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 <열린 토론실>입니다. 다비안들의 부담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사랑채>와는 달리, 보다 진지하고 깊이있는 이야기나 주제를 나누고 싶은 분들을 위한 게시판입니다. 가급적 예의를 갖추시고 열린 마음으로 대화에 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울러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토론과 대화는 다비안을 비롯한 여러 네티즌들의 온라인 상에서의 자유로운 것이기에 그 방향과 정체성이 반드시 다비아와 일치하지는 않음을 밝혀둡니다.
글 수 253
저는 요새 Merlin Stone의 'When God Was a Woman'을 읽고 있습니다.
1993년에 나온 책이고 우리나라에도 '신이 여자였던 시절'이란 제목으로
번역출간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번역하신 분은 제가 좋아해 마지 않는 정영목씨라는 분인데
저는 그분이 번역하신 책을 일부러 찾아서 읽을 정도로
우리나라 번역계에서는 최고봉으로 인정하는 분이죠. 읽으실 만 할 겁니다.
('서재 결혼시키기'라는 책을 읽어보신 분은 그분이 얼마나 번역을 '제대로'
하는 분인가를 아실 수 있을 겁니다. ^^)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근동지방에 '야훼'라는 신을 믿는 종교가
생기기 전 수천년 동안 널리 퍼져있던 여신숭배신앙이, 어떻게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로 이어지는 남신숭배신앙으로 바뀌게 되었는가를
기술하고 있습니다. 신학적으로 동감하지 않더라도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꽤 흥미로울 내용이 많이 들어있습니다.
참고로 Stone은 신학자가 아니라 미술사가입니다.
그런데 오늘 책을 거의 다 읽어갈 무렵 마지막에 이런 구절이 나왔습니다.
(먼저 이 구절이 나온 배경을 설명하면, 아시다시피 미국 노예해방운동에는
남성운동가 뿐 아니라 여성운동가도 제법 있었습니다. 그들은 노예제도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런던의 국제회의에 대표를 파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남성 성직자들은 '여성이 교회에서 떠드는' 것의 부당함을 들어
런던 국제회의의 참석을 막았고, 결국 그들은 회의 석상에서는 얘기 한마디
하지 못한 채 커튼을 치고 뒤에 앉아 있었야만 했답니다. 여성운동가들은
이의 부당함에 저항하여 1848년의 여성독립선언문을 시작으로 다양한 여성운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 구절은 그런 여성운동의 핵심 활동가들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나왔습니다.)
1876년 처음으로 피임제 사용의 정당성을 주장했던 Annie Besant라는 운동가를
소개하며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Physical preventives at any time were regarded as against the will of God;
few people seemed to see any inconsistency between interfering with the course
of nature by preventing or curing disease, or building houses against the elements,
and yet refusing to interfere with the process of procreation.'
저 역시 가톨릭이다보니 낙태에 대해서는 부정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가톨릭에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낙태나 심지어는 글에서와 같이 피임에 대해서도
반대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 3억에 이르게 된 데에는
가톨릭계 이민의 유입이 늘어난 데 절대적으로 기인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구절을 읽고, 과연 현대 사회에서 피임이라는 것에 기독교가 가져야 하는
'바른' 시각이란 어떠해야 하는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가톨릭에 입문 당시 흔히 하는 교리 문답의 가장 첫번째 질문은 (요새는 어떤지
모릅니다. 저는 첫 영성체를 한지 20년이 넘으니까요. ^^)
'신은 왜 인간을 창조했는가' 입니다.
답은?
첫째, 자식을 낳아 번성하고
둘째, 하느님을 알아 모시기
위해서라고 배웁니다.
그만큼 자식을 낳아 키우고 번성하는 것은 하느님이 주신 권리이자 의무라고
배우는 거죠. 그런데 자식을 낳아 키우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키워보지는
않았지만 제 부모님을 생각하면 그럴 것 같습니다. ^^; 낳고도 키우지 못하는
사정도 생길 것이고 아예 낳을 사정도 못되는 경우도 있을 테지요.
그런 경우에도 무조건 낳으라고 성서는 가르칩니다.
그런데, 자연재해를 예방해 둑을 쌓고 질병을 두려워하며 예방주사를 맞는 일과
아이 낳을 사정이 되지 않아 피임을 하거나 낳아서 키울 사정이 되지 못해
낙태를 하는 것과 신학적으로 어떻게 다른 설명이 가능한지는 모르겠습니다.
물론 아이가 '재해'나 '질병'과 동격이 될 수는 없겠지요. 문제는 이론적 토대로
어떻게 피임이나 낙태의 금지를 합리화할 수 있느냐 하는 겁니다.
얼마전 모 대선후보가 장애인 낙태 운운해서 문제가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가톨릭의 무조건 낙태금지, 무조건 피임금지에 비해 개신교의 입장은 다른 건지,
아니면 다른 어떤 설명이 가능한지도 궁금합니다.
***** 운영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06-14 15:35)
1993년에 나온 책이고 우리나라에도 '신이 여자였던 시절'이란 제목으로
번역출간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번역하신 분은 제가 좋아해 마지 않는 정영목씨라는 분인데
저는 그분이 번역하신 책을 일부러 찾아서 읽을 정도로
우리나라 번역계에서는 최고봉으로 인정하는 분이죠. 읽으실 만 할 겁니다.
('서재 결혼시키기'라는 책을 읽어보신 분은 그분이 얼마나 번역을 '제대로'
하는 분인가를 아실 수 있을 겁니다. ^^)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근동지방에 '야훼'라는 신을 믿는 종교가
생기기 전 수천년 동안 널리 퍼져있던 여신숭배신앙이, 어떻게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로 이어지는 남신숭배신앙으로 바뀌게 되었는가를
기술하고 있습니다. 신학적으로 동감하지 않더라도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꽤 흥미로울 내용이 많이 들어있습니다.
참고로 Stone은 신학자가 아니라 미술사가입니다.
그런데 오늘 책을 거의 다 읽어갈 무렵 마지막에 이런 구절이 나왔습니다.
(먼저 이 구절이 나온 배경을 설명하면, 아시다시피 미국 노예해방운동에는
남성운동가 뿐 아니라 여성운동가도 제법 있었습니다. 그들은 노예제도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런던의 국제회의에 대표를 파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남성 성직자들은 '여성이 교회에서 떠드는' 것의 부당함을 들어
런던 국제회의의 참석을 막았고, 결국 그들은 회의 석상에서는 얘기 한마디
하지 못한 채 커튼을 치고 뒤에 앉아 있었야만 했답니다. 여성운동가들은
이의 부당함에 저항하여 1848년의 여성독립선언문을 시작으로 다양한 여성운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 구절은 그런 여성운동의 핵심 활동가들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나왔습니다.)
1876년 처음으로 피임제 사용의 정당성을 주장했던 Annie Besant라는 운동가를
소개하며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Physical preventives at any time were regarded as against the will of God;
few people seemed to see any inconsistency between interfering with the course
of nature by preventing or curing disease, or building houses against the elements,
and yet refusing to interfere with the process of procreation.'
