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요새 Merlin Stone의 'When God Was a Woman'을 읽고 있습니다.
1993년에 나온 책이고 우리나라에도 '신이 여자였던 시절'이란 제목으로
번역출간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번역하신 분은 제가 좋아해 마지 않는 정영목씨라는 분인데
저는 그분이 번역하신 책을 일부러 찾아서 읽을 정도로
우리나라 번역계에서는 최고봉으로 인정하는 분이죠. 읽으실 만 할 겁니다.
('서재 결혼시키기'라는 책을 읽어보신 분은 그분이 얼마나 번역을 '제대로'
하는 분인가를 아실 수 있을 겁니다. ^^)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근동지방에 '야훼'라는 신을 믿는 종교가
생기기 전 수천년 동안 널리 퍼져있던 여신숭배신앙이, 어떻게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로 이어지는 남신숭배신앙으로 바뀌게 되었는가를
기술하고 있습니다. 신학적으로 동감하지 않더라도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꽤 흥미로울 내용이 많이 들어있습니다.
참고로 Stone은 신학자가 아니라 미술사가입니다.

그런데 오늘 책을 거의 다 읽어갈 무렵 마지막에 이런 구절이 나왔습니다.
(먼저 이 구절이 나온 배경을 설명하면, 아시다시피 미국 노예해방운동에는
남성운동가 뿐 아니라 여성운동가도 제법 있었습니다. 그들은 노예제도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런던의 국제회의에 대표를 파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남성 성직자들은 '여성이 교회에서 떠드는' 것의 부당함을 들어
런던 국제회의의 참석을 막았고, 결국 그들은 회의 석상에서는 얘기 한마디
하지 못한 채 커튼을 치고 뒤에 앉아 있었야만 했답니다. 여성운동가들은
이의 부당함에 저항하여 1848년의 여성독립선언문을 시작으로 다양한 여성운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 구절은 그런 여성운동의 핵심 활동가들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나왔습니다.)

1876년 처음으로 피임제 사용의 정당성을 주장했던 Annie Besant라는 운동가를
소개하며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Physical preventives at any time were regarded as against the will of God;
few people seemed to see any inconsistency between interfering with the course
of nature by preventing or curing disease, or building houses against the elements,
and yet refusing to interfere with the process of procreation.'

저 역시 가톨릭이다보니 낙태에 대해서는 부정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가톨릭에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낙태나 심지어는 글에서와 같이 피임에 대해서도
반대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 3억에 이르게 된 데에는
가톨릭계 이민의 유입이 늘어난 데 절대적으로 기인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구절을 읽고, 과연 현대 사회에서 피임이라는 것에 기독교가 가져야 하는
'바른' 시각이란 어떠해야 하는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가톨릭에 입문 당시 흔히 하는 교리 문답의 가장 첫번째 질문은 (요새는 어떤지
모릅니다. 저는 첫 영성체를 한지 20년이 넘으니까요. ^^)
'신은 왜 인간을 창조했는가' 입니다.
답은?

첫째, 자식을 낳아 번성하고
둘째, 하느님을 알아 모시기

위해서라고 배웁니다.

그만큼 자식을 낳아 키우고 번성하는 것은 하느님이 주신 권리이자 의무라고
배우는 거죠. 그런데 자식을 낳아 키우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키워보지는
않았지만 제 부모님을 생각하면 그럴 것 같습니다. ^^; 낳고도 키우지 못하는
사정도 생길 것이고 아예 낳을 사정도 못되는 경우도 있을 테지요.
그런 경우에도 무조건 낳으라고 성서는 가르칩니다.

그런데, 자연재해를 예방해 둑을 쌓고 질병을 두려워하며 예방주사를 맞는 일과
아이 낳을 사정이 되지 않아 피임을 하거나 낳아서 키울 사정이 되지 못해
낙태를 하는 것과 신학적으로 어떻게 다른 설명이 가능한지는 모르겠습니다.
물론 아이가 '재해'나 '질병'과 동격이 될 수는 없겠지요. 문제는 이론적 토대로
어떻게 피임이나 낙태의 금지를 합리화할 수 있느냐 하는 겁니다.

얼마전 모 대선후보가 장애인 낙태 운운해서 문제가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가톨릭의 무조건 낙태금지, 무조건 피임금지에 비해 개신교의 입장은 다른 건지,
아니면 다른 어떤 설명이 가능한지도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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