진 교우들이 먼저 원하고 있습니다.
소수의 개목들 빼고는 이 땅의 수 많은 목회자들이 피해를 입습니다.
늘 아버지 하느님의 평강이 가득하시길 두손 모읍니다.
지금은 비정규직 정도의 페이를 받으며 예전보다 안정된 생활을 하는 목회자 중 한명입니다.
바울의 직업이 정말로 천막수리공 일까요?
천막이 아니라 빵과 포도주도 팔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겁니다.
바울은 다소학파의 당대 훌륭한 학자였습니다.
글의 내용이 무엇을 전하는지 잘 알겠습니다만 예가 잘못된것 같습니다.
작은 교회의 일년 예산이 괜찮은 직장을 가진 가정의 일년 예산보다 적습니다.
우리나라는 아직은 잘못된 목사 보다는 바른목사가 많은 나라입니다.
대형교회와 개그, 탈선부흥사, 빗나간브랜드 목사는 목사가 원하는 것보다 비뚫어진 교우들이 먼저 원하고 있습니다.
소수의 개목들 빼고는 이 땅의 수 많은 목회자들이 피해를 입습니다.
늘 아버지 하느님의 평강이 가득하시길 두손 모읍니다.
2007.11.30 11:28:11
최종운 님 말씀 백번 공감이 됩니다... 저도 항상 그런 목사님을 보고, 설교 듣고 있으니깐요... 그렇지만 이 글을 보시면 억울하신 목사님들도 제법 되실 것 같습니다... 다비아에 들어오시는 목사님들 중에는...
목수 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비뚤어진 성도들의 문제도 현재로선 심각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공급" 과 "수요" 는 항상 같이 따라가니깐요...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하는 이야기가 생각이 드는데요...
그래도 이 문제에 있어서는, 열심히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목회하시는 목사님들은 억울하시겠지만, 첫 시작은 닭이 먼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금은 그 문제가 너무 구조화 되어서 뜯어서 고치기도 힘든 상황이 되었지만요...
목수 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비뚤어진 성도들의 문제도 현재로선 심각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공급" 과 "수요" 는 항상 같이 따라가니깐요...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하는 이야기가 생각이 드는데요...
그래도 이 문제에 있어서는, 열심히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목회하시는 목사님들은 억울하시겠지만, 첫 시작은 닭이 먼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금은 그 문제가 너무 구조화 되어서 뜯어서 고치기도 힘든 상황이 되었지만요...
2007.11.30 13:16:00
님의 말씀에 100% 공감합니다.그런 성장지상주의적 성공 모델이 한국교회에서 각광을 받고 있고 심지어 컨설팅 프로그램에 지원자가 몰린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해 비해 수많은 농촌교회의 목회자나 도시의 지하층 교회등의 개척교회 목회자분들에게 상처가 되디 않았음 합니다. 특수성의 일반화의 오류를 범할수도 있고...
한달 생계비에도 못미처 허덕이는 이땅의 가난한 목회분들께 주님의 평강이...
한달 생계비에도 못미처 허덕이는 이땅의 가난한 목회분들께 주님의 평강이...
2007.11.30 14:59:23
최종운님이 목사님이신지 아니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당당뉴스에도 이글이 게재되었더군요.
목수목사님 말씀처럼 억울하신 목사님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억울한 목사님들 중에서도 크게 보면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지향하는 바는 대형교회와 성공한 것으로 보이는 목회자이지만 아직 그 자리까지 이르지 못해서 허덕이는 부류와
또 다른 하나는 아예 그런 목회를 지향하지 아니하고 현장중심인 목회를 해 나가시는 분 들 말입니다.
제가 만나 본 많은 신학생들은 결코 사도바울과 같은 목회철학이 아닌
생계를 유지하는 직업으로서의 목사를 지향하는 친구들이 너무 많더군요.
예를 들자면 명*교회 김*환 목사와 같은 성공스토리,
삼*교회 전*욱목사와 같은 뜨거운 목회...듣 등
직접 교회이름을 거명하는 것이 좀 거시기해서 *처리를 했습니다만 진짜 억울한 목사님들은 위 꼭지글과 같은 글에 전혀 상처받지 않는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위 쪽지글에 상처를 받으시며 억울하다고 하실 분들은
아마도 강남을 꿈꾸는 강북사람, 수도권을 꿈꾸는 지방사람 정도로 대치해서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의 이해는 되지 않을까 나름 생각해 봅니다.(저의 주관적 생각이므로 얼마든지 반박이 가능하겠지요.)
시골에서, 벽지에서 농부들과 한 몸이 되고 농사짓고, 달동네 산동네에서 헐 벗은 사람들과 함께 하시는 목사님들은 결코 대형교회나 성공하는(?) 그런 목회를 아예 생각하지도 않으시고 계시니 억울할 일도 없는 것이지요.
하여간, 보편적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대부분의 목사들이 성도들의 피와 땀이 어린 헌금을 너무도 쉽게 생각한다는 데에는 저도 한 표를 더합니다.
목수목사님 말씀처럼 억울하신 목사님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억울한 목사님들 중에서도 크게 보면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지향하는 바는 대형교회와 성공한 것으로 보이는 목회자이지만 아직 그 자리까지 이르지 못해서 허덕이는 부류와
또 다른 하나는 아예 그런 목회를 지향하지 아니하고 현장중심인 목회를 해 나가시는 분 들 말입니다.
제가 만나 본 많은 신학생들은 결코 사도바울과 같은 목회철학이 아닌
생계를 유지하는 직업으로서의 목사를 지향하는 친구들이 너무 많더군요.
예를 들자면 명*교회 김*환 목사와 같은 성공스토리,
삼*교회 전*욱목사와 같은 뜨거운 목회...듣 등
직접 교회이름을 거명하는 것이 좀 거시기해서 *처리를 했습니다만 진짜 억울한 목사님들은 위 꼭지글과 같은 글에 전혀 상처받지 않는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위 쪽지글에 상처를 받으시며 억울하다고 하실 분들은
아마도 강남을 꿈꾸는 강북사람, 수도권을 꿈꾸는 지방사람 정도로 대치해서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의 이해는 되지 않을까 나름 생각해 봅니다.(저의 주관적 생각이므로 얼마든지 반박이 가능하겠지요.)
시골에서, 벽지에서 농부들과 한 몸이 되고 농사짓고, 달동네 산동네에서 헐 벗은 사람들과 함께 하시는 목사님들은 결코 대형교회나 성공하는(?) 그런 목회를 아예 생각하지도 않으시고 계시니 억울할 일도 없는 것이지요.
하여간, 보편적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대부분의 목사들이 성도들의 피와 땀이 어린 헌금을 너무도 쉽게 생각한다는 데에는 저도 한 표를 더합니다.
2007.11.30 15:34:34

오늘 바울 선생님의 이야기를 하니 집주인 이었던 목사 내외가 생각납니다.
한 3년전에 전세집 주인하고 심하게 싸운적 있습니다.
집주인은 충북 진천군 순복음교회 목사님인데, 투기목적으로 집을 여러채 갔고 있습니다.
특히 집주인 와이프에게 세입자로서 기본적인 권리를 요구하면, 싹 무시하고 자기 입맛대로 이야기 합니다.
기본적인 상식이 안통했습니다.
나중에는 세입자인 저도 모르게 집를 팔았습니다.
집구입자가 저에게 연락을 하여서, 계약 할때 나와서 지금껏 참았던 이야기를 했습니다.
집주인 와이프가 한다는 말이 "젊은 사람이 왜 이리 추근대"랴고 합니다.
끝까지 물고 늘어지자 "젊은 사람이 참 똑똑하다"고 칭찬을 합니다.
참으로 병주고 약줍니다.
정말 계급장떼고 싸우고 싶은 마음이 솟구 쳤습니다.
더욱 재미가 있는 것은 집파는 가격을 낮추어 세금을 덜 내려다가 집 구매자가 그럴수는 없다고
완강히 거부하자 떨떠름 하는 표정으로 계약를 하는 입니다.
오히려 집을 사려는 불교신자인 그 분이 더 정이 갔고, 원칙을 지키시는 분이었습니다.
자기는 목사라 돈은 만지지 않은다면서, 와이프에게 돈을 세워보라고 하는 그 위선에 기가 찹니다.
검소 절약하며 살면서 기독교의 큰 본이 되신 바울 선생님이 오늘 그리워 집니다.
한 3년전에 전세집 주인하고 심하게 싸운적 있습니다.
집주인은 충북 진천군 순복음교회 목사님인데, 투기목적으로 집을 여러채 갔고 있습니다.
특히 집주인 와이프에게 세입자로서 기본적인 권리를 요구하면, 싹 무시하고 자기 입맛대로 이야기 합니다.
기본적인 상식이 안통했습니다.
나중에는 세입자인 저도 모르게 집를 팔았습니다.
집구입자가 저에게 연락을 하여서, 계약 할때 나와서 지금껏 참았던 이야기를 했습니다.
집주인 와이프가 한다는 말이 "젊은 사람이 왜 이리 추근대"랴고 합니다.
끝까지 물고 늘어지자 "젊은 사람이 참 똑똑하다"고 칭찬을 합니다.
참으로 병주고 약줍니다.
정말 계급장떼고 싸우고 싶은 마음이 솟구 쳤습니다.
더욱 재미가 있는 것은 집파는 가격을 낮추어 세금을 덜 내려다가 집 구매자가 그럴수는 없다고
완강히 거부하자 떨떠름 하는 표정으로 계약를 하는 입니다.
오히려 집을 사려는 불교신자인 그 분이 더 정이 갔고, 원칙을 지키시는 분이었습니다.
자기는 목사라 돈은 만지지 않은다면서, 와이프에게 돈을 세워보라고 하는 그 위선에 기가 찹니다.
검소 절약하며 살면서 기독교의 큰 본이 되신 바울 선생님이 오늘 그리워 집니다.
2007.11.30 17:31:44
이런 교회도 있더이다.
어떤 교회는 목사 월급이 너무 적어서
생활이 불가능해지자 사모님이 교인들 모르게 알바를 했다고 하네요.
그 분은 교회에서 사례비 적다고 불평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알바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탄로났는데
교인들은 사모님에 대놓고
믿음이 없는 사모라느니, 돈 밝히는 사모라느니 하는 말을 하는 바람에
그 사모님과 목사님이 엄청 시달렸다고 하더이다.
사실 그 사모님은 알바를 하면서
예배에 빠진 일도 없었고
사모로서 교회에 피해 준 일도 없었어요.
위의 분은 무엇을 근거로 글을 썼는지 모르지만
한국교회 전체가 목회자들이 세상 일에 뛰어드는 걸 허용하는지 안하는지
생각이나 한 번 해 보고 글을 썼는지 묻고 싶군요.
