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조:
http://www.newsnjo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6938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90119103546
http://www.dailian.co.kr/news/n_view.html?id=142666
우선, 만약에 제가 쓴 글에서 "공산주의=북한=반이스라엘=반정부" 이런 식의 도식 또는 그런 뉘앙스가 나타나고 있다면 양해해주십시오. 그건 제 의도가 있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실제로 저는 북한 문제와 중동 문제 사이에 깊은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알고 계시다시피, 시리아에 핵기술을 지원 해주고 있는 나라가 바로 북한입니다. 그리고, 암거래 시장을 통해서 레바논에 무기를 제공해준 나라들의 중심에 북한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개인적으로 알고있는 사실도 있습니다. 북한이 중국을 통해서 중동 지역으로 장교급 군인들, 그러니까 군사 훈련을 시켜줄 수 있는 군사기술 인력들을 보내고 있는 것을 압니다. 그야말로 합력하여 악을 이루자는 것이지요. 만약 우리나라 만큼 북한을 경계하고 있는 나라 둘만 뽑으라면, 하나는 일본이고,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이 아닐까 싶습니다. 미국보다 이스라엘이 북한을 더 경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홀로코스트 신학"이라는 가설의 기반이 되어준 "홀로코스트 산업"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낸 노만 핑클스타인(Norman Finkelstein)은 신나치주의자로 알려진 학자입니다. 물론, "깔 것은 까야죠." 하지만 반대로, 인정할 것은 인정해주고, 깔라면 모두 까야하지 않겠습니까? 유대인들의 민족적 응집력과 결집력, 그리고 애국심까지 국수주의라거나 배타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한 나라를 치기 위해서 이집트,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 등등의 주변 이슬람국가들이 합세해서 공격하던 것이 그다지 오래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비판을 하려면 주변 국가들의 만행에 대한 비판도 동시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가치-중립적인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제가 다양한 매개체를 통해서 지켜봐온 가자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민간인 사상자 수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간단하게 말씀드리자면, 하마스 쪽에서 유도한 부분이 있다는 점을 염두해두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쨌거나, 유도한 쪽이나 폭탄을 퍼부은 쪽이나 마찬가지죠. 그러므로, 이스라엘만 비판해서는 않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사실 반기문 UN 사무총장 같은 분이 벌써 나섰어야 했는데, 행동을 너무 늦게 취하셨어요.
마지막으로, 정의로운 전쟁 (Just War) 또는 성스러운 전쟁 (Jihad: Holy War)에 대해선 제가 역질문을 해드리겠습니다. 만약에 북한해군이 백령도에 미사일을 퍼부으면 우리 국군은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요? 지난번 금강산 피격 사건 때처럼 그냥 신문방송에 몇번 내주고 그러면 우리 국민들이 '우리나라 참 침착하지'라고 칭찬해줄까요?
"도대체 언제적 이야기인가?" 라거나 "신나치주의"라고 쓰시는 것은, 정도를 한참 넘어선 표현같군요.
한 예로, 텔 단 석비가 언제 발견되었지요?
김진호 목사 발언보다 더 심한 주장을 하는 minimalist들도 많은데, 그럼 그들도 그냥~ 신나치/반유대주의자겠네요?
그들 중엔 유대인도 많은데 어쩌죠?
제 표현이 정도를 넘었다는 말씀에 동감하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 저는 수사(修辭)적 표현을 함에 있어서 과장법을 사용했습니다. 물론 서술적인 면에서는 어눌하고 정리가 되어있지 않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개혁을위한종교인네트워크'에서 얘기하고 있는 소위 '홀로코스트 산업'이라든지 '홀로코스트 신학'이라는 개념들은 분명히 신나치주의자들의 반시온주의를 지지하기 위한 논리적 이론들과 매우 닮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도대체 언제적 이야기인가?"라고 설의(設疑)한 것은, The Mesha Stele가 발굴되던 19세기 중반이나, The Tel Dan Stele가 발굴되던 1990년대 초반,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반시온주의를 지지하는 신나치주의자들의 극단적인 논리가 매우 구시대적인 발상이라는 말씀을 드리고자 했던 것입니다. 제 요점은, '親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反이이스라엘' 역시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건만 반유대주의가 마치 새로운 것인냥 말하는 이 모임을 비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고로, 아랍과 이스라엘 사이에 끝나지 않는 전쟁에 대한 연대표를 한번 조사해보시면, 신나치적 신학자들이 반시온주의를 옹호하기 위해서 다윗 왕 시대에 대한 이의제기를 하는 학설을 발표하고 신나치주의자들이 반시온주의 운동을 벌이고 그러던 시대와 일맥상통한다는 것을 발견하실 수 있을 겁니다. 최근 이탈리아나 독일 등에서는 신무솔리니, 신나치 운동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유럽의 극우주의 운동'이라고 알려지고 있지요.
