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의 시간이 허락되어 들어 와 글을 읽어 봅니다.
분명히 기독교 공간인데도 당최 믿음 가운데로 진입하지 않고
주위에서 빙빙거리는 모습이 연상됩니다.
왜 이런가? 하고 의구심이 생깁니다.
제 나름대로 생각해 봅니다. 이 생각은 비판이나 비난이 아니고 비평도 아닙니다.
의견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잠꼬대라고 여기셔도 좋겠습니다.

제 머리가 가벼워서 그렇겠지만 모르는 단어도 많고....... 해서 어림잡아 추리 해 보건데 이성으로 합리를 추구하는 기운이 강한 것 같군요.
믿음이나 하나님 등 절대성에 초점을 두고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듣지도 못한 희안한 말이겠지만,
그렇더라도 긴장하지 마시고
마음을 풀고
편안한 마음으로
그러면서도 진지하게 경청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이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이 자리에서는 “정답”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성경은 진리를 추구하는 자들에게 필요한 책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해당 되는 정답이라는 것입니다.
즉 해명도 필요 없고 이성으로 분해할 필요도 없고 무슨 합리적인 것도 필요하지 않고
오직 믿음만을 요구한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인생의 해답이기 때문에 믿음만이 요구됩니다.
그러나 이성이란 대단한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대단히 부끄러울 정도로 초라한 것입니다.


원래 사람이란 완전한 지식 위에서 풍요를 누렸습니다.
예를 들면
갓 태어난 새끼를 보십시오. 어미의 젖을 빨아 먹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합니다.
젖을 먹어야 살 수 있다는 지식을 누가 가르쳐 주었습니까?
그 젖꼭지에서 젖이 흘러나온다는 지식도 뱃속에서 배운 후에 태어났는가요?
아무 것도 모르는 쥐새끼나 파리 한 마리도 온전한 지식 위에서 풍요를 누리는 것을 보십시오.
그러나 사람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 대단한 것인 줄 알고 의존하지만
사실은 한 가지도 모른다고 보아야합니다.
그 지식의 원동력을 거슬러 올라가면 “모름”이라고 하던데 과연 그렇습니다. (지식은 절대자만이 알고 있습니다)

사람과 창조물의 관계를 생각 해 보겠습니다.
사람은 원래 정직하게 지음 받았지만  꾀를 내어(전7:29) 하나님을 떠나 것은
창조물을 지휘할 수 있는 자리를 떠난 것입니다.
즉 완벽하고 온전한 지식으로 창조된 창조물 위에서 풍요를 누릴 수 있는 자격이 박탈된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원래 지식이 필요 없었습니다.
지식으로 만들어 주신 창조물은 완벽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지식을 보태야 하는 세상이 아니었습니다.
완전한 지식으로 만들어진 세상 속에서 누리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부도를 내자, 세상은 애를 먹이기 시작했습니다. 가지가 나무에서 떨어져 나가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말라지듯이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아담의 지혜는 (후손 아래로)세월이 흐름에 따라 잃어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대가는 지식의 결핍이었습니다. 세상을 지휘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리면 잃어버릴수록 지식의 필요는 더해 갔습니다.
저는 과학을 부정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을 몽땅 원수에게 넘겨 버렸으니 부스러기라도 주워 먹으며 살아야 하니까요.
사기꾼에게 전 재산을 다 털렸으면 그 앞에서라도 구걸해서 살아야지요?
세상 통솔력은 다 깨져 갔으나..... 꾀는 살아 있으니, 이 꾀를 사용해서라도 물질을 사용 해 먹어야 하는 것이 과학이라는 것입니다.
너무 믿음으로 들어간 말이라서 기가 막힌 말인지도 모르겠군요.
그러니까 일찌감치 말하기를 잠꼬대로 여기시라니까요.
이것이 바로 믿음과 이성(꾀)의 차이점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물이 궁궐이라면
사람의 과학은 부셔버린 궁궐 부스러기로 만드는 하꼬방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의 꼬라지가 참 기막히게 된 것입니다.

저는 지금 과학을 부정 하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는 것의 절대성에 대한 허구(虛構)를 말하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과학에 의존해서 살아야 하는 구슬픈 신세이긴 하지만
과학만능주의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새롭게 주신 성경에 대해서도 또 한번의 실수를 저질러서는 안되겠습니다.
성경은 분해하고 따질 대상이 아니라 믿어야할 뿐입니다. 정답이기 때문이죠.

성경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은 세상 보다 크신 분입니다. 세상에 갇혀 있는 분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성경이란... 최소한 세상을 창조하시는 그 솜씨 이상의 작업능력이 기록된 책입니다. 최소한의 단어를 이적이라고 합시다.
이적을 따져서는 안 됩니다. 그냥 아멘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추가로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군요.
여러분들이 좋아하시는 이 세상..... 합리적으로 타당할 것 같으면 좋을 수밖에 없는 이 세상은 허상이며 상징(象徵)이며 비유(比喩)일 뿐입니다.
실상(實像)은 성경이며 비유는 인생입니다.
실상은 상상이나 공허의 세상이 아니라
그 세계에 해당하는 공간(空間)이 있습니다.
영원히 거(居)할 공간이 있습니다.

요6장에, 영원히 살게 해 주는 떡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배부르게 먹은 이 세상의 떡은 상징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영원한 천국에서 영원히 살 것이라는 것을 한 순간도 의심한 적이 없습니다. 아니 의심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지금도 살고 있습니다.
이 십년 전에 결혼을 했는데 “나에게도 아내가 있는가?”라는 생각을 한 순간이라도 한 적이 있습니까?
십 년 전에 집을 구입 했는데 “내가 집이 있는가?”라고 의심 해 본 적이 있습니까?
한 순간도 의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의심을 한다면 완전히 맛이 간 사람이죠.
여러분들이 그러한 의심을 단 1초도 할 수 없었던  그 수준으로
저도 영생에 대한 의심을 1초도 할 수 없었고 의심이 되지도 않았습니다.(30년 간)
그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이성과 믿음의 차이입니다.
물론 이성으로 진리를 찾을 수는 있습니다. 왜요? 방가와요? 그러나 그 지식의 수준이 하나님 수준만큼이나 되면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니 아예 백기 드시고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솜씨를 마음껏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 운영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05-21 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