제가 보기에는 한국교회가 목사들이 일하는 걸 감당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혹시 위의 글을 쓰신 분은 자기 교회 목사님이
바울처럼 돈 버는 직업전선으로 뛰어들었을때
용납할수 있을지, 그리고 그런 용납이 개인의 차원을 넘어서
교회적인 차원에서 용납가능한지 물어보고 싶군요.
교회 중에는(물론 그렇지 않은 교회가 많지만) 목사나 사모님이 (세상)일도 못하게 하고
최저 생활비에도 못미치는 돈을 지급하면서
그 상황에서 돈을 버는 것도 막는다는 건 신앙의 차원을 넘어서
비이성적인 태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 정도 되면 도리어 미안한 맘을 가져도 시원찮은 판에
도리어 믿음없는 목사라니, 돈 밝히는 사모라느니
하는 건 좀 생각해 볼 일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 위의 글은 좀 한국교회의 정서를 고려하지 않는
주관에 근거하여 쓴 글이라고 느껴집니다.
제 생각으로는 개교회가 경제력이 떨어지면
목사나 목사 부인이 스스로 일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교회는 목사가 세상일에 뛰어들면
믿음없는 목사, 세속적인 목사라고 딱지를 붙이는 경향이 많은 것 같습니다.
위의 글쓴 분은 볼록렌즈만 끼고 교회를 보고있는 것 같군요.
오목렌즈를 껴야만 보이는 부분도 있다는 걸 기억하시면
좋겄습니다.
어떤 교회는 목사 월급이 너무 적어서
생활이 불가능해지자 사모님이 교인들 모르게 알바를 했다고 하네요.
그 분은 교회에서 사례비 적다고 불평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알바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탄로났는데
교인들은 사모님에 대놓고
믿음이 없는 사모라느니, 돈 밝히는 사모라느니 하는 말을 하는 바람에
그 사모님과 목사님이 엄청 시달렸다고 하더이다.
사실 그 사모님은 알바를 하면서
예배에 빠진 일도 없었고
사모로서 교회에 피해 준 일도 없었어요.
위의 분은 무엇을 근거로 글을 썼는지 모르지만
한국교회 전체가 목회자들이 세상 일에 뛰어드는 걸 허용하는지 안하는지
생각이나 한 번 해 보고 글을 썼는지 묻고 싶군요.
제가 보기에는 한국교회가 목사들이 일하는 걸 감당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혹시 위의 글을 쓰신 분은 자기 교회 목사님이
바울처럼 돈 버는 직업전선으로 뛰어들었을때
용납할수 있을지, 그리고 그런 용납이 개인의 차원을 넘어서
교회적인 차원에서 용납가능한지 물어보고 싶군요.
교회 중에는(물론 그렇지 않은 교회가 많지만) 목사나 사모님이 (세상)일도 못하게 하고
최저 생활비에도 못미치는 돈을 지급하면서
그 상황에서 돈을 버는 것도 막는다는 건 신앙의 차원을 넘어서
비이성적인 태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 정도 되면 도리어 미안한 맘을 가져도 시원찮은 판에
도리어 믿음없는 목사라니, 돈 밝히는 사모라느니
하는 건 좀 생각해 볼 일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 위의 글은 좀 한국교회의 정서를 고려하지 않는
주관에 근거하여 쓴 글이라고 느껴집니다.
제 생각으로는 개교회가 경제력이 떨어지면
목사나 목사 부인이 스스로 일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교회는 목사가 세상일에 뛰어들면
믿음없는 목사, 세속적인 목사라고 딱지를 붙이는 경향이 많은 것 같습니다.
위의 글쓴 분은 볼록렌즈만 끼고 교회를 보고있는 것 같군요.
오목렌즈를 껴야만 보이는 부분도 있다는 걸 기억하시면
좋겄습니다.
2007.11.30 18:37:07

신학생 채플 때 가장 듣기 싫은 초청강사 설교는
대 선배들의 설교였습니다.
대 선배들의 설교에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가 옛날을
추억하는 예화 비슷한 잔소리 설교입니다.
제가 신학교 다닐 때는 강의실도 변변치 않아서...
먹을 것이 없어서, 수돗물로 배를 채우고....
좋은 자료(책)가 변변치 않아서....
등록금을 내지 못해 막노동 판에가서....
설교실습 때 입을 양복이 없어서....
오로지 뒷동산에 가서 기도로 배고픔을 달랬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모교에 와보니
훌륭한 건물에, 훌륭한 박사님들, 좋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식당도 아름답게 지어졌고....
그런데 왜 학생들이 영력이 없습니까?
편해서 그렇습니다. 기도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띵 --"
자신만 고생한 선배목사의 설교 정말 싫었습니다.
.
.
.
모르긴 하지만 지금도 신학교 캠퍼스에 가면
등록금 못해는 학생들있습니다.
아르바이트와 막노동으로 책값 마련하는 학생들 있습니다.
부모님의 반대로 강의실이나
친구 자취방에 꼽싸리 끼어사는 학생들있습니다.
시내버스값 아껴서 책 사는 학생들있습니다.
이야긴 즉은,
일부 먹사들 때문에 모든 표시내지 않고 헌신하는
사역자들을 매도하지는 말자는 소리였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오염되지 않는 물처럼
순수한 목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목사에게만 바울처럼 살라고 요구하지 말고
교우들도 브리스길라, 아굴라부부처럼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의 사도들이 모두 순교했을 때
요한은 밧모 섬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요한을 알고 있는 교우들은 이렇게 말했을까요?
"아니, 저게 무슨 사도야. 사도는 순교해야 되는데
100수를 누리고 살다니... 쯧쯧쯧"
아닐 것입니다.
모든 목사가 바울처럼 살 수 없다고 봅니다.
런너님이 말하시는 그분은 제 선배목사님으로
기도로 살고 기도로 죽고자 하는 분이죠.
그 분 말씀 왈: 하루에 일곱시간, 여덟시간 기도해 보십시오.
왜 기도하지 않습니까?
기도하면 부흥이 온다니까요?
기도하지 않는 목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모든 목사가 부부관계를 금하고,
공부하지 말고 오로지 성경만 읽고(성경은 왜 읽지? 기도하면 무슨 말씀이 어디 있다고
가르쳐 주시지 않나?)
하루 종일 기도만하면 훌륭한 목사일까요?
모든 목사가 그렇게 살 수는 없겠지요.
사족이 길었군요.
그렇다고 제가 잘 나가는 목사는 아닙니다.
가난을 소원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간절하게 기다리는 종놈입니다.
좋은 저녁 되십시오. 평화-
대 선배들의 설교였습니다.
대 선배들의 설교에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가 옛날을
추억하는 예화 비슷한 잔소리 설교입니다.
제가 신학교 다닐 때는 강의실도 변변치 않아서...
먹을 것이 없어서, 수돗물로 배를 채우고....
좋은 자료(책)가 변변치 않아서....
등록금을 내지 못해 막노동 판에가서....
설교실습 때 입을 양복이 없어서....
오로지 뒷동산에 가서 기도로 배고픔을 달랬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모교에 와보니
훌륭한 건물에, 훌륭한 박사님들, 좋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식당도 아름답게 지어졌고....
그런데 왜 학생들이 영력이 없습니까?
편해서 그렇습니다. 기도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띵 --"
자신만 고생한 선배목사의 설교 정말 싫었습니다.
.
.
.
모르긴 하지만 지금도 신학교 캠퍼스에 가면
등록금 못해는 학생들있습니다.
아르바이트와 막노동으로 책값 마련하는 학생들 있습니다.
부모님의 반대로 강의실이나
친구 자취방에 꼽싸리 끼어사는 학생들있습니다.
시내버스값 아껴서 책 사는 학생들있습니다.
이야긴 즉은,
일부 먹사들 때문에 모든 표시내지 않고 헌신하는
사역자들을 매도하지는 말자는 소리였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오염되지 않는 물처럼
순수한 목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목사에게만 바울처럼 살라고 요구하지 말고
교우들도 브리스길라, 아굴라부부처럼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의 사도들이 모두 순교했을 때
요한은 밧모 섬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요한을 알고 있는 교우들은 이렇게 말했을까요?
"아니, 저게 무슨 사도야. 사도는 순교해야 되는데
100수를 누리고 살다니... 쯧쯧쯧"
아닐 것입니다.
모든 목사가 바울처럼 살 수 없다고 봅니다.
런너님이 말하시는 그분은 제 선배목사님으로
기도로 살고 기도로 죽고자 하는 분이죠.
그 분 말씀 왈: 하루에 일곱시간, 여덟시간 기도해 보십시오.
왜 기도하지 않습니까?
기도하면 부흥이 온다니까요?
기도하지 않는 목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모든 목사가 부부관계를 금하고,
공부하지 말고 오로지 성경만 읽고(성경은 왜 읽지? 기도하면 무슨 말씀이 어디 있다고
가르쳐 주시지 않나?)
하루 종일 기도만하면 훌륭한 목사일까요?
모든 목사가 그렇게 살 수는 없겠지요.
사족이 길었군요.
그렇다고 제가 잘 나가는 목사는 아닙니다.
가난을 소원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간절하게 기다리는 종놈입니다.
좋은 저녁 되십시오. 평화-
2007.11.30 21:24:26
여러분의 관심있는 글 감사드리고 다른 관점의 의견도 깊이 새기겠습니다.
제가 말하는 것을 기계적으로 제한하여 해석하시거나 다른관점으로 바라보면 얼마든지 다른 반론도 나오게 되겠지요. 어법상 강조법인 역설적으로 해석하시면 좋겠습니다. 분업화된 세상에서 목사란 전문성이 요구됩니다. 따라서 성도들의 서포트가 필요한 건 당연하지요.
허지만 최소한의 바울사도의 모범을 따라가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모든 논리와 이론은 절대는 없습니다. 상대적인 모델로 목회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나 하는 것이지요.
따라서 제글의 논지는 절대도 아니고 목사님들을 도매금으로 몰아부치는 것도 아닙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목회자와 성도간의 관계는 일종의 설교생산자와 설교소비자인 셈입니다. 일종의 무형지식의 거래인데 상거래 관례상 반드시 대가에 대한 지불의 의무가 있는 건 당연합니다.
소수의 복사 때문에 선의의 목사님들이 상처받을지 않을까 저 역시 마음이 아픕니다. 군대로 말하면 한사람의 잘못으로 전체 소대원이 얼차려 받는 기분이라 할까요?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허지만 복음의 본질은 거래가 존재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구원은 값없이 주어졌고 돈없는자도 와서 먹고 마시라 하셨기 때문이지요. 물론 예수님의 대속제물을 우리의 경제개념으로 정의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고 이세상을 아들을 보내시기 까지 이세상을사랑하는 가치는 측량불가능하며 하나님의 고유 주권입니다.
