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 <열린 토론실>입니다. 다비안들의 부담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사랑채>와는 달리, 보다 진지하고 깊이있는 이야기나 주제를 나누고 싶은 분들을 위한 게시판입니다. 가급적 예의를 갖추시고 열린 마음으로 대화에 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울러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토론과 대화는 다비안을 비롯한 여러 네티즌들의 온라인 상에서의 자유로운 것이기에 그 방향과 정체성이 반드시 다비아와 일치하지는 않음을 밝혀둡니다.
글 수 256
하나님 당신은 우릴 위해 예수를 보내주셨습니다.
제가 그것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여, 맘껏 당신을 원망하고 미워하고 죄송해하고 사랑했습니다.
내 몸을 포함해서 하늘과 땅에 가득한 모든 만물이 당신을 드러내고,
성서와 교우들과 신앙의 어른들과 2000년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들은
그 자체로 이 얼마나 든든하고 감사한 증인들이었는지요!
타종교가 아무리 기독교보다 나아 보여도,
무신론이 아무리 종교의 위선과 유해성을 역설해도,
그것은 기독교인인 우리가 못났음에 대한 증거는 될지언정,
당신을 향한 내 마음에, 끝내 걸림돌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저는 지금 길을 잃었습니다.
당신을 개입시키지 않아도 기독교 2000년은 설명이 가능했습니다.
아니, 예수가 신화일 때, 성서는 제대로 설명되어질 수 있었습니다.
그랬습니다. <예수퍼즐>을 읽고, 제 신앙은 발 디딜 곳을 잃었습니다.
이제 저는 누구에게 기도합니까?
당신이 아니 계셔도, 하나님나라 운동은 가능하고 가치 있습니다.
당신이 아니 계셔도, 묵시문학적인 종말론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하늘과 땅을 잇는 중개자를 상정할 수는 있겠지요.
그렇지만, 나사렛의 예수, 당신께서 서실 자리가 없네요.
<예수퍼즐> 이전으로 돌아가지는 못합니다.
그리고 지금 저의 운영체제는 마비되었습니다.
2008.01.17 09:07:04
‘이 글 분명히 짤릴 것이다’라는 예감을 떨칠 수 없습니다.
그걸 바라는지도(?) 모르겠네요. ㅋㅋ
저는 예수신화론을 처음 접해봅니다.
크로산의 <역사적 예수>를 읽으면서는,
그 치밀한 연구 자세에 놀라면서,
저의 기독신앙에 도움이 될 거라는 느낌이 들었는데요,
이 책의 경우에는, 제 신앙이 뿌리째 흔들리는 느낌이예요.
목회서신과 복음서의 관심이 다르다는 사실조차 제겐 생소한데,
이 책에선 당대의 철학, 종교적인 풍토 속에서,
당시의 운동을 담아낼 창작물로서의 예수를 논증하고 있고,
이렇게 과격한 주장이면서도, 억지스러운 구석이 안 보이네요.
역사적 예수에 대한 성서의 침묵은 크게 다가오구요.
아무튼, 당장 다음번 기도 순서부터는,
대표기도는 차마 못할 것 같습니다.
그걸 바라는지도(?) 모르겠네요. ㅋㅋ
저는 예수신화론을 처음 접해봅니다.
크로산의 <역사적 예수>를 읽으면서는,
그 치밀한 연구 자세에 놀라면서,
저의 기독신앙에 도움이 될 거라는 느낌이 들었는데요,
이 책의 경우에는, 제 신앙이 뿌리째 흔들리는 느낌이예요.
목회서신과 복음서의 관심이 다르다는 사실조차 제겐 생소한데,
이 책에선 당대의 철학, 종교적인 풍토 속에서,
당시의 운동을 담아낼 창작물로서의 예수를 논증하고 있고,
이렇게 과격한 주장이면서도, 억지스러운 구석이 안 보이네요.
역사적 예수에 대한 성서의 침묵은 크게 다가오구요.
아무튼, 당장 다음번 기도 순서부터는,
대표기도는 차마 못할 것 같습니다.