하지만 다시 말씀드리자면, 저는 이 글에서 과장법에 제한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minimalist라는 모호한 단어로 학자들의 성향을 판가름하기는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 사실 minimalism이라는 단어 자체는 기술적인 단어인데, 혹시 빈이 님이 말씀하시고자 하신 minimalist가 어떤 부류인지 설명해주시겠습니까?
1. (굳이 요세프님을 지목한 건 아니었습니다만;;;) 적어도 류태영 박사 외 한국교회의 소위 보수-극우주의자들이 친이스라엘과 반이스라엘의 대립 구도를 설정하는 것은, 요세프님께서 지적하신대로 반이스라엘과 북한을 이으려고 하는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여기에서 전 여러 사실관계(지적하신대로 북한의 무기판매라던지 등등)의 인과를 넘어선 '레드컴플렉스'에 기반한 사실의 왜곡을 봅니다. 그건 '가상(혹은 과장)의 적'을 만들어서, 한국교회의 지지층을 결집시키려는 정치적 장치이구요. 따라서 이들에겐 현재, 가자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의 'FACT'보다는, 레드컴플렉스를 통해 의도적으로 만들어놓은 '용공구도'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들이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세력들을 '역'으로 규탄하려는 것은, 그들이 가자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구도'를 통해 제 3의 목적을 이루려는 것이구요. 왜 이스라엘-팔레스타인(그것도 가자지구)의 사실관계의 문제가 반북-용공의 문제로 연결될까요? 이와 같은 사안에 기계적 중립을 명목으로 한 친이스라엘, 혹은 같은 의도로 반이스라엘=친북으로 이어지는 논리의 연결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됩니다. 이러한 논리구조를 옹호하긴 어렵습니다. 제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적어도 저의 독해론 요세프님의 댓글에서도 가자 전쟁과 한국교회 사이의 연관 관계는 레드컴플렉스-용공논리로 채색된 논의 전환(?)-또 젊은 용어론 '물타기'-이 보입니다. 제 독해력의 한계겠습니다만. 기분 나쁘셨으면 사과드리겠습니다.)
2. (솔직히 워낙 중동의 긴장은 복잡한 사안이 얽여 있어서 뭐라 단언해서 말하는게 조심스럽습니다. 특히 이번 사안처럼 이스라엘과 가자지구의 내부적, 정치적인 문제가 얽여있다면 더욱 제 3자가 평가하는게 조심스럽지요...)
'현' 이스라엘 건국 이후 그를 둘러싼 팔레스타인 주변국과의 대립은 익히 알려진 바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언제나' 상대적으로 '강자'의 위치에 있었다는 것이죠. 그나마 이전 시대의 온건정책(제대로 아는건지 모르곘습니다만) 당시에는 팔레스타인 주변국과의 대화를 통한 평화운동이 이루어지고 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최근의 이스라엘의 정책은 (부시믿고 그러는 것이었겠지만) 강경일변도였지요. 따라서 갈등은 더욱 심화되는 것이구요.
아무튼 이런 '중동의 긴장'은 분명 존재해왔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 가자 전쟁이 '확전'된 결정적인 계기가 이스라엘의 무차별 선제공격이었다는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지요. 중동간의 긴장이 (이번 가자 전쟁에서의) 이스라엘의 '과'를 옹호해줄 수 있는 근거로 삼긴 어려울 거같습니다. 물론 이스라엘도 잘못이 있고, 주변국도 잘못이 있다고는하나(하마스의 테러는 분명 잘못입니다만.), 그것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노력이 존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이번 사태처럼 일방적으로 무너뜨린 것이라면 비교우위의 책임을 묻는 것이 타당하겠지요.
무엇보다 이번 가자 전쟁은 '약자'를 향한 '강자'의 일방적인 폭력이라는 점입니다. (가자 폭격에 하마스요인과 민간인이 구별이 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니 그것은 명백한 민간인을 향한 폭력이었다는 것이죠.) 때문에 가자 전쟁에서의 과는 명백하게 이스라엘에 물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은 친이스라엘, 반이스라엘의 이념적 차이로도 분명한 것으로 봅니다.
진정한 가치 중립이라는 것은 기계적으로 편을 맞추기 위한 외줄타기가 아니라, 정확한 사실 관계와 비교사안을 두고 정확한 가치 판단의 기준을 세워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 가자 전쟁의 '타당성'에 대한 가치 (중립) 판단의 기준은 짐 월리스가 지지하는 최소한의 정전론-평화주의의 기준이 좋은 대답이 될 것 같습니다.