허지만 인간의 모든 재화활동은 상대적으로 고유가치가 평가가 가능하지요. 그래서 직업별 기능별 숙련정도에 따라 그 대가가 달라지게 되지요. 그것도 생태적이고 은사에 따른 직업으로 서로가 섬기는 청지기로 본다면 지금과 같은 양극화된 보수체계는 성경적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런 자본주의 상거래가 고착화되어 일반사화와 같은 고급정신활동에 대한 재화발생으로 고비용의 비용이 발생되어지는 것은 세상 경제법칙이지 하나님의 법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글의 요지는 사도바울의 검소하고 복음적인 생활을 본받아 남는 돈으로 가나한 교회와 농어촌 교회 목사에게도 함께 나누어 평균케 하여 동일한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자긍심을 느끼며 열등감이나 우월감의 포로가 되지 말자는 것입니다. 최소한의 나눔정신을 실천해보자는 것입니다.
이미 잘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제글의 의미를 역설적인 관점으로 일고 해석하시어 한국교회 목회현장에 신선한 개혁의 바람과 약간이나마 상대적 목회의 모델이 되었으면 합니다.
제가 말하는 것을 기계적으로 제한하여 해석하시거나 다른관점으로 바라보면 얼마든지 다른 반론도 나오게 되겠지요. 어법상 강조법인 역설적으로 해석하시면 좋겠습니다. 분업화된 세상에서 목사란 전문성이 요구됩니다. 따라서 성도들의 서포트가 필요한 건 당연하지요.
허지만 최소한의 바울사도의 모범을 따라가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모든 논리와 이론은 절대는 없습니다. 상대적인 모델로 목회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나 하는 것이지요.
따라서 제글의 논지는 절대도 아니고 목사님들을 도매금으로 몰아부치는 것도 아닙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목회자와 성도간의 관계는 일종의 설교생산자와 설교소비자인 셈입니다. 일종의 무형지식의 거래인데 상거래 관례상 반드시 대가에 대한 지불의 의무가 있는 건 당연합니다.
소수의 복사 때문에 선의의 목사님들이 상처받을지 않을까 저 역시 마음이 아픕니다. 군대로 말하면 한사람의 잘못으로 전체 소대원이 얼차려 받는 기분이라 할까요?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허지만 복음의 본질은 거래가 존재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구원은 값없이 주어졌고 돈없는자도 와서 먹고 마시라 하셨기 때문이지요. 물론 예수님의 대속제물을 우리의 경제개념으로 정의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고 이세상을 아들을 보내시기 까지 이세상을사랑하는 가치는 측량불가능하며 하나님의 고유 주권입니다.
허지만 인간의 모든 재화활동은 상대적으로 고유가치가 평가가 가능하지요. 그래서 직업별 기능별 숙련정도에 따라 그 대가가 달라지게 되지요. 그것도 생태적이고 은사에 따른 직업으로 서로가 섬기는 청지기로 본다면 지금과 같은 양극화된 보수체계는 성경적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런 자본주의 상거래가 고착화되어 일반사화와 같은 고급정신활동에 대한 재화발생으로 고비용의 비용이 발생되어지는 것은 세상 경제법칙이지 하나님의 법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글의 요지는 사도바울의 검소하고 복음적인 생활을 본받아 남는 돈으로 가나한 교회와 농어촌 교회 목사에게도 함께 나누어 평균케 하여 동일한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자긍심을 느끼며 열등감이나 우월감의 포로가 되지 말자는 것입니다. 최소한의 나눔정신을 실천해보자는 것입니다.
이미 잘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제글의 의미를 역설적인 관점으로 일고 해석하시어 한국교회 목회현장에 신선한 개혁의 바람과 약간이나마 상대적 목회의 모델이 되었으면 합니다.
2007.11.30 21:30:52
최종운 님~~
쓰신 내용 취지는 충분히 공감합니다.
하지만 취지의 근거는 분명 명확해야 합니다.
제가 제 칼럼 코너에
<바울은 목사가 아니었다>라는 제목으로
제 의견을 피력했어요.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성서적인 근거가 다소 취약하고
논리적인 비약이 느껴져서
댓글 대신 썼어요.
감사합니다.
쓰신 내용 취지는 충분히 공감합니다.
하지만 취지의 근거는 분명 명확해야 합니다.
제가 제 칼럼 코너에
<바울은 목사가 아니었다>라는 제목으로
제 의견을 피력했어요.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성서적인 근거가 다소 취약하고
논리적인 비약이 느껴져서
댓글 대신 썼어요.
감사합니다.
2007.11.30 22:05:44
현재 한국교회에서 만연하고 있는 목회의 표면적인 문제점이나 빗나간 목표들은 목사님 개개인이 책임질수 없는 범위라하겠습니다 목회자제도라는 필요악하에서 바울이 되기보다는 다윗이 되기를 원하는 목회자에게 신앙생활을 담보잡히고 있는 한국교회의 실상이,진정한 크리스찬에게는 차라리 인내를 연단하는 주님의 고난이 아닐까하고도 생각해봅니다
2007.11.30 23:58:10
최종운님 하느님의 자녀가 혹시 맞으신지요?
어떻게 이런 표현이 나오는가요?
"목회자와 성도간의 관계는 일종의 설교생산자와 설교소비자인 셈입니다."
목회자는 설교생산자가 아니라 삶입니다.
어떻게 이런 표현이 나오는가요?
"목회자와 성도간의 관계는 일종의 설교생산자와 설교소비자인 셈입니다."
목회자는 설교생산자가 아니라 삶입니다.
2007.12.01 00:32:53
충정은 알고도 남으며, 저 또한 공감합니다만,
많은 교파들이, 목회자들의 겸직을 불허하고 있습니다.
천주교 교회법, 성공회 헌장과 법규, 감리교 교리와 장정,
장로교를 비롯한 각 개신교파들의 헌법 등,
다른 직업, 이윤 추구 행위를 금지하는 교파가 많거든요.
그렇게 제한하는 까닭이, 서두에서 지적하시듯 그리 단순한 것은
아니라 생각됩니다.
지적하신 문제는, 개 교파의 법리적 판별의 사안이기에,
다른 성격의 논의로, 각론으로 다루어야 마땅할 것이구요,
목회자의 직무 가운데서, 설교는 일부분일 따름입니다.
(물론 매우 중요합니다)
예배에 있어서는, 더더욱 극히 일부입니다.
여담으로 성부른 소리 한 마디 덧붙이자면,
저는 개신교가 함몰된 '설교주의'가
너무너무 싫습니다.
그리스도교 전통에서의 탈선이라고도 저는 판단하고,
결과적, 공리적으로도 별로 이득이 없다고 봅니다.
많은 교파들이, 목회자들의 겸직을 불허하고 있습니다.
천주교 교회법, 성공회 헌장과 법규, 감리교 교리와 장정,
장로교를 비롯한 각 개신교파들의 헌법 등,
다른 직업, 이윤 추구 행위를 금지하는 교파가 많거든요.
그렇게 제한하는 까닭이, 서두에서 지적하시듯 그리 단순한 것은
아니라 생각됩니다.
지적하신 문제는, 개 교파의 법리적 판별의 사안이기에,
다른 성격의 논의로, 각론으로 다루어야 마땅할 것이구요,
목회자의 직무 가운데서, 설교는 일부분일 따름입니다.
(물론 매우 중요합니다)
예배에 있어서는, 더더욱 극히 일부입니다.
여담으로 성부른 소리 한 마디 덧붙이자면,
저는 개신교가 함몰된 '설교주의'가
너무너무 싫습니다.
그리스도교 전통에서의 탈선이라고도 저는 판단하고,
결과적, 공리적으로도 별로 이득이 없다고 봅니다.
2007.12.01 17:50:05
목수님은 어떻게 글을 그렇게도 분석 못하십니까? 그리고 하나님( 하느님)의 자녀가 혹시 맞으신지요? 하는 딴지를 거십니까? 그렇다면 목수님의 호적상 어버지 아들이 맞나요 하는 것과 같은 어불성설을 하시나요? 좀 생각하시고 댓글을 달아 주세요. 글에도 인격이 나타나거든요. ^-^
목회자와 성도간의 관계를 일종의 설교생산자와 설교소비자로 설정하는 것은 자본주의 경제 마케팅에서 볼때 그렇다는 것이고 모든 유형, 무형의 재화를 상품을으로 보기 때문에 설교도 일종의 상품으로 생각해서 그렇게 표현한 것이고 실제 도시 대형교회의 경우 이런 마케팅 측면에서 생산자와 소비자의 성격이 강하다고 보는 것이 개혁적인 관점입니다.
목회자는 설교생산자가 아니라 삶이라는 말씀은 당연한 말씀입니다. 삶이 뒷받침 되지 못하니까 기능적으로 볼때 생산자로 전락하는 거지요.
글의 의미를 잘 이해하시기를 바라고 더 자세하기 알기 원하시면 부흥과 개혁사 옥성호 형제가 지은 <마케팅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를 읽으시면 충분이 이해하시라 믿습니다.
신완식 목사님 역시 성경전문가 답게 예리하게 지적하신 것 맞습니다. 저는 성경의 논리보다는 개혁신앙의 상식이라고 할까요. 쉬운 언어로 말하고자 하다보니 그런 취약점이 있네요. 양해 하시기를 바랍니다. 신학과 학문적인 성격의 글이 되기 위해서는 그리 해야 하겠지요. 지적 감사드리구요. 저는 그냥 수필식으로 쉽게 글을 쓰다 보니 엄격한 논리적인 글의 성격을 충족시키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
목회자와 성도간의 관계를 일종의 설교생산자와 설교소비자로 설정하는 것은 자본주의 경제 마케팅에서 볼때 그렇다는 것이고 모든 유형, 무형의 재화를 상품을으로 보기 때문에 설교도 일종의 상품으로 생각해서 그렇게 표현한 것이고 실제 도시 대형교회의 경우 이런 마케팅 측면에서 생산자와 소비자의 성격이 강하다고 보는 것이 개혁적인 관점입니다.
목회자는 설교생산자가 아니라 삶이라는 말씀은 당연한 말씀입니다. 삶이 뒷받침 되지 못하니까 기능적으로 볼때 생산자로 전락하는 거지요.
글의 의미를 잘 이해하시기를 바라고 더 자세하기 알기 원하시면 부흥과 개혁사 옥성호 형제가 지은 <마케팅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를 읽으시면 충분이 이해하시라 믿습니다.
신완식 목사님 역시 성경전문가 답게 예리하게 지적하신 것 맞습니다. 저는 성경의 논리보다는 개혁신앙의 상식이라고 할까요. 쉬운 언어로 말하고자 하다보니 그런 취약점이 있네요. 양해 하시기를 바랍니다. 신학과 학문적인 성격의 글이 되기 위해서는 그리 해야 하겠지요. 지적 감사드리구요. 저는 그냥 수필식으로 쉽게 글을 쓰다 보니 엄격한 논리적인 글의 성격을 충족시키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
2007.12.01 17:56:42
우리가 성서를 인문학적으로 읽듯이 다른 사람의 글을 읽을 수만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말하는 화자의 입장에서 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 읽어낸다면 많은 오해가 사라지겠지요.