2008.01.17 11:21:05

늘오늘 님,
요즘 글쓰기가 뜸하다 싶었는데,
운영체계가 허물어졌군요.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 같은데,
그것 백신으로 쉽게 치료가 되니
너무 걱정마시구료.
지금 늘오늘 님의 문제는
지난날 수많은 사람들이 거쳤던 과정이오.
예수 자체가 그런 과정 안에 들어간 적도 있소이다.
심한 독감에 걸리면 나돌아다니지 말고
따뜻한 아랫묵에서 편히 쉬는 게 최고인 것처럼
영적인 휴식을 취해보시구려.
크로산 같은 분들이 쓴 책은,
소위 예수 세미나 유의 책은
크게 영양가가 없어요.
왜 그런지 알아요?
그들이 틀린 말을 한다는 게 아니오.
그들의 작업은 신학이 아니라 사회과학이기 때문이라오.
비교해서 말한다면
칼 마르크스가 종교(기독교)를 아편이라고 했는데,
그 말은 사회과학적으로,
사회 현상적으로 틀리지 않았지만
신학은 아닌 거와 같소.
위에서 늘오늘은 예수가 없어도
하늘나라 운동이 가능하고,
예수가 신화라 해도 성서의 해명이 가능하다고 했오.
그건 잘못된 생각이오.
예수가 없이는 기독교는 근본이 허물어지는 거요.
기독교는 예수 없이는 아무 것도 아니오.
예수 없이도 기독교 신앙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면
거기에는 무언가 혼선이 있었던 게 분명하오.
그게 무언지는 한 두 마디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말이오.
예수 없이도 신앙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분이
<예수퍼즐>로 무엇이 불안하다는 말이오?
복음서의 예수와 (목회?) 서신의 관심이 다르다는 말이
뭐 그리 큰 문제이겠소?
예수가 창작물이라는 말 때문이오?
<예수퍼즐> 저자가 어떤 근거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으나
그 안에도 수많은 허점이 들어있을 거요.
그게 무엇인지는 내가 책을 직접 읽어보지 않았기에
여기서 길게 말할 수는 없겠소.
그 책의 내용이 상당히 근거가 있다 해도
큰 문제가 없소이다.
이는 흡사 진화론이 옳다고 해도
창조론이 훼손되지 않는 거와 같소.
내가 위에서 예수 세미나의 책들이 신학이 아니라고 했는데,
그 이유는 그 내용이 신학적 해석학에서 출발한 게 아니라
사회과학에서 출발했다는 데에 있소.
신학은 신구약성서와 2천년 기독교 문서를 해석하는 데에
모든 운며을 걸어두고 있오.
그런 신학 운동이 바로 바울과 어거스틴, 아퀴나스, 루터, 칼빈,
바르트, 몰트만, 판넨베르크 등으로 이어지는
주류 신학이오.
일단 이들의 생각이 무엇인지.
이들이 예수와 세계와 하나님을 어떻게 설명하는지
공부하는 게 우선 필요하오.
예수 세미나가 말하는 것은 아주 주변적인 것이오.
이미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좋은 뜻으로)이 거론한 작은 문제를
침소봉대하는 것에 불과하오.
이런 점에서 나는 예수 세미나 유의 책과 인사들에게서
신학을 선동적으로 꾸려가는 것 같은 인상을 받고 있소.
지금 내가 하는 말은 단지 느낌으로 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책에서 받은 신학적 평가요.
<예수퍼즐>도 그런 지평에 속한 책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렇지 않다면 구체적인 내용을 좀 다비아에 알리시구료.
극단적인 보수에 속한 사람들이 전문적인 신학적 바탕이 없는 평신도들의 영혼을 상하게 하듯이
극단적인 진보에 속한 사람들도 역시 평신도들의 영혼을 상하게 하는 것은 분명한 것 같소.
말이 길었소.
다음번 기도 순서에 대표 기도,
편안한 마음으로 하시구료.
자신이 아직 하나님의 깊은 뜻을 모른다는 전제 하에
믿음 없음도 용서를 구하면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놓치지 마시구료.
