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 <열린 토론실>입니다. 다비안들의 부담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사랑채>와는 달리, 보다 진지하고 깊이있는 이야기나 주제를 나누고 싶은 분들을 위한 게시판입니다. 가급적 예의를 갖추시고 열린 마음으로 대화에 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울러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토론과 대화는 다비안을 비롯한 여러 네티즌들의 온라인 상에서의 자유로운 것이기에 그 방향과 정체성이 반드시 다비아와 일치하지는 않음을 밝혀둡니다.
글 수 253
[*이미 몇 번 올라온 화두입니다만, 다시 불 좀 붙여 보겠습니다.
본래, 다른 게시판의 댓글로 달았다가, 따로 빼서 여기에 올립니다]
허허, O님, 이것 보세요,
그래서, 제가 위의 댓글에서, 동성애애 대하여 진지하게 알아보라고 말씀드린 겁니다.
동성애는, 자의적인 선택이 아니라, 선천적인, 또는, 심리학적으로 유아기에 결정되는,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지향성입니다.
동물계에 10% 내외가 존재한댑니다.
그런데도, 죄가 됩니까?
그런데도, 동성애 때문에 자연 질서가 파괴됩니까?
타고난 것을 그리스도교에서는 죄라고 합니까?
아니면, 그렇게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불완전하시다는 건지요?
자녀 출산, 가정 형성을 말씀하시려면,
독신을 권장한 사도 바오로부터 정죄하십시오.
천주교 신부님들, 수녀수사님도 욕하세요.
그리고 무엇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가장 원초적인 감정입니다.
즉, 이성으로 통제되지 않는 불가항력적인 문제라는 겁니다.
이성애와 결혼이라는 사회 제도의 법적 정당성 아래에서,
가부장적 지배종속 구도, 부부간의 폭력,
원치 않는 성관계와 성적 착취,
(부부간에도 강간이 성립한다는 게 최근의 법조계, 법학계의 조류인 것 같습니다)
서로의 필요성, 외모, 물질, 쾌락에 따라가는 왜곡된 사랑,
이러한 사랑은 이성애이고 부부관계니 문제가 덜 되고,
설령, 동성간의 사랑이라 하더라도,
정말 나보다 그를 더 낫게 여기고 헌신하는 참된 사랑이라 하더라도,
동성애니까 돌로 쳐죽일 죄가 되는,
그런 겁니까?
동성애를 간음으로 보다니, 기가 찰 노릇입니다.
물론, 동성애 안에서도 동성간의 간음은 있습니다. 널렸지요.
하지만, 동성애가 사회적 제도와 관습으로 용인받지 못하기에,
모든 동성애는 '간음'이다,
그런 논리로, 동성애가 간음이라 본다면, 그건 안 될 말이지요.
하물며, 동성애는 변태적 성 취향이니 추악하다, 성서에 위배된다,
그런 얄팍한 논리라면 더 말할 가치도 없습니다.
동성애라는 '실체'에 대하여 알려고 노력하지도 않으면서
뭔 동성애가 이렇다저렇다 논하는지.. 교만하게.
동성애에 대하여 알려는 자세는 고사하고,
그리스도교는 무엇을 '죄'라 하는가,
'사랑'이란 어떠한 현상인가에 대하여조차
(이것은 곧 자신에 대한 솔직한 성찰일 것입니다)
그리 진지하게 성찰하려 들지 않는다는 게,
보수근본주의자들에 대한 저의 느낌입니다.
똑똑히 알아 두십시오.
O님이 출석하시는 교회에도 동성애자 분은 틀림없이! 계십니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시는 분들이,
왜 이사람 저사람 교회 밖으로 밀쳐내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동성애가 패륜이라는 소리는, 대놓고 너 나가라는 말 이상입니다)
그들은 구원받을 자격도 없는 사람입니까?
저는 근본주의자들의 이러한 율법주의에,
치가 떨립니다.
겉으로는 복음에 충실합네 하지만,
한 꺼풀만 벗겨보면, 복음을 욕되게 하는 반복음!
본래, 다른 게시판의 댓글로 달았다가, 따로 빼서 여기에 올립니다]
허허, O님, 이것 보세요,
그래서, 제가 위의 댓글에서, 동성애애 대하여 진지하게 알아보라고 말씀드린 겁니다.