신목사님은 최종운님의 취지를 충분히 이해하신 상황에서 부족한 부분을 읽어내고 성서의 입장에서 보충해 주셨고, 이를 최종운님이 충분히 이해하시고 수용하실 수 있으니 그 정도면 참 좋은 것 아닐까요?
댓글이 무슨 논술시험이나 주관식 고사도 아니니 많은 실수나 오류가 있을 수도 있지만, 화자의 의도만이라도 읽어낸다면 충분하지 않을까하고 저는 생각이 듭니다.
말하는 화자의 입장에서 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 읽어낸다면 많은 오해가 사라지겠지요.
신목사님은 최종운님의 취지를 충분히 이해하신 상황에서 부족한 부분을 읽어내고 성서의 입장에서 보충해 주셨고, 이를 최종운님이 충분히 이해하시고 수용하실 수 있으니 그 정도면 참 좋은 것 아닐까요?
댓글이 무슨 논술시험이나 주관식 고사도 아니니 많은 실수나 오류가 있을 수도 있지만, 화자의 의도만이라도 읽어낸다면 충분하지 않을까하고 저는 생각이 듭니다.
2007.12.01 19:12:19

최종윤 님,
이 글이 여기서 조금 논란이 되는 이유는
내용이 잘못되었다기보다는 자리가 적당하지 않다는 데에 있는 것 같군요.
위의 내용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것이거든요.
다비아에서는 이미 이런 비판을 넘어서
새로운 대안을 찾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사이트거든요.
안티 기독교의 문제 제기에도 우리는 별로 관심이 없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말하는 모든 상처를 안고 있는 한국교회를
우리가 우리의 영적 어머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그런 마당에 위의 내용이 올라왔으니
좀 거시기하게 반응하는 분들이 있겠지요.
위에서 최종운 님이 제기하신 문제들은,
<바울처럼 ....>은 일반론이거나 당위이지요?
그런 방식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모두 예수처럼 살아야 한다는 말도 나올 수 있지요.
그런 일반론이 틀렸다는 게 아니라
구체적인 삶과 목회는 일반론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자비량 선교는 결코 실질적인 대안이 아니라는 걸
최종운 님이 모르시나요?
만약 그런 방식이라고 한다면
대학교 선생들이 학원강사를 하면서
대학선생질은 아르바이트로 하라는 말과도 비슷할 겁니다.
목사의 업무라는 게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거든요.
저도 젊었을 때 순전히 목회업무만이 아니라
교회 청소, 차량운행을 했습니다.
목회는 그야말로 전인적이고 총체적인 과업인데,
그걸 어떻게 자비량 운운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인지
이해하기가 조금 어렵군요.
아마 최종운 님은 목사들이 청빈하게 살아야 한다는 뜻으로
위의 글을 쓰셨겠지만,
자칫하면 공자 왈로 떨어질 염려가 엿보이는군요.
제가 잘못 읽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용서하세요.
그리고 최종운 님이 아마추어 글쟁이라면
제가 아무 말 하지 않고 지나갔을 텐데,
전문적인 논객이기에 한 마디 드렸습니다.
님의 글쓰기에 주님의 은총이 넘치기를...
이 글이 여기서 조금 논란이 되는 이유는
내용이 잘못되었다기보다는 자리가 적당하지 않다는 데에 있는 것 같군요.
위의 내용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것이거든요.
다비아에서는 이미 이런 비판을 넘어서
새로운 대안을 찾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사이트거든요.
안티 기독교의 문제 제기에도 우리는 별로 관심이 없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말하는 모든 상처를 안고 있는 한국교회를
우리가 우리의 영적 어머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그런 마당에 위의 내용이 올라왔으니
좀 거시기하게 반응하는 분들이 있겠지요.
위에서 최종운 님이 제기하신 문제들은,
<바울처럼 ....>은 일반론이거나 당위이지요?
그런 방식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모두 예수처럼 살아야 한다는 말도 나올 수 있지요.
그런 일반론이 틀렸다는 게 아니라
구체적인 삶과 목회는 일반론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자비량 선교는 결코 실질적인 대안이 아니라는 걸
최종운 님이 모르시나요?
만약 그런 방식이라고 한다면
대학교 선생들이 학원강사를 하면서
대학선생질은 아르바이트로 하라는 말과도 비슷할 겁니다.
목사의 업무라는 게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거든요.
저도 젊었을 때 순전히 목회업무만이 아니라
교회 청소, 차량운행을 했습니다.
목회는 그야말로 전인적이고 총체적인 과업인데,
그걸 어떻게 자비량 운운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인지
이해하기가 조금 어렵군요.
아마 최종운 님은 목사들이 청빈하게 살아야 한다는 뜻으로
위의 글을 쓰셨겠지만,
자칫하면 공자 왈로 떨어질 염려가 엿보이는군요.
제가 잘못 읽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용서하세요.
그리고 최종운 님이 아마추어 글쟁이라면
제가 아무 말 하지 않고 지나갔을 텐데,
전문적인 논객이기에 한 마디 드렸습니다.
님의 글쓰기에 주님의 은총이 넘치기를...
2007.12.02 12:28:28

요새는 없어졌지만 대학교때 문무대에 갔을때 신학대와 같이 훈련을 받았읍니다. 신학대 친구들에게 왜 신학대를 갔냐고 질문하면 (1) 점수가 딱 거시기 나와서 -- 저도 제 점수에 맞는 대학 전공을 택했었죠, (2) 잘 먹고 살려고 -- 다른 기술이 없어서, (3)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그런데 많은 친구들이 (1) 이나 (3) 하나만 찍는게 아니고 두루 다 찍더군요. 즉, 마땅한 직장이 없어서 목사가 되려하면서 그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 정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면 왜 아프리카 오지 같은 곳에서 가난하고 어려운 자들에게 말씀을 전하지 않고 이 편하 세상에서 장로랑 아웅다웅 싸우면 목사를 할려고 할까요?
목사님들께 진심으로 여쭈어 복고 싶군요. 왜 목사를 하시죠? 하나님께서 인도하셔서? - 아님 그렇게 믿고 싶은 건가요? 그냥 하나님 말씀도 전하지만 목구멍도 포도청이라 먹고 살려고? 물론 목사라고 배 굶고 살라는 법 없습니다. 목사가 벤츠 굴리고 다니면 어떴습니까?
그런데 목사가 대형 교회 건물에 연연하고, 큰 교회 목사자리를 탐하고, 부를 축적한다면 이미 스스로 우상을 섬기는게 아닐까요? 목사님 자신부터 명예의 우상, 부의 우상을 섬기고 스스로 우상이 되기를 바라면서 일반 사람에게 부자 청년의 예를 들면서 헌금을 하라고 강요 했을ㄸㅒ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실까요?
위에서 많은 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그런 목사는 소수라고. 하지만 소수건 아니건 그런 목사만 눈에 들어오니 제가 마귀에 씌인 건가요...
그런데 많은 친구들이 (1) 이나 (3) 하나만 찍는게 아니고 두루 다 찍더군요. 즉, 마땅한 직장이 없어서 목사가 되려하면서 그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 정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면 왜 아프리카 오지 같은 곳에서 가난하고 어려운 자들에게 말씀을 전하지 않고 이 편하 세상에서 장로랑 아웅다웅 싸우면 목사를 할려고 할까요?
목사님들께 진심으로 여쭈어 복고 싶군요. 왜 목사를 하시죠? 하나님께서 인도하셔서? - 아님 그렇게 믿고 싶은 건가요? 그냥 하나님 말씀도 전하지만 목구멍도 포도청이라 먹고 살려고? 물론 목사라고 배 굶고 살라는 법 없습니다. 목사가 벤츠 굴리고 다니면 어떴습니까?
그런데 목사가 대형 교회 건물에 연연하고, 큰 교회 목사자리를 탐하고, 부를 축적한다면 이미 스스로 우상을 섬기는게 아닐까요? 목사님 자신부터 명예의 우상, 부의 우상을 섬기고 스스로 우상이 되기를 바라면서 일반 사람에게 부자 청년의 예를 들면서 헌금을 하라고 강요 했을ㄸㅒ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실까요?
위에서 많은 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그런 목사는 소수라고. 하지만 소수건 아니건 그런 목사만 눈에 들어오니 제가 마귀에 씌인 건가요...
2007.12.02 14:40:00

폴님께서 듣고 싶은 답이 무엇이죠?
이미 당시 신학생들이 정직하게 대답했군요.
점수에 걸려서,
잘 먹고 싶어서,
주님의 일을 하려고,
폴님 눈에는 그런 사람만 보이고......
불쌍한 목사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요. ^^
이미 당시 신학생들이 정직하게 대답했군요.
점수에 걸려서,
잘 먹고 싶어서,
주님의 일을 하려고,
폴님 눈에는 그런 사람만 보이고......
불쌍한 목사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요. ^^
2007.12.02 21:01:56
"그런 목사는 소수라고. 하지만 소수건 아니건 그런 목사만 눈에 들어오니 제가 마귀에 씌인 건가요..."
만일 그런 목사만 눈에 들어온다는 게 사실이라면
마귀에 씌었든가
눈이 나쁘든가
둘 중에 하나일 겁니다.
근데 더 큰 문제는 둘 다 고치기가 쉽지 않다는 거.....
그치만 영 길이 없는 건 아니예요.
방법이 있긴 합니다만.....
첫째 눈을 더 크게 뜨든가
둘째 눈을 완전히 감든가
셋째 기도를 엄청 세게 하든가
넷째 목사가 되든가.....
만일 그런 목사만 눈에 들어온다는 게 사실이라면
마귀에 씌었든가
눈이 나쁘든가
둘 중에 하나일 겁니다.
근데 더 큰 문제는 둘 다 고치기가 쉽지 않다는 거.....
그치만 영 길이 없는 건 아니예요.
방법이 있긴 합니다만.....
첫째 눈을 더 크게 뜨든가
둘째 눈을 완전히 감든가
셋째 기도를 엄청 세게 하든가
넷째 목사가 되든가.....
2007.12.03 00:04:10
니버가 말했나요... 악한 사회 구조 속의 도덕적인 인간... 정말 그 속에서 완벽한 도덕적인 인간이 된다는 것은 정말 불가능하거나, 아니면 정상적이고 일반적인 생활 패턴을 다 버리고 "투신" 하는 삶을 의미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신서를 읽어보면 바울도 자신의 자비량 선교의 삶을 일반적인 경우라고 이야기하지는 않은 걸로 보입니다. 고린도서에 보면 "밭에서 일하는 소의 입에 재갈을 물리지 마라" 는 구약성서의 경구를 들어서도 사역자가 그에 대한 어느 정도의 댓가를 받는 것을 잘못되었다고 보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단지 바울은 자신의 사도로서의 사역이 하나님으로터 온 것임을 자비량 선교를 통해서 자부심을 갖고 보여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 것이 억지로 디스플레이하기 위한 행위라기보다는 자연스런 그 분의 삶이었겠지만요...