저 역시 가톨릭이다보니 낙태에 대해서는 부정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가톨릭에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낙태나 심지어는 글에서와 같이 피임에 대해서도
반대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 3억에 이르게 된 데에는
가톨릭계 이민의 유입이 늘어난 데 절대적으로 기인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구절을 읽고, 과연 현대 사회에서 피임이라는 것에 기독교가 가져야 하는
'바른' 시각이란 어떠해야 하는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가톨릭에 입문 당시 흔히 하는 교리 문답의 가장 첫번째 질문은 (요새는 어떤지
모릅니다. 저는 첫 영성체를 한지 20년이 넘으니까요. ^^)
'신은 왜 인간을 창조했는가' 입니다.
답은?
첫째, 자식을 낳아 번성하고
둘째, 하느님을 알아 모시기
위해서라고 배웁니다.
그만큼 자식을 낳아 키우고 번성하는 것은 하느님이 주신 권리이자 의무라고
배우는 거죠. 그런데 자식을 낳아 키우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키워보지는
않았지만 제 부모님을 생각하면 그럴 것 같습니다. ^^; 낳고도 키우지 못하는
사정도 생길 것이고 아예 낳을 사정도 못되는 경우도 있을 테지요.
그런 경우에도 무조건 낳으라고 성서는 가르칩니다.
그런데, 자연재해를 예방해 둑을 쌓고 질병을 두려워하며 예방주사를 맞는 일과
아이 낳을 사정이 되지 않아 피임을 하거나 낳아서 키울 사정이 되지 못해
낙태를 하는 것과 신학적으로 어떻게 다른 설명이 가능한지는 모르겠습니다.
물론 아이가 '재해'나 '질병'과 동격이 될 수는 없겠지요. 문제는 이론적 토대로
어떻게 피임이나 낙태의 금지를 합리화할 수 있느냐 하는 겁니다.
얼마전 모 대선후보가 장애인 낙태 운운해서 문제가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가톨릭의 무조건 낙태금지, 무조건 피임금지에 비해 개신교의 입장은 다른 건지,
아니면 다른 어떤 설명이 가능한지도 궁금합니다.
***** 운영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06-14 15:35)
2007.06.14 00:37:23
무명재님이 제일 처음 댓글을 달아주셔서, 무명재님의 글을 애독하는 저로서는 깊은 감사를 느낍니다.
저 역시 골수.. 까지는 아니더라도 진피층 정도까지는 기독교적 사고가 몸에 배었다고 자부하는 지라
낙태와 피임에 대한 현대 사회의 입장전환에 대해서는 부정적이긴 합니다.
그런데 말씀하신 바와 같이 낙태를 원천적으로 금지해야만 하는 이유가 '더 약한 자에 대한 배려 내지는
권리 보장'을 위한 것이라면, 지극히 남성 중심적이고 최근까지도 또는 지금 이시간에도 반 양성평등적인
기독교의 논리라면 다소 궁색하지 않나 합니다. 어린아이, 심지어는 태아나 배아의 인격이라 할 지라도
어른의 그것에 못지 않는다는 원론적인 입장에는 어느 정도 동감합니다만, 다 자란 성인의 인격조차
평등하게 대우받지 못하고 그러한 현실이 신학적 교리의 명목으로 정당화되고 있는 기독교라면
말이지요.
(아마 제가, 여성의 사제임직권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천주교 신자라서 더 그렇게 느끼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궁금했던 것은 낙태나 피임을 중심 주제로 놓고 원론적인 근거를 찾고자 함이 아니라,
재해나 질병을 예방하는 것이 인간의 행복권 (이 또한 하느님께서 주신 권한 아니겠습니까)을
추구하기 위한 행위로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이라면, 낙태와 피임은 (아니 피임만이라도) 왜 그
범주 안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었습니다. 정당한 사유에서의 피임도 얼마든지
있을텐데 말이예요. ^^; (아프리카에서의 에이즈 예방을 위해 피임을 권하려 해도 종교적 이유를
들어 거부하는 바람에 더 확산되는 사례도 있다고 하니 말입니다)
또 가끔 보도되는 사례로, 수혈을 거부하거나 치료를 거부해서 자신, 배우자, 또는 자녀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이들을 보면 어김없이 '종교(대개 기독교)의 이름으로' 그런 행위를 하더군요.
그분들이 저보다 더 신앙심이 깊은 것이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만,
그런 행위들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하는 걸까요?
무명재님께서 추천해 주신 책은 구해서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읽고 싶은 책이 한권 늘었네요. ^^
감사합니다.
저 역시 골수.. 까지는 아니더라도 진피층 정도까지는 기독교적 사고가 몸에 배었다고 자부하는 지라
낙태와 피임에 대한 현대 사회의 입장전환에 대해서는 부정적이긴 합니다.
그런데 말씀하신 바와 같이 낙태를 원천적으로 금지해야만 하는 이유가 '더 약한 자에 대한 배려 내지는
권리 보장'을 위한 것이라면, 지극히 남성 중심적이고 최근까지도 또는 지금 이시간에도 반 양성평등적인
기독교의 논리라면 다소 궁색하지 않나 합니다. 어린아이, 심지어는 태아나 배아의 인격이라 할 지라도
어른의 그것에 못지 않는다는 원론적인 입장에는 어느 정도 동감합니다만, 다 자란 성인의 인격조차
평등하게 대우받지 못하고 그러한 현실이 신학적 교리의 명목으로 정당화되고 있는 기독교라면
말이지요.
(아마 제가, 여성의 사제임직권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천주교 신자라서 더 그렇게 느끼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궁금했던 것은 낙태나 피임을 중심 주제로 놓고 원론적인 근거를 찾고자 함이 아니라,
재해나 질병을 예방하는 것이 인간의 행복권 (이 또한 하느님께서 주신 권한 아니겠습니까)을
추구하기 위한 행위로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이라면, 낙태와 피임은 (아니 피임만이라도) 왜 그
범주 안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었습니다. 정당한 사유에서의 피임도 얼마든지
있을텐데 말이예요. ^^; (아프리카에서의 에이즈 예방을 위해 피임을 권하려 해도 종교적 이유를
들어 거부하는 바람에 더 확산되는 사례도 있다고 하니 말입니다)
또 가끔 보도되는 사례로, 수혈을 거부하거나 치료를 거부해서 자신, 배우자, 또는 자녀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이들을 보면 어김없이 '종교(대개 기독교)의 이름으로' 그런 행위를 하더군요.
그분들이 저보다 더 신앙심이 깊은 것이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만,
그런 행위들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하는 걸까요?
무명재님께서 추천해 주신 책은 구해서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읽고 싶은 책이 한권 늘었네요. ^^
감사합니다.
2007.06.14 00:59:50
헬레나님이 신앙생활하는 가톨릭처럼 성공회도 인공적인 피임은 허용하지 않지만, 저는 필요하다면 인공적인 피임이나 낙태가 허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정래 선생의 태백산맥을 보면 외산댁이 건달패인 염상구에게 강간당해서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일이 나옵니다. 원수의 씨를 낳고 싶지 않은 외산댁은 별 방법을 사용해서 낙태를 하려고 하는데요, 이런 경우 교회나 성서에서 낙태를 금지한다고 해서 무조건 출산하라고 할 수 있을까요? 지금도 한국에서는 짐승보다도 못한,XX를 XX해야 할 남정네들때문에 외산댁들이 한 두명이 아닐텐데, 그들에게 아이를 싫든 좋든 낳아서 길러라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2007.06.14 03:36:03
제가 영어 실력이 영 신통찮은지라,
언급해 주신 책을, 독해 연습 겸 한 번 읽고 싶은 생각도 드네요.