동성애는, 자의적인 선택이 아니라, 선천적인, 또는, 심리학적으로 유아기에 결정되는,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지향성입니다.
동물계에 10% 내외가 존재한댑니다.
그런데도, 죄가 됩니까?
그런데도, 동성애 때문에 자연 질서가 파괴됩니까?
타고난 것을 그리스도교에서는 죄라고 합니까?
아니면, 그렇게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불완전하시다는 건지요?
자녀 출산, 가정 형성을 말씀하시려면,
독신을 권장한 사도 바오로부터 정죄하십시오.
천주교 신부님들, 수녀수사님도 욕하세요.
그리고 무엇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가장 원초적인 감정입니다.
즉, 이성으로 통제되지 않는 불가항력적인 문제라는 겁니다.
이성애와 결혼이라는 사회 제도의 법적 정당성 아래에서,
가부장적 지배종속 구도, 부부간의 폭력,
원치 않는 성관계와 성적 착취,
(부부간에도 강간이 성립한다는 게 최근의 법조계, 법학계의 조류인 것 같습니다)
서로의 필요성, 외모, 물질, 쾌락에 따라가는 왜곡된 사랑,
이러한 사랑은 이성애이고 부부관계니 문제가 덜 되고,
설령, 동성간의 사랑이라 하더라도,
정말 나보다 그를 더 낫게 여기고 헌신하는 참된 사랑이라 하더라도,
동성애니까 돌로 쳐죽일 죄가 되는,
그런 겁니까?
동성애를 간음으로 보다니, 기가 찰 노릇입니다.
물론, 동성애 안에서도 동성간의 간음은 있습니다. 널렸지요.
하지만, 동성애가 사회적 제도와 관습으로 용인받지 못하기에,
모든 동성애는 '간음'이다,
그런 논리로, 동성애가 간음이라 본다면, 그건 안 될 말이지요.
하물며, 동성애는 변태적 성 취향이니 추악하다, 성서에 위배된다,
그런 얄팍한 논리라면 더 말할 가치도 없습니다.
동성애라는 '실체'에 대하여 알려고 노력하지도 않으면서
뭔 동성애가 이렇다저렇다 논하는지.. 교만하게.
동성애에 대하여 알려는 자세는 고사하고,
그리스도교는 무엇을 '죄'라 하는가,
'사랑'이란 어떠한 현상인가에 대하여조차
(이것은 곧 자신에 대한 솔직한 성찰일 것입니다)
그리 진지하게 성찰하려 들지 않는다는 게,
보수근본주의자들에 대한 저의 느낌입니다.
똑똑히 알아 두십시오.
O님이 출석하시는 교회에도 동성애자 분은 틀림없이! 계십니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시는 분들이,
왜 이사람 저사람 교회 밖으로 밀쳐내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동성애가 패륜이라는 소리는, 대놓고 너 나가라는 말 이상입니다)
그들은 구원받을 자격도 없는 사람입니까?
저는 근본주의자들의 이러한 율법주의에,
치가 떨립니다.
겉으로는 복음에 충실합네 하지만,
한 꺼풀만 벗겨보면, 복음을 욕되게 하는 반복음!
2007.03.03 13:01:45
최근에 SBS에서 "사랑" 이라는 제목으로 특집 일요 스페셜을 방영한 적이 있습니다... 보신분들도 있으실거에요.. 거기에 영국의 남자 동성 커플이 나왔습니다... 두 분 다 연로하신 분이었는데, 한 분은 학교 교장으로 퇴직하고, 한 분은 공직에 계셨던 분인데... 첨엔 약간 거부감이 들기도 했지만, 두 분의 진실한 사랑에 눈시울이 촉촉해졌었습니다...
다음 생에 태어나도 두 분이 다시 만날 것입니까? 하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당연하다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한 분이 농담으로 "담 생에서도 나 같은 사람 만날 수 있겠어?" 하니깐, 다른 한 분이 "아니" 하셨고...