좋은 하루,
안전 운전!
요즘 글쓰기가 뜸하다 싶었는데,
운영체계가 허물어졌군요.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 같은데,
그것 백신으로 쉽게 치료가 되니
너무 걱정마시구료.
지금 늘오늘 님의 문제는
지난날 수많은 사람들이 거쳤던 과정이오.
예수 자체가 그런 과정 안에 들어간 적도 있소이다.
심한 독감에 걸리면 나돌아다니지 말고
따뜻한 아랫묵에서 편히 쉬는 게 최고인 것처럼
영적인 휴식을 취해보시구려.
크로산 같은 분들이 쓴 책은,
소위 예수 세미나 유의 책은
크게 영양가가 없어요.
왜 그런지 알아요?
그들이 틀린 말을 한다는 게 아니오.
그들의 작업은 신학이 아니라 사회과학이기 때문이라오.
비교해서 말한다면
칼 마르크스가 종교(기독교)를 아편이라고 했는데,
그 말은 사회과학적으로,
사회 현상적으로 틀리지 않았지만
신학은 아닌 거와 같소.
위에서 늘오늘은 예수가 없어도
하늘나라 운동이 가능하고,
예수가 신화라 해도 성서의 해명이 가능하다고 했오.
그건 잘못된 생각이오.
예수가 없이는 기독교는 근본이 허물어지는 거요.
기독교는 예수 없이는 아무 것도 아니오.
예수 없이도 기독교 신앙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면
거기에는 무언가 혼선이 있었던 게 분명하오.
그게 무언지는 한 두 마디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말이오.
예수 없이도 신앙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분이
<예수퍼즐>로 무엇이 불안하다는 말이오?
복음서의 예수와 (목회?) 서신의 관심이 다르다는 말이
뭐 그리 큰 문제이겠소?
예수가 창작물이라는 말 때문이오?
<예수퍼즐> 저자가 어떤 근거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으나
그 안에도 수많은 허점이 들어있을 거요.
그게 무엇인지는 내가 책을 직접 읽어보지 않았기에
여기서 길게 말할 수는 없겠소.
그 책의 내용이 상당히 근거가 있다 해도
큰 문제가 없소이다.
이는 흡사 진화론이 옳다고 해도
창조론이 훼손되지 않는 거와 같소.
내가 위에서 예수 세미나의 책들이 신학이 아니라고 했는데,
그 이유는 그 내용이 신학적 해석학에서 출발한 게 아니라
사회과학에서 출발했다는 데에 있소.
신학은 신구약성서와 2천년 기독교 문서를 해석하는 데에
모든 운며을 걸어두고 있오.
그런 신학 운동이 바로 바울과 어거스틴, 아퀴나스, 루터, 칼빈,
바르트, 몰트만, 판넨베르크 등으로 이어지는
주류 신학이오.
일단 이들의 생각이 무엇인지.
이들이 예수와 세계와 하나님을 어떻게 설명하는지
공부하는 게 우선 필요하오.
예수 세미나가 말하는 것은 아주 주변적인 것이오.
이미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좋은 뜻으로)이 거론한 작은 문제를
침소봉대하는 것에 불과하오.
이런 점에서 나는 예수 세미나 유의 책과 인사들에게서
신학을 선동적으로 꾸려가는 것 같은 인상을 받고 있소.
지금 내가 하는 말은 단지 느낌으로 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책에서 받은 신학적 평가요.
<예수퍼즐>도 그런 지평에 속한 책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렇지 않다면 구체적인 내용을 좀 다비아에 알리시구료.
극단적인 보수에 속한 사람들이 전문적인 신학적 바탕이 없는 평신도들의 영혼을 상하게 하듯이
극단적인 진보에 속한 사람들도 역시 평신도들의 영혼을 상하게 하는 것은 분명한 것 같소.
말이 길었소.
다음번 기도 순서에 대표 기도,
편안한 마음으로 하시구료.
자신이 아직 하나님의 깊은 뜻을 모른다는 전제 하에
믿음 없음도 용서를 구하면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놓치지 마시구료.