3. 솔직히 전 아직 (완전)평화주의와 정전주의 사이를 분명하게 지지하진 못하고 있습니다.(뭐, 솔직히 이 두 가지 어느 쪽을 분명하게 지지하는 것이 어디 쉽겠습니까만은)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어떠한 형태의 전쟁이건 '발생하지 않는', '발생을 억제'하는 쪽이 가치평가적으로 더 낫다는 것입니다. 요세프님께서 여쭤보신 것, 원칙론일 수도 있지만 제 대답이라면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도록, 북한과 교섭-혹은 구슬리는 쪽"이 낫다는 것입니다.
만약 위의 '최악의 결과'가 발생한다면, 제가 어떤 선택을 할 진 모르겠지만, 방어를 위한 국지전 이상으로 확전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4. 정전론에 대해 저보다 더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준 책이 있던데요, 짐 월리스가 쓴 '하나님의 정치'에 이라크전쟁을 둘러싼 정전론 담론이 있더군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제가 지지하는 편인 짐 월리스의 주장을 옮겨보도록 하겠습니다.
차성훈 님, 감사합니다. 지금 올리신 댓글을 연거푸 읽고 있습니다. 특별히 차성훈 님이 읽으신 짐 월리스의 "하나님의 정치"라는 책에 대해서 언급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짐 월리스에 대해서는 한때 Sojourners Magazine을 정기구독했었기 때문에 잘 알고 있지만, "God's Politics"라는 책은 약 1년 전에 구입하자마자 형이 빌려가서 아직도 돌려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짐 월리스는 미국의 진보와 보수 기독교인들 모두가 인정하는 정치신학자이고 기독교윤리학자이죠. 그 부분에 관해서는 그 책을 읽어보고 나중에 댓글을 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만, 이미 느끼고 계시다시피, 저는 미국의 정치-외교-안보에 대한 실제적인 정책에 있어서 짐 월리스의 관점 보다는 찰스 콜슨이나 찰스 크래스해머(Charles Krauthammer)의 관점에 더 동의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스라엘-아랍 문제를 한반도 남북문제와 연관짓는 이른바 "물타기"를 하고 있다는 말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인정합니다. 왜냐하면, 아시다시피 사실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저는 오히려 반이스라엘적 모임에서 나타나는 신나치즘적 성향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친북, 용공주의는 너무 빨리, 멀리가는 것 같습니다. 억지로 끼워맞추기식으로 연결짓자면야 뭘 못하겠습니까만은, 지금이 유신독재시대도 아니고 그건 조금 오바하는 것이지요. 류태영 박사님의 발언에서도 역시 반이스라엘적 모임에 대하여 친북적이라든지 "레드컴플렉스-용공주의"식의 물타기를 하려는 의도는 없어 보입니다. 다만, 북핵문제를 대하는 남한 국민들의 자세가 하마스 무장세력을 척결하고자 결단하는 이스라엘 국민들의 汎국민적 단결성을 본받아야 한다는 의미로 여겨집니다. 한마디로 이제는 북한 눈치보기를 그만하자는 뜻이지요.
이스라엘-아랍 분쟁문제의 사실관계에 대한 가치중립적인 판단 기준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오니즘의 정치적 정당성이나 보편 타당성 그리고 신학적 논리의 근거를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시오니즘의 타당성 위에 건국된 신생 이스라엘국이 지금까지 팔레스타인인들과의 평화를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구체적인 리서치를 해봐야합니다. 결론은, 이스라엘이 충분히 노력해왔다는게 제 입장입니다. 2006년에 레바논 헤즈볼라와의 전쟁에서는 이스라엘군 사상자 수가 상당히 많았습니다. 민간인들을 방어벽을 사용한 헤즈볼라의 전략에 휘말린 것이지요.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아랍 분쟁문제에 대한 신나치즘적 접근방식은 시오니즘 자체를 부정하고 시작한다는 것이지요. 문제는, 현재 한국에 계시는 목회자들이나 일부 학자들이 신나치즘적 반시오니즘을 들고나와서 이스라엘을 부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하신 짐 월리스가 말한 가치중립적인 판단 기준(“정전론-평화주의의 기준”)은 우선 이스라엘국 건국의 辨을 먼저 따져보고, 그 다음에 현재 진행 중인 전쟁에 대한 상황에 적용해야 하지 않을까요?
어찌되었든, 차성훈 님이 말씀하고자 하신 가치중립적 기준, 짐 월리스의 정전론에 대한 생각 더 알고 싶군요.
안타까운건, 같은 사안을 두고서 요세프님과 제 관점은 너무나 다르군요.. 얘기가 될 듯하면서도, 제 독해력 부족인지, 아니면 또 다른 문제가 있는건진 모르겠습니다. 암튼 서로 하고자하는 얘기는 달라지니 저도 제 생각을 정리하기 쉽지 않습니다;(그래서 윗 댓글처럼 두서없이 쓰기도 하지만요.) 특히 윗 댓글에서 류모 박사 발언의 '정치적 의도'는 너무나 명백해 보이는데 아니라고 하시면 참 할 말이 없군요......딱 그 차이 같습니다. 저와 요세프님의 괴리는...
