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 <열린 토론실>입니다. 다비안들의 부담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사랑채>와는 달리, 보다 진지하고 깊이있는 이야기나 주제를 나누고 싶은 분들을 위한 게시판입니다. 가급적 예의를 갖추시고 열린 마음으로 대화에 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울러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토론과 대화는 다비안을 비롯한 여러 네티즌들의 온라인 상에서의 자유로운 것이기에 그 방향과 정체성이 반드시 다비아와 일치하지는 않음을 밝혀둡니다.
글 수 253

오직예수뿐입니다!안녕하세요^^ 너무 오랫만이죠~ 제가 요즘 따로 뭔가를 꾸미느라 괜시리 바빴어요 그동안에 사실은 많은 전쟁을 치뤘습니다. 하마터면 죽을 뻔 했어요 무슨소리냐구요? 제 안에서 엄청난 전쟁을 치뤘답니다. 눈에 보이는 전쟁도 무섭고 위험하지만 사실은 보이지 않는 전쟁이 더 살벌한지 아세요? 영적전쟁이라고 하는데요 그 전쟁에서 제가 거의 죽다 살았습니다. 영적전쟁을 한마디로 요약할순 없습니다. 다분히 주관적이고 도 객관적인 면도 많기에 속단하기가 힘들지요. 개인적일수도 있고 공동채적일 수도 있고 넓게는 국가적이며 세계적일 수도 있거든요. 저는 그리 폭넓은 사유에는 자신이 없기에 축소해서 개인적인 부분에 한정을 지을까해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제 입장을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모든 영적전쟁의 최대의 목표는 “죄”와의 싸움이다. 죄란 밖에있는것보다 자기속에 그 뿌리가 있기때문에 눈치를 채기가 쉽지않지요. 어떤이는 그 죄가 자기속에서 꿈틀거리는걸 모르기도 하고요. 안다고 해도 인간적으로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이 “죄의 본성“에 이미 철저하게 갇혀있었던 인간의 실존은 결국 무방비상태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쉽게 말해서 ‘죄를 인식하고 있다고’해서 그가 죄를 재어할 힘이나 실력이 전무하다는 겁니다. 이것은 노력으로,훈련으로, 수양으로,명상을,주술적인 수단이나 방법론적으로는 안된다는 거 죠. 너무 단정적으로 말했나요? 여러분은 여러분의 마음이 자신의 힘으로 통재할거라 자신하세요? 저는 번번히 무너지는데요. 마음한번 고쳐먹는게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사람은 압니다. 그거 쉽지않지요. 알아도 못하고 몰라서도 못하는게 우리 인간의 한계라는걸 인정해야 하거든요. 요즘은 그 인정하기 싫은사실을 조금씩 인정하고 있습니다. 말이 길어졌네요. 솔직히 제가 바로 그놈입니다. 남들은 몰라도 제 자신은 그걸 알지요. 또한 우리 주님께서 이미 아십니다. 다른사람의 눈과 마음은 다 속여도 불꽃같은 눈동자로 흑암을 대낮같이 보시는 하나님의 시선에 피하여 숨을곳이 없답니다. 그래서 구약의 믿음의 사람 ‘다윗’왕도 이렇게 고백했다니까요? 「내가 “어둠에게 나를 가리고 밤에게 나를 둘러 달라” 해도 어둠조차 주로부터 숨지 못하며 밤도 낮처럼 환하게 빛날 것입니다. 주께는 어둠이나 빛이나 다를 바 없으니 말입니다.」 (우리말성경시편139편11,12) 더 기가막힌 다윗의 고백을 들어보실래요? 「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보셨으니 나를 아실 것입니다 . 내가 앉고 서는 것을 아시고 멀리에서도 내 생각을 아십니다. 주께서는 내가 길을 다니는 것과 내가 눕는 것을 아시니 내가 하는 모든 일을 샅샅이 알고 계십니다. 오 여호와여, 내가 말을 혀에 담기도 전에 주께서는 그것마저 다 아십니다. 주께서는 나를 앞뒤로 둘러싸 주시고 내게 손을 얹으셨습니다. 그토록 잘 아시다니 너무도 놀랍고 너무도 높아서 나는 이를 수 없습니다.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겠습니까? 내가 주 앞을 떠나 어디로 피하겠습니까? 내가 하늘로 올라가도 거기에 계시며 지옥에 잠자리를 마련해도 거기에 계십니다. 