좋은 하루,
안전 운전!
2008.01.17 11:30:52
신약의 서신서들에 예수님의 생애나 가르침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는 것이
저에게도 의문이기는 합니다.
이것을 근거로 도허티는 서신서의 저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적인 존재로만 인식하고 있고,
실제로 존재한 인간으로는 생각지 않았다고 주장하는데요...
(Paul and other early writers speak of the divine Son of their faith entirely in terms of a spiritual, heavenly figure; they never identify this entity called "Christ Jesus" as a man who had lived and died in recent history. From: http://www.jesuspuzzle.com/ )
이건 좀 너무 나아간 것 같습니다. 아래 서신서의 구절들을 보면, 분명히 바울도 예수님을
사람(인간)으로 언급하고 있고, 다뒷의 자손이라고 까지 하며, 유대인 중의 하나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고전 2:8)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고후 5:16)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롬 5:15)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 5:19)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고전 15:21)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후 5:14)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롬 1:3)
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롬 9:5)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딤전 3;16)
인터넷의 성경검색 기능이 이런데 아주 유용하군요. 물론 이중에는 은유적인 표현이라고
우길 수 있는 구절이 1-2 구절 있기는 하지만, 데세는 분명 인간 예수를 지칭하고 있습니다.
검색이 아니라 서신서를 꼼꼼히 읽으면서 찾는다면 아마 훨씬 더 많은 반박 구절을
찾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저에게도 의문이기는 합니다.
이것을 근거로 도허티는 서신서의 저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적인 존재로만 인식하고 있고,
실제로 존재한 인간으로는 생각지 않았다고 주장하는데요...
(Paul and other early writers speak of the divine Son of their faith entirely in terms of a spiritual, heavenly figure; they never identify this entity called "Christ Jesus" as a man who had lived and died in recent history. From: http://www.jesuspuzzle.com/ )
이건 좀 너무 나아간 것 같습니다. 아래 서신서의 구절들을 보면, 분명히 바울도 예수님을
사람(인간)으로 언급하고 있고, 다뒷의 자손이라고 까지 하며, 유대인 중의 하나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고전 2:8)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고후 5:16)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롬 5:15)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 5:19)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고전 15:21)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후 5:14)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롬 1:3)
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롬 9:5)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딤전 3;16)
인터넷의 성경검색 기능이 이런데 아주 유용하군요. 물론 이중에는 은유적인 표현이라고
우길 수 있는 구절이 1-2 구절 있기는 하지만, 데세는 분명 인간 예수를 지칭하고 있습니다.
검색이 아니라 서신서를 꼼꼼히 읽으면서 찾는다면 아마 훨씬 더 많은 반박 구절을
찾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2008.01.17 12:02:55
다행히 목사님께서 면역증강제를 투여하셨으니 이제 서서히 효과가 나타날 것을 믿습니다.
늘오늘님,
나는 재미있게 읽은 책들이었는데 막상 혼란스러워하는 님을 대하니
내가 너무 둔감한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계속 힘들고 개운치 않으면, 목사님 말씀대로 다비아에 한 번 소개해 주세요.
최선을 다해서 소위 "반박"하는 역을 담당해 볼 의향도 있으니까요.
(뭐, 저같은 초보가 나서다 괜히 잘못될까봐 우리 다비안들이 그냥 놔두지도 않을테지만, ㅋㅋ)
그런데, 저는 그러한 책들을 기독교에 입문하기 전, 그리고 평생에 처음으로 성경 공부라는 것을
하는 동안에 제법 많이 읽었거든요? 공부 이끄는 목사님과 말싸움 할 때 밑천이 좀 필요하기도 했구요.
그리고나서 믿음을 고백하기에 이르렀는데, 참말로 브리즈는 별종인가봐요.
늘오늘님,
나는 재미있게 읽은 책들이었는데 막상 혼란스러워하는 님을 대하니
내가 너무 둔감한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계속 힘들고 개운치 않으면, 목사님 말씀대로 다비아에 한 번 소개해 주세요.