그래서, '제 의견'이라 말씀드린 겁니다^^
자매님 말씀처럼, 그리스도교와 교회 안에서, 헤쳐나가야 할 장벽들이 많습니다.
종교의 난점 중 하나가,
자신의 전통을 쉽사리 부정하거나 개정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제가 비록 그리스도교와 공교회(보편교회)의 전통과 준거(보편공의회 결의사항 등)를,
물려받은 '텍스트'로 존중해야 된다고 늘 역설합니다만,
이러한 객관성의 강조라는 측면과 반대되게,
그 선대의 텍스트들 역시, 해석학적 산물, 즉 주관적인 것이 아니냐는,
갈등 속에 늘 고민하고 있습니다.
가톨릭 모델의 난점(단점이라 말하기는 좀 주저스럽습니다. 복합적이니까요)이,
예전의 결의 사항들, 교회의 사목적 조치들을 부정하기가 지극히 어렵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서방 교회인 천주교의 경우, 법적 논리로 풀어나가는 특성 때문에,
상황윤리적 고려가 힘든 것 같습니다.
저는, 피임에 관해서는, 낙태와 다르게 취급한다고 말씀드렸거니와,
아프리카의 심각한 에이즈 문제에 대하여, 그 지역의 천주교회가 대단히 골머리를 썩히고 있는 줄 압니다.
전임 교황께서 강경한 보수주의자였고, 현 교황 역시, 그러한 분이시니,
아프리카 천주교회는, 사목의 현장과 교황청의 보수적 방침 사이에서 곤혹스러운 것 같더군요.
하지만, 전통적 그리스도교권인 유럽과 미주에서부터, 아프리카, 아시아, 이슬람 세계까지,
지구 전체를 고려하고 이끌어나가야 하는 천주교의 체제를 생각할 때,
그런 보수성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되기도 하는데,
그게 또 천주교 모델의 한계일 수도 있겠지요.
개신교, 특히 미국과 한국 개신교는 반보편주의의 극단을 치닫는 반면,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하나의 교회라는 데 너무 집착하는 천주교도,
좀 부자연스러운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성 사제 서품의 문제에 대해서는 참으로 말문이 막힙니다.
교황청은, 여성 사제 서품은 절대 불가하고,
앞으로도 논의조차 되지 않을 것이라고 기회가 닿을 때마다 강조하더군요.
눈에 쌍심지를 켜고 있다는 인상까지 받습니다.
영국국교회 및 성공회가 여성 사제 서품을 가결시켰을 때에도,
교황청은, 당시 막 시행했던 여성의 제대(제단) 봉사(복사) 허용 조치가,
여성 성직 서품의 준비 단계가 아니라고, 안 해도 될 말을 굳이 하더군요.
최근에도, 일부 지역 신학교들이 여성을 대상으로 성직 과정의 과목들을 가르치자,
여성 부제 서품 추진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며,
앞으로도 여성 성직 서품은 절대 논의되지 않을 것이라 강조하던데요.
신학이 고도로 발전한 지금에 이르기까지, 교황청이 내놓는 여성 성직 서품 불가의 이유라는 것은,
열 두 사도 중에 여성이 없었다, 주님께서는 남성만을 사도로 세웠으니,
교회는 여성을 사도의 계승자(사제)로 세울 권한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궁색하기 짝이 없는 변명입니까?
(그럼, 평신도 봉사직인 부제는 왜 안 되나?
고대 교회 때엔 여성 부제가 있었고,
동방에서는 상당한 기간동안 여성 부제 제도가 존속되었는데?)
물론, 여성 성직 서품을 허용할 경우, 천주교 안의 수많은 보수주의자들 때문에
교회가 분란에 휩싸이겠지요.
자칫하다가는, 개신교, 성공회처럼 교회가 갈라질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위험들을 예상하더라도,
이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신앙이니, 영성이니, 신학, 전례, 성서니,
이런 모든 것들을 일이관지하는 근본 원리가 있다면,
그것으로 관통해야겠지요.
물론, 우리가 하느님처럼 모든 것을 알 수는 없겠습니다만,
성령 안에서 깨달음은 얻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 관통하는 원리로 신앙 생활도 하고, 사목/목회도 한다면 좋겠습니다만,
교회 안에는 보수와 진보를 위시한 그야말로 다양하고 중층적인 계층과 구성원들이 혼재하므로,
'안전빵'인 보수로 운전해 나아가는 게 상당 부분 불가피해 보여,
저로서도 참 착잡합니다.
현행 가톨릭교리서를 찾아봐야겠군요.
"신은 왜 인간을 창조했는가?
첫째, 자식을 낳아 번성하고
둘째, 하느님을 알아 모시기"
글쎄요.
저는, 그리스도교의 이같은 구호, 선언들을 접할 때마다,
대단히 거북합니다.
개혁파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첫 항목도,
인간의 존재 이유가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 했지요.
그러나, 존재의 가장 근본된 존재 이유는, 존재하는 그 자체가 아니겠습니까?
그리스도교가, 이러한 자기논리에의 자폐적 함몰에서 벗어나,
근본으로 돌아가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말씀드렸듯이, 종교란 보수적이니까요.
끝으로,
제가 언젠가 장신 출신 전도사 형님들과의 회합 자리에서,
이런 질문을 던졌더랬습니다.
형님들께서 주일 아침에, 예배를 집례하는 목사로서, 교회를 향하고 있는데,
강도한테 습격을 당해 쓰러져 있는 사람에 대한 복음서의 예수님 비유처럼,
형님 아니면, 구해 줄 누구도 없는, 사고 등의 위기를 당한 사람을 만났다면,
어떻게 하시겠느냐?
저의 이 질문에, 형님들께서 다들 곤혹스럽게 웃으시면서,
한 형님께서 답하시기를,
그런 일을 만나지 않기를 기도해야겠지라 하시더군요.
이건, 굳이 극단적인 예를 든 것입니다만,
종교의 형식, 외형과, 종교의 내용이 부딪힐 경우에,
기도와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성서에, 피에 생명이 있으니, 수혈은 안 된다,
제 소견에, 그러한 가르침을 설파하는 종파에 속한 분께서, 정녕 성서 말씀에 진지하다면,
성서의 하느님은 사랑으로 가득 차신 분이고,
예수님은, 그러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
당시의 잘못된 관습을 일부러 정면 위반하셨는데,
성서를 문자 그대로 믿어, 어떤 경우에도 수혈은 안 된다니, 말이 되는가?
라는 의문을 가져야 마땅하다고 봅니다.
제가, 개신교의 성서축자적 근본주의와,
천주교의 대중신심, 교도권, 전례, 성모신심 등에 바탕한 근본주의를 결단코 배격하는 까닭이 이것입니다.
외형에 집착하여, 내용을 희생, 왜곡시켜, 생명의 복음을 죽이는 반복음으로 전락시키기 때문이지요.