내가 새벽 날개를 타고 바다 저 끝에 내려앉더라도 어디에서든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으로 나를 꼭 붙드실 것입니다」 (시편139편1~10) 우리는 하나님앞에 숨을곳이 없습니다. 절망입니다. 그러나 단 한분이 계십니다. 우리의 모든 죄악을 가려주시고 덮어주시고 방패가 되시고 변호해주시고 편을 들어주시는 그분!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안에서 우리는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분이십니다. 이는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들, 곧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 보좌들과 주권들과 권력들과 권세들이 하나님의 아들 안에서 창조됐기 때문입니다. 만물이 아들로 인해 창조됐고 아들을 위해 창조됐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은 그분 안에 함께 서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아들은 그분의 몸인 교회의 머리십니다. 그분은 근본이시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먼저 살아나신 분이십니다. 이는 그분이 친히 만물 가운데 으뜸이 되시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버지께서 모든 충만으로 아들 안에 거하게 하시기를 기뻐하셨고 그 아들의 십자가의 피로 평화를 이뤄 만물, 곧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모든 것이 아들로 인해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셨기 때문입니다.」 ( 신약-골로새서1장14~20) ![]() |
2007.08.10 08:37:15
아멘입니다.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골3:10) 성서는 '인문학적'으로 이해가 안되나 새롭게 됨을 통해 받아드려지는 것 같습니다.
2007.08.10 09:26:26
저도 아멘..
그마음으로..그은혜로..
살아도..바울과 같은..한편의 고통이 있읍니다 이은혜가
이민족과세상에 아직은 편만하게 흐르지 않고 있읍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일상을 보냅니다.은혜 나눌수 있는것 감사드립니다...
그마음으로..그은혜로..
살아도..바울과 같은..한편의 고통이 있읍니다 이은혜가
이민족과세상에 아직은 편만하게 흐르지 않고 있읍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일상을 보냅니다.은혜 나눌수 있는것 감사드립니다...
2007.08.10 11:25:02

나는 예수를 통해서 구원 받음을 고백 합니다
한가지 말하고 싶다면 우리의 조상들은 하나님의 주권에 맡기라는
표현은 매우 이기적인 발상입니다
성경을 무조건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들이는 여러분은 저와 뜻이 다르겠지만
성경은 사람이 쓴 글입니다..
나는 그 속에서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알아가고 있는 중인 한 사람입니다.
바울의 교리가 완전 한것은 아닙니다.
개신교의 교리는 문제가 많습니다..
나는 맹신은 하기 싫습니다..
작은자 님의 말대로 하자면 우리 조상들이야 지옥에 갔건 말건 지금 우리는
예수믿고 천국가면 되지 않느냐 는 말인데 나는 그런 예수라면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것이 하나님의 공의와 선하심이라면 나는 믿지 않을 것입니다.
한가지 말하고 싶다면 우리의 조상들은 하나님의 주권에 맡기라는
표현은 매우 이기적인 발상입니다
성경을 무조건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들이는 여러분은 저와 뜻이 다르겠지만
성경은 사람이 쓴 글입니다..
나는 그 속에서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알아가고 있는 중인 한 사람입니다.
바울의 교리가 완전 한것은 아닙니다.
개신교의 교리는 문제가 많습니다..
나는 맹신은 하기 싫습니다..