그리고 건강이 안좋은 한 분은 이제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밖에서 말을 먹이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저 사람이 없는 나는 생각할 수 없는데...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 하면서 울먹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너무 아름답고 슬프다는 느낌... 오히려 그 모습을 보고 " 저 두 사람은 지옥의 자식이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솔직히 겪어보지 않고는 그 누구도 어떻다 판단 못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음 생에 태어나도 두 분이 다시 만날 것입니까? 하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당연하다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한 분이 농담으로 "담 생에서도 나 같은 사람 만날 수 있겠어?" 하니깐, 다른 한 분이 "아니" 하셨고...
그리고 건강이 안좋은 한 분은 이제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밖에서 말을 먹이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저 사람이 없는 나는 생각할 수 없는데...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 하면서 울먹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너무 아름답고 슬프다는 느낌... 오히려 그 모습을 보고 " 저 두 사람은 지옥의 자식이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솔직히 겪어보지 않고는 그 누구도 어떻다 판단 못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2007.03.03 13:42:06
정목사님 Q.T에 댓글 다신 분은
동성애가 '인간다움'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하던데..
또한 동성애 자체를 정죄 해야 한다는 용감한 말씀을 하시던데..
정말 억장이 무너지네요.
인간다움을 논하기 전에 그 '인간'자체를
제대로 이해나 하시는지 원 이거야~
동성애가 '인간다움'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하던데..
또한 동성애 자체를 정죄 해야 한다는 용감한 말씀을 하시던데..
정말 억장이 무너지네요.
인간다움을 논하기 전에 그 '인간'자체를
제대로 이해나 하시는지 원 이거야~
2007.03.03 15:08:11
유치한지는 모르지만 "이순신 장군을 비롯한 우리 조상들은 구원받았을까?" 와같은 질문에 대해서 단호하고 확정적으로 "아니다" 라고 답하는 근본주의 신앙의 무모한 단순성은 흡사 고전 물리학적인 개념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을 굳이 고전 물리학으로 설명하려는 만용과도 같아 보입니다... 동성애에 대한 태도도 같은 맥락이겠죠...
2007.03.03 17:34:03
이 문제는 '동성애'를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상이한 해석이 가능합니다.
동성애는 타고난 본성이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동성애를 옹호하는 이들이 주로 언급하는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동성애자들이 아직 소수이고 약자이니
그들을 정죄하는 일은 기독교 정신에 위배된다는 의견이지요.
당연한 의견입니다.
죄인이 죄인을 정죄하는 오류에 대한 지적은 예수님도 하셨습니다.
이점에서 '동성애자들이 감히 예베를 참석하다니' 식의
정죄는 옳지 않지요.
그런데 문제는 동성애가 타고난 본성이 아닌
시대의 조류 혹은 문화적인 영향이라 보는 경우라면 시각이 달라집니다.
유전자의 돌연변이로서 타고난 것인가 아니면
출생 후에 후천적으로 형성된 경향인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이유는 동성애자들의 증가입니다.
혹시 인구 성장률을 넘어선 증가라면,
혹은 무명제님이 언급한 '동물의 10%'를 넘어서려는 경향으로 치닫고 있는 경우라면,
나이브한 인류애의 차원에서만 볼 수 없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 할수 있을 가요?
지금 현실이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 추세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전에 10%의 유전자가 진화내지 돌연변이로서
출현 할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작업이 필요하겠지요.
이 문제는 전문가들의 몫이니 생략합니다.
후자를 지지하는 저로서는
근래에 보이는 동성애자들의 급격한 증가를 미디어의 영향이라 보고있습니다.
자본주의에 입각한 미디아의 주도에 무 방비하게 노출되고 있는
시대의 경향에 기반한 결과가 아닐가라고 말이지요.
그럼 이같은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에 떠밀려 가는
하나의 현상으로 나타나는 동성애 확대라는 경향을 보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길 기원하는 기독교인이 견지해야 할 태도는 무엇일까요?
그저 세월가는 대로 흐르는 대로 가만히 지켜만 보자고 할수 있을가요?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역사의 흐름에 인간이 나서서 그 방향을 틀어 보자는 말이 아닙니다.
운명론 적인 방치가 종말을 향한 열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동성애자를 정죄하느냐 마느냐의 차원이 아니라는 의견입니다.