언급해 주신 책을, 독해 연습 겸 한 번 읽고 싶은 생각도 드네요.
그래서, '제 의견'이라 말씀드린 겁니다^^
자매님 말씀처럼, 그리스도교와 교회 안에서, 헤쳐나가야 할 장벽들이 많습니다.
종교의 난점 중 하나가,
자신의 전통을 쉽사리 부정하거나 개정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제가 비록 그리스도교와 공교회(보편교회)의 전통과 준거(보편공의회 결의사항 등)를,
물려받은 '텍스트'로 존중해야 된다고 늘 역설합니다만,
이러한 객관성의 강조라는 측면과 반대되게,
그 선대의 텍스트들 역시, 해석학적 산물, 즉 주관적인 것이 아니냐는,
갈등 속에 늘 고민하고 있습니다.
가톨릭 모델의 난점(단점이라 말하기는 좀 주저스럽습니다. 복합적이니까요)이,
예전의 결의 사항들, 교회의 사목적 조치들을 부정하기가 지극히 어렵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서방 교회인 천주교의 경우, 법적 논리로 풀어나가는 특성 때문에,
상황윤리적 고려가 힘든 것 같습니다.
저는, 피임에 관해서는, 낙태와 다르게 취급한다고 말씀드렸거니와,
아프리카의 심각한 에이즈 문제에 대하여, 그 지역의 천주교회가 대단히 골머리를 썩히고 있는 줄 압니다.
전임 교황께서 강경한 보수주의자였고, 현 교황 역시, 그러한 분이시니,
아프리카 천주교회는, 사목의 현장과 교황청의 보수적 방침 사이에서 곤혹스러운 것 같더군요.
하지만, 전통적 그리스도교권인 유럽과 미주에서부터, 아프리카, 아시아, 이슬람 세계까지,
지구 전체를 고려하고 이끌어나가야 하는 천주교의 체제를 생각할 때,
그런 보수성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되기도 하는데,
그게 또 천주교 모델의 한계일 수도 있겠지요.
개신교, 특히 미국과 한국 개신교는 반보편주의의 극단을 치닫는 반면,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하나의 교회라는 데 너무 집착하는 천주교도,
좀 부자연스러운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성 사제 서품의 문제에 대해서는 참으로 말문이 막힙니다.
교황청은, 여성 사제 서품은 절대 불가하고,
앞으로도 논의조차 되지 않을 것이라고 기회가 닿을 때마다 강조하더군요.
눈에 쌍심지를 켜고 있다는 인상까지 받습니다.
영국국교회 및 성공회가 여성 사제 서품을 가결시켰을 때에도,
교황청은, 당시 막 시행했던 여성의 제대(제단) 봉사(복사) 허용 조치가,
여성 성직 서품의 준비 단계가 아니라고, 안 해도 될 말을 굳이 하더군요.
최근에도, 일부 지역 신학교들이 여성을 대상으로 성직 과정의 과목들을 가르치자,
여성 부제 서품 추진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며,
앞으로도 여성 성직 서품은 절대 논의되지 않을 것이라 강조하던데요.
신학이 고도로 발전한 지금에 이르기까지, 교황청이 내놓는 여성 성직 서품 불가의 이유라는 것은,
열 두 사도 중에 여성이 없었다, 주님께서는 남성만을 사도로 세웠으니,
교회는 여성을 사도의 계승자(사제)로 세울 권한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궁색하기 짝이 없는 변명입니까?
(그럼, 평신도 봉사직인 부제는 왜 안 되나?
고대 교회 때엔 여성 부제가 있었고,
동방에서는 상당한 기간동안 여성 부제 제도가 존속되었는데?)
물론, 여성 성직 서품을 허용할 경우, 천주교 안의 수많은 보수주의자들 때문에
교회가 분란에 휩싸이겠지요.
자칫하다가는, 개신교, 성공회처럼 교회가 갈라질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위험들을 예상하더라도,
이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신앙이니, 영성이니, 신학, 전례, 성서니,
이런 모든 것들을 일이관지하는 근본 원리가 있다면,
그것으로 관통해야겠지요.
물론, 우리가 하느님처럼 모든 것을 알 수는 없겠습니다만,
성령 안에서 깨달음은 얻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 관통하는 원리로 신앙 생활도 하고, 사목/목회도 한다면 좋겠습니다만,
교회 안에는 보수와 진보를 위시한 그야말로 다양하고 중층적인 계층과 구성원들이 혼재하므로,
'안전빵'인 보수로 운전해 나아가는 게 상당 부분 불가피해 보여,
저로서도 참 착잡합니다.
현행 가톨릭교리서를 찾아봐야겠군요.
"신은 왜 인간을 창조했는가?
첫째, 자식을 낳아 번성하고
둘째, 하느님을 알아 모시기"
글쎄요.
저는, 그리스도교의 이같은 구호, 선언들을 접할 때마다,
대단히 거북합니다.
개혁파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첫 항목도,
인간의 존재 이유가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 했지요.
그러나, 존재의 가장 근본된 존재 이유는, 존재하는 그 자체가 아니겠습니까?
그리스도교가, 이러한 자기논리에의 자폐적 함몰에서 벗어나,
근본으로 돌아가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말씀드렸듯이, 종교란 보수적이니까요.
끝으로,
제가 언젠가 장신 출신 전도사 형님들과의 회합 자리에서,
이런 질문을 던졌더랬습니다.
형님들께서 주일 아침에, 예배를 집례하는 목사로서, 교회를 향하고 있는데,
강도한테 습격을 당해 쓰러져 있는 사람에 대한 복음서의 예수님 비유처럼,
형님 아니면, 구해 줄 누구도 없는, 사고 등의 위기를 당한 사람을 만났다면,
어떻게 하시겠느냐?
저의 이 질문에, 형님들께서 다들 곤혹스럽게 웃으시면서,
한 형님께서 답하시기를,
그런 일을 만나지 않기를 기도해야겠지라 하시더군요.
이건, 굳이 극단적인 예를 든 것입니다만,
종교의 형식, 외형과, 종교의 내용이 부딪힐 경우에,
기도와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성서에, 피에 생명이 있으니, 수혈은 안 된다,
제 소견에, 그러한 가르침을 설파하는 종파에 속한 분께서, 정녕 성서 말씀에 진지하다면,
성서의 하느님은 사랑으로 가득 차신 분이고,
예수님은, 그러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
당시의 잘못된 관습을 일부러 정면 위반하셨는데,
성서를 문자 그대로 믿어, 어떤 경우에도 수혈은 안 된다니, 말이 되는가?
라는 의문을 가져야 마땅하다고 봅니다.
제가, 개신교의 성서축자적 근본주의와,
천주교의 대중신심, 교도권, 전례, 성모신심 등에 바탕한 근본주의를 결단코 배격하는 까닭이 이것입니다.
외형에 집착하여, 내용을 희생, 왜곡시켜, 생명의 복음을 죽이는 반복음으로 전락시키기 때문이지요.
2007.06.14 14:00:05
먼저 피임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아직도 이슈가 되고 있습니까?