작은자 님의 말대로 하자면 우리 조상들이야 지옥에 갔건 말건 지금 우리는
예수믿고 천국가면 되지 않느냐 는 말인데 나는 그런 예수라면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것이 하나님의 공의와 선하심이라면 나는 믿지 않을 것입니다.
2007.08.10 16:50:28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느니, 영혼구원이 중요하다느니 하는 이들은 다음 잠언을 묵상해야 합니다.
종교는 억압받는 피조물들의 한숨이요, 심장없는 세상의 심장이며, 영혼없는 상태의 영혼이다. 이는 인민의 아편이다.(카를 마르크스)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며)타 종교를 무조건적으로 악마의 소산이라고 생각하는 개종 중심의 선교 신학은 제국주의적인 발상이다. 지구촌에서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현실과 그 진리성을 인정하되 종교간 대화를 통해 상대방의 종교를 배워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새로운 신학이 정립돼야 한다"(감리교신학자 고 변선환 선생)
인간의 영혼을 갉아먹는 빈민가와 인간의 영혼을 억압하는 경제적인 조건, 인간의 영혼을 짓누르는 사회적인 조건에는 무관심한 채 인간의 영적인 구원에만 관심을 갖는 종교는 사멸하게 된다.”(마틴 루터 킹 목사)
종교는 억압받는 피조물들의 한숨이요, 심장없는 세상의 심장이며, 영혼없는 상태의 영혼이다. 이는 인민의 아편이다.(카를 마르크스)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며)타 종교를 무조건적으로 악마의 소산이라고 생각하는 개종 중심의 선교 신학은 제국주의적인 발상이다. 지구촌에서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현실과 그 진리성을 인정하되 종교간 대화를 통해 상대방의 종교를 배워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새로운 신학이 정립돼야 한다"(감리교신학자 고 변선환 선생)
인간의 영혼을 갉아먹는 빈민가와 인간의 영혼을 억압하는 경제적인 조건, 인간의 영혼을 짓누르는 사회적인 조건에는 무관심한 채 인간의 영적인 구원에만 관심을 갖는 종교는 사멸하게 된다.”(마틴 루터 킹 목사)
2007.08.11 01:39:55
감사합니다
영광스럽게도 작은자의 글도 쟁토방으로 옮겨졌네요^^
제글이 그렇게 영향을 줄정도란 말씀인가요?
아니면 다비아와의 길이 달라서인가요?
제가 보기에 다비아는 진보와 보수를 수용한다는 것에 반하여
아직 버티고 있는중입니다. 자기 정채성을 들어내는것은 중요하지요.
나와 다르다고 무조건 반대하지 맙시다.
저는 사랑채가 비교적 많은 눈팅님들께서 즐겨찾는 곳이라서
비록 다비아와는 색갈이 좀 다르더라도 다양한 사고를 낼수 있고
볼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아쉽지만 운영자의 하신일에 어쩝니까요^^
조만간 내리려고 햇었는데말이죠.
도루박님! wjdrnjs 님! 감사합니다.
순둥이님! 감사합니다.
위 표현중에서“한가지 말하고 싶다면 우리의 조상들은 하나님의 주권에 맡기라는
표현은 매우 이기적인 발상입니다“ 이렇게 보셨군요. 그럴수도 있겠습니다.
억지같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독선적이고 이기적입니다. 우린 그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을 받고 있구요. 물론 받을 자격이 없다는건 아실것이고 그럼에도 받았다는거도 인정하시겠죠?
조상들의 구원문제를 하나님께 맡기자는게 이기적일까요?
그럼 도대체 우리가 어떻게 할건데요? 우리가 할 수 있는게 뭐가 있을까요?
그 문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으로 구원을 주실자는 주실 것이고 그렇지 못하실
자는 어쩔수 없다는 거지요.