이스라엘과 시오니즘, 그리고 가자 침공에 관해서 제 생각이라면 누군가 얘기했던 것같은데, '피해자가 가질 수 있는 최악의 피해의식'이라는 것이 핵심입니다.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도구로 삼아 또 다른 자, 혹은 가해자(였던)에게 또 다른 피해를 준다는 것은 정치적, 그리고 신학적 명분을 스스로 버리는 것이지요. 제가 보기엔 가자 침공은 이스라엘이 시오니즘(과 친이스라엘)이 가질 수 있는 우호정서와 명분을 스스로 버린 것이라고 봅니다. 특히 그 침공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부(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만) 이스라엘인들의 만행(예를 들면 옆 블럭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이 미사일에 학살되고 있는 것을 중계하면서 즐긴다던지)은 피해자가 또 다른 가해자가 된 전형적인 사례라고 봅니다. 옹호될 수 없는 비인간적인 것이지요. 그리고 비인간은 비성서적인 것이구요. 답답하고 그렇습니다. 좋은 밤 되시길...
류태영 박사님은 우리나라를 위해서 평생을 바치신 공신 중에 공신이십니다. 개인적으로 류태영 박사님 같으신 분이 10명만 더 있었어도 남북통일은 벌써 이루어졌고, 우리 실크세대들은 벌써 중국 대륙을 거쳐서 21세기의 실크로드에서 지금보다 더 활발하게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거두며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으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류 박사님의 발언에 설사 어떤 "정치적 의도"가 있었다고 치더라도 그 정치적 의도가 결코 우리나라에 해가되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물론, 저는 이런 제 개인적인 생각을 관철시키고 싶지는 않습니다. 류 박사님의 발언에 관한 제 관점과 차성훈 님의 관점 사이에는 명백한 차이가 있지만,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두번째 문단 내용에 대해서, 둘 다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이겠죠. 마크 A. 가브리엘(Mark A. Gabriel)이 쓴 "끝나지 않은 2000년의 전쟁"이라는 책에 나오는 이스라엘-아랍 문제에 대한 역사적 추적 및 해석이 가장 명료하고 균형잡힌 관점이라고 생각됩니다. 결론만 말씀드리자면, 차성훈 님 말씀대로 그렇기 때문에 제2, 제3의 브라더 앤드류(Brother Andrew)와 같은 크리스챤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샬롬!
이 문맥에서 minimalist가 뭔지 모르시겠다면, 제 생각엔 이 글을 내리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김진호 목사의 발언을 이해하고 평가할 만한 기본적인 배경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신나치즘이라고 비난하는 글을 쓰셨다는 말밖에는 안되거든요.
말하자면 누군가 태극기에 대해 설명하다가 "태극의 윗부분은 빨간색입니다"라고 말을 꺼내자,
"아니, 공개된 장소에서 철지난(?) 빨간색을 언급하다니, 오호, 너는 빨갱이구나, 아니, 간첩인가?"
이렇게 비약하시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태극기에 대한 설명이란 세세한 것따윈(?) 안중에도 없는 거지요.
그런데 사실 어떤 부류를 minimalist 라고 말씀하시는건지 조금 헷갈리는군요. 실례를 하나 들자면, Georgetown University에서 로만가톨릭을 대표하는 예수회 철학교수와 복음주의계를 대표하는 감리교 신학교수 그리고 다윈론을 주장하는 생명윤리학 교수가 공개토론을 벌이던 중에 갑자기 서로가 자기를 온건주의자라고 주장하다 토론의 주제가 완전히 희석된 적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minimalism의 의미에 대한 토론으로 주제가 완전히 변질되었는데, 끝내는 예수회 철학교수가 자기는 minimalistic한 음악만을 좋아한다는 농담을 하고는 토론은 끝나버렸습니다. 그후에 토론을 관람하던 학생들 중에 하나가 학교신문에다 minimalism은 본래 예술의 기술적 구성이나 형식을 평가하기 위한 단어이지 사상이나 철학적인 성향을 논하기 위한 단어가 아니라는 글을 기고한 적이 있습니다. 예수회 철학교수 편을 들어준 셈이지요.
미묘한 차이라 여기실지도 모르겠으나, 제 생각에는 정치적 정체성이나 철학적인 성향을 설명하는 명사로써 moderationist 또는 moderatism이라는 단어가 조금더 정확한 표현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여간, 제 본글 내용에서 저는 '개혁을위한종교인네트워크'라는 모임에서 나온 발언 내용들의 성질이 신나치즘적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신나치즘은 유럽에서의 극우주의이고, 시오니즘는 중동 상황에서 이스라엘의 극우주의이고, 하마스나 헤즈볼라 등은 이슬람 극우주의입니다. 어느 한쪽을 단편적으로 비판하고 반대한다면 moderatism은 성립되지 않죠. 잘 아시다시피, 저 역시 moderationist는 아닙니다.
