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교회에서 대표기도를 하게 된 적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하나님 아버지'나 '주님' 같은 표현 보다는 '당신'이라는 표현을 주로 쓰는 편입니다.
헬라어로 '수'를 어떻게 번역하고 칭해야하는지에 대한 고민의 결과물 입니다.
'당신'이라는 표현이 가지는 다양한 기의 때문인지 마땅하게 생각하지 않으신 목사님의 지적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뜻 중 스스로에 대한 극 존칭의 의미로 보자면 이처럼 적당한 칭호도 없어 보입니다.
2인칭 외에 '당신'이라는 칭호는 주체가 대상을 부르는 기표이 아니라 스스로가 스스로를 칭하는 의미가 되기에 인간의 신에 대한 칭호적 규정으로 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뜻에서 더욱그렇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교인들이 당연히 사용하고 있는 '아버지'나 '주님'의 경우 신을 인간의 위치로 격하시켜 칭하는 호칭이라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경우 가부장적 제도에서 권력의 중심인 아버지에 비유한 경우가 될 것이고, '주님'이라는 칭호 역시 노예제 사회에서의 주종관계에 빗대어 칭하는 경우이기 때문입니다.
이 두가지의 칭호는 인간이 신을 규정하여 칭하는, 즉 인간의 규정성이 신을 강제하는 상황을 발생시킵니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이러한 언어적 사용속에서 당연히 자리잡아 있는 가부장적 신과 인간을 주인으로 지배하는 신이 억압과 지배를 당연하게 기독교의 내용으로 강화시키고 고착화시키는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보아집니다.
무엇인가로 치장하지 않은 '하나님'이나 '예수님' 또는 '당신'으로 칭하는 것이 좋을 듯한데 생각들이 어떠하신지?
늦은 밤 머리복잡하게 해서 지송합니다.

당신이라는 단어가 완벽하지는 않아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참으로 호칭에 대한 어려움이 많은 나라입니다.
저는 길을 가다가 모르는분께는 가급적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씁니다. 여성에게도 말입니다.
하지만 확실하게 손아래사람으로 보이는 사람에게는 뭐라 부를 호칭이 마땅치 않더군요.. 가끔은 젊은이? 하고 부른답니다.^^
하나님어버이라는 말도 쓰자는 사람이 있지만 이는 대중적이지도 못할뿐 아니라 어색하고, 또 다른 시선을 느낄수 있는 단어이지요.. 주님이라는 단어는 아직 쓸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노예제를 떠나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적절히 표현하는것 같고요..
아래는 네이버사전을 옮긴것입니다.
목사님께서 말씀하시는 단어의 뜻은 사전에 없습니다.
하지만 1번과 4번의 교묘한 조합이 목사님이 말씀하시려는 뜻을 만들어 낼수는 있을것 같습니다.
만약 "하나님 당신" 이라고 사용하면 어떠할런지요.
사전에 나오지 않은 뜻이 하나 더 있습니다. 2번의 뜻과 비슷한데... 낮추어 본다는 의미보다 상관없는 자는 이야기할때 당신이라는 뜻을 사용하는것 같습니다. 나와 상관없는자, 관련없는자라는 의미의 당신은 나의 일에 참견해서는 안되는 존재라는 의미지요.
대명사
- 1 . 듣는 이를 가리키는 이인칭 대명사. 하오할 자리에 쓴다.
-
- 당신은 누구십니까?
- 당신 이름이 뭐요?
- 당신은 왜 이리도 내 마음을 몰라주나요?