적합한지 모르겠지만요. 포도원 품군의 비유도 인간적인 관점에서는
포도원주인의 횡포아닌가요? 그때문에 어떤이는 이익을 보고 어떤이는
손해를 봅니다. 그렇다고 따질 수 없지요.
바울사도의 인용을 한번 더 빌립니다.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저는 결코 바울이 완전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바울뿐 아니라
아브라함도 성경에 나오는 모든 믿음의 선진들이 허물이 없는사람 없지요.
성경에서 그들의 치부를 숨긴곳 있습니까?
인간적인 자서전하곤 비교할 수 없을만큼 성경은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허물과 실패까지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울의 교리가 완전할 수 없다는 그말씀 동의합니다.
그러나 그이상의 교리가 또 나올수 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의 일생이 오직 주님을 전파하는 일에 모든것을 목적했거든요.
일신상의 문제때문에 그가 주님을 향한 사명을 포기하지도 않았고 뒤로 미루지도 않았습니다.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바울은 자신이 이미 얻었다고도 하지 않았지요.
오직 푯대를 향하여 달려갈 뿐이다 했지요. 그런차원에서
내가 주님을 구원자로 믿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위의 댓글에서처럼
“나는 맹신은 하기 싫습니다.. 작은자 님의 말대로 하자면 우리 조상들이야
지옥에 갔건 말건 지금 우리는 예수믿고 천국가면 되지 않느냐 는 말인데
나는 그런 예수라면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것이 하나님의 공의와 선하심이라면
나는 믿지 않을 것입니다. “ 이렇게 까지 저를 몰아부칠 필요까지 있을까요?
바울이 맹신자는 아니지요. 물론 저도 바울이 될 순 없습니다.
비교조차 불가합니다. 저 역시도 맹신은 거부 합니다. 그런면에서 지나간세대를
논하는일에 힘빼지 말자는 겁니다. 오늘이 중요하다는 거죠.
하나님앞에서 우리의 지난 과거가 의미가 있겠어요? 지나간 허물을 따지신다면
누가 하나님앞에 서있겠어요? 믿는자의 삶의 우선순위를 생각해보자는 의미에서
올린것입니다. 이해가 다르다면 어쩔수 없지요.
바우로님! 감사합니다.
좋은 지적입니다. 영혼구원의 중요성이 강조되는것 자체를 문제삼아서
그런것이 아닌줄 압니다. 다만 그런주의자들의 오류와 병패로인한 사회적인 문제를
우려하신 뜻이겠지요. 동감이죠. 그렇지만 영혼구원을 우선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사회문제를 외면한다고 보시는것은 좀 거시기 합니다.
제정신 박힌 믿는사람치고 어떻게 사회적인 약자와 억압당하는자들에게
시선을 돌리지 않겠습니까? 만일 그런자들이라면 위선자들이거나 거짓믿는자들이겠지요.
아니면 믿음에 견고하지 못하여서 숨어있는자들일테고요.
그런자들은 그렇게 하도록 놔두시지요.
사람들의 눈에도 보이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눈에 안띌까요?
자기 머리위에 숯불 쌓아두는것까지 신경쓰지 맙시다.
차라리 잃어버린 양한마리를 찾는 노력을 하는게 낳지요.
예수께서 오신것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러 오신 것이 아닙니다.
자기백성을 찾아 구원하러 오셧습니다.
성경은 유감스럽게도 택자와 불택자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러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사람으로선 할 수 없으되 오직 하나님은 하실수 있다고
주께서 말씀하시고 그 말씀을 사도들이 기록했습니다.
제가 미리 위에서 언급했습니다만, 어디까지나 믿는자의 한사람으로서
개인적인 생각을 밝힌것이라고요. 저의 주장이 강요하는 것으로
읽혀졌다면 안타깝습니다. 저는 타종교에대하여서 분명히 비하한적 없구요.
서 있는 자리와 생각과 가치관의 다름을 말했습니다.
