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 <열린 토론실>입니다. 다비안들의 부담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사랑채>와는 달리, 보다 진지하고 깊이있는 이야기나 주제를 나누고 싶은 분들을 위한 게시판입니다. 가급적 예의를 갖추시고 열린 마음으로 대화에 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울러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토론과 대화는 다비안을 비롯한 여러 네티즌들의 온라인 상에서의 자유로운 것이기에 그 방향과 정체성이 반드시 다비아와 일치하지는 않음을 밝혀둡니다.
글 수 256
인간의 심리 또는 사고작용에 대하여 뇌과학 또는 행동과학으로 접근하거나 정신분석학과 무의식 개념에 의한 이해를 하는 것도 크게보면 인간을 올바로 이해하기위한 한 분파라 할 수 있겠죠.
그러나 인간을 육체와 정신의 이분설로 이해하는 것도 부정하고 물질로만 이해한다는 것은 온당치 못할 뿐 아니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인문 사회과학이라고 할 때의 과학이라는 용어는 순수과학을 말하는 게아니라 광의적 용어로 사용된 겁니다. 인간의 내면적 정신작용을 다루는 게 인문과학이라면 인간관계에 기초한 다양한 사회적 경험을 세부적으로 다루는 걸 사회과학이라고 하지요 그리고 자연현상이나 순수 과학적 분야를 자연과학이라고 분류하는 걸로 알고있습니다. 인간의 내면적 정신작용을 부정한다고하면 인문학 또는 인문과학이란 분야는 아마도 사라져야 할 것 같은데요.논리적으로 그렇지 않나요?
인간에 대한 이해는 모든학문과 지식의 기초적 전제가 됩니다.
인간의 정신 또는 인지능력에 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초월적 존재자(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인간의 인식 능력여부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을 하나님의 계시로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한가요? 아니 인간의 행태에 대한 예정론적(결정론적)이해가 가능한 것일까요? 이것은 인간이 미래예언적 계시를 인지할 수있을 때에만 가능할 것입니다.
영적체험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 체험이라면 사물이나 사람에 대한 직관적 이해 또는 미래투시적 포착력이나 초월적 능력 등 여러가지 체험을 말하는 것이나 이것이 일시적이고 우연적 경험이라면 인간의 손에 잡히지않는 것입니다. 지나온 경험상 분명히 있기는 있는 것 같으나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을 과학적으로 규명해내고자 하는 것이죠.
외부환경과 자극에 대한 반응을 일으켜 행동하는 인간의 이성적 사고작용과 인지능력은 어디서부터 온 것일까요?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대답하면 간단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을 알고 믿고 성경적 가치관과 기준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생각하고 행동하는 일련의 인간의 행태는 이미 알고 있는 전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면 발전이나 진전이 없습니다. 스스로를 가두는 카테고리나 제한을 풀고 외계로 벗어날 때에야 스스로의 실체를 볼 수가 있겠지요. 그러나 자신의 실체를 벗어난 이상 그 이전의 자신으로는 되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시간도 되돌릴 수 있다고 말하고싶습니까? 이유가 없는데 그럴 이유가 없는데 시간이 왜 거꾸로 되돌아가겠습니까?
신학은 '어떻게'를 묻는 것이 아니라 '왜'를 묻는다고 합니다.
저는 성경말씀을 신적 계시로 보는 입장입니다. 인간의 자기초월적 인식이 가능하다고 믿는거죠.
그러나 인간을 육체와 정신의 이분설로 이해하는 것도 부정하고 물질로만 이해한다는 것은 온당치 못할 뿐 아니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인문 사회과학이라고 할 때의 과학이라는 용어는 순수과학을 말하는 게아니라 광의적 용어로 사용된 겁니다. 인간의 내면적 정신작용을 다루는 게 인문과학이라면 인간관계에 기초한 다양한 사회적 경험을 세부적으로 다루는 걸 사회과학이라고 하지요 그리고 자연현상이나 순수 과학적 분야를 자연과학이라고 분류하는 걸로 알고있습니다. 인간의 내면적 정신작용을 부정한다고하면 인문학 또는 인문과학이란 분야는 아마도 사라져야 할 것 같은데요.논리적으로 그렇지 않나요?