앞에서 니버의 말을 이야기했던 것은... 독신이었던 바울의 사역의 경우를 일반화할 수 없을 뿐더러, 구조가 악한 상황에서 인간에게 완벽하게 도덕적이고 성인군자이길 바라는 것은 너무 잔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그 것은 목사님을 비롯한 성직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겠습니다...
어느 목사님은 갑자기 뇌졸중이 발병하면서 평생 섬기던 교회에서 쓸모 없이 내침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거의 버려지다시피 되었다가 "의료보호" 자격이 나와서 병원에서 근근히 치료받고 계셨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목회의 길을 가려던 아들이 이 비참한 광경을 보고는 자신이 다니던 교단 소속의 신학교를 자퇴하고 구세군 교단의 신학교로 편입해서 신학 수업을 계속 했다고 합니다... 구세군은 교단에서 교회의 설립부터 교역자의 기본적인 생계까지 안정감있게 보장해준다고 합니다...
정말 시사해주는 바가 크지 않습니까? 완전히 "니 팔은 니가 돌리라" 는 우리 나라 유수 교단 총회들은 정말 문제가 많습니다... 총회의 시스템과 구조는 너무나 악하다고 밖에는 할 말이 없습니다... 그 속에서 목사님들에게 완전히 신선과 같은 모습을 요구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너무도 과도한 목사 배출, 교회의 난립, 목사님들이 무한 경쟁 속에서 경영가의 모습을 띨 수 밖에 없는 것... 어쩌면 구조적인 문제도 너무나 크다고 하겠습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교황과 같은 권위로 버티고 앉아 있는 적지않은 대교회 목사님들을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서신서를 읽어보면 바울도 자신의 자비량 선교의 삶을 일반적인 경우라고 이야기하지는 않은 걸로 보입니다. 고린도서에 보면 "밭에서 일하는 소의 입에 재갈을 물리지 마라" 는 구약성서의 경구를 들어서도 사역자가 그에 대한 어느 정도의 댓가를 받는 것을 잘못되었다고 보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단지 바울은 자신의 사도로서의 사역이 하나님으로터 온 것임을 자비량 선교를 통해서 자부심을 갖고 보여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 것이 억지로 디스플레이하기 위한 행위라기보다는 자연스런 그 분의 삶이었겠지만요...
앞에서 니버의 말을 이야기했던 것은... 독신이었던 바울의 사역의 경우를 일반화할 수 없을 뿐더러, 구조가 악한 상황에서 인간에게 완벽하게 도덕적이고 성인군자이길 바라는 것은 너무 잔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그 것은 목사님을 비롯한 성직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겠습니다...
어느 목사님은 갑자기 뇌졸중이 발병하면서 평생 섬기던 교회에서 쓸모 없이 내침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거의 버려지다시피 되었다가 "의료보호" 자격이 나와서 병원에서 근근히 치료받고 계셨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목회의 길을 가려던 아들이 이 비참한 광경을 보고는 자신이 다니던 교단 소속의 신학교를 자퇴하고 구세군 교단의 신학교로 편입해서 신학 수업을 계속 했다고 합니다... 구세군은 교단에서 교회의 설립부터 교역자의 기본적인 생계까지 안정감있게 보장해준다고 합니다...
정말 시사해주는 바가 크지 않습니까? 완전히 "니 팔은 니가 돌리라" 는 우리 나라 유수 교단 총회들은 정말 문제가 많습니다... 총회의 시스템과 구조는 너무나 악하다고 밖에는 할 말이 없습니다... 그 속에서 목사님들에게 완전히 신선과 같은 모습을 요구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너무도 과도한 목사 배출, 교회의 난립, 목사님들이 무한 경쟁 속에서 경영가의 모습을 띨 수 밖에 없는 것... 어쩌면 구조적인 문제도 너무나 크다고 하겠습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교황과 같은 권위로 버티고 앉아 있는 적지않은 대교회 목사님들을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2007.12.03 14:15:28

떫은 감님 말씀처럼 아마 귀신에 씌였나 봅니다. 그런 목사들이 용서가 안되네요. 제 눈은 충분히 크므로 더이상 크게 뜰 수는 없네요.
첫날처럼님의 말씀: "너무도 과도한 목사 배출, 교회의 난립, 목사님들이 무한 경쟁 속에서 경영가의 모습을 띨 수 밖에 없는 것... 어쩌면 구조적인 문제도 너무나 크다고 하겠습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교황과 같은 권위로 버티고 앉아 있는 적지않은 대교회 목사님들을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에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정말 참 웃기는 것은 이곳 다비아에 오시는 목사님 -- 참 이곳은 목사님들이 많으시더군요. 저는 공력이 엄청 딸리네요 -- 조차도 목사도 알고 보면 불쌍타라고 세상의 동정을 바라는 겁니다.
맞습니다. 목사님들. 바울처럼 참 희생 많이 하시고 고생하시고 욕만 잡수시고 그렇다고 인정도 못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사명으로 하나님의 사랑 하나만 보고 복음을 전한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웬 투정들이신가요? 투정이나 동정을 바라는 것은 세상의 인정을 바라는 것 아닙니까? 언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목사가 되었다고 하구서 -- 제가 아는 어떤 목사님도 하나님의 인도로 목사가 되었다고 하지 않으신 목사님 없었습니다 -- 이제 와서 세상의 인정을 바라십니까?
정말 주님의 말씀데로 사시는 목사님이라면 세상에서 무엇이라 하던지 아무리 고생스럽던지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나가야 하지 않나요? 세상의 인정 -- 그것도 우상 아닌가요?
떫은 감님. 저더러 목사가 되라구요? 안요. 저는 아직 하나님께서 목사가 되라는 말씀도 못들었고 인간을 버리지 못하여 목사가 못됩니다. 꺼꾸로 말씀드리고 싶군요.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정진할 자신 없으면 목사 관두세요. 괜히 하나님 팔아 장사하려 하지 마시고.
세상것 다 바라고 목사가 된다구요? 아서세요.
정말 진정으로 하나님만을 바라 보고 사시는 목사님들도 많습니다. 그런 분들은 절대 세상에 아쉬운 소리 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채워 주실 것 믿으니깐요.
괜히 위에 찡찡거리는 목사님들 반성하세요. 정말 짜증나요.
첫날처럼님의 말씀: "너무도 과도한 목사 배출, 교회의 난립, 목사님들이 무한 경쟁 속에서 경영가의 모습을 띨 수 밖에 없는 것... 어쩌면 구조적인 문제도 너무나 크다고 하겠습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교황과 같은 권위로 버티고 앉아 있는 적지않은 대교회 목사님들을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에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정말 참 웃기는 것은 이곳 다비아에 오시는 목사님 -- 참 이곳은 목사님들이 많으시더군요. 저는 공력이 엄청 딸리네요 -- 조차도 목사도 알고 보면 불쌍타라고 세상의 동정을 바라는 겁니다.
맞습니다. 목사님들. 바울처럼 참 희생 많이 하시고 고생하시고 욕만 잡수시고 그렇다고 인정도 못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사명으로 하나님의 사랑 하나만 보고 복음을 전한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웬 투정들이신가요? 투정이나 동정을 바라는 것은 세상의 인정을 바라는 것 아닙니까? 언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목사가 되었다고 하구서 -- 제가 아는 어떤 목사님도 하나님의 인도로 목사가 되었다고 하지 않으신 목사님 없었습니다 -- 이제 와서 세상의 인정을 바라십니까?
정말 주님의 말씀데로 사시는 목사님이라면 세상에서 무엇이라 하던지 아무리 고생스럽던지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나가야 하지 않나요? 세상의 인정 -- 그것도 우상 아닌가요?
떫은 감님. 저더러 목사가 되라구요? 안요. 저는 아직 하나님께서 목사가 되라는 말씀도 못들었고 인간을 버리지 못하여 목사가 못됩니다. 꺼꾸로 말씀드리고 싶군요.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정진할 자신 없으면 목사 관두세요. 괜히 하나님 팔아 장사하려 하지 마시고.
세상것 다 바라고 목사가 된다구요? 아서세요.
정말 진정으로 하나님만을 바라 보고 사시는 목사님들도 많습니다. 그런 분들은 절대 세상에 아쉬운 소리 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채워 주실 것 믿으니깐요.
괜히 위에 찡찡거리는 목사님들 반성하세요. 정말 짜증나요.
2007.12.03 14:37:36

목사님들 저나 다른 사람들 한테 이렇게 훌륭한 목사도 많은데 -- 나도 그 중 하난데... 라는 말씀이겠죠 ^^ -- 하고 반론 하실 필요 없읍니다. 제가 목사 되라고 해서 저 땜시 목사 된거 아니니깐요. 제가 뭐 퉁퉁거린다고 목사님들께 해 되는 것 없겠죠.
하지만 목사님들을 위해서 예상문제 하나 뽑아 드리죠. 하나님께서 "너 목사 맞아?"라고 물으신다면 뭐라고 답하시겠습니까? 미리 미리 답 준비해 놓으세요.
하지만 목사님들을 위해서 예상문제 하나 뽑아 드리죠. 하나님께서 "너 목사 맞아?"라고 물으신다면 뭐라고 답하시겠습니까? 미리 미리 답 준비해 놓으세요.
2007.12.03 14:40:06

너무 생각없이 흥분해서 글 올리는 타입이니 부디 저의 글을 읽으시고 맘 상하셨다면 용서하세요. 제가 워낙 부족한게 많아서 그런거니깐요.
그냥 편한 친구나 선배에게 흉금 터놓고 대화하듯이 쓴 글이니깐요. 그냥 어리광으로 받아 주시고 미워 하지 말아 주세요 ^^
그냥 편한 친구나 선배에게 흉금 터놓고 대화하듯이 쓴 글이니깐요. 그냥 어리광으로 받아 주시고 미워 하지 말아 주세요 ^^
2007.12.03 16:19:47
성경적으로 바른 근거에서 출발한 글이 아니다보니, 바울을 빌미로 목회자에 대해 품고 있던 울분을 토하는 내용이 되어버린 것 같아 아쉽네요. 최종운님의 울분에는 공감이 가지만...
싸우며 닮는다고... 이 글도, 많은 목사님들이 성경을 도구삼아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과 같은 경우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종교 지도자의 부패를 지적하는 예언자들을 이야기하셨다면 주장과 근거가 따로 놀진 않았을텐데요.
싸우며 닮는다고... 이 글도, 많은 목사님들이 성경을 도구삼아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과 같은 경우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종교 지도자의 부패를 지적하는 예언자들을 이야기하셨다면 주장과 근거가 따로 놀진 않았을텐데요.