성경의 내용을 함축시켜서 오직 예수로 말미암는 다른 길이 없다는 것이
제 견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예정하신 뜻이고 그 이상은 저도 모릅니다.
구원을 왜 받았고 어떻게 받았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럴 자격이 저한테
눈꼽만큼도 없고 지금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구원의 확신”을 주장하는 ‘구원파’는 더욱 아니올시다.
누구도 내가 확실히 구원받았다라고 자신할 수 없습니다. 아무도 몰르죠.
나중에 그분앞에 가보면 알수 있는데 갈지 못갈지 장담 못하겠습니다.
지금 제 꼬라지를 보니까 도저히...
오직 하나님의 은총에 소망을 둡니다.
모두 평안하소서!
샬롬~
영광스럽게도 작은자의 글도 쟁토방으로 옮겨졌네요^^
제글이 그렇게 영향을 줄정도란 말씀인가요?
아니면 다비아와의 길이 달라서인가요?
제가 보기에 다비아는 진보와 보수를 수용한다는 것에 반하여
아직 버티고 있는중입니다. 자기 정채성을 들어내는것은 중요하지요.
나와 다르다고 무조건 반대하지 맙시다.
저는 사랑채가 비교적 많은 눈팅님들께서 즐겨찾는 곳이라서
비록 다비아와는 색갈이 좀 다르더라도 다양한 사고를 낼수 있고
볼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아쉽지만 운영자의 하신일에 어쩝니까요^^
조만간 내리려고 햇었는데말이죠.
도루박님! wjdrnjs 님! 감사합니다.
순둥이님! 감사합니다.
위 표현중에서“한가지 말하고 싶다면 우리의 조상들은 하나님의 주권에 맡기라는
표현은 매우 이기적인 발상입니다“ 이렇게 보셨군요. 그럴수도 있겠습니다.
억지같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독선적이고 이기적입니다. 우린 그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을 받고 있구요. 물론 받을 자격이 없다는건 아실것이고 그럼에도 받았다는거도 인정하시겠죠?
조상들의 구원문제를 하나님께 맡기자는게 이기적일까요?
그럼 도대체 우리가 어떻게 할건데요? 우리가 할 수 있는게 뭐가 있을까요?
그 문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으로 구원을 주실자는 주실 것이고 그렇지 못하실
자는 어쩔수 없다는 거지요.
적합한지 모르겠지만요. 포도원 품군의 비유도 인간적인 관점에서는
포도원주인의 횡포아닌가요? 그때문에 어떤이는 이익을 보고 어떤이는
손해를 봅니다. 그렇다고 따질 수 없지요.
바울사도의 인용을 한번 더 빌립니다.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저는 결코 바울이 완전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바울뿐 아니라
아브라함도 성경에 나오는 모든 믿음의 선진들이 허물이 없는사람 없지요.
성경에서 그들의 치부를 숨긴곳 있습니까?
인간적인 자서전하곤 비교할 수 없을만큼 성경은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허물과 실패까지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울의 교리가 완전할 수 없다는 그말씀 동의합니다.
그러나 그이상의 교리가 또 나올수 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의 일생이 오직 주님을 전파하는 일에 모든것을 목적했거든요.
일신상의 문제때문에 그가 주님을 향한 사명을 포기하지도 않았고 뒤로 미루지도 않았습니다.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바울은 자신이 이미 얻었다고도 하지 않았지요.
오직 푯대를 향하여 달려갈 뿐이다 했지요. 그런차원에서
내가 주님을 구원자로 믿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위의 댓글에서처럼
“나는 맹신은 하기 싫습니다.. 작은자 님의 말대로 하자면 우리 조상들이야
지옥에 갔건 말건 지금 우리는 예수믿고 천국가면 되지 않느냐 는 말인데
나는 그런 예수라면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것이 하나님의 공의와 선하심이라면
나는 믿지 않을 것입니다. “ 이렇게 까지 저를 몰아부칠 필요까지 있을까요?