제 말은 명목상이 아닌 현실에서요. Catholic(그리고 몇 몇 개신교 단체)에서 주장하는 피임반대 이유는
정자와 난자의 수정이 시작됨과 동시에 생명이 시작된다는 관점에서 수정을 방해하는
그 어떤 외부 행위도 결국은 낙태 또는 일종의 살인 행위라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자연상태에서 실제 수정란이 착상에 성공하는 확률이 엄청 작다는 것이죠.
다시말해 여성은 자신도 모르는 상태에서 소위 자연유산을 수시로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Catholic의 주장대로라면 세상의 모든 여성은 일종의 연쇄 살인범입니다.
물론 의도하지 않은 살인이기에 어느 정도의 면죄부를 줄 수는 있지만,
그것이 한 두번이 아닐 때는 심각한 것 아니겠습니까?
우스개 소리 하나 하죠. 교황이 그토록 피임을 반대하는 실제 이유는 생명의 존엄성 차원이라기 보다
어떻게든 신자수를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라는 카더라 통신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건 우스개가 아니고 실제 상황인데, 국가별 기혼 여성들의 피임 현황을 보면,
이탈리아 여성의 피임율이 제일 높습니다 (90%). 그것도 교황청 앞마당에서!!
낙태는 피임과는 달리 정말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이 의견내기를 꺼려하고,
또 의견을 제시하더라도 상당히 원론적인 수준에서 조심스럽게 다루는 경향이 있더군요.
평소 제가 가지고 있던 생각을 아무 꺼리낌없이 밝히겠습니다.
낙태를 취미로 하는 여성이 어디 있겠습니까? 정도의 편차는 있겠지만, 그럴만한 사정이 있다는 것이죠.
특히 양육능력이 도저히 안되거나, 강간에 의해 강제 임신된 여성들의 경우는 낙태의 원인에
사회적 책임이 크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 입니다. 이런 여성들에게 까지 ‘죄’와 ‘살인’을 들먹이는 것은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또 다른 비겁한 폭력에 불과합니다 (저는 강간당한 여성을 다시 강간하는
행위라고까지 생각합니다).
교회가 이런 경우 굳이 해야할 일이 있다면, 가난이 사라지지 않고 강간이 빈발하는 사회 구조적 문제를
까발리고 개선하려는 데 앞장서야지, 그도 자신 없거나,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되면,
그저 침묵하고 기도하는게 최선이라고 봅니다.
그럼에도 교회가 낙태 반대를 주장하고 나서고자 한다면, 최소한 한 가지는 먼저 해결해야 하겠습니다.
즉, 산모가 양육능력이 없거나, 강간에 의한 임신일 경우, 출생한 아이의 모든 양육을 전적으로 교회가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건 생명의 존엄성과도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은 생사 여부에만 달려 있는게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산모의 생명이 위협 당하는 경우, 낙태 여부는 전적으로 산모의 결정권에 맡겨야 한다는게
저의 입장입니다. 여기엔 남편도 아무 권한 없습니다.
위의 예들을 제외한 낙태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반대 입장입니다.
굳이 ‘기본적’이란 토를 다는 이유는 낙태를 결심할 수 밖에 없는 여성들의 특수한 상황들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기 때문이며, 또 제 자신이 남자라는 원죄 때문입니다.
자, 여러분들 마구 달려드세요.
제 말은 명목상이 아닌 현실에서요. Catholic(그리고 몇 몇 개신교 단체)에서 주장하는 피임반대 이유는
정자와 난자의 수정이 시작됨과 동시에 생명이 시작된다는 관점에서 수정을 방해하는
그 어떤 외부 행위도 결국은 낙태 또는 일종의 살인 행위라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자연상태에서 실제 수정란이 착상에 성공하는 확률이 엄청 작다는 것이죠.
다시말해 여성은 자신도 모르는 상태에서 소위 자연유산을 수시로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Catholic의 주장대로라면 세상의 모든 여성은 일종의 연쇄 살인범입니다.
물론 의도하지 않은 살인이기에 어느 정도의 면죄부를 줄 수는 있지만,
그것이 한 두번이 아닐 때는 심각한 것 아니겠습니까?
우스개 소리 하나 하죠. 교황이 그토록 피임을 반대하는 실제 이유는 생명의 존엄성 차원이라기 보다
어떻게든 신자수를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라는 카더라 통신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건 우스개가 아니고 실제 상황인데, 국가별 기혼 여성들의 피임 현황을 보면,
이탈리아 여성의 피임율이 제일 높습니다 (90%). 그것도 교황청 앞마당에서!!
낙태는 피임과는 달리 정말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이 의견내기를 꺼려하고,
또 의견을 제시하더라도 상당히 원론적인 수준에서 조심스럽게 다루는 경향이 있더군요.
평소 제가 가지고 있던 생각을 아무 꺼리낌없이 밝히겠습니다.
낙태를 취미로 하는 여성이 어디 있겠습니까? 정도의 편차는 있겠지만, 그럴만한 사정이 있다는 것이죠.
특히 양육능력이 도저히 안되거나, 강간에 의해 강제 임신된 여성들의 경우는 낙태의 원인에
사회적 책임이 크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 입니다. 이런 여성들에게 까지 ‘죄’와 ‘살인’을 들먹이는 것은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또 다른 비겁한 폭력에 불과합니다 (저는 강간당한 여성을 다시 강간하는
행위라고까지 생각합니다).
교회가 이런 경우 굳이 해야할 일이 있다면, 가난이 사라지지 않고 강간이 빈발하는 사회 구조적 문제를
까발리고 개선하려는 데 앞장서야지, 그도 자신 없거나,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되면,
그저 침묵하고 기도하는게 최선이라고 봅니다.
그럼에도 교회가 낙태 반대를 주장하고 나서고자 한다면, 최소한 한 가지는 먼저 해결해야 하겠습니다.
즉, 산모가 양육능력이 없거나, 강간에 의한 임신일 경우, 출생한 아이의 모든 양육을 전적으로 교회가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건 생명의 존엄성과도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은 생사 여부에만 달려 있는게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산모의 생명이 위협 당하는 경우, 낙태 여부는 전적으로 산모의 결정권에 맡겨야 한다는게
저의 입장입니다. 여기엔 남편도 아무 권한 없습니다.
위의 예들을 제외한 낙태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반대 입장입니다.
굳이 ‘기본적’이란 토를 다는 이유는 낙태를 결심할 수 밖에 없는 여성들의 특수한 상황들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기 때문이며, 또 제 자신이 남자라는 원죄 때문입니다.
자, 여러분들 마구 달려드세요.
2007.06.14 14:51:59
브리즈님의 설명(피임)에 덧붙여서~~
가톨릭에서 인공적인 피임을 반대하는 이유는,
첫번째는, 생명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영역이라 보기 때문입니다. 남자와 여자의 성행위는 생명을 잉태하기 위한 성스러운 행위여야 하고 이렇게 해서 창조된 생명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영역이기 때문에 인간이 인위적으로 그것을 조절하는 것은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느님에 대한 도전이라고 보는 것이죠. 때문에 자연주기법을 제외한 어떠한 형태의 피임도 반대하는 것이죠.