2007.12.03 18:30:31
폴님!
글을 읽어보니 상다이 흥분하셨네요.
그런데 어쩌죠 난 목사가 아닌데.
나도 전에는 폴님처럼 목사들 깔 만큼 깐 사람입니다.
지금도 하라고 하면 폴님보다 더 실랄하게 깔 수도 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렇게 까는 방식만으로는
한국교회안에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아무 도움도 안된다는 걸 알았어요.
내가 글을 너무 단순하게 써서 그런 결과를 불러온지 모르지만
제 취지는 그게 아니었어요.
한국교회에 문제 있는 목사들 많이 있다는 거.
적어도 다비아에 들어오는 사람이라면 그걸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목사만 문제 있는 게 아니지요
집단으로서 교회도 그렇고
개인으로서 신자도 마찬가집니다.
오십보 백보입니다.
내가 바라는 건,
한국교회에 신자들도 이제는 인간의 얼굴을 한 기독교인들이었으면 하는 거였어요.
교회 안에는 목사들도 그렇고 신자들도 그렇고
믿음이 좋거나 강하다는 사람들일수록
도무지 인간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있는 모습 그대로 현실을 받아들이면 어디가 덧납니까?
목사는 교인들까고
교인들은 목사들 씹고
이게 바로 피차 물고 먹는 거 아닌가요?
그러다가 둘 다 망하겠지요.
그런 조짐들이 한국교회에는 이미 전부터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게 우리 기독교의 현실입니다.
재차 말씀드리지만 신자들 중에는 인간을 이해하고자 하는 맘 자체가 근본적으로 없는 것 같애요.
아니 인간을 이해하는 태도를 마치 불신앙으로 간주하는 듯 느껴질때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툭하면 성서가 어떻고 저떻고 하면서
기준에서 벗어난 행위를 문제삼는 경향이 많습니다.
남의 문제점을 아주 잘 지적하는 사람들이 복음성에도 있지요.
그들이 바로 바리새인들이었어요.
위에서 님이 쏟아낸 말들이 모조리 다 틀렸다는 게 아니랍니다.
문제는 왜 일반신자들의 비신앙이나, 교회의 구조적인 문제는 지적하지 않으면서
목사들의 잘못된 행위만 문제 삼느냐는 것입니다.
저 역시 일반 신자지만 그게 불공평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목사들의 입장에서 의견을 개진해 본 겁니다.
만일 폴님이 우리 일반 신자들의 신앙적인 문제나
교회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한 번이라도 짚은 후에
목사들의 문제점을 판단했다면
제가 그런 식으로 삐딱하게 꼬집지는 않았을 겁니다.
공평한 시각을 갖추지 않고 글을 쓰면
남에게 상처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한국교회의 문제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거 모르시나요.
문제있는 목사들을 두둔하려고 제가 글을 쓴 게 아니니까
오해는 마시길.
다시한번 주장하지만
한국교회가 이제는
(순수한 사람들일수록, 믿음이 좋다는 사람들일수록)
위선의 가면을 벗고
인간의 얼굴을 한 크리스찬 모임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목사는 신자들을 있는 그대로 풀어주고
신자들도 목사의 몸 안에 붉은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좀 아시길..
현실은 보지 않고
무조건 성경의 근본(원리)만 주장하는 사람들은
표면적으로는 복음주의자처럼 보이지만
그들이 바로 근본(원리)주의자들이지요.
신자들은 목사들을 탓하기 전에
왜 목사들이 그렇게 생존에 묶여 행동할 수 밖에 없었는지
역지사지의 자세가 필요하고
한국교회의 목사님들 역시 하나님의 종으로서 품위와 권위를 잃지 않고
올바른 신학 위에서 하나님의 교회를 섬겼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그게 불가능하지 않다고 봅니다.
글을 읽어보니 상다이 흥분하셨네요.
그런데 어쩌죠 난 목사가 아닌데.
나도 전에는 폴님처럼 목사들 깔 만큼 깐 사람입니다.
지금도 하라고 하면 폴님보다 더 실랄하게 깔 수도 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렇게 까는 방식만으로는
한국교회안에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아무 도움도 안된다는 걸 알았어요.
내가 글을 너무 단순하게 써서 그런 결과를 불러온지 모르지만
제 취지는 그게 아니었어요.
한국교회에 문제 있는 목사들 많이 있다는 거.
적어도 다비아에 들어오는 사람이라면 그걸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목사만 문제 있는 게 아니지요
집단으로서 교회도 그렇고
개인으로서 신자도 마찬가집니다.
오십보 백보입니다.
내가 바라는 건,
한국교회에 신자들도 이제는 인간의 얼굴을 한 기독교인들이었으면 하는 거였어요.
교회 안에는 목사들도 그렇고 신자들도 그렇고
믿음이 좋거나 강하다는 사람들일수록
도무지 인간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있는 모습 그대로 현실을 받아들이면 어디가 덧납니까?
목사는 교인들까고
교인들은 목사들 씹고
이게 바로 피차 물고 먹는 거 아닌가요?
그러다가 둘 다 망하겠지요.
그런 조짐들이 한국교회에는 이미 전부터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게 우리 기독교의 현실입니다.
재차 말씀드리지만 신자들 중에는 인간을 이해하고자 하는 맘 자체가 근본적으로 없는 것 같애요.
아니 인간을 이해하는 태도를 마치 불신앙으로 간주하는 듯 느껴질때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툭하면 성서가 어떻고 저떻고 하면서
기준에서 벗어난 행위를 문제삼는 경향이 많습니다.
남의 문제점을 아주 잘 지적하는 사람들이 복음성에도 있지요.
그들이 바로 바리새인들이었어요.
위에서 님이 쏟아낸 말들이 모조리 다 틀렸다는 게 아니랍니다.
문제는 왜 일반신자들의 비신앙이나, 교회의 구조적인 문제는 지적하지 않으면서
목사들의 잘못된 행위만 문제 삼느냐는 것입니다.
저 역시 일반 신자지만 그게 불공평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목사들의 입장에서 의견을 개진해 본 겁니다.
만일 폴님이 우리 일반 신자들의 신앙적인 문제나
교회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한 번이라도 짚은 후에
목사들의 문제점을 판단했다면
제가 그런 식으로 삐딱하게 꼬집지는 않았을 겁니다.
공평한 시각을 갖추지 않고 글을 쓰면
남에게 상처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한국교회의 문제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거 모르시나요.
문제있는 목사들을 두둔하려고 제가 글을 쓴 게 아니니까
오해는 마시길.
다시한번 주장하지만
한국교회가 이제는
(순수한 사람들일수록, 믿음이 좋다는 사람들일수록)
위선의 가면을 벗고
인간의 얼굴을 한 크리스찬 모임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목사는 신자들을 있는 그대로 풀어주고
신자들도 목사의 몸 안에 붉은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좀 아시길..
현실은 보지 않고
무조건 성경의 근본(원리)만 주장하는 사람들은
표면적으로는 복음주의자처럼 보이지만
그들이 바로 근본(원리)주의자들이지요.
신자들은 목사들을 탓하기 전에
왜 목사들이 그렇게 생존에 묶여 행동할 수 밖에 없었는지
역지사지의 자세가 필요하고
한국교회의 목사님들 역시 하나님의 종으로서 품위와 권위를 잃지 않고
올바른 신학 위에서 하나님의 교회를 섬겼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그게 불가능하지 않다고 봅니다.
2007.12.03 23:38:23

떫은감 님은 왜 닉네임을 바꿨어요?
먼저 닉은 너무 길어 자판 두드리기가 힘들다고 보고
다비안을 위해서 바꿨는지 모르겠지만,
'떫'도 쓰기 힘든 건 마찬가지네요, 뭐.
바로 위의 대글, 잘 읽었어요.
정곡을 찔렀군요.
그래요.
한국교회의 인간론은 가현설적이랍니다.
투명 인간, 그림자 인간이지요.
말은 많고 그럴듯한데,
공허하지요.
감정은 격한데
역사변혁의 에너지는 나오지 않지요.
결국 기초 공부가 필요하다는 말이 되겠군요.
기독교 인간학(christian anthropology)을
처음부터 다시 공부해야겠군요.
먼저 닉은 너무 길어 자판 두드리기가 힘들다고 보고
다비안을 위해서 바꿨는지 모르겠지만,
'떫'도 쓰기 힘든 건 마찬가지네요, 뭐.
바로 위의 대글, 잘 읽었어요.
정곡을 찔렀군요.
그래요.
한국교회의 인간론은 가현설적이랍니다.
투명 인간, 그림자 인간이지요.
말은 많고 그럴듯한데,
공허하지요.
감정은 격한데
역사변혁의 에너지는 나오지 않지요.
결국 기초 공부가 필요하다는 말이 되겠군요.
기독교 인간학(christian anthropology)을
처음부터 다시 공부해야겠군요.
2007.12.04 10:15:45
한국교회의 인간론이 "가현설"적이라는 말씀이 인상적입니다. 될 수도 없을 뿐더러, 설령 되었다고 해도 왠지 인간 같지 않고 찜찜한 그런 가상의 인간상을 구현해가라고 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인 것만 같습니다. 그런 압박이나 유혹을 가장 많이 받는 부류들이 바로 목회자분들일 것 같구요...
2007.12.04 11:24:42
목회자는 타의 혹은 자의로 선택한 삶입니다.
일반 교우들도 그리스도교를 선택한 이상 궁극적인 삶을 선택한것입니다.
나는 부족해서 그런다고 하고 타인은 그러지 말라고 하니 안타깝습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무엇이 부족하다고들 그러시는지
한국교회의 그리스도론적 인간론은 자신감과 자부감의 결여인것 같습니다.
일반 교우들도 그리스도교를 선택한 이상 궁극적인 삶을 선택한것입니다.
나는 부족해서 그런다고 하고 타인은 그러지 말라고 하니 안타깝습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무엇이 부족하다고들 그러시는지
한국교회의 그리스도론적 인간론은 자신감과 자부감의 결여인것 같습니다.
2007.12.04 14:52:13

떫은 감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저역시 신앙인으로써 남들과 똑같이 부끄러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 그렇다고 바리새인처럼 살고 싶다는게 아니라 하나님께 이쁘게 보이기 위해 ^^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싶지만 마음만 굴뚝이고 몸은 똑같이 손해 보지 않으려고 아웅다웅 하고 있습니다.
떫은 감님 말씀처럼 목회자도 문제가 있을 수 있고 신자도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다 같이 주님안에서 서로 보듬어 주면서 나가야 겠지요.
제가 목회자님들께 심한 말을 한 것은 (1) 이글이 목회자를 성토(?) 하는 분위기이기에 저도 꼽사리 끼어서 한마디 거든거고 (2) 하나님의 종이라는 소명 의식없이 정말 사기꾼보다 더 지독히 세상의 우상을 섦기면서 자신이 주님의 종인양 착각하는 목회자님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와서 좀 깨어나라고, 자신을 돌이켜 보라고 하고 싶어서 좀 격하게 글을 썼네요.