동성애는 타고난 본성이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동성애를 옹호하는 이들이 주로 언급하는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동성애자들이 아직 소수이고 약자이니
그들을 정죄하는 일은 기독교 정신에 위배된다는 의견이지요.
당연한 의견입니다.
죄인이 죄인을 정죄하는 오류에 대한 지적은 예수님도 하셨습니다.
이점에서 '동성애자들이 감히 예베를 참석하다니' 식의
정죄는 옳지 않지요.
그런데 문제는 동성애가 타고난 본성이 아닌
시대의 조류 혹은 문화적인 영향이라 보는 경우라면 시각이 달라집니다.
유전자의 돌연변이로서 타고난 것인가 아니면
출생 후에 후천적으로 형성된 경향인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이유는 동성애자들의 증가입니다.
혹시 인구 성장률을 넘어선 증가라면,
혹은 무명제님이 언급한 '동물의 10%'를 넘어서려는 경향으로 치닫고 있는 경우라면,
나이브한 인류애의 차원에서만 볼 수 없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 할수 있을 가요?
지금 현실이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 추세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전에 10%의 유전자가 진화내지 돌연변이로서
출현 할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작업이 필요하겠지요.
이 문제는 전문가들의 몫이니 생략합니다.
후자를 지지하는 저로서는
근래에 보이는 동성애자들의 급격한 증가를 미디어의 영향이라 보고있습니다.
자본주의에 입각한 미디아의 주도에 무 방비하게 노출되고 있는
시대의 경향에 기반한 결과가 아닐가라고 말이지요.
그럼 이같은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에 떠밀려 가는
하나의 현상으로 나타나는 동성애 확대라는 경향을 보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길 기원하는 기독교인이 견지해야 할 태도는 무엇일까요?
그저 세월가는 대로 흐르는 대로 가만히 지켜만 보자고 할수 있을가요?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역사의 흐름에 인간이 나서서 그 방향을 틀어 보자는 말이 아닙니다.
운명론 적인 방치가 종말을 향한 열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동성애자를 정죄하느냐 마느냐의 차원이 아니라는 의견입니다.
2007.03.04 16:36:01
균형님의 의견은, 단지 성서의 문자에 근거한
여느 보수주의 견해보다는 개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뵈옵기에, 아직도 '나이브한'(균형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점이 보인다고 감히 지적하고 싶습니다.
과연, 말씀하신 바대로, 동성애자 분들이 늘어나고는 있습니다.
(그래도, 과연 인구 대비 몇 %나 되겠습니까?
동성애에 개방적인 유럽, 미국이라고 과연 얼마나 될까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동성애를 관용하면, 출산이라는 자연 질서가 붕괴한다는
보수주의자들의 호들갑은, 오버도 너무 오버입니다.
아무리 동성애를 허용하고 개방하더라도,
이성애 지향성을 가진 대다수의 사람들은, 동성애에 관심도 없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볼 필요가 있지요.
지금도 역시 그러하겠습니다만, 억압적인 사회 안에서,
자신이 동성애 성향인지도 모르고, 또는 무의식중에
자신을 억누르며 사는 분들이 더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동성애자로 살고 계신 분들 중의 대다수조차도,
사회와 문화, 역사에 의해 길들여진 '호모포비아'적 죄악감에
시달리고 있거든요.
저는 개신교우, 천주교우 동성애자 분들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분들의 모임 및, 주재하는 목사님 등과도 안면이 있지요.
때문에, 웬만큼 '실제적'으로 안다고 자부합니다.
인권의식이 신장되고, 정보 혁명으로 말미암아,
자신들의 성적 지향성을 자각하고,
조금씩 나아지는 사회의 분위기에 용기를 얻어
동성애자로 살기 시작하는 거라고 봅니다.
그리고,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하기 이전부터도,
종로, 이태원 등에는 동성애자 분들이 찾는 업소들이 옛날부터 많았습니다.
('이반 bar'라 하죠. 윤락을 알선하는 룸살롱 같은 곳도 있겠습니다만,
좁은 데서 간단히 안주에 술 정도 하면서,
밖에서 못 하는 얘기 나누는 데가 거의 대부분입니다)
물론, 균형님께서 언급하셨듯이,
종로와 이태원, 인터넷의 동성애자 사교 사이트 등을 찾는 분들 가운데,
성적 쾌락을 위해, 이성애자이면서 동성과의 육체적 관계를 바라는 경우도
있긴 있습니다.