인간에 대한 이해는 모든학문과 지식의 기초적 전제가 됩니다.
인간의 정신 또는 인지능력에 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초월적 존재자(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인간의 인식 능력여부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을 하나님의 계시로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한가요? 아니 인간의 행태에 대한 예정론적(결정론적)이해가 가능한 것일까요? 이것은 인간이 미래예언적 계시를 인지할 수있을 때에만 가능할 것입니다.
영적체험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 체험이라면 사물이나 사람에 대한 직관적 이해 또는 미래투시적 포착력이나 초월적 능력 등 여러가지 체험을 말하는 것이나 이것이 일시적이고 우연적 경험이라면 인간의 손에 잡히지않는 것입니다. 지나온 경험상 분명히 있기는 있는 것 같으나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을 과학적으로 규명해내고자 하는 것이죠.
외부환경과 자극에 대한 반응을 일으켜 행동하는 인간의 이성적 사고작용과 인지능력은 어디서부터 온 것일까요?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대답하면 간단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을 알고 믿고 성경적 가치관과 기준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생각하고 행동하는 일련의 인간의 행태는 이미 알고 있는 전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면 발전이나 진전이 없습니다. 스스로를 가두는 카테고리나 제한을 풀고 외계로 벗어날 때에야 스스로의 실체를 볼 수가 있겠지요. 그러나 자신의 실체를 벗어난 이상 그 이전의 자신으로는 되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시간도 되돌릴 수 있다고 말하고싶습니까? 이유가 없는데 그럴 이유가 없는데 시간이 왜 거꾸로 되돌아가겠습니까?
신학은 '어떻게'를 묻는 것이 아니라 '왜'를 묻는다고 합니다.
저는 성경말씀을 신적 계시로 보는 입장입니다. 인간의 자기초월적 인식이 가능하다고 믿는거죠.
2007.05.07 03:40:32
인간의 인식능력에 대한 심리학적 이해도 포괄적인 인간이해의 한 단면이라는 것이지요.
신학의 계시의존성은 결정론적 구원관에 근거한 것인 반면 인간의 비결정론적 자유의지는 합리적 인간의 이성적 통찰능력과 자율적 인식능력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하는 것입니다. 인간 이성의 미래 예측 가능성이 포인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인간에게 운명이라는 것이 있다면 반드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통로 위에 있다면 계시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역으로 계시를 인정한다면 숙명(또는 결정론)을 부정할 수 없겟지요.
자유의지는 책임성이라는 윤리규범적 요구로 나왔다고 이해할 수도 잇겠지요. 또한 순수한 자유의지 지향은 철저한 인본주의적 태도를 지향하게되며 이는 인간의 파멸을 가져오게될 것입니다.(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는데 인간의 능력이 아무리 대단해도 성공보다는 실패할 확률이 높죠)
신학의 계시의존성은 결정론적 구원관에 근거한 것인 반면 인간의 비결정론적 자유의지는 합리적 인간의 이성적 통찰능력과 자율적 인식능력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하는 것입니다. 인간 이성의 미래 예측 가능성이 포인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인간에게 운명이라는 것이 있다면 반드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통로 위에 있다면 계시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역으로 계시를 인정한다면 숙명(또는 결정론)을 부정할 수 없겟지요.
자유의지는 책임성이라는 윤리규범적 요구로 나왔다고 이해할 수도 잇겠지요. 또한 순수한 자유의지 지향은 철저한 인본주의적 태도를 지향하게되며 이는 인간의 파멸을 가져오게될 것입니다.(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는데 인간의 능력이 아무리 대단해도 성공보다는 실패할 확률이 높죠)
2007.05.07 03:55:48
숙명론이 과연 그리스도교적일까요?
예정론, 심지어 이중예정론까지 주장한 칼뱅조차, 이러한 숙명론을 말하려 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성서의 축자적 영감성에 지나치게 집착하신 나머지,
계시실증주의도 넘어, 숙명론이라는 오류에 빠지신 것 아닌지요?