다시 한번 떫은 감님 좋은 글 너무 감사하구요. 우리가 어떻게 해야지 서로 서로 바로 잡아 주면서 주님의 길을 갈 수 있을까요? 한번 여러분의 의견을 듣고 싶네요.
떫은 감님 말씀처럼 목회자도 문제가 있을 수 있고 신자도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다 같이 주님안에서 서로 보듬어 주면서 나가야 겠지요.
제가 목회자님들께 심한 말을 한 것은 (1) 이글이 목회자를 성토(?) 하는 분위기이기에 저도 꼽사리 끼어서 한마디 거든거고 (2) 하나님의 종이라는 소명 의식없이 정말 사기꾼보다 더 지독히 세상의 우상을 섦기면서 자신이 주님의 종인양 착각하는 목회자님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와서 좀 깨어나라고, 자신을 돌이켜 보라고 하고 싶어서 좀 격하게 글을 썼네요.
다시 한번 떫은 감님 좋은 글 너무 감사하구요. 우리가 어떻게 해야지 서로 서로 바로 잡아 주면서 주님의 길을 갈 수 있을까요? 한번 여러분의 의견을 듣고 싶네요.
2007.12.04 22:58:53
폴님!
제글을 읽고 제 뜻을 알아주시니 고맙군요.
실은 글을 쓰고 나서 또 논쟁이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좀 했거든요.
제 글을 얼마든지 고깝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텐데
저로서는 천만다행입니다.
위글에서 폴님도 고백을 했지만
저 역시 떳떳한 삶을 살지 못하거든요.
남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처지가 못되는 마당에
괜히 영웅심리 비스무리한게 발동해서 한 번 나서본 겁니다.
저 같았으면 떫은 생각들었을텐데
좋게 봐 줘서 감사합니다.
위에서 정목사님 훈수도 있고 해서
오늘부로 닉을 떫은 감에서 홍시로 바꾸었습니다.
암튼 앞으로 서로간에 잘 배워봅시다.
다비안들 중에 개성이 특이한 분들이 종종 등장하지만
그래도 다비안들 중에 배울만한 분들이 많습니다.
편안한 밤 보내시길....
제글을 읽고 제 뜻을 알아주시니 고맙군요.
실은 글을 쓰고 나서 또 논쟁이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좀 했거든요.
제 글을 얼마든지 고깝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텐데
저로서는 천만다행입니다.
위글에서 폴님도 고백을 했지만
저 역시 떳떳한 삶을 살지 못하거든요.
남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처지가 못되는 마당에
괜히 영웅심리 비스무리한게 발동해서 한 번 나서본 겁니다.
저 같았으면 떫은 생각들었을텐데
좋게 봐 줘서 감사합니다.
위에서 정목사님 훈수도 있고 해서
오늘부로 닉을 떫은 감에서 홍시로 바꾸었습니다.
암튼 앞으로 서로간에 잘 배워봅시다.
다비안들 중에 개성이 특이한 분들이 종종 등장하지만
그래도 다비안들 중에 배울만한 분들이 많습니다.
편안한 밤 보내시길....
2007.12.31 12:56:32
이땅의 평신도들에게. 무식한 평신도들에게. 그대들이 목사를 먹사로 만들었다.
교회가면 허구헌날 말씀 말씀, 한없는 반복, 그러나 누구하나, 근데 지금 몇장
몇절을 일컬으십니까 목사님, 이러케 질문 한번 해본 평신도있으면 손드시요.
먹사 앙심부가 겁나겠지, 또는 좋은게 좋으거 그냥 아멘, 그아멘 아멘이 님께서
다니시는 교회를 망치고 목사를 망치는 사실을 왜모르는가요. 물론 잘 준비된
설교라면 백번 옳다. 그러나 택도없는 예화나 교양과목 같은 설교에 그러면
안되지요. 저는 안된다라고 단언합니다. 왜냐, 행여, 목사 자만심가질까봐서요.
주일대예배 시간에 들은 설교를 님들은 얼마나 복습하십니까 ? 돌아서면 다잊어
버리는 설교 모하러 그리 질기게 들으시나. 목사들은 그걸 넘 잘안다. 당신은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붕어대가리라는 사실을.
그리고 한가지 분명히 해둡시다. 만약 님께서 직장인이라면, 그리고 님이 몇개월
동안 당신 상사의 기대치에 못미치는 생산성을 보인다면, 님께서는 핑크슬립을
바로 받으실거예요. 그러나 교회 목사님은 함량미달설교를 주구장천 해대도
누구하나 말못하는게 현실아닙니까. 왜 님과 목사는 목구멍문제에있어서 다른
잣대를 갖는가,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어디계신가.
왜 평생을 교회다녔는데, 간추린 요한복음으로 30분짜리 강의를 나는 할수없는가?
주일학교 수준말고, 학부 레포트정도 수준으로요. 허구헌날 입에맞는 성경구절
몇구절 나불대는거 말고. 지금도 우리집 현관에는 "시작은 미약했으.." 하는
목판장식이있는데, 이게 우리의 성경이해의 잣대라고 단정지을수없지만, 감히말
해도 될듯.
당신들이 공부안하니까 목사가 공부안하자나요. 공부안하니까 설교거리가 없고,
그러니 당연히 정치에 눈돌리고 entertainer가 되자나요. 목사의 하루 행동
일지를 써보자. 새벽예배를 위해 일찍 일어날것이다. 님께서는 그시간 잠을
아직 잘것이다. 이것을 죄스러워 하지 말자. 왜냐, 잠을자야 돈을벌지.
새벽예배 끋나고 먹고 기도하고 심방다니고 설교준비하고 하면서 하루를
보낼것이다. 목사님덜 하루일과를 공개해주십시요. 근데 가만히 들다보면 목사
가 장로 집사일덜을 가로채서 하면서 바쁘다 핑계대고 설교는 개판인교회가
상당한듯하다. 이건 uneven하자녀. 왜 월급주나 ? 도대체 해고의 염려가 전혀
없는 주님의 푸른 초장임에 틀림없다. 나는 늘 해고와 경쟁으로 진짜 피곤한데.
그러면서 어쩌다 교회빠지면 득달가치 전화해댄다. 성경 어디에 주일날 교회
가라고 쓰여있나 ? 어디에 수요예배하라고, 금요철야,, 말씀을 입만열면 하는
사람덜이 이부분에서는 해괴한 논리나 모호한 성경자기해석만 되네일뿐.
내가 회사에서 일하는만큼의 시간과 정력을들여 설교준비를 우리목사는 하는가.
남의 설교집이나 읽어대고 파괴적인 예화나 써대고 교양강좌따위설교준비말고.
푹쉬자. 건강하게 오래살아야 헌금도마니한다. 입만열면 구약 이스라엘역사
어쩌구하는데 그낭반 설교들어보면 글쎄 간추린 이스라엘사 이딴책한권이나
읽었나 싶은 먹사가 태반이다.
생각해보자. 의심해보자. 일테면, 귀구녕이 닳도록 듣는 다윗 솔로문의 위대한
왕이야기. 우리 문디 한민족도 고구려 1000년 역사이다. 이스라엘, 그들이
그리도위대했다면 어찌 몇대도 못가고 그따위 개판역사이었을까 ?
그러면 고구려는 얼마나 위대한가.
솔로몬 = 지혜, 근데 당대도 못가서 피비린내 나는 역사이다. 과연 지혜로운
왕이었나 ? 그리고 물어보자 우리들의 목사에게. 끄까지 물고늘어지자.
이런식으로 목사들을 피곤하게하자.
그러다보면 훗날, 나자신도 마니 커있을께다. 나는 죽었다가 살아났다.
불치병에 걸려 골수이식을 받고 살아났다. 지금 느끼는건, 함량미달 설교가
곧 좋아지겠지 하면서 내짧은 삶을 허비해서는 아니된다. 3-4개월 듣다가
좋아지지않는다면 교회를 가지말자. 그래도 안좋아지면 교회를 옮기자.
기다릴만큼 그리길지않은 우리삶이다. 교회를 옮기는거 이상하게 생각치말자.
너 교회 몇번 옮겼냐고 하나님이 물으시진 안을듯. 사기치거 옮기는건 빼공ㅛ.
하나님, 참 절묘하시지않은가. 니 맘에안들면 딴데 가보라고 그렇게 만은
교회를 세우시지안았는가(아전인수의 극치).
글구 통성기도할적에 목사옆에서 큰소리로 기도하자. 우리목사님 설교가
요새 개판으로 가고있으니 하나님 어찌해야하나요 외치자. 통성기돈데 뭐.
누구도 들리게끔 큰소리로 우렁차게 눈물까장 흘리면 금상첨화.
지난번, 아프간사태때, 평신도들이 큰소리로 분명히 들리게 이렇게 통성기도
했어야했다.
"하나님, 우리 어린것들이 저롷게 잡혀 죽게되었는데, 우리목사님이 대신
가서 잡히고 저들을 풀려나게 할수있게 해주시옵소서. 글구 우리 목사님이
그걸 깨닫게 해주십시요. 우리목사님이 그렇게 하실수있도록 그에게 지혜를
부어주시업서사."
미안하지만, 아프간 그거 하나만 놓고보면, 한국 목사들 100% 가짜다.
특히 큰교회 원로(얼어죽을 무신 원로, 그냥 늘그니) 아니 늙으니먹사덜,
던만 축내는 인간덜, 얼마나 절호의 기회가 아니었던가 ?
인생의 마지막즈음에 십자가를 짊어지고 걸어가는 아린양, 평생 설교해대는데,
전부 헛소리였지 ?
"X물교회 담임먹사도 대신잡히고 풀어달라고 가겠다고 안하는데 우리가 어찌 ?"
이런 변명은 추호도없기를.
예수가 언제 선교할때 말바꾸어도 된다고 했나 ?
어린자식같은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할수있나 ? 선교와 봉사사이.
의인 3명이 없어 망해버린 소돔 고모라. 입만열면 공의 사랑 십자가
떠들지만, 꼭 필요한때는 기도실로 가버리는게 우리목사들이니
그들에게 더이상의 값싼 인간적 배려따위마저도 접자.
다만, 하나님의 메세지만큼은 양보하지말자.
그러기위해선, 평신도덜, 길게보고 10년 20년보고 공부하자. 조금씩 조금씩.
필요하다면, 신학대학부 과목중 몇개를 text를구해 공부하자.
글구 이스라엘 역사책과 간추린 로마 문화/사상사 이런거 친구들이나 아들들
한데 배우자. 매일 조금씩. 성경주석서도 필수.
이렇게 하면, 언젠가는 사이비 약장사 먹사들은 도태될것이다.
잊지말자, 낙수물에 바위가 깨지는 하나님의 위대한역사를.