바울이 맹신자는 아니지요. 물론 저도 바울이 될 순 없습니다.
비교조차 불가합니다. 저 역시도 맹신은 거부 합니다. 그런면에서 지나간세대를
논하는일에 힘빼지 말자는 겁니다. 오늘이 중요하다는 거죠.
하나님앞에서 우리의 지난 과거가 의미가 있겠어요? 지나간 허물을 따지신다면
누가 하나님앞에 서있겠어요? 믿는자의 삶의 우선순위를 생각해보자는 의미에서
올린것입니다. 이해가 다르다면 어쩔수 없지요.
바우로님! 감사합니다.
좋은 지적입니다. 영혼구원의 중요성이 강조되는것 자체를 문제삼아서
그런것이 아닌줄 압니다. 다만 그런주의자들의 오류와 병패로인한 사회적인 문제를
우려하신 뜻이겠지요. 동감이죠. 그렇지만 영혼구원을 우선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사회문제를 외면한다고 보시는것은 좀 거시기 합니다.
제정신 박힌 믿는사람치고 어떻게 사회적인 약자와 억압당하는자들에게
시선을 돌리지 않겠습니까? 만일 그런자들이라면 위선자들이거나 거짓믿는자들이겠지요.
아니면 믿음에 견고하지 못하여서 숨어있는자들일테고요.
그런자들은 그렇게 하도록 놔두시지요.
사람들의 눈에도 보이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눈에 안띌까요?
자기 머리위에 숯불 쌓아두는것까지 신경쓰지 맙시다.
차라리 잃어버린 양한마리를 찾는 노력을 하는게 낳지요.
예수께서 오신것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러 오신 것이 아닙니다.
자기백성을 찾아 구원하러 오셧습니다.
성경은 유감스럽게도 택자와 불택자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러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사람으로선 할 수 없으되 오직 하나님은 하실수 있다고
주께서 말씀하시고 그 말씀을 사도들이 기록했습니다.
제가 미리 위에서 언급했습니다만, 어디까지나 믿는자의 한사람으로서
개인적인 생각을 밝힌것이라고요. 저의 주장이 강요하는 것으로
읽혀졌다면 안타깝습니다. 저는 타종교에대하여서 분명히 비하한적 없구요.
서 있는 자리와 생각과 가치관의 다름을 말했습니다.
성경의 내용을 함축시켜서 오직 예수로 말미암는 다른 길이 없다는 것이
제 견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예정하신 뜻이고 그 이상은 저도 모릅니다.
구원을 왜 받았고 어떻게 받았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럴 자격이 저한테
눈꼽만큼도 없고 지금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구원의 확신”을 주장하는 ‘구원파’는 더욱 아니올시다.
누구도 내가 확실히 구원받았다라고 자신할 수 없습니다. 아무도 몰르죠.
나중에 그분앞에 가보면 알수 있는데 갈지 못갈지 장담 못하겠습니다.
지금 제 꼬라지를 보니까 도저히...
오직 하나님의 은총에 소망을 둡니다.
모두 평안하소서!
샬롬~
2007.08.11 14:54:32
주지하시다시피 인문학적인 태도의 중심시각은 인간 중심적(자기 중심적)인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신앙 생활을 한다는 것은 절대자와 진리의 실상 그리고 그 세계속으로 들어간다는 말일진데,
인간이 인간아닌 다른 무엇(etwas)으로 대상화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나 이성적으로 불가능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겠지요.
사람들은 그러한 부조리한 현실구조를 '합리적 이성'이라는 나약한 버팀목으로 버팅기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동일한 입장에 있는 타인들로부터 격려와 지원을 받는 것입니다. 같이 망하자는 거지요.
그러다보니까 지극히 현세적이 되는 것이고 물질 지향적이 되고 심리적인 경향을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언어로 기술된 문학적 창작물에 불과한 것이고요, 인간이 알수 없고 알지 못하는 초월적 세계에 대해서는 침묵할 수밖에 없지요.