인권의식의 신장과, 자본주의가 자극하는 쾌락과 선정성,
이 두 가지가 뒤섞인 양상 속에서,
색다른 쾌락을 찾기 위해 그 흐름에 묻혀가는 사람들도 꽤 있구요.
좀 더 근본적인 얘기를 하자면요,
동성애가 사회도덕률로 패륜의 지탄을 받으므로,
동성애자들은 드러나게 당당한 사랑을 나누지 못하고,
그늘진 곳으로 숨어들게 됩니다.
순수하게 동성애 지향적인 분들의 사랑도,
이러한 억압적 사회구조 때문에 대단히 왜곡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동성애자들은 애인이 자주 바뀐다지요.
길고 진득한 사랑을 하기 힘들댑니다.
그들을 규정하고 있는 사회라는 환경을 생각할 때,
그럴 수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깊고 긴 사랑을 나누지 못하고,
(동성애자 분들이 가장 목말라하는 게 바로 이것입니다)
애인이 자주 바뀌는 양상을 보고, 사람들은,
저 봐라, 역시 동성애자들은 쾌락만 좇는 성도착자들이야!
라는, 손가락질의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지요.
(글쎄요, 제가 만나본 분들이 다 그리스도인 동성애자들이라서
좀 더 '도덕적'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남자끼리, 여자끼리 사랑을 나누는 것 말고는,
여느 건전한 애정 관계와 전혀 다를 바가 없더군요.
서로 아껴주고, 하는 공부도 도와주며 기도해주는,
주일에는 성당, 교회도 함께 나가는, 아름다운 경우가 많습니다)
균형님께서는 "방치"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동성애를 이해하고 품어주자는 의견이,
대책없는 다원주의, 방임주의가 아닙니다.
그들의 인간다움과 진실된 사랑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사회적 여건으로 조금씩 더 나아가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성애라는 현상의 실제에 대하여
직접 체험하거나 관찰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렇다저렇다 말하는 건 오류에 빠질 위험이 크다고 보며,
제가 균형님께 결례를 무릅쓰고 '나이브'하시다고 되받아쳤듯이,
표면만 보고 단정짓는,
자칫하다, 소피님의 위의 댓글처럼,
'확인사살'하는 잔인함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느 보수주의 견해보다는 개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뵈옵기에, 아직도 '나이브한'(균형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점이 보인다고 감히 지적하고 싶습니다.
과연, 말씀하신 바대로, 동성애자 분들이 늘어나고는 있습니다.
(그래도, 과연 인구 대비 몇 %나 되겠습니까?
동성애에 개방적인 유럽, 미국이라고 과연 얼마나 될까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동성애를 관용하면, 출산이라는 자연 질서가 붕괴한다는
보수주의자들의 호들갑은, 오버도 너무 오버입니다.
아무리 동성애를 허용하고 개방하더라도,
이성애 지향성을 가진 대다수의 사람들은, 동성애에 관심도 없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볼 필요가 있지요.
지금도 역시 그러하겠습니다만, 억압적인 사회 안에서,
자신이 동성애 성향인지도 모르고, 또는 무의식중에
자신을 억누르며 사는 분들이 더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동성애자로 살고 계신 분들 중의 대다수조차도,
사회와 문화, 역사에 의해 길들여진 '호모포비아'적 죄악감에
시달리고 있거든요.
저는 개신교우, 천주교우 동성애자 분들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분들의 모임 및, 주재하는 목사님 등과도 안면이 있지요.
때문에, 웬만큼 '실제적'으로 안다고 자부합니다.
인권의식이 신장되고, 정보 혁명으로 말미암아,
자신들의 성적 지향성을 자각하고,
조금씩 나아지는 사회의 분위기에 용기를 얻어
동성애자로 살기 시작하는 거라고 봅니다.
그리고,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하기 이전부터도,
종로, 이태원 등에는 동성애자 분들이 찾는 업소들이 옛날부터 많았습니다.