그리고 신나치즘이라고 하면 "현대적 파시즘" 의 일종일텐데, 파시즘이라고 하면 어떤 하나의 모토가 개인들에게 강요되고, 개인의 생각과 이익 보다는 단체나 국가의 그 것이 더 강조되고, 그 가치를 위해서는 개인이 희생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또한 그 전체국가적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공동의 적을 하나 만들어서 그 적을 공격하거나 섬멸함으로써 국가적 단결을 도모하는 그런 정치적 입장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어디를 봐서 위에서 언급한 모임이 그 신나치주의와 비슷한 면이 있단 말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됩니다...
오히려 지금 이스라엘의 행태가 파시즘에 가깝지 않겠습니다... 선거는 다가오고, 국론을 통합하기 위해서 하마스를 빌미로 팔레스타인을 공공의 적으로 몰면서 건드렸다는 이야기는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은 홀로코스트라는 민족적 아픔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것은 또한 전지구적 아픔이었고 그렇게 기억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다시는 있어서는 안되는 비극입니다...
저는 이스라엘에 민족적 "한" 이 있음을 인정합니다... 그 한 풀이 대상이 왜 현대의 "유태인" 들일지도 모르는 팔레스타인 인들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많이 안타까운 마음이 있습니다...
국가 간의 사안에 있어서는 이런 이야기들이 쓸모가 없는 것일까요...
저는 단지 이 모임에서 주장하고 있는 반시오니즘의 논리가 신나치주의자들에 의해서 이미 사용된 것이라는 뜻에서 '신나치즘적'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물론 이 모임을 비판하는 뜻에서 말입니다.
시오니즘을 얼마든지 비판할 수 있죠. 시오니즘을 비판한다고 무조건 신나치라고 치부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건전한 성서적 세계관과 상충되는 부분이 있다면 마땅히 비판을 해야합니다. 그런데 '개혁을위한종교인네트워크'라는 모임에서 사용하고 있는 일종의 '설(說)'은 분명히 신나치즘적인 것입니다. 특별히 다윗과 솔로몬의 왕국에 대하여 "발명된" 역사라고 주장한 부분이나 핑클스타인의 "홀로코스트 산업"을 단어 하나만 바꿔서 사용한 것에서 그렇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가자 지구나 베이루트, 웨스트 뱅크 등에 거주하고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해서 주변에 있는 이슬람국가들은 무엇을 해줬습니까? 무기를 대준 것 외에 어떤 실제적인 지원이 있었습니까? 테러단체로 키우기 위해 모종의 지원을 해준 것 외에 무엇을 해줬습니까? 오히려 이스라엘이 더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변화를 제시하고 지원계획을 발표했었지 않습니까? 물론 모두 무시되었지만 말입니다.
요셒 님을 보면 스스로 "선"에 대한 확신이 매우 강하신 분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아주 중립적인 스탠스를 유지하시는 듯 하면서도 은근히 이스라엘은 "선" 이라는 기본 전제에는 변함이 없으신 모습에서도 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사람들이 무섭습니다...
인터콥의 최바울 선교사님이 이슬람과 친북좌파 사이의 연관성을 이야기하셨다죠... 제가 알기로 최바울 선교사님은 인류문화학 쪽에서 대단히 뛰어나신 분이라고 들었는데... 참 안타깝네요...
인터콥 최바울 선교사님이 이슬람과 친북좌파를 연결지었다는 말씀에 대한 자료를 받을 수 있을까요? 실제로 그와 비슷한 설(說)이 있기는 하지만, 구체적이고 논리적인 근거가 나온적은 없습니다. 다만, 북한이나 이슬람권 극단주의자들의 공동의 적들 중에 하나로 미국이 있기 때문에 서로 상부상조 하는 차원에서 군사기술과 에너지 정도를 나눈 수준에 불과하죠. 그런데 친북좌파들과 이슬람이라면 아무래도 남한 안에서의 문제일텐데, 궁금하군요.
그리고, 저는 중립은 아닌 것 같습니다. 기독교가 굳이 중립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선"에 대한 확신이라?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논리적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결국 궁극적 진리, 실존적 현실의 문제 부닥치면 그 논리 자체가 무용지물이 되어버리지만 말입니다.
어쨌든, 첫날처럼 님 보시기에 제가 교만해 보였다면 죄송합니다.
'파시즘'에 대한 이야기는...