최선을 다해서 소위 "반박"하는 역을 담당해 볼 의향도 있으니까요.
(뭐, 저같은 초보가 나서다 괜히 잘못될까봐 우리 다비안들이 그냥 놔두지도 않을테지만, ㅋㅋ)
그런데, 저는 그러한 책들을 기독교에 입문하기 전, 그리고 평생에 처음으로 성경 공부라는 것을
하는 동안에 제법 많이 읽었거든요? 공부 이끄는 목사님과 말싸움 할 때 밑천이 좀 필요하기도 했구요.
그리고나서 믿음을 고백하기에 이르렀는데, 참말로 브리즈는 별종인가봐요.
2008.01.17 14:05:55
이 문제는 결혼 얘기의 경우와 닮은 딜레마가 있어요.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
특히, 저의 부모님과 동생들을, 부정하게 된다는 딜레마.
다시 말하면, 절때루 내가 이겨서는 안 되는 싸움(? ^^;)이라는,, 끌~
감사합니다. ^^
승복이 되든, 반격이 되든,
우선, 저의 헷갈림을 조용히 지켜보겠습니다.
ㅋㅋ^^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
특히, 저의 부모님과 동생들을, 부정하게 된다는 딜레마.
다시 말하면, 절때루 내가 이겨서는 안 되는 싸움(? ^^;)이라는,, 끌~
감사합니다. ^^
승복이 되든, 반격이 되든,
우선, 저의 헷갈림을 조용히 지켜보겠습니다.
ㅋㅋ^^
2008.01.17 15:06:39
우째 이런 일이....
예수퍼즐이 어떤 책인지
한 번 읽어보고 싶어 지는군요.
늘오늘님이 다비안을 위해서
책내용도 좋고, 읽은 소감도 좋고
위의 글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적어보시면 어떨까요?
좀 궁금하긴 하지만
위의 글만 보고는 굳이 돈을 들여가며 구입해 보고 싶지 않군요.
예수퍼즐이 어떤 책인지
한 번 읽어보고 싶어 지는군요.
늘오늘님이 다비안을 위해서
책내용도 좋고, 읽은 소감도 좋고
위의 글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적어보시면 어떨까요?
좀 궁금하긴 하지만
위의 글만 보고는 굳이 돈을 들여가며 구입해 보고 싶지 않군요.
2008.01.17 17:03:06

위에서 언급된 예수퍼즐 사이트에서 내용을 단계별로 간단히 소개하는게 있네요.
Quick Assembly : Putting the Jesus puzzle together in 12 easy pieces.
target=_blank>http://pages.ca.inter.net/~oblio/puzzle1.htm
최근 Davinci Code, New Testament Code, Jesus Puzzle 등 음모론 류가 판을 치는군요.
코딩 이론에서 디코딩 시 인코딩 규칙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엉뚱한 결과가나오게 되는데
좀 특이한 디코더를 만들어놓고 결과가 이상하다고 떠벌리는 것 같이 보이네요...
Quick Assembly : Putting the Jesus puzzle together in 12 easy pieces.
target=_blank>http://pages.ca.inter.net/~oblio/puzzle1.htm
최근 Davinci Code, New Testament Code, Jesus Puzzle 등 음모론 류가 판을 치는군요.
코딩 이론에서 디코딩 시 인코딩 규칙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엉뚱한 결과가나오게 되는데
좀 특이한 디코더를 만들어놓고 결과가 이상하다고 떠벌리는 것 같이 보이네요...
2008.01.17 19:53:27

요한1서 4:2~3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요한2서 1:7~8
미혹하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런 자가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너희는 스스로 삼가 우리가 일한 것을 잃지 말고 오직 온전한 상을 받으라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요한2서 1:7~8
미혹하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런 자가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너희는 스스로 삼가 우리가 일한 것을 잃지 말고 오직 온전한 상을 받으라
2008.01.17 20:58:59
자유의꿈님, Jesus Puzzle에서는 복음서의 저자(요한 포함)들은 실재하지 않는 예수를
신화화한 장본인들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요한의 증거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신화화한 장본인들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요한의 증거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2008.01.17 21:18:10

저도 짐작하고 있었는데요... 그래서 올린 것이라기보다는 요한의 말씀이 생각나서 올렸어요.