정말 두지랑님 말씀마따나, 숙명론이 긍정되어야 한다면,
저는 이번 주부터, 교회 안 나가고 가정 제단이나 모모 기도원 같은 데 찾아다녀야겠습니다.
세대주의는 근본주의의 옆집이라는 평가가 있습니다.
미국 근본주의의 역사를 공부해 보시면, 시대별 계시론([스코필드 관주성서]로 대표되는)이,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다미선교회 등도 나오는 겁니다.
생명의말씀사에서 [뉴 인터내셔널 성경주석](보수권을 대표하는 학문적 주석서)과,
[현대인의 성경]의 번역에 참여할 정도였던 이장림 목사가,
다미선교회를 차려서 나갔었거든요.
예정론, 심지어 이중예정론까지 주장한 칼뱅조차, 이러한 숙명론을 말하려 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성서의 축자적 영감성에 지나치게 집착하신 나머지,
계시실증주의도 넘어, 숙명론이라는 오류에 빠지신 것 아닌지요?
정말 두지랑님 말씀마따나, 숙명론이 긍정되어야 한다면,
저는 이번 주부터, 교회 안 나가고 가정 제단이나 모모 기도원 같은 데 찾아다녀야겠습니다.
세대주의는 근본주의의 옆집이라는 평가가 있습니다.
미국 근본주의의 역사를 공부해 보시면, 시대별 계시론([스코필드 관주성서]로 대표되는)이,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다미선교회 등도 나오는 겁니다.
생명의말씀사에서 [뉴 인터내셔널 성경주석](보수권을 대표하는 학문적 주석서)과,
[현대인의 성경]의 번역에 참여할 정도였던 이장림 목사가,
다미선교회를 차려서 나갔었거든요.
2007.05.07 04:04:56
교리란 자기가 속한 종교나 교회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어야 하는데.. 저는 단지 보수 장로교회에 다닌 이력은 있지만 신학적 구속은 없습니다. 누가 신앙을 강요하거나 구속할 수 있겟습니까? 그냥 한번 생각을 해보는 것이지요. 제 사견일 뿐입니다.
2007.05.07 04:27:03
무명제님은 오해를 하시는군요. 제가 말한 결정론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인간구원에 대한 선택과 예정된 결정을 말하는 데요.(칼빈의 기독교강요를 꼭 제대로 읽어봐야겠군요) 인간에게 열려진 선택의 가능성과 인식은 별개의 차원이죠. 피조물과 조물주의 관계를 대등한 관계도 아니고 동일한 차원에 있지도 않다고 생각하거던요.
그렇다면 무명제님은 계시가 없이도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믿을 수 있다는 말인가요?
그렇다면 무명제님은 계시가 없이도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믿을 수 있다는 말인가요?
2007.05.15 16:52:48
<<인간의 심리 또는 사고작용에 대하여 뇌과학 또는 행동과학으로 접근하거나 정신분석학과 무의식 개념에 의한 이해를 하는 것도 크게보면 인간을 올바로 이해하기위한 한 분파라 할 수 있겠죠. >>
: 심리학에 대한 여러 유형의 분파들을 잘 말씀해주셨습니다. 다만 말씀드린 3가지 학파의 철학적 배경은 완전히 다른 것으로, 두지랑님이 말씀하시는 것 처럼 한데로 뭉뚱그려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식용유와 물은 같은 액상이지만 섞이진 않거든요... 정신분석/무의식등은 오히려 인문학에 가까운 분야입니다. 따라서 학적 특성을 고려하여 잘 구분해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피상적인 이해는 모든 입장들을 한통속으로 묶어내려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러나 인간을 육체와 정신의 이분설로 이해하는 것도 부정하고 물질로만 이해한다는 것은 온당치 못할 뿐 아니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 이것을 부정하려면 먼저 나는 플라톤주의자이다. 그리고 데카르트의 후계자이다. 라는 선언을 해야합니다. 아니, 나는 기독교적 입장에서 얘기하는데? 라고 반문이 생기신다면 플라톤 철학이 기독교의 영혼론에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지 공부하셔야 할테구요. 이원론에도 여러가지 이원론이 있습니다. 일원론처럼 보이는 이원론이 잇구요. (기능주의), 속성이원론도 있습니다. 나이브한 이원론은 두지랑님의 의견 속에 있는 어떤 신화적인 위계를 가지고 잇는 건데요, 그건 이미 이원론자들조차도 별로 달가와하지 않는 구식 담론입니다. 영미철학계에서 "mind-body problem"에 대한 숙고는 이미 완숙한, 그러나 신경과학의 새로운 발전에 따라서 여전히 진행중인 분야입니다. 먼저 이원론의 어느 입장이신지 공부를 하시고 취사선택하셔야 할겁니다.