이론적으로 파시즘은 '독재+시장간섭주의' 아닌가요? 요즘 파시즘이라는 단어로 현 정부를 비판하는 분들이 많이 있지요. 그런데 이론적으로는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첫째, 독재라면 장기집권으로 이어지고 의회민주주의를 반대해야겠죠. 둘째, 현 정부는 자유시장체제를 지지하고 간섭주의를 반대합니다. 뭐, 이 정도면 현 정권이 파시즘적이지 않다는 충분한 대답인 것 같은데요. 단 하나 비슷한 점이 있다면, 반공산주의가 있겠네요. 하지만, 반공을 한다고 파쇼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오히려 법치주의(法治主義)를 추구함에 있어서 홉스와 로크의 개념을 왔다갔다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김대중 정권이나 노무현 정권에서 추구하던 것이 '장 자크 루소 + 칼 맑스'였다면, 현 정권이나 뉴라이트가 추구하는 것은 '아담 스미스 + 죤 로크'의 개념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개혁을위한종교인네트워크'라는 모임에 대해서 얘기했는데, 왜 현 정부의 파시즘 이야기가 나와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어떤 나라든 파시즘에 빠질 수 있는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겠죠. 이스라엘이든 미국이든, 또는 대한민국이든 마찬가지겠죠. 그렇다고 "떼법"에 의지해서는 더더욱 않된다고 생각됩니다.
친일파라고도 했다가, 일본인 피가 섞였다고도 했고, BBK 때는 사기꾼이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사기를 당한 무능한 사업가라고도 했죠. 나중에는 국민학교 아이들에게까지 입에 담기조차 낯 부끄러운 험담을 들으셨죠. 이제는 이명박 대통령과 현재의 정부가 통째로 '나치'로 몰리고 있는가 보군요. 음, 제 생각에는 힘들어 보입니다. 나치로 몰리기 위해서는 상당한 지지도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히틀러의 지지도는 상당했죠. '나치'와 같은 독재적 정책을 펼치기 위해서는 현재의 지지도로는 어림도 없지 않을까요?
저는 이명박 정부에 희망이 있다고 믿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하면서도 어느정도 거리를 유지하며 쓴소리 가리지 않는 정치인들이 꾀 있기 때문이죠. 예를 들면 김문수 경기도지사님 같은 분 말입니다. 일부 신문이나 방송에 드러나는 기사에 너무 취중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또는 확실한 근거가 있는지 구체적인 조사를 해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혹시 차 형제님 보시기에 현 정부의 나치설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를 발견하신다면, 그리고 꾀 논리적이고 타당하다고 여겨지신다면 저한테도 좀 알려주시죠. 현 정부의 나치설이 사실이라면, 저 역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http://www.yesform.com/forms/vrepo_117.php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00397
http://www.hani.co.kr/section-001040000/2003/02/001040000200302262233496.html
http://www.independent.co.kr/news/n_view.html?kind=main&id=23892
얼마전인가에 올린 여행금지구역에 선교차 40명의 목회자가 인터콥 주최로 갔었던 것에 대한
언론보도에 대하여 요셒님이 올리신 글을 보았더랬습니다.
그 때 하고싶었던 말이었습니다만...
충분히 이슬람과 좌파가 연계할 수도 있지요.
그러나 문제는 아프칸 사태 당시 인터넷을 통한 네티즌들의 엄청난 의견들, 즉 인터콥과 샘물교회의 행동을
지탄하는 그 의견들 조차 이슬람-좌파들의 연대로 치부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이슬람도 좌파도 아니지만 네티즌 1인으로 글을 쓰고 싶더군요.
그 때 엄청 화가 났었습니다.
제가 노빠도 아니고 노무현 좋아하지않아도 임기 말년에
그거 하나 구사일생으로 해결해준 거 고맙게 생각합니다.
제가 선교관심자라서 교제권에 선교사님들이 꽤 있습니다.
2004년인가에 예루살렘 예수행진을 인터콥에서 진행할 때
이스라엘에 있던 선교사들 얼마나 황당했는지 아십니까?
예수행진을 반대하면 어떻게 하겠다는 둥..입에 담지않겠습니다.
같은 사역자로 할 일입니까?
제 3세계간의 전략적 교류는 당연하지요.
이슬람과 북한, 저라도 서로 손잡겠습니다.
그런데 그걸 자신의 행동에 대한 변명거리로 이용하다니 상당히 비겁합니다.
그는 언행에 조심해야할 사람입니다.
그리고, "2006 아프가니스탄 평화 대행진"에 대해서 반대하셨다면, "2008 쇠고귀 수입 반대 촛불시위"에 대해서는 당연히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계시겠네요. 저는 '평화 대행진'은 지지했는데, '촛불시위'는 반대했습니다. 이상하죠. 게다가 '평화 대행진'은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준비되었었던 반면에 '촛불시위'는 불법적인 부분이 많이 있었죠.