두번째는, 성행위는 출산을 위한 행위가 되어야지 쾌락을 위한 도구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섹스의 쾌락을 죄악시하는 스콜라적인 윤리관이 아직도 가톨릭지도층의 기본적인 윤리관이기 때문이겠죠. 때문에 많은 경우 피임은, 임신을 피하고 단지 쾌락만을 얻기 위한 도구가 된다고 보기에 반대하는 것이구요.
가톨릭지도층이 스콜라적인 윤리관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피임에 관한 기본입장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 같네요...
가톨릭에서 인공적인 피임을 반대하는 이유는,
첫번째는, 생명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영역이라 보기 때문입니다. 남자와 여자의 성행위는 생명을 잉태하기 위한 성스러운 행위여야 하고 이렇게 해서 창조된 생명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영역이기 때문에 인간이 인위적으로 그것을 조절하는 것은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느님에 대한 도전이라고 보는 것이죠. 때문에 자연주기법을 제외한 어떠한 형태의 피임도 반대하는 것이죠.
두번째는, 성행위는 출산을 위한 행위가 되어야지 쾌락을 위한 도구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섹스의 쾌락을 죄악시하는 스콜라적인 윤리관이 아직도 가톨릭지도층의 기본적인 윤리관이기 때문이겠죠. 때문에 많은 경우 피임은, 임신을 피하고 단지 쾌락만을 얻기 위한 도구가 된다고 보기에 반대하는 것이구요.
가톨릭지도층이 스콜라적인 윤리관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피임에 관한 기본입장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 같네요...
2007.06.15 11:23:02
오늘 한계례 신문 뉴스입니다.
교황청은 세계적 인권단체인 국제앰네스티의 ‘낙태 지원’ 결정에 항의해 이 단체에 대한 재정 지원을
중단한다고 13일 발표했다.
교황청은 전세계 모든 가톨릭 신도들에게도 엠네스티 기부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 의장 레나토 마르티노 추기경은 최근 엠네스티의 태도 변화를 지적하며
“가톨릭 단체와 개인들의 엠네스티 재정 지원 중단은 불가피한 결과”라고 말했다.
그는 낙태를 ‘살인’이라고 규정하고 “설사 성폭력으로 임신한 경우라도 낙태를 인정한다는 것은
죄없는 태아를 ‘적’ 또는 ‘파괴시켜도 될 대상’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동안 낙태에 대해 중립적이던 엠네스티는 2년 동안 회원들과 전문가 논의를 거쳐
“근친상간 임신이나 성폭력 임신 등으로 생명의 위협을 겪거나 인권 침해가 심각한 여성들의
낙태를 지원한다”는 성명을 지난 4월 발표했다.
이에 대해 케이트 길모어 엠네스티 사무부총장은 “가톨릭 교회가 낙태에 대한 우리의 결정을 오해해
인권을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길모어 부총장은 “엠네스티가 낙태를 보편적 권리로 옹호한 적이 없다”며
“우리가 강조한 것은 성폭력이나 근친상간 임신 등 인권 침해가 심각한 여성들이
낙태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엠네스티는 만약 전세계 가톨릭 신자들이 교황청의 권고를 받아들여 기부를 끊을 경우
재정에 심각한 영향을 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교황청은 세계적 인권단체인 국제앰네스티의 ‘낙태 지원’ 결정에 항의해 이 단체에 대한 재정 지원을
중단한다고 13일 발표했다.
교황청은 전세계 모든 가톨릭 신도들에게도 엠네스티 기부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 의장 레나토 마르티노 추기경은 최근 엠네스티의 태도 변화를 지적하며
“가톨릭 단체와 개인들의 엠네스티 재정 지원 중단은 불가피한 결과”라고 말했다.
그는 낙태를 ‘살인’이라고 규정하고 “설사 성폭력으로 임신한 경우라도 낙태를 인정한다는 것은
죄없는 태아를 ‘적’ 또는 ‘파괴시켜도 될 대상’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동안 낙태에 대해 중립적이던 엠네스티는 2년 동안 회원들과 전문가 논의를 거쳐
“근친상간 임신이나 성폭력 임신 등으로 생명의 위협을 겪거나 인권 침해가 심각한 여성들의
낙태를 지원한다”는 성명을 지난 4월 발표했다.
이에 대해 케이트 길모어 엠네스티 사무부총장은 “가톨릭 교회가 낙태에 대한 우리의 결정을 오해해
인권을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길모어 부총장은 “엠네스티가 낙태를 보편적 권리로 옹호한 적이 없다”며
“우리가 강조한 것은 성폭력이나 근친상간 임신 등 인권 침해가 심각한 여성들이
낙태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엠네스티는 만약 전세계 가톨릭 신자들이 교황청의 권고를 받아들여 기부를 끊을 경우
재정에 심각한 영향을 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2007.06.15 19:35:30
질문만 덜렁 올려놓고 오랜만에 들어와보니 점점 얘기가 제가 의도했던 바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듯 한데요, 가톨릭에서 낙태를 어떻게 보는가 하는 것은
새로운 이슈가 아닙니다. 브리즈님께서 말씀하신 우스개소리가 사실이든 아니든, ^^;
오랜 시간동안 가톨릭이 공공연하게 낙태반대운동에 대한 목소리를 높여왔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잘 아는 일이지요. 개신교회에서는 어떤지 모르나 가톨릭에서는
아직도 낙태같은 이슈에 대해서는 심심치않게 강론말씀의 소재로 삼습니다.
특히 바로 위에 브리즈님이 달아주신 기사와 같은 전세계적인 이슈가 있을 때라던가
교황청이나 주교회의 같은 중요한 곳에서 낙태에 대한 선언같은 것이 이루어졌을 경우
전 교회에서 동일한 주제의 강론말씀을 하시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가톨릭에서야 전세계 어느 교회를 가도 같은 교회로 인정을 하니
저 역시 제가 세례를 받은 어머니 교회 이외에도 여기저기 많이 다녔으므로
'같은 날 미사에 동일한 강론말씀으로 진행'한다는 제 말이 틀리지는 않을 겁니다.)
그런데 제 무지 탓인지, 무관심 탓인지 이렇듯 중요한 문제에 대해 개신교의 지도적
위치에 있는 분이 특별한 선언문이나 입장의 권고라던가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요.
위에 여러분이 '무조건 낙태 금지는 여성의 인권을 짓밟을 가능성이 있어 아주 특별한 경우에
한해서는 허용해야 하지 않겠나'하셨지만, 실제로 개신교의 목회자들이 공개적인 설교에서
그런 관점에서 설교를 행하시는지, 그리고 그런 설교에 대한 성서적 근거나 신학적 교리는
어떻게 펼치시는지 그게 궁금했던 겁니다.
낙태를 반대하는 성서적 근거는 찾으려면 많겠죠. 이 문제는 여기다 올려놓을 필요도 없이
그냥 우리 신부님께 여쭤보면 됩니다. 제가 찾아봐도 되구요. ^^ 그런데 제가 원글에서 언급한
다른 문제와 낙태를 차별화할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떤 구절을 꺼내야하는 걸까요?
그리고 낙태의 부분적 허용을 합리화하려면 또 어떤 근거를 대야하죠?