('이반 bar'라 하죠. 윤락을 알선하는 룸살롱 같은 곳도 있겠습니다만,
좁은 데서 간단히 안주에 술 정도 하면서,
밖에서 못 하는 얘기 나누는 데가 거의 대부분입니다)
물론, 균형님께서 언급하셨듯이,
종로와 이태원, 인터넷의 동성애자 사교 사이트 등을 찾는 분들 가운데,
성적 쾌락을 위해, 이성애자이면서 동성과의 육체적 관계를 바라는 경우도
있긴 있습니다.
인권의식의 신장과, 자본주의가 자극하는 쾌락과 선정성,
이 두 가지가 뒤섞인 양상 속에서,
색다른 쾌락을 찾기 위해 그 흐름에 묻혀가는 사람들도 꽤 있구요.
좀 더 근본적인 얘기를 하자면요,
동성애가 사회도덕률로 패륜의 지탄을 받으므로,
동성애자들은 드러나게 당당한 사랑을 나누지 못하고,
그늘진 곳으로 숨어들게 됩니다.
순수하게 동성애 지향적인 분들의 사랑도,
이러한 억압적 사회구조 때문에 대단히 왜곡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동성애자들은 애인이 자주 바뀐다지요.
길고 진득한 사랑을 하기 힘들댑니다.
그들을 규정하고 있는 사회라는 환경을 생각할 때,
그럴 수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깊고 긴 사랑을 나누지 못하고,
(동성애자 분들이 가장 목말라하는 게 바로 이것입니다)
애인이 자주 바뀌는 양상을 보고, 사람들은,
저 봐라, 역시 동성애자들은 쾌락만 좇는 성도착자들이야!
라는, 손가락질의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지요.
(글쎄요, 제가 만나본 분들이 다 그리스도인 동성애자들이라서
좀 더 '도덕적'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남자끼리, 여자끼리 사랑을 나누는 것 말고는,
여느 건전한 애정 관계와 전혀 다를 바가 없더군요.
서로 아껴주고, 하는 공부도 도와주며 기도해주는,
주일에는 성당, 교회도 함께 나가는, 아름다운 경우가 많습니다)
균형님께서는 "방치"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동성애를 이해하고 품어주자는 의견이,
대책없는 다원주의, 방임주의가 아닙니다.
그들의 인간다움과 진실된 사랑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사회적 여건으로 조금씩 더 나아가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성애라는 현상의 실제에 대하여
직접 체험하거나 관찰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렇다저렇다 말하는 건 오류에 빠질 위험이 크다고 보며,
제가 균형님께 결례를 무릅쓰고 '나이브'하시다고 되받아쳤듯이,
표면만 보고 단정짓는,
자칫하다, 소피님의 위의 댓글처럼,
'확인사살'하는 잔인함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2007.03.04 18:09:19
저와 함께 식당에서 일하고 있는 어느 동남아 출신 친구들은
자기네 나라는 동성애자들이 단 한 명도 없다네요.
만약 그런 놈들이(*그 친구들의 표현입니다^^) 있다면
동네 사람들한테 맞아 죽을거라고 확신합디다.
그래서 "진짜로 없을까?" 했더니
동그란 눈을 더 크게 치켜뜨면서
"우리 나라에는 없대두......" 하더군요.
제가 뭐라고 했을까요?
그냥 허허하고 웃어 주었지요......
70년대와 80년대 그렇게 추었던 시절에
그 분들은 더욱 동토의 세월을 보냈을거예요.
개고기 먹는 나라 사람이라고 저를 놀리는
피부가 하얀 인간들을 보면 막 때려주고 싶던데,
동성애자들은 그들에게 대해서 편견을 가진 이들에게 어떤 마음을 품고 있을까요?
......
자기네 나라는 동성애자들이 단 한 명도 없다네요.
만약 그런 놈들이(*그 친구들의 표현입니다^^) 있다면
동네 사람들한테 맞아 죽을거라고 확신합디다.
그래서 "진짜로 없을까?" 했더니
동그란 눈을 더 크게 치켜뜨면서
"우리 나라에는 없대두......" 하더군요.
제가 뭐라고 했을까요?
그냥 허허하고 웃어 주었지요......
70년대와 80년대 그렇게 추었던 시절에
그 분들은 더욱 동토의 세월을 보냈을거예요.