그런데 유니스 님은 이슬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가 이슬람-좌파 연대를 언급한 것, 그 자체가 아니라
이 연대를 본인과 그 단체의 선교활동의 크나큰 오류에 대한
비겁한 변명의 도구로 그것을 거론한 것입니다.
2. 정확히 말하면 2004 예루살렘 평화 대행진을 언급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문제 꼭지글이니 관련이 좀 있군요.
현지의 교민과 선교사들의 반대에 부딪치며 무리해서 진행한
전시선교의 결정판입니다. 한번 행진 후에 이스라엘 선교상황은
어떻게 변하였는지 모르겠군요.
이런 '행진' 형태의 선교행사가 유행하는데요, 영적전쟁의 땅밟기라는
원리로 시작하였을 겁니다. 여리고성을 일곱번 돈 후에 그 강한 진이
무너졌다...진정한 땅밟기라면 그 앞서 두 명의 정탐꾼이 생명을 걸고
야음을 틈타서 가는 것일 겁니다. 큰 무리를 지어 대행진을 하였다면
그 진이 곧 무너져야지요. 지금 이-팔 상황 아시겠습니다만....
뒷 결과도 주목해야합니다.
이런 영적전쟁식 땅밟기의 맹점은 배후의 영을 주목하고,
땅을 상징적 정복지로 보는 것에 주력하느라
그 땅 위에 삶을 살아가는 생명은 눈에 들어오지않습니다.
그리고 그 역사와 관습과 고유의 모든 것은 무시하는 거지요.
최근에 중동에서 돌아온 선교사 친구로부터의 새로움이 있었는데
각자의 선교지와 사역패턴에 매몰되어
세계 가운데 있슴을 잊어버렸노라고 하더군요.
저는 아주 중요한 것을 그가 찾았다고 생각했습니다.
3. 평화대행진 반대와 촛불시위 반대가 연결되는 부분에서 어리둥절해집니다.
연관성이 있나요? 요셒님의 예상과는 틀립니다만...
평화대행진의 준비가 합법적, 평화적이었다구요?
요셒님께서는 표면의 합법과 평화를 위한 무리수들을 생각지 않으시는군요.
용산참사도 합법적, 행정적 조치였습지요.
4. 저도 이슬람에 대한 견해는 있으나 길어져서 다음 기회에...
어느 단체도 완벽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아시다시피, 각 단체마다 서로 접근방식에 차이가 있을 수 있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닙니까?
오류라고 말씀하시기에는 당시 상황이 여러가지로 복잡한 부분이 많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무고한 자원봉사자들을 납치한 테러리스트들의 문제가 있었지요.
오류가 있었다면 인간의 생명을 담보로 돈을 요구한 테러단들에게 있었지요.
짓궂은 질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혹시 유니스 님이 아신다는 그 현지 선교사님들이 국정원으로부터 여행이 금지된 나라에서 활동중이십니까? 만약에 그렇다면, 그분들의 이름과 위치등을 밝혀주실 수 있으십니까?부디 밝히지 말아주십시오.
이게 당시 상황이었습니다.
지난번 다게스탄... 글에서 제 생각은 이미 밝혔습니다.
최바울 선교사님의 인터뷰 내용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습니다.
여담입니다만,
노무현 前대통령 재임 시절 국정원은 정말 하지 말았어야할 일을 많이 했습니다.
KAL기 폭파 조작설을 부추기고 김현희 씨 개인사생활 공개를 허용했고,
탈북자들을 북파 공작원으로 보내놓고 무책임하게 방치했고,
몇몇 방송사들과 함께 권력에 결탁해서 사실을 거짓인냥, 거짓을 사실인냥 조작했고,
끝이 없습니다.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 때, 노 前대통령의 정부가 어떤 오류를 범했는지는 곧 밝혀질겁니다.
故 조창호 장로님이 전하시는 북한 정치범수용소 상황들에 대한 간증을 여러번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노 前대통령에게 섭섭하시다며 눈물을 쏟으시곤 하셨죠....
여담이었습니다.
평화대행진과 촛불시위,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죠.
다만 우물 안의 개구리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에서는 그렇게 난리법석을 피우고 그러면서
민주주의 어쩌구 저쩌구 입으로만 재잘거리고,
그럴때는 자신들의 정부를 '떼법'으로 밀어붙이면서,
아프가니스탄은 커녕,
당장 바로 윗동네에도 가지 못하는 겁장이들 같아서 비교를 잠시 해봤습니다.
제가 개념 없는 소리만 하고 있는지요?
하여간, 평화대행진의 절차적 과정에는 불법적 요소가 없었다는 것은 확실하게 말씀드립니다.
그런데 혹시 용산참사가 경찰의 과잉진압이었다고 생각하시나요?