공부하자, 교회를 옮기자(설교가 션찬으면).
먹사들에게서는 더이상 바랄게 없다.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에게서는 더이상 바랄게 없었던거처럼.
이쯤에서 그렇지안은 목사님덜 껄끄러우실텐데요,
당신들이 상황논리를 든다면 더이상, Speachless !!!!
당신들은 불의를 보고도 무시한, 청지기 사명을 유기한건아닌가 ?
말안하고 가만있으면 다인가 ? 그러면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한다는
어느학교 교훈은 기냥 대학교 교훈일뿐인가 ?
예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다.
내가 길이요 생명이요, 하나님이다.
당신들은 그분울 당신들 인생의 주로 고백하지 않았는가.
나이 서른셋에 모든것을 버려야 했던 그 사나이.
그가 갔던 길을 가겠다고 삼각산에서 몇날밤을 새우며 기도했지 않았는가 ?
당신들이 지금 이런소리 듣는거, 그리 대단한가 ?
글구 목사덜이 좋운차 집 이런거 갖고있는거 좋게 안보이거든,
헌금하지말자, 차라리 시골 우리부모님다니시는 교회에 헌금하자.
하나님께서 헌금어디에 했냐고 물으실라나 ?
한글이 표식이 없는 자판으로 Keyboarding하려니 좀 거치네요.
용서하세요.
교회가면 허구헌날 말씀 말씀, 한없는 반복, 그러나 누구하나, 근데 지금 몇장
몇절을 일컬으십니까 목사님, 이러케 질문 한번 해본 평신도있으면 손드시요.
먹사 앙심부가 겁나겠지, 또는 좋은게 좋으거 그냥 아멘, 그아멘 아멘이 님께서
다니시는 교회를 망치고 목사를 망치는 사실을 왜모르는가요. 물론 잘 준비된
설교라면 백번 옳다. 그러나 택도없는 예화나 교양과목 같은 설교에 그러면
안되지요. 저는 안된다라고 단언합니다. 왜냐, 행여, 목사 자만심가질까봐서요.
주일대예배 시간에 들은 설교를 님들은 얼마나 복습하십니까 ? 돌아서면 다잊어
버리는 설교 모하러 그리 질기게 들으시나. 목사들은 그걸 넘 잘안다. 당신은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붕어대가리라는 사실을.
그리고 한가지 분명히 해둡시다. 만약 님께서 직장인이라면, 그리고 님이 몇개월
동안 당신 상사의 기대치에 못미치는 생산성을 보인다면, 님께서는 핑크슬립을
바로 받으실거예요. 그러나 교회 목사님은 함량미달설교를 주구장천 해대도
누구하나 말못하는게 현실아닙니까. 왜 님과 목사는 목구멍문제에있어서 다른
잣대를 갖는가,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어디계신가.
왜 평생을 교회다녔는데, 간추린 요한복음으로 30분짜리 강의를 나는 할수없는가?
주일학교 수준말고, 학부 레포트정도 수준으로요. 허구헌날 입에맞는 성경구절
몇구절 나불대는거 말고. 지금도 우리집 현관에는 "시작은 미약했으.." 하는
목판장식이있는데, 이게 우리의 성경이해의 잣대라고 단정지을수없지만, 감히말
해도 될듯.
당신들이 공부안하니까 목사가 공부안하자나요. 공부안하니까 설교거리가 없고,
그러니 당연히 정치에 눈돌리고 entertainer가 되자나요. 목사의 하루 행동
일지를 써보자. 새벽예배를 위해 일찍 일어날것이다. 님께서는 그시간 잠을
아직 잘것이다. 이것을 죄스러워 하지 말자. 왜냐, 잠을자야 돈을벌지.
새벽예배 끋나고 먹고 기도하고 심방다니고 설교준비하고 하면서 하루를
보낼것이다. 목사님덜 하루일과를 공개해주십시요. 근데 가만히 들다보면 목사
가 장로 집사일덜을 가로채서 하면서 바쁘다 핑계대고 설교는 개판인교회가
상당한듯하다. 이건 uneven하자녀. 왜 월급주나 ? 도대체 해고의 염려가 전혀
없는 주님의 푸른 초장임에 틀림없다. 나는 늘 해고와 경쟁으로 진짜 피곤한데.
그러면서 어쩌다 교회빠지면 득달가치 전화해댄다. 성경 어디에 주일날 교회
가라고 쓰여있나 ? 어디에 수요예배하라고, 금요철야,, 말씀을 입만열면 하는
사람덜이 이부분에서는 해괴한 논리나 모호한 성경자기해석만 되네일뿐.
내가 회사에서 일하는만큼의 시간과 정력을들여 설교준비를 우리목사는 하는가.
남의 설교집이나 읽어대고 파괴적인 예화나 써대고 교양강좌따위설교준비말고.
푹쉬자. 건강하게 오래살아야 헌금도마니한다. 입만열면 구약 이스라엘역사
어쩌구하는데 그낭반 설교들어보면 글쎄 간추린 이스라엘사 이딴책한권이나
읽었나 싶은 먹사가 태반이다.
생각해보자. 의심해보자. 일테면, 귀구녕이 닳도록 듣는 다윗 솔로문의 위대한
왕이야기. 우리 문디 한민족도 고구려 1000년 역사이다. 이스라엘, 그들이
그리도위대했다면 어찌 몇대도 못가고 그따위 개판역사이었을까 ?
그러면 고구려는 얼마나 위대한가.
솔로몬 = 지혜, 근데 당대도 못가서 피비린내 나는 역사이다. 과연 지혜로운
왕이었나 ? 그리고 물어보자 우리들의 목사에게. 끄까지 물고늘어지자.
이런식으로 목사들을 피곤하게하자.
그러다보면 훗날, 나자신도 마니 커있을께다. 나는 죽었다가 살아났다.
불치병에 걸려 골수이식을 받고 살아났다. 지금 느끼는건, 함량미달 설교가
곧 좋아지겠지 하면서 내짧은 삶을 허비해서는 아니된다. 3-4개월 듣다가
좋아지지않는다면 교회를 가지말자. 그래도 안좋아지면 교회를 옮기자.
기다릴만큼 그리길지않은 우리삶이다. 교회를 옮기는거 이상하게 생각치말자.
너 교회 몇번 옮겼냐고 하나님이 물으시진 안을듯. 사기치거 옮기는건 빼공ㅛ.
하나님, 참 절묘하시지않은가. 니 맘에안들면 딴데 가보라고 그렇게 만은
교회를 세우시지안았는가(아전인수의 극치).
글구 통성기도할적에 목사옆에서 큰소리로 기도하자. 우리목사님 설교가
요새 개판으로 가고있으니 하나님 어찌해야하나요 외치자. 통성기돈데 뭐.
누구도 들리게끔 큰소리로 우렁차게 눈물까장 흘리면 금상첨화.
지난번, 아프간사태때, 평신도들이 큰소리로 분명히 들리게 이렇게 통성기도
했어야했다.
"하나님, 우리 어린것들이 저롷게 잡혀 죽게되었는데, 우리목사님이 대신
가서 잡히고 저들을 풀려나게 할수있게 해주시옵소서. 글구 우리 목사님이
그걸 깨닫게 해주십시요. 우리목사님이 그렇게 하실수있도록 그에게 지혜를
부어주시업서사."
미안하지만, 아프간 그거 하나만 놓고보면, 한국 목사들 100% 가짜다.
특히 큰교회 원로(얼어죽을 무신 원로, 그냥 늘그니) 아니 늙으니먹사덜,
던만 축내는 인간덜, 얼마나 절호의 기회가 아니었던가 ?
인생의 마지막즈음에 십자가를 짊어지고 걸어가는 아린양, 평생 설교해대는데,
전부 헛소리였지 ?
"X물교회 담임먹사도 대신잡히고 풀어달라고 가겠다고 안하는데 우리가 어찌 ?"
이런 변명은 추호도없기를.
예수가 언제 선교할때 말바꾸어도 된다고 했나 ?
어린자식같은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할수있나 ? 선교와 봉사사이.
의인 3명이 없어 망해버린 소돔 고모라. 입만열면 공의 사랑 십자가
떠들지만, 꼭 필요한때는 기도실로 가버리는게 우리목사들이니
그들에게 더이상의 값싼 인간적 배려따위마저도 접자.
다만, 하나님의 메세지만큼은 양보하지말자.
그러기위해선, 평신도덜, 길게보고 10년 20년보고 공부하자. 조금씩 조금씩.
필요하다면, 신학대학부 과목중 몇개를 text를구해 공부하자.
글구 이스라엘 역사책과 간추린 로마 문화/사상사 이런거 친구들이나 아들들
한데 배우자. 매일 조금씩. 성경주석서도 필수.
이렇게 하면, 언젠가는 사이비 약장사 먹사들은 도태될것이다.
잊지말자, 낙수물에 바위가 깨지는 하나님의 위대한역사를.
공부하자, 교회를 옮기자(설교가 션찬으면).
먹사들에게서는 더이상 바랄게 없다.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에게서는 더이상 바랄게 없었던거처럼.
이쯤에서 그렇지안은 목사님덜 껄끄러우실텐데요,
당신들이 상황논리를 든다면 더이상, Speachless !!!!
당신들은 불의를 보고도 무시한, 청지기 사명을 유기한건아닌가 ?
말안하고 가만있으면 다인가 ? 그러면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한다는
어느학교 교훈은 기냥 대학교 교훈일뿐인가 ?
예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다.
내가 길이요 생명이요, 하나님이다.
당신들은 그분울 당신들 인생의 주로 고백하지 않았는가.
나이 서른셋에 모든것을 버려야 했던 그 사나이.
그가 갔던 길을 가겠다고 삼각산에서 몇날밤을 새우며 기도했지 않았는가 ?
당신들이 지금 이런소리 듣는거, 그리 대단한가 ?
글구 목사덜이 좋운차 집 이런거 갖고있는거 좋게 안보이거든,
헌금하지말자, 차라리 시골 우리부모님다니시는 교회에 헌금하자.
하나님께서 헌금어디에 했냐고 물으실라나 ?
한글이 표식이 없는 자판으로 Keyboarding하려니 좀 거치네요.
용서하세요.
자신이 목회하는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성경공부를 금지하는 곳도 보았습니다.
왜냐..성서는 공부하는것이 아니라 느낌을 갖는 것이라는데..실상은
신도들이 머리 굵어지는 것을 감당하기 싫은 거겠죠...
공개적으로 기도 하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교만한 신도를 보내지 말아 주세요..
저는 감당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 주셔서
교만한 신도가 하나도 없다네요...ㅋㅋ 제가 있음을 모르는 것 같아서...
저도 교회를 옮겼습니다. ㅠ.ㅠ
이곳 목사님들께서 담임 하시는 곳을 가보고 싶어요...
그런데 ,,멀리들 계셔서...
확 이사를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