- 내가 사랑하는 것은 처음부터도 당신뿐이었고 지금도 또 당신뿐이오. 이것만은 조금도 내 양심에 부끄럽지 않은 말이니 믿어 주오.출처 : 유진오, 화상보
- 즉각 집회를 열어 그야말로 만장일치로 당신을 추방하는 결의를 하겠소. 그리고 중앙에 보고를 할 것이니 당신은 당신대로 대항 조치를 하시오.출처 : 이병주, 지리산
- 사실이야 여하튼간에 일단 서에까지 같이 가서 따지자, 아까 당신네 집에 와서 행패를 부리고 간 녀석들은 분명히 그놈의 부하들일 것이다 …….출처 : 이문희, 흑맥
- 이 사람들은 밸도 없고 쓸개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성내지도 않고 울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무엇하러 당신같이 고운 맘씨 가진 사람이 아까운 일생을 망쳐야 합니까?출처 : 최인훈, 회색인
- 2 . 부부 사이에서, 상대편을 높여 이르는 이인칭 대명사.
- 3 . 맞서 싸울 때 상대편을 낮잡아 이르는 이인칭 대명사.
- 4 . ‘자기3’를 아주 높여 이르는 말.
언어도 피할수 없이 생성, 성장, 소멸을 합니다.
하나님이냐 하느님이냐의 논쟁처럼 결국 자리잡고 더 대중적인 단어가 살아남아 사용될것입니다. 자장면이든지 짜장면이든지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대표기도중에 하나님이나 주님을 대신해서 당신이라는 말을 사용했을 때,
일반 대중(신도)가 느끼는 감정은 부정적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것은 우리 삶속에서 나타나는 작용이기도 하잖아요.
일반적으로나 다툼이 있을 때나 쓰이는 당신이란 말도 어감이나 느낌이 부정적으로 다가오지 않나요?
정확히 당신의 의미를 파악하기보다는 현재 우리 삶에서 쓰이는 의미를 생각해보는 것이 좋지 않나 생각합니다.
예전에 저 또한 하나님 대신 당신이란 단어를 썼을 때 기분나쁜 감정을 갖은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좋아보입니다,
사람들이 모두 상황과 경험이 다르니 규정짓기는 힘들지만,
기분 나빠 할 것까지는 없는것 같기도 한데,
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은 안좋아 하실수도 있나보네요..

'주' '주님'의 칭호는 '종' 또는 '노예'에 대응되는 기표로 사용되어지는 표현입니다.
종과 노예의 의미로 '두로스(doulos)'라는 단어가 신약전체에서 127차례 등장합니다.
이중 바울이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중 47차례가 등장한다고 하는군요.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라는 형식의 표현을 쓸 때 사용되거나 성령을 받은 이들의 상태의 사람들 중 '종이든 자유인이든' 같은 상태에서 사용되어집니다.
물론 기의가 시대나 상황에 따라 변화하거나 다양한 의미를 지니기도 합니다만 당시에 사용되었던 의미로 본다면 dominus-despotes 즉 주인의 권력에 종속된 존재로 사용되어집니다. 당시에 매우 법률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바울의 경우 메시아적 사건의 결과로 신분의 폐지와 같은 상황을 기대하며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은 그 이후 '유예된 종말'을 통하여 여전히 종교적 전문성을 획득하지 못하고 맙니다. 즉, 법률적 강제성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의미입니다.
그 이후에 이러한 표현이 얼마나 종교적으로 정립되어졌는지도 불분명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오히려 권력으로의 예속으로 이러한 기표들이 편입해 들어감을 우려하게됩니다.
이에 이러한 표현들은 보다 분명히 정립되어져 사용되든지 아니면 폐기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떡진머리님 오랜만에 반가워요.
닥터케이님의 말씀에 덧대보다면, 이런 '당신'이라는 표현이 (불행히도) 일반적으로는 그런 극존칭이나 위의 4번의 의미로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새번역 주기도에서도 당신 대신 아버지란 표현으로 대체되어 표현되어 있는 걸로 압니다('당신'은 각주로 처리했죠). 저도 기도 시간에 간혹 당신이란 표현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얼마나 전달되고 있는지는 항상 의문입니다.