요한 서신을 쓴 당시에도 벌써 그런 논쟁이 있었다는 거.. 새삼스럽지 않다는 거죠...
요한 서신을 쓴 당시에도 벌써 그런 논쟁이 있었다는 거.. 새삼스럽지 않다는 거죠...
2008.01.18 08:24:26
요한1서 4:2~3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알아보는 것이,
영의 문제로 귀결되고 있습니다.
예수의 육체성을 말하지만, 실질은, 영의 세계에 대한 언급이지,
인간 예수에 대한 기억을 담아내는 말이 아닙니다.
요한2서 1:7~8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이
부인해서는 안 되는 교리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 예수에 대한 추억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위의 인용은,
‘예수가 존재했느냐?’라는 황당한 질문,
그에 대한 대답은 될 수 없죠. ㅋㅋ^^
그나저나, 이거 머, 늘오늘이 왜 이런 반박을,, ? ??
이러다가 나 진짜 예수신화론자가 되면 어떻하지? ㅋㅋ^^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알아보는 것이,
영의 문제로 귀결되고 있습니다.
예수의 육체성을 말하지만, 실질은, 영의 세계에 대한 언급이지,
인간 예수에 대한 기억을 담아내는 말이 아닙니다.
요한2서 1:7~8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이
부인해서는 안 되는 교리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 예수에 대한 추억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위의 인용은,
‘예수가 존재했느냐?’라는 황당한 질문,
그에 대한 대답은 될 수 없죠. ㅋㅋ^^
그나저나, 이거 머, 늘오늘이 왜 이런 반박을,, ? ??
이러다가 나 진짜 예수신화론자가 되면 어떻하지? ㅋㅋ^^
2008.01.19 02:26:58
요한 1서는 시작부터 예수그리스도의 인성을 강조하지요. 그것은 '부인해서는 안 되는 교리'를
말할 뿐 예수의 존재하고는 관계없다는 것이 도허티의 주장입니다.
바울 서신서에서 엿보이는 예수의 '실제성'을 언급한 모든 구절들도 마찬가지로
해석합니다. 자신이 주장하는 "천상의 낮은 곳"에서 벌어진 사건들로 생각하고 읽어 나가는 것입니다.
즉, 서신서를 읽고서 예수의 인간적인 면에 대해서 '침묵'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기보다
오랫동안 제기되어왔던 '침묵'에 관한 주장이 옳다고 생각하고서 서신서를 읽어가는 것이죠.
그런 식이면 절대 '들리지 않습니다'.
요한1서의 경우, 예수의 육체성을 교리적으로 강조하기위해서 쓰여졌다고 주장하는데
그 교리적 강조가 육체성이 사실이기 때문에 강조하는 것인지, 아닌 것을 교리로 만들어서 강조하는
것인지를 어떻게 판단하느냐입니다. 도허티는 '침묵'에 동의하기때문에 없는 사실을 교리로서
강조한다고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겠지요.
느슨하지만 일종의 '순환 논리 (cricular reasoning)'가 작동되고 있는 것입니다.
길게 이야기 할 순 없으나 바울 서신서의 내용들도 같은 맥락에서 읽고 해석하는겁니다.
결론이 빤할 수 밖에 없어요.
구체적으로 늘오늘님이 가장 인상 깊었던 한 두가지 대목을 들어주면 어떨까요?
그걸 놓고 여러사람들이 이야기 해보는게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으나, 그런 분들은 무관심하면 되는 것이고)
그렇다고 딱히 부담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ㅋㅋ
말할 뿐 예수의 존재하고는 관계없다는 것이 도허티의 주장입니다.
바울 서신서에서 엿보이는 예수의 '실제성'을 언급한 모든 구절들도 마찬가지로
해석합니다. 자신이 주장하는 "천상의 낮은 곳"에서 벌어진 사건들로 생각하고 읽어 나가는 것입니다.