<<인문 사회과학이라고 할 때의 과학이라는 용어는 순수과학을 말하는 게아니라 광의적 용어로 사용된 겁니다. 인간의 내면적 정신작용을 다루는 게 인문과학이라면 인간관계에 기초한 다양한 사회적 경험을 세부적으로 다루는 걸 사회과학이라고 하지요 그리고 자연현상이나 순수 과학적 분야를 자연과학이라고 분류하는 걸로 알고있습니다. 인간의 내면적 정신작용을 부정한다고하면 인문학 또는 인문과학이란 분야는 아마도 사라져야 할 것 같은데요.논리적으로 그렇지 않나요? >>
:논리적으로 그렇지 않습니다. ^^ 먼저 오해부터 풀어야하겠는데요, 두지랑님이 앞선 글에서 적은 바는 "인문사회 경험과학"이라는 문장입니다. 인문사회경험과학이란 (실은 그런 명칭은 잘 쓰지 않습니다만) 통칭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사용하는 경험론적 방법론을 연구하는 학문을 지칭합니다. 차라리 처음부터 그냥 인문사회과학이라고 하셨으면 님께서 말씀하신 임누과학과 사회과학의 정의에 부합이 되겟지요.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지금 두지랑님이 위에서 멋들어지게 설명하신 인문/사회/자연 과학의 분류기준은 19세기 독일에서 나온 철지난 분류기준이라는 겁니다. 역시 일반인들의 피상적 이해수준이라고 해야겠죠? 현재는 말씀하신 인문과학의 영역인 인간의 내면적 정신작용을 다루는 게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그리고 심지어 디자인을 비롯한 공학에서도 연구되고 있구요, 인간관게에 기초한 다양한 사회경험이라고 분류하신 사회과학에도 지질학, 기후학, 물리학등이 광범위하게 참여하고 잇습니다. 그러니 두지랑님의 학문분류 체계는 21세기 용으로 좀 업그레이드 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내면적 정신작용을 예지능력이나 무슨 신비현상을 받아들이는 능력에 국한시켜서 얘기하시는 것 같은데, 인간의 내면적 정신작용을 부정하는 것은 철학적으로 제거주의에 입각하여 행동주의 심리학을 일으킨 왓슨의 심리학 (1950)의 얘깁니다. 그에 대한 반동으로 인간의 내면작용을 연구할 수 잇다는 쪽이 후에 일어난 인지과학 운동이구요. 역시 비전공자가 알기엔 조금 디테일한 부분이죠? 다시 한 번 정리해서 말씀드린다면 첫째 인간의 내면적 정신작용은 인문사회과학에서만 연구하는 것이 아니며, 둘째 자연과학이 인간의 내면적 정신작용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란 말씀입니다. 그러니 논리적으로 그렇지않겠죠? ^^
<<인간에 대한 이해는 모든학문과 지식의 기초적 전제가 됩니다.
인간의 정신 또는 인지능력에 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초월적 존재자(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인간의 인식 능력여부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을 하나님의 계시로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한가요? 아니 인간의 행태에 대한 예정론적(결정론적)이해가 가능한 것일까요? 이것은 인간이 미래예언적 계시를 인지할 수있을 때에만 가능할 것입니다.>>
: "인간의 정신 또는 인지능력에 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초월적 존재자(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인간의 인식 능력여부에 달려있는 것"이라는 말씀은 두지랑님의 인식사고 작용에 대한 개인 관점에 대한 선언이시구요. 예정론과 도대체 어떻게 인지가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인지 저는 이해가 안갑니다.