그것과는 별개로 '아버지'나 '주'라는 표현에 대한 판넨베르크의 요점을 말씀드리자면,
우리가 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거의 전적으로 예수께서 직접 그렇게 호칭을 사용한 데 기인하고 있는데요, 이는 가부장적 표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예수와 하나님에 대한 특별한 관게(성부-성자관계)의 표현입니다. 지적하신 것처럼 어쨋든지 이 표현이 강압으로 이해될 수도 있겠지만, 판넨베르크가 설명하듯 이 관계의 특별성(정확히는 성자의 성부로부터의 구별성)은 여전히 유효할 뿐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을 이해하는 데 핵심일 수 있을 겁니다.
'주'라는 표현 또한 주종관계로 단순화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고요, 바울이 '주'라는 표현을 쓰는 데는 오히려 그 표현(soter)에 함의된 "죽을 수 있는 우리의 생명이 새로운 생명으로 변화되도록 다시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기대"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빌3:20). 그렇게 판넨베르크는 조직신학 2권, 488에서 강조하고 있고요. 주님은 주권의 표현이고, 그것은 오시는 하나님 나라의 주권에 대한 인정이므로, 미래적이고 종말적인 표현이기도 할 겁니다.
아무튼지 아버지나 주라는 표현이 앞서 지적하신 것처럼 교회 내에서 잘못 사용되거나 오해되는 것이 없어야겠죠. 교회 지도자들이나 가르치는 자들의 몫이라 보고요, 폐기보단 그 전승된 용어들에 내포되어 있는 신학적 경건을 오늘날에도 계속 살려내는 작업이 이루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안목사님 반갑습니다.
그때 뜨거웠던 밤이 그립습니다. ㅎㅎㅎ
먼저 생각을 말씀드리기에 앞서 죄송한 말씀은 제가 판넨베르크에 대해서 아는 바가 거의 없다는 사실입니다.
바르트는 대학시절 책을 통하여 조금 접하였지만 요즘은 관심이 다른데 있어서 21세기의 신학자로 회자되는 판넨베르크에 대해서는 조직신학이라는 책을 썼다는 정도와 인터넷을 통하여 접한 내용이 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러하기에 다행인지 불행인지 판넨베르크의 권위가 저 같은 사람을 짓누를 가능성은 거의 없군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기표나 기의가 사용되는 사회의 상황을 벗어나 있지 않다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실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주' '종'의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사회의 신분관계가 실재로 그러한 관계로 형성되어져 있다면 이러한 기표에는 직접적으로 그 신분사회적 관계를 적시하는 기의가 있다고 보아집니다.
뿐만아니라 신의 성별을 단정하지 않았다면 '아버지'라는 표현 또한 예수와 하나님의 관계의 표현이라고 하였는데 '어머니'와 같은 다른 표현이 쓰여지지 않고 '아버지'라는 기표가 사용된 것으로만 보아도 그 속에는 가부장적 사회에 대한 기의가 잉여적으로 포함되어져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어쩌면 이러한 의미가 본래적일 수도 있습니다.
삼위의 관계가 부자의 관계로 표현된 것 또한 이러한 가부장적 관계의 인간적 표현이 인입된 것으로 보입니다.
왜 다른 관계가 아닌 부자의 관계로 표현되었는가 하는 것에 대한 물음입니다.
가부장제도가 강한 사회에서 이보다 더 상위의 유대관계에 대한 표현을 사용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현대사회나 혹은 미래사회를 이야기 한다면 부자관계만이 지고의 관계는 아닐 것입니다. 어쩌면 부자의 관계나 가족적 관계는 해체의 위기에 있는 상황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백년 쯤 후면 더욱 확실해 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수 또한 그 시대적 상황속에서 이야기 하였기에 '아버지'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만 그것이 시대나 사회를 언제나 가로질러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종교적 아집을 전제하지 않는다면 가능하지 않을 것입니다. 특히 인간의 언어를 통하여 표현되어졌다면 말입니다. 시대와 상황을 초월한 언어의 보편성을 기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조르지오 아겜벤에 의하면 'ebed'에베드라는 '노예'라는 헤브라이어가 셈어의 세계에서 획득될 수 이는 종교적 의미를 가진다고는 합니다만 이 종교적 의미조차 얼마나 사회적 신분체계를 희석시켰는지 의심이 갑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와는 다르게 'doulos'라는 법률적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의 메시아 사상에는 사회정치권력재편의 의미가 강하게 보입니다.