즉, 서신서를 읽고서 예수의 인간적인 면에 대해서 '침묵'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기보다
오랫동안 제기되어왔던 '침묵'에 관한 주장이 옳다고 생각하고서 서신서를 읽어가는 것이죠.
그런 식이면 절대 '들리지 않습니다'.
요한1서의 경우, 예수의 육체성을 교리적으로 강조하기위해서 쓰여졌다고 주장하는데
그 교리적 강조가 육체성이 사실이기 때문에 강조하는 것인지, 아닌 것을 교리로 만들어서 강조하는
것인지를 어떻게 판단하느냐입니다. 도허티는 '침묵'에 동의하기때문에 없는 사실을 교리로서
강조한다고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겠지요.
느슨하지만 일종의 '순환 논리 (cricular reasoning)'가 작동되고 있는 것입니다.
길게 이야기 할 순 없으나 바울 서신서의 내용들도 같은 맥락에서 읽고 해석하는겁니다.
결론이 빤할 수 밖에 없어요.
구체적으로 늘오늘님이 가장 인상 깊었던 한 두가지 대목을 들어주면 어떨까요?
그걸 놓고 여러사람들이 이야기 해보는게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으나, 그런 분들은 무관심하면 되는 것이고)
그렇다고 딱히 부담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ㅋㅋ
2008.01.19 08:13:45
‘농민반란의 시대를 살아가는 유대인 견유철학자’.
크로산이 그려낸 위와 같은 예수의 모습은,
특정인에 대한 인물 묘사라기보다는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 종교적 철학적 풍토를 보여줍니다.
예수를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표현하기 시작한 그룹들,
그들이 벌이는 예수에 대한 논쟁(서신)에서는 사실
‘예수가 존재했느냐?’라는 질문은 우문에 불과합니다.
이 질문은 전적으로, 현대인의 질문입니다.
한 사람 예수에 의해 촉발된 역사로서의 기독교라는 틀에서
역사의 과정이 빚어낸 인물로서의 예수라는 틀로의 시각전환.
그러한 인식변화를 드러내는 질문 아닌 질문이죠.
이러한 어법을 사회과학의 영역에서는 받아들일 수 있는데,
늘오늘의 신앙적 정서를 담아내는 데 있어서는
뭔지 껄쩍지근하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구요. ㅋㅋ
크로산이 그려낸 위와 같은 예수의 모습은,
특정인에 대한 인물 묘사라기보다는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 종교적 철학적 풍토를 보여줍니다.
예수를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표현하기 시작한 그룹들,
그들이 벌이는 예수에 대한 논쟁(서신)에서는 사실
‘예수가 존재했느냐?’라는 질문은 우문에 불과합니다.
이 질문은 전적으로, 현대인의 질문입니다.
한 사람 예수에 의해 촉발된 역사로서의 기독교라는 틀에서
역사의 과정이 빚어낸 인물로서의 예수라는 틀로의 시각전환.
그러한 인식변화를 드러내는 질문 아닌 질문이죠.
이러한 어법을 사회과학의 영역에서는 받아들일 수 있는데,
늘오늘의 신앙적 정서를 담아내는 데 있어서는
뭔지 껄쩍지근하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구요. ㅋㅋ
어쨋든 Jesus Puzzle이 한 건 했군요.
내가 도허티의 신화적 예수를 처음 접한게 아마 2001년일거예요.
그 뒤로 크로상, 펑크, 보거스등의 역사적 예수에 관한 연구들도 접했구요.
그냥 단순하게 "흠, 이 두 극단의 연구 결과를 잘 통합하면 다시 신약성서가 되는구나."하고
지나갔습니다.
사실 지금까지도 위의 두 부류의 주장이나 서적을 심심찮게 뒤쫓고 있습니다.
비록 아는 것은 없습니다만, 이야기 상대는 되줄 수 있을지도----.
그런데 우리 늘오늘님으로 하여금 길을 잃게 만든 그 놀랍고도 새로운 사실이나 사건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