<<영적체험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 체험이라면 사물이나 사람에 대한 직관적 이해 또는 미래투시적 포착력이나 초월적 능력 등 여러가지 체험을 말하는 것이나 이것이 일시적이고 우연적 경험이라면 인간의 손에 잡히지않는 것입니다. 지나온 경험상 분명히 있기는 있는 것 같으나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을 과학적으로 규명해내고자 하는 것이죠.>>
: 제가 전술한 소위 영적체험이라는 종교현상은 일시적이거나 우연적인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유전적 결과까지 언급해서 필연적인 결과라는 말슴을 드린 것으로 아는데요.
<<외부환경과 자극에 대한 반응을 일으켜 행동하는 인간의 이성적 사고작용과 인지능력은 어디서부터 온 것일까요?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대답하면 간단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을 알고 믿고 성경적 가치관과 기준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생각하고 행동하는 일련의 인간의 행태는 이미 알고 있는 전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면 발전이나 진전이 없습니다. 스스로를 가두는 카테고리나 제한을 풀고 외계로 벗어날 때에야 스스로의 실체를 볼 수가 있겠지요. 그러나 자신의 실체를 벗어난 이상 그 이전의 자신으로는 되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시간도 되돌릴 수 있다고 말하고싶습니까? 이유가 없는데 그럴 이유가 없는데 시간이 왜 거꾸로 되돌아가겠습니까?>>
: "외부환경과 자극에 대한 반응을 일으켜 행동하는 인간의 이성적 사고작용과 인지능력은 어디서부터 온 것일까요?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대답하면 간단합니다" 두지랑님의 이 말씀은 저희같은 연구자들 밥그릇을 깨뜨리는 발언이군요...ㅎㅎㅎ 별로 대답할 가치를 못느낍니다만, 아주 만병통치약적인 해답을 가지고 계셔서 내심 그 용기가 부럽기도 합니다. 그런데 시중에 만병통치약이라고 선전하는 것들은 99% 사기라죠? 속는 사람들은 나중에 이해시키고 복용을 금하게 하면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념을 가지고 꾸준히 복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종의 자기최면이자 믿음이죠. 그런 분들께는 아무리 그약의 생화학적 작용을 설명해주어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따라서 밑에 시간에 대한 얘기라던가 말씀하신 이러저러한 내용은 제가 하지도 않은 말이므로 역시 대답할 이유를 못느끼겠습니다.
<<신학은 '어떻게'를 묻는 것이 아니라 '왜'를 묻는다고 합니다.
저는 성경말씀을 신적 계시로 보는 입장입니다. 인간의 자기초월적 인식이 가능하다고 믿는거죠.>>
: 신학을 비롯한 형이상학의 본질적 질문, 고등학교 철학교과서에 나오는 수준의 이야기 매우 잘 들었습니다. 새록새록합니다...ㅎㅎㅎ 그런데 거기에 두지랑님의 성경해석 취향을 왜 덧붙이는지 논리적으로 연관이 약해보이네요. 외람되지만 토론을 하실 때 배경지식은 고사하고라도 (이건 서로 알아가면 되니까) 상대방이 무엇을 주장하고 하지않았는지 지극히 간단한 사실확인만이라도 단계를 거친 후에 답글을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 심리학에 대한 여러 유형의 분파들을 잘 말씀해주셨습니다. 다만 말씀드린 3가지 학파의 철학적 배경은 완전히 다른 것으로, 두지랑님이 말씀하시는 것 처럼 한데로 뭉뚱그려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식용유와 물은 같은 액상이지만 섞이진 않거든요... 정신분석/무의식등은 오히려 인문학에 가까운 분야입니다. 따라서 학적 특성을 고려하여 잘 구분해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피상적인 이해는 모든 입장들을 한통속으로 묶어내려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러나 인간을 육체와 정신의 이분설로 이해하는 것도 부정하고 물질로만 이해한다는 것은 온당치 못할 뿐 아니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 이것을 부정하려면 먼저 나는 플라톤주의자이다. 그리고 데카르트의 후계자이다. 라는 선언을 해야합니다. 아니, 나는 기독교적 입장에서 얘기하는데? 라고 반문이 생기신다면 플라톤 철학이 기독교의 영혼론에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지 공부하셔야 할테구요. 이원론에도 여러가지 이원론이 있습니다. 일원론처럼 보이는 이원론이 잇구요. (기능주의), 속성이원론도 있습니다. 나이브한 이원론은 두지랑님의 의견 속에 있는 어떤 신화적인 위계를 가지고 잇는 건데요, 그건 이미 이원론자들조차도 별로 달가와하지 않는 구식 담론입니다. 영미철학계에서 "mind-body problem"에 대한 숙고는 이미 완숙한, 그러나 신경과학의 새로운 발전에 따라서 여전히 진행중인 분야입니다. 먼저 이원론의 어느 입장이신지 공부를 하시고 취사선택하셔야 할겁니다.