주권의 표현이라고 할 때도 종교적 의미라기 보다는 권력적 의미로 다가 옵니다.
바울의 '종'은 'doulos 두로스'로 명확히 'dominus-despotes 도미누스-데스포데스'라는 현재적 권력에 종속된 존재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인이 사용하는 일반적인 종을 이야기 하는 'oiketes 오이케테스'라는 의미와도 명확히 다릅니다.
불경하여 보입니다만 바울 역시도 사회적 신분관계를 자유롭게 벗어나서 그러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는 성서의 기자들이 모두 가지고 있는 당연한 시대적 사회적 문제일 것입니다.
문제는 당연하게 생각하면 될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에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성서에 있는 표현이 어느 시대나 사회를 떠나서 보편 타당한 것으로 보고자 하는 것이 오히려 문제를 어렵게 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저는 폐기보다는 전통의 재구성에 방점을 두고 싶네요. 다비아의 입장이기도 한데,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아마 다 잘 아시시라 생각되구요.
판넨베르크 인용은 권위에 호소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재구성의 한 방점이기도 한 신학자의 설명을 곁들인 것에 불과합니다. 이해 안 되시거나 관심 없으심 패스해도 상관 없는 문단입니다.
그리고 "종교적 아집"은 좀 아닌데^^; 신앙인이 자신의 교리나 신념, 신앙의 내용을 실현한다는 것은 겉껍질이 아니라 본질을 말하는 거죠. 아집은 전통의 겉껍질을 고수하는 사람들에게나 어울릴 것 같은데... 제 글이나 다비아의 여러 태도가 그렇게 보이시는 건가요?? 아무튼 말씀하신 그런 새로운 형식의 도래는 자유주의자들에 의해 이미 한바탕 벌인 얘긴데... 뭐 그럴수도 있다고 봅니다. 찬반토론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고요. 각자 역사를 살아내고 미래가 결정할 일이죠.^^이 문제는 토론의 꺼리라기보다는 삶의 실현 문제겠네요. 각자 갈길 가야죠 뭐 ㅎㅎ
오랜만에 반가웠습니다~
기도할 때 기도하는 자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1인칭과 2인칭의 관계이기에 "당신" 이라는 호칭이 하나님한테 어울리지 않다고 배웠습니다. 당신이 극존칭으로 쓰이는 경우(웃음님의 인용4번) 3인칭을 가리킬 때에만 사용하므로 기도할 때는 어울리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제3자에게 기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저는 미국에 살고 있어서 영어의 You (2인칭 존칭)를 번역하면 "당신" 이라는 단어밖에 없어서 , 어떨땐 참 곤란함을 느끼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 한국문법에서 "당신" 이라는 단어가 2인칭 존칭으로 확립되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것 같습니다. 그때까지는 문법을 지켜야 하는게 아닐런지요? 이러다가 "하나님 축복해 주시옵소서" 라는 어법에 맞지 않는 말도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이유로 맞다고 하는것은 아닌지요?
문제는, "당신" 이라는 어휘를 듣는 대중들이 그 깊은 뜻을 알지 못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대중들의 상당수는 "당신" 이라는 용어를 비속어 정도로 알고 있는 실정이니 말입니다. 예전에 어느 시인의 묘비에 추모사를 새기는데, 그 문장중에 "당신" 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 것을 보고 후손들이 격분해서 추모사를 쓴 분(이 분 역시 유명한 문인이라고 합니다) 에게 항의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어휘에 대한 개념이 서로 다른 상태에서 굳이 분란의 소지를 제공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