개고기 먹는 나라 사람이라고 저를 놀리는
피부가 하얀 인간들을 보면 막 때려주고 싶던데,
동성애자들은 그들에게 대해서 편견을 가진 이들에게 어떤 마음을 품고 있을까요?
......
2007.03.04 18:36:43
무명제님,
님의 친절한 설명을 읽고 왠지 말 걸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새로운 시각을 제안 받는 느낌이지요.)
나름의 경험내지는 환경이 사고에 영향을 끼칠수 밖에 없겠지요.
이점에서 저 역시 자유롭지 못함은 사실입니다.
밀 나온 김에 저의 간접경험을 잠시 업급하지요.
우선 일본의 동성애문제를 다룬 다큐(bbc) 였습니다.
P.D의 의도 인지는 몰라도...
껄렁한(?) 일본 청소년 여자 아이들 세계를 다루는 내용인데
힘의 우위에 서있는 아이가 남편의 흉내를 내고
서열상 밑에 있는 아이들은 여성의 역활을 자임하는 시대의 풍토를 지적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남아선호에 찌든 여자이들의 불만이 이러한 방식으로 표현되는 경우를 제시한 것이지요.
기자는 이를 동성애에 관한 나이브한 풍조가 끼치는 영향이 아닌가 암시하더군요.
한편의 비디오라고 치부하기에는 많은 시사점을 던지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문제를 두고 당시 청강하던 사회학 선생님과 토론한 적도 있고요.
다음은 다원주의에 기반한 동성애가 점차 미화되는 한국사회의 예 입니다.
저는 그 중요한 근거를 지금의 미디어라고 보는 것이고요.
자우 민주주의의 최대 권력이라 평가되는 미디어는 과히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명제는 오직 생존이고 경쟁이지요.
사회견인이라는 구호는 가당치 않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질문해야 겠지요.
이 시대는 그 영향으로 부터 자유로운가?
솔직한 자기 공개라는 미명하에
그들이 주도하는 '성'에 대한 개방풍조가 양산해내는 부작용에 대해서는
굳이 실예내지 통계치를 들지 않아도 잘 아시리라 생각됩니다.
문제는 이러한 풍조로 부터 우리 아이들이 자유롭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정죄'라는 기조를 계속 유지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이제는 보편으로 치닫는 징후를 감지하기에,
흘러가는 시대의 현상으로
혹은 소수자의 인권이라는 측면에서 만이 아니라
미래 지향으로 시각을 넓혀 보자는 의도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당시 유대사회에 정식 멤버로 활동하지 못했던
앉은뱅이, 문중병자, 간음한 여인에게 다가 가심으로
왜곡된 기득권에 반대하셨지요.
그들의 한계를 해결해주시는 것만이 아니라
궁극적인 영생으로 초대하신 주님의 방식을 따라야 하는
이 시대의 신앙인이 갖어야 할 자세는무엇 일까요?
동성애가 미화되는 시대적인 경향의 피해자인 동성애 지향주의에겐 환기가 필요할 것이고
생래적인 동성애분들에겐 진정어린 마음으로 다가서려는 노력이 필요하겟지요.
이점에서 동성애에 대한 우려라는 가시적인 태도에 대한 대응으로서 옹호라면
나이브하다고 본 것입니다.
동성애에 대한 일반적인 정죄의 차원에서
이제는 이해와 도움으로 발전되기를 저도 재촉합니다.
그 토대로서 필요한 것이 동성애가 동성애자들의 구분이라고 보는 것이지요.
그 같은 태도가 '확인사살'이 아닌
오히려 그들을 돕고 나아가 자본에 기댄 미디어가 지배하는
이 시대적인 경향에 이의를 제기하는 과정에 필요한 수순이라 보는 것입니다.
* 아~~ 이런 방법이 있었군요.
이곳은 벌써 새벽입니다.
이제 잠자리에 들시간,
의사는 전달했다고 보고요.
(가능하시다면 운영자 님께서 수정할수 있도록 해주셨으면 좋겠네요.)
의견 기다리며
그럼 이만~~
님의 친절한 설명을 읽고 왠지 말 걸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새로운 시각을 제안 받는 느낌이지요.)
나름의 경험내지는 환경이 사고에 영향을 끼칠수 밖에 없겠지요.