<<인문 사회과학이라고 할 때의 과학이라는 용어는 순수과학을 말하는 게아니라 광의적 용어로 사용된 겁니다. 인간의 내면적 정신작용을 다루는 게 인문과학이라면 인간관계에 기초한 다양한 사회적 경험을 세부적으로 다루는 걸 사회과학이라고 하지요 그리고 자연현상이나 순수 과학적 분야를 자연과학이라고 분류하는 걸로 알고있습니다. 인간의 내면적 정신작용을 부정한다고하면 인문학 또는 인문과학이란 분야는 아마도 사라져야 할 것 같은데요.논리적으로 그렇지 않나요? >>
:논리적으로 그렇지 않습니다. ^^ 먼저 오해부터 풀어야하겠는데요, 두지랑님이 앞선 글에서 적은 바는 "인문사회 경험과학"이라는 문장입니다. 인문사회경험과학이란 (실은 그런 명칭은 잘 쓰지 않습니다만) 통칭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사용하는 경험론적 방법론을 연구하는 학문을 지칭합니다. 차라리 처음부터 그냥 인문사회과학이라고 하셨으면 님께서 말씀하신 임누과학과 사회과학의 정의에 부합이 되겟지요.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지금 두지랑님이 위에서 멋들어지게 설명하신 인문/사회/자연 과학의 분류기준은 19세기 독일에서 나온 철지난 분류기준이라는 겁니다. 역시 일반인들의 피상적 이해수준이라고 해야겠죠? 현재는 말씀하신 인문과학의 영역인 인간의 내면적 정신작용을 다루는 게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그리고 심지어 디자인을 비롯한 공학에서도 연구되고 있구요, 인간관게에 기초한 다양한 사회경험이라고 분류하신 사회과학에도 지질학, 기후학, 물리학등이 광범위하게 참여하고 잇습니다. 그러니 두지랑님의 학문분류 체계는 21세기 용으로 좀 업그레이드 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내면적 정신작용을 예지능력이나 무슨 신비현상을 받아들이는 능력에 국한시켜서 얘기하시는 것 같은데, 인간의 내면적 정신작용을 부정하는 것은 철학적으로 제거주의에 입각하여 행동주의 심리학을 일으킨 왓슨의 심리학 (1950)의 얘깁니다. 그에 대한 반동으로 인간의 내면작용을 연구할 수 잇다는 쪽이 후에 일어난 인지과학 운동이구요. 역시 비전공자가 알기엔 조금 디테일한 부분이죠? 다시 한 번 정리해서 말씀드린다면 첫째 인간의 내면적 정신작용은 인문사회과학에서만 연구하는 것이 아니며, 둘째 자연과학이 인간의 내면적 정신작용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란 말씀입니다. 그러니 논리적으로 그렇지않겠죠? ^^
<<인간에 대한 이해는 모든학문과 지식의 기초적 전제가 됩니다.
인간의 정신 또는 인지능력에 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초월적 존재자(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인간의 인식 능력여부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을 하나님의 계시로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한가요? 아니 인간의 행태에 대한 예정론적(결정론적)이해가 가능한 것일까요? 이것은 인간이 미래예언적 계시를 인지할 수있을 때에만 가능할 것입니다.>>
: "인간의 정신 또는 인지능력에 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초월적 존재자(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인간의 인식 능력여부에 달려있는 것"이라는 말씀은 두지랑님의 인식사고 작용에 대한 개인 관점에 대한 선언이시구요. 예정론과 도대체 어떻게 인지가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인지 저는 이해가 안갑니다.