종교는 문화 행위가 되는 것이고 윤리와 도덕적 한계를 넘어서면 경멸하고 이단시하는 겁니다. 또한 사회적 정치적 신념체계로 치부되어 사회 현실 속에서 자신이 꿈꾸는 신적 이상사회를 구현하고자 하는 노력이 구체화되고 때로 정치 세력화 하기도 하지요.
기독교에서 신앙 생활을 한다는 것은 절대자와 진리의 실상 그리고 그 세계속으로 들어간다는 말일진데,
인간이 인간아닌 다른 무엇(etwas)으로 대상화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나 이성적으로 불가능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겠지요.
사람들은 그러한 부조리한 현실구조를 '합리적 이성'이라는 나약한 버팀목으로 버팅기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동일한 입장에 있는 타인들로부터 격려와 지원을 받는 것입니다. 같이 망하자는 거지요.
그러다보니까 지극히 현세적이 되는 것이고 물질 지향적이 되고 심리적인 경향을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언어로 기술된 문학적 창작물에 불과한 것이고요, 인간이 알수 없고 알지 못하는 초월적 세계에 대해서는 침묵할 수밖에 없지요.
종교는 문화 행위가 되는 것이고 윤리와 도덕적 한계를 넘어서면 경멸하고 이단시하는 겁니다. 또한 사회적 정치적 신념체계로 치부되어 사회 현실 속에서 자신이 꿈꾸는 신적 이상사회를 구현하고자 하는 노력이 구체화되고 때로 정치 세력화 하기도 하지요.
2007.08.11 15:12:27
짧고도 허무한 이 세상, 비록 비극적인 종말을 맞는다하더라도 내 배짱대로 살고싶은 인간욕망의 극단을 드러내는 것이지요.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동료들이 있으니 외롭진 않지요. 그러한 동료들이란 적군을 말합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말입니다.
산다는 것은 소소한 웃음꺼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겠지요 그러므로 우스개소리가 중요합니다. 탈자와 오자 하나없는 글쓰기가 재주부림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자기의 존재를 드러내는 가치로 느낄테니까요. 이들에게는 내용없는 형식과 껍질이 중요하니까요.
종교는 장사꾼들이 모여드는 시장터와 같게되지요. 목사는 장사꾼이라 불리는 것을 솔직한 자기고백이라고 받아들입니다. 생명이 없는 죽은 식육점 가게에 비유하는 게 더 옳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체험과 믿음을 얻은 성도의 신앙 고백은 이들에게 딴나라의 방언으로 들릴 것입니다.
세상의 지혜로 어쩌면 이들에게까지 썩은 육포를 팔아먹을 속셈을 할지도 모르지요.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내려다본 세상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일지 모릅니다.
산다는 것은 소소한 웃음꺼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겠지요 그러므로 우스개소리가 중요합니다. 탈자와 오자 하나없는 글쓰기가 재주부림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자기의 존재를 드러내는 가치로 느낄테니까요. 이들에게는 내용없는 형식과 껍질이 중요하니까요.
종교는 장사꾼들이 모여드는 시장터와 같게되지요. 목사는 장사꾼이라 불리는 것을 솔직한 자기고백이라고 받아들입니다. 생명이 없는 죽은 식육점 가게에 비유하는 게 더 옳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체험과 믿음을 얻은 성도의 신앙 고백은 이들에게 딴나라의 방언으로 들릴 것입니다.
세상의 지혜로 어쩌면 이들에게까지 썩은 육포를 팔아먹을 속셈을 할지도 모르지요.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내려다본 세상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일지 모릅니다.
낑낑대며 제 홈 대문에 걸어논겁니다
개인적인 생각이라서 반대하시는분들이
계셔도 일단 다른분들을 위해서 좀 모양새는 없지만
잠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