다음은 김석기 서울지방검찰청장 사퇴 기자회견 전문입니다:
http://www.chogabje.com/board/view.asp?C_IDX=26429&C_CC=AD
자신이 이 분야에 대해 아는 게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광고할 뿐입니다.
제가 이 글을 내리는 게 좋겠다고 말씀드린 것도 그런 의미에서구요.
"오바마 연설을 내가 딱 들어보니까 말야, 영어에 문제가 아주 많아. 일단 단어 선택이 진부해. 자고로 영어란 말이지..."
"뭐? 알파벳? 그게 뭔데? 아, 알파깡이라는 과자는 내가 먹어 봐서 잘 알아. 참 맛있지. 알파벳은 새 과잔가부지?"
"그런 거 아니라고? 과자 맞을텐데, 네가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냐? 아니면 사탕인가? 그래 사탕!, 사탕이라면 또 내가 ..."
이 세 발언이 한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라면, 이 사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저는 고민중입니다.
물론 historical minimalist라는 단어를 일부 설화론(說話論)자들을 부르는 용도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 의미가 매우 애매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미술이나 음악에 있어서는 가시적인 기술이나 기법의 정도를 분별해낼 수 있기 때문에 이 단어를 별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지만, 사상이나 정치적 성향에 대한 설명을 하기에는 문제가 많습니다.
정치적인 또는 철학적인 목적으로는 moderationist라는 표현법이 더 명확하고 쉽다고 생각됩니다만, 빈이 님이 만약에 설화론자들을 minimalist라고 부르시는 것이라면 미국에서도 그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minimalist라는 단어는 여러가지 다양한 목적과 의미로 사용되고 그 개념의 구별이 명확하지 않다는 말씀은 드리고 싶습니다.
원점으로 돌아가서, 이*팔 문제를 대하는 모든 minimalist가 신나치주의자이냐고 물으신 것이 원래의 질문인듯 싶은데, 일단은 제 생각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모든 설화론자들이 minimalist는 아니죠. 하지만,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신나치즘적 신학자들의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지요. '개혁을위한종교인모임'이 그 예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빈이 님께서 의도하신 minimalist가 한글로는 어떻게 불리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또 동문서답하고 싶지 않아서 그럽니다.
저는 진심으로 빈이 님이 사용하신 단어의 의미를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물어보았던 것입니다.
제가 올린 본글의 내용에서 minimalist라는 단어는 크게 두가지 의미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a. 정치적인 온건파.
b. 역사적인 설화론자.
이 두가지 의미 모두 제 본글에 적용됩니다.
이 외에도 한 20가지 정도의 다른 의미로 이 단어의 의미가 갈립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중학교 때부터 미국에서 살고 있는 저에게 이 단어의 뜻은
여러가지가 서로 다른 의미로 중복되었습니다..
빈이 님께 문제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제게 혼란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빈이 님의 본뜻이 어떤 것이었는지 진심으로 물어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바마를 minimalist라고 생각하시는지 물어본 것은 위에서 a.의 경우에 혹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물어본 것입니다. 오해 없으시길 바라며. 샬롬!
에, (시오니즘에 관한 역사적 해석과 평가는 일단 차치하더라도)
저 포럼에서 지적한 사안, '한국 교회에서의 과잉-친이스라엘'에 대해 '홀로코스트적 이해'라는 것은 일리가 있는 얘기 같은데요. 오히려 현상적인 측면에서 봐도, 작금의 가자 지구에서의 이스라엘이 벌이고 있는 일련의 행위들은 어떠한 신학적 해석으로도 긍정되긴 어려울 것 같네요.
전쟁에 관한 평화주의건, 정전주의(Just War라고 하던가요)이건, 적어도 이스라엘의 가자침공은 모두에도 해당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기본적으로 정전주의의 핵심인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공격'이 주된 전술이 되고 있으니말이죠. '보복'이라고 한다면, 오히려 그건 기독교의 근본정신인 '보복금지'와는 전혀 맞지 않는 것입니다.)
그걸 신나치주의에서 비롯된 반유대주의라고 한다면, 지나치게 이념적으로 평가한 관점이 아닌가합니다. 소위 '깔 것 까야죠'. 친이스라엘이건, 반이스라엘이건 잘못한 건 비판하고 지적해야죠. 하물며, 침공 당사자들도 아닌 제 3국 '한국 교회'의 관점에 대한 평가는 더욱 가치중립적인 것이어야 하구요.
그런 의미에서 오히려 전 저 포럼의 해석이 타당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덧. 이상한건 왜 우리나라에선(특히 교회에선) 공산주의=북한=반이스라엘=반미=반정부 이런 식의 도식이 유의미하게 여겨지는가하는 점이죠. 전혀 전후간 논리가 이어지지도 않는, 색깔론인데 말이죠...오히려 저 도식을 사용하는 쪽이야말로 '무언가' 다른 꿍꿍이가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