<<영적체험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 체험이라면 사물이나 사람에 대한 직관적 이해 또는 미래투시적 포착력이나 초월적 능력 등 여러가지 체험을 말하는 것이나 이것이 일시적이고 우연적 경험이라면 인간의 손에 잡히지않는 것입니다. 지나온 경험상 분명히 있기는 있는 것 같으나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을 과학적으로 규명해내고자 하는 것이죠.>>
: 제가 전술한 소위 영적체험이라는 종교현상은 일시적이거나 우연적인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유전적 결과까지 언급해서 필연적인 결과라는 말슴을 드린 것으로 아는데요.
<<외부환경과 자극에 대한 반응을 일으켜 행동하는 인간의 이성적 사고작용과 인지능력은 어디서부터 온 것일까요?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대답하면 간단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을 알고 믿고 성경적 가치관과 기준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생각하고 행동하는 일련의 인간의 행태는 이미 알고 있는 전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면 발전이나 진전이 없습니다. 스스로를 가두는 카테고리나 제한을 풀고 외계로 벗어날 때에야 스스로의 실체를 볼 수가 있겠지요. 그러나 자신의 실체를 벗어난 이상 그 이전의 자신으로는 되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시간도 되돌릴 수 있다고 말하고싶습니까? 이유가 없는데 그럴 이유가 없는데 시간이 왜 거꾸로 되돌아가겠습니까?>>
: "외부환경과 자극에 대한 반응을 일으켜 행동하는 인간의 이성적 사고작용과 인지능력은 어디서부터 온 것일까요?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대답하면 간단합니다" 두지랑님의 이 말씀은 저희같은 연구자들 밥그릇을 깨뜨리는 발언이군요...ㅎㅎㅎ 별로 대답할 가치를 못느낍니다만, 아주 만병통치약적인 해답을 가지고 계셔서 내심 그 용기가 부럽기도 합니다. 그런데 시중에 만병통치약이라고 선전하는 것들은 99% 사기라죠? 속는 사람들은 나중에 이해시키고 복용을 금하게 하면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념을 가지고 꾸준히 복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종의 자기최면이자 믿음이죠. 그런 분들께는 아무리 그약의 생화학적 작용을 설명해주어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따라서 밑에 시간에 대한 얘기라던가 말씀하신 이러저러한 내용은 제가 하지도 않은 말이므로 역시 대답할 이유를 못느끼겠습니다.
<<신학은 '어떻게'를 묻는 것이 아니라 '왜'를 묻는다고 합니다.
저는 성경말씀을 신적 계시로 보는 입장입니다. 인간의 자기초월적 인식이 가능하다고 믿는거죠.>>
: 신학을 비롯한 형이상학의 본질적 질문, 고등학교 철학교과서에 나오는 수준의 이야기 매우 잘 들었습니다. 새록새록합니다...ㅎㅎㅎ 그런데 거기에 두지랑님의 성경해석 취향을 왜 덧붙이는지 논리적으로 연관이 약해보이네요. 외람되지만 토론을 하실 때 배경지식은 고사하고라도 (이건 서로 알아가면 되니까) 상대방이 무엇을 주장하고 하지않았는지 지극히 간단한 사실확인만이라도 단계를 거친 후에 답글을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인간이 미래예언적 계시를 인지할 수있을 때에만 가능한 것입니다."
- 위의 논의의 맥락에서 이같은 결론이 도출될 수 있는 게 어리둥절할 뿐임.
"인간의 자기초월적 인식이 가능하다고 믿는 입장입니다."
- 개혁주의(칼뱅주의) 신학에 정면으로 위배되지 않나요?
허허...
암튼, 제 관심과는 전혀 밖의 얘기긴 합니다만.
위의 귀한 글 올려주신 두지랑님, 혹은 다른 분께서, 제게 이의를 제기하시더라도,
제가 대답하고 싶으면 하고, 안 내키면 안 하겠습니다.
대답이 궁색하고 밑천이 딸려도 안 할 거고, 뭐,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