저는 이 문제에 대해 개신교회의 공식적 입장은 어떤 것인지, 그리고 실제로 개신교의 목사님들이
예배시간에는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그것이 궁금해서 여쭤봤던 것입니다.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듯 한데요, 가톨릭에서 낙태를 어떻게 보는가 하는 것은
새로운 이슈가 아닙니다. 브리즈님께서 말씀하신 우스개소리가 사실이든 아니든, ^^;
오랜 시간동안 가톨릭이 공공연하게 낙태반대운동에 대한 목소리를 높여왔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잘 아는 일이지요. 개신교회에서는 어떤지 모르나 가톨릭에서는
아직도 낙태같은 이슈에 대해서는 심심치않게 강론말씀의 소재로 삼습니다.
특히 바로 위에 브리즈님이 달아주신 기사와 같은 전세계적인 이슈가 있을 때라던가
교황청이나 주교회의 같은 중요한 곳에서 낙태에 대한 선언같은 것이 이루어졌을 경우
전 교회에서 동일한 주제의 강론말씀을 하시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가톨릭에서야 전세계 어느 교회를 가도 같은 교회로 인정을 하니
저 역시 제가 세례를 받은 어머니 교회 이외에도 여기저기 많이 다녔으므로
'같은 날 미사에 동일한 강론말씀으로 진행'한다는 제 말이 틀리지는 않을 겁니다.)
그런데 제 무지 탓인지, 무관심 탓인지 이렇듯 중요한 문제에 대해 개신교의 지도적
위치에 있는 분이 특별한 선언문이나 입장의 권고라던가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요.
위에 여러분이 '무조건 낙태 금지는 여성의 인권을 짓밟을 가능성이 있어 아주 특별한 경우에
한해서는 허용해야 하지 않겠나'하셨지만, 실제로 개신교의 목회자들이 공개적인 설교에서
그런 관점에서 설교를 행하시는지, 그리고 그런 설교에 대한 성서적 근거나 신학적 교리는
어떻게 펼치시는지 그게 궁금했던 겁니다.
낙태를 반대하는 성서적 근거는 찾으려면 많겠죠. 이 문제는 여기다 올려놓을 필요도 없이
그냥 우리 신부님께 여쭤보면 됩니다. 제가 찾아봐도 되구요. ^^ 그런데 제가 원글에서 언급한
다른 문제와 낙태를 차별화할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떤 구절을 꺼내야하는 걸까요?
그리고 낙태의 부분적 허용을 합리화하려면 또 어떤 근거를 대야하죠?
저는 이 문제에 대해 개신교회의 공식적 입장은 어떤 것인지, 그리고 실제로 개신교의 목사님들이
예배시간에는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그것이 궁금해서 여쭤봤던 것입니다.
2007.06.15 19:50:50
한가지 덧붙이자면, 가톨릭 교회는 '전세계의 교회는 하나다'라는 것을 당연한 가치이자 모토로 삼기
때문에 소위 '표준적'인 관점이라던가 하는게 있습니다. 교황의 말씀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일단은 그분의 말씀이 - 교황 개인적인 독단에서 나온 것이 아닐 것이므로 - 전 세계 가톨릭교회의
표준이 되기 때문이죠. 무명재님이 말씀하신 아프리카의 천주교회의 예에서 그 지역 신부님들이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적극적으로 피임이나 낙태를 권할 수 없는 것도 바로 그 이유입니다.
개신교회는 가톨릭과는 이런 의미에서는 다른 입장이라고 알고 있으므로 개 교회의 생각이 다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개신교회의 공식적 입장'을 여쭤보는 제 질문이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제 생각이 틀렸다면 지적 바랍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저는 다만,
그 어떤 교회라도 교회를 이끌어가는 목회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라면 적어도 그 교회 안에서는
'표준화'된 입장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제가 궁금한 것은 바로 그것이구요. ^^
때문에 소위 '표준적'인 관점이라던가 하는게 있습니다. 교황의 말씀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일단은 그분의 말씀이 - 교황 개인적인 독단에서 나온 것이 아닐 것이므로 - 전 세계 가톨릭교회의
표준이 되기 때문이죠. 무명재님이 말씀하신 아프리카의 천주교회의 예에서 그 지역 신부님들이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적극적으로 피임이나 낙태를 권할 수 없는 것도 바로 그 이유입니다.
개신교회는 가톨릭과는 이런 의미에서는 다른 입장이라고 알고 있으므로 개 교회의 생각이 다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개신교회의 공식적 입장'을 여쭤보는 제 질문이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제 생각이 틀렸다면 지적 바랍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저는 다만,
그 어떤 교회라도 교회를 이끌어가는 목회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라면 적어도 그 교회 안에서는
'표준화'된 입장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제가 궁금한 것은 바로 그것이구요. ^^
2007.06.16 00:43:08
헬레나님깨서 의도하지 않았던 바, 저의 댓글로 인해 님의 글이 쟁토방에 자리잡게 되었음을
(쟁토방이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아니구요) 사과드립니다. 개 교회의 공식입장이 궁금하셨던 것을 ---.
미국의 경우, 남침례교는 공식적으로 낙태금지 입니다. 다른 교단들은 선택적 낙태에 대해서는 암묵적으로
그 필요성을 인정하는 분위기이구요.
중요한 것은 교단이나 지도자의 공식결정이나 견해보다도 신자들이 얼마나 실제 그 결정에 따르느냐
하는 것이겠죠. 인구 전체가 Catholic 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이탈리아의 여성 90 %가 피임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볼 수 있듯이 말이죠. 교황이 이를 모를리도 없고, 그렇다고 다 파문시킬 수도 없도.
명목성과 현실성의 차이겠지요.
그런데 미국 남침례교 신자, TV 복음선동가들, 그리고 보수 종교단체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충성도는
상당한 수준입니다. 이 때문인지 여론조사의 결과는 항상 낙태 반대와 찬성이 거의 반 반이랍니다.
실제 성폭력등의 주 피해자이며, 낙태를 가장 많이 고려하는 그룹인
10대 여성들은 당연히(?) 조사 대상에서 제외되구요.
(쟁토방이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아니구요) 사과드립니다. 개 교회의 공식입장이 궁금하셨던 것을 ---.
미국의 경우, 남침례교는 공식적으로 낙태금지 입니다. 다른 교단들은 선택적 낙태에 대해서는 암묵적으로
그 필요성을 인정하는 분위기이구요.
중요한 것은 교단이나 지도자의 공식결정이나 견해보다도 신자들이 얼마나 실제 그 결정에 따르느냐
하는 것이겠죠. 인구 전체가 Catholic 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이탈리아의 여성 90 %가 피임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볼 수 있듯이 말이죠. 교황이 이를 모를리도 없고, 그렇다고 다 파문시킬 수도 없도.
명목성과 현실성의 차이겠지요.
그런데 미국 남침례교 신자, TV 복음선동가들, 그리고 보수 종교단체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충성도는
상당한 수준입니다. 이 때문인지 여론조사의 결과는 항상 낙태 반대와 찬성이 거의 반 반이랍니다.
실제 성폭력등의 주 피해자이며, 낙태를 가장 많이 고려하는 그룹인
10대 여성들은 당연히(?) 조사 대상에서 제외되구요.
2007.06.16 01:58:45
헬레나 자매님께서 말씀하셨다시피,
교황님의 이름으로 발표되는 교회의 선언, 교서, 조치들은,
마치, 행정부 수장이자 총 책임자인 대통령의 이름으로 발표되는 것이라 보시면 됩니다.
즉, 교황직은, 세계 천주교회의 최고 '기구'인 것이고,
이같이 교황의 이름으로 발표되는 조치들과 문서들은, 충분한 검토와 연구,
의견 수렴을 거친 것입니다.
흔히들, 교황의 개인적 독단, 독재인양 오해하시는 경우가 많아 지적하고 넘어가려구요.
개신교의 경우는, 이같은 전체적인 의결 기구와 교도권 개념이 없습니다.
한 믿음 아래 하나의 교회라 고백은 하지만,
어디까지나, 교파간, 노선간 서로의 차이를 긍정하고, 존중한다는 선에서, 일치를 이루려 하기 때문에,
낙태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예컨대, 세계교회협의회 등 연합기구는 웬만해서는 통일되고 확정된 의견을 내지 않고,
내더라도, 서로 조율하여, 애매하고 포괄적인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각 교파 역시, 하향적 교도권 개념에 터해 있지 아니기 때문에,
(주교제 교회인 성공회라도 그렇습니다. 개신교는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남침례교처럼 극보수 근본주의가 아닌 바에야,
통일된 의견이 있을 수 없고, 더군다나 강제는 불가능하지요.
그래서, 신학자들의 의견 역시 다양할 수 밖에 없구요.
단, 근자에 있었던 황우석 사태 당시, 배아 복제 연구에 대하여,
한국천주교주교회의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공동으로, 배아 복제 반대와 생명 및 여성의 인권을 존중하자는
선언과 캠페인을 벌인 적은 있습니다.
생명 윤리에 대한 개신교파들의 대략적인 입장은,
'의료윤리'라는 검색어로, 책들을 찾아 보시면,
개신교와 천주교 측의 여러 참고 문헌들이 나옵니다.
그 중에서, 목차를 보시고 몇 권을 추려 읽으시면, 대략 아실 수 있습니다.
저도 윤리신학은 별로 공부하지 않은지라,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어 죄송합니다.
교황님의 이름으로 발표되는 교회의 선언, 교서, 조치들은,
마치, 행정부 수장이자 총 책임자인 대통령의 이름으로 발표되는 것이라 보시면 됩니다.
즉, 교황직은, 세계 천주교회의 최고 '기구'인 것이고,
이같이 교황의 이름으로 발표되는 조치들과 문서들은, 충분한 검토와 연구,
의견 수렴을 거친 것입니다.
흔히들, 교황의 개인적 독단, 독재인양 오해하시는 경우가 많아 지적하고 넘어가려구요.
개신교의 경우는, 이같은 전체적인 의결 기구와 교도권 개념이 없습니다.
한 믿음 아래 하나의 교회라 고백은 하지만,
어디까지나, 교파간, 노선간 서로의 차이를 긍정하고, 존중한다는 선에서, 일치를 이루려 하기 때문에,
낙태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예컨대, 세계교회협의회 등 연합기구는 웬만해서는 통일되고 확정된 의견을 내지 않고,
내더라도, 서로 조율하여, 애매하고 포괄적인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각 교파 역시, 하향적 교도권 개념에 터해 있지 아니기 때문에,
(주교제 교회인 성공회라도 그렇습니다. 개신교는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남침례교처럼 극보수 근본주의가 아닌 바에야,
통일된 의견이 있을 수 없고, 더군다나 강제는 불가능하지요.
그래서, 신학자들의 의견 역시 다양할 수 밖에 없구요.
단, 근자에 있었던 황우석 사태 당시, 배아 복제 연구에 대하여,
한국천주교주교회의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공동으로, 배아 복제 반대와 생명 및 여성의 인권을 존중하자는
선언과 캠페인을 벌인 적은 있습니다.
생명 윤리에 대한 개신교파들의 대략적인 입장은,
'의료윤리'라는 검색어로, 책들을 찾아 보시면,
개신교와 천주교 측의 여러 참고 문헌들이 나옵니다.
그 중에서, 목차를 보시고 몇 권을 추려 읽으시면, 대략 아실 수 있습니다.
저도 윤리신학은 별로 공부하지 않은지라,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어 죄송합니다.
특히, 윤리신학의 준거와 방법론은 양 측이 사뭇 달라 보이더군요.
(저는 윤리신학 전공이 아니라, 개신교 윤리신학을 전공하신 분께서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개신교 윤리신학의 경우, 피임과 낙태를 '무조건'이라는 단서는 붙여 반대하지는 않더라도,
천주교와 마찬가지로, 대단히 부정적인 의견이 많긴 하지요.
글쎄요, 여성신학 등에서는 어떻게 접근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제 의견을 말씀드리자면,
배아에서부터 시작되는 생명은, 그 자체로서 생명권을 가집니다.
모든 권리들 중에서도 최후의 알맹이지요.
페미니즘 등에서는, 여성의 몸은 여성 자신에게 그 권리가 있으므로,
낙태와 피임도 당연한 권리라고 주장하는 것도 같은데요,
뱃속의 태아는, 여성보다 더 약자입니다.
여성 자신의 몸의 권리 때문에, 자기 뱃속의, 자신이 아닌 태아의 생명을 짓밟는 것은,
지금껏 강자와 남성, 인간이 약자와 여성, 자연에 가한 폭력을 되풀이하는 것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일반론적 원칙'으로, 낙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윤리란, 상황적, 실제적인 것이므로, 원칙만 들이대서는 곤란할 것입니다.
예컨대, 독일의 경우, 법으로 낙태를 금하되, 강간 등 특수한 경우에는 허용하는데요,
공공 사회 규범의 타협적 성격을 감안하더라도, 나름대로 사려깊은 원칙을 세웠다고 평가합니다.
피임은, 다른 문제라고 보구요.
그리스도교가 피임을 금지해 온 것은,
쾌락의 향유로서의 성행위를 죄악시해온 의식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을 통해 즐기는 쾌락이 왜 죄가 되나요?
죄란, 쾌락 자체가 아니라, 상대를 자기 쾌락의 대상으로 여기는 이기심일 것입니다.
피임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혼배성사로 맺어진, 교회법에 적법한 부부 관계에서,
남편이 아내를 마음대로 대하고, 잠자리에서도 그런다면, 그건 강간이 아니겠습니까?
교회법전을 펴놓고 보면 아무 문제 없겠지만요.
그리스도교가, 낙태, 피임, 동성애, 자위행위 등이 죄라고 가르친 데에는,
노동력이 한 명이라도 더 필요했던 고대, 중세 시대의 상황과,
토마스 데 아퀴노 이전에, 서방 가톨릭 신학의 터전을 닦은 아우구스티노의,
성 컴플렉스가 깊이 작용했음은 주지의 사실 아니던가요?
로즈매리 류터의 [가이아와 하느님](전현식 옮김,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도 좋습니다.
말씀하신 내력과 유사한 내용을 다루고 있지요.
류터는, 천주교인이지만, 그 급진적 여성신학 때문에, 개신교 신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습니다.
옮긴이인 연세대 신학과 전현식 교수님은, 이 분의 제자시지요.
저도 한 학기 전 교수님께 강의를 들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