이점에서 저 역시 자유롭지 못함은 사실입니다.
밀 나온 김에 저의 간접경험을 잠시 업급하지요.
우선 일본의 동성애문제를 다룬 다큐(bbc) 였습니다.
P.D의 의도 인지는 몰라도...
껄렁한(?) 일본 청소년 여자 아이들 세계를 다루는 내용인데
힘의 우위에 서있는 아이가 남편의 흉내를 내고
서열상 밑에 있는 아이들은 여성의 역활을 자임하는 시대의 풍토를 지적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남아선호에 찌든 여자이들의 불만이 이러한 방식으로 표현되는 경우를 제시한 것이지요.
기자는 이를 동성애에 관한 나이브한 풍조가 끼치는 영향이 아닌가 암시하더군요.
한편의 비디오라고 치부하기에는 많은 시사점을 던지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문제를 두고 당시 청강하던 사회학 선생님과 토론한 적도 있고요.
다음은 다원주의에 기반한 동성애가 점차 미화되는 한국사회의 예 입니다.
저는 그 중요한 근거를 지금의 미디어라고 보는 것이고요.
자우 민주주의의 최대 권력이라 평가되는 미디어는 과히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명제는 오직 생존이고 경쟁이지요.
사회견인이라는 구호는 가당치 않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질문해야 겠지요.
이 시대는 그 영향으로 부터 자유로운가?
솔직한 자기 공개라는 미명하에
그들이 주도하는 '성'에 대한 개방풍조가 양산해내는 부작용에 대해서는
굳이 실예내지 통계치를 들지 않아도 잘 아시리라 생각됩니다.
문제는 이러한 풍조로 부터 우리 아이들이 자유롭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정죄'라는 기조를 계속 유지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이제는 보편으로 치닫는 징후를 감지하기에,
흘러가는 시대의 현상으로
혹은 소수자의 인권이라는 측면에서 만이 아니라
미래 지향으로 시각을 넓혀 보자는 의도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당시 유대사회에 정식 멤버로 활동하지 못했던
앉은뱅이, 문중병자, 간음한 여인에게 다가 가심으로
왜곡된 기득권에 반대하셨지요.
그들의 한계를 해결해주시는 것만이 아니라
궁극적인 영생으로 초대하신 주님의 방식을 따라야 하는
이 시대의 신앙인이 갖어야 할 자세는무엇 일까요?
동성애가 미화되는 시대적인 경향의 피해자인 동성애 지향주의에겐 환기가 필요할 것이고
생래적인 동성애분들에겐 진정어린 마음으로 다가서려는 노력이 필요하겟지요.
이점에서 동성애에 대한 우려라는 가시적인 태도에 대한 대응으로서 옹호라면
나이브하다고 본 것입니다.
동성애에 대한 일반적인 정죄의 차원에서
이제는 이해와 도움으로 발전되기를 저도 재촉합니다.
그 토대로서 필요한 것이 동성애가 동성애자들의 구분이라고 보는 것이지요.
그 같은 태도가 '확인사살'이 아닌
오히려 그들을 돕고 나아가 자본에 기댄 미디어가 지배하는
이 시대적인 경향에 이의를 제기하는 과정에 필요한 수순이라 보는 것입니다.
* 아~~ 이런 방법이 있었군요.
이곳은 벌써 새벽입니다.
이제 잠자리에 들시간,
의사는 전달했다고 보고요.
(가능하시다면 운영자 님께서 수정할수 있도록 해주셨으면 좋겠네요.)
의견 기다리며
그럼 이만~~
2007.03.04 19:55:36
저 또한, 대단히 유익한 토론의 기회를 갖게 되어 참 기쁩니다^^
균형님께서 저의 말을 귀담아 들어 주신 것에 대해서도 감사드립니다^^*
말씀하신 바대로, 경험과 환경은 중요합니다만,
그것으로 규정된다는 단점 또한 있습니다.
더 폭넓은 경험(간접경험을 포함한)과 반성적 사유,
그리고 최종적으로, 자신의 세계와 아집에 갇히지 않고,
하느님 나라와 어떻게 맥락적으로 연계되며,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
이러한 것들이 뒷받침되어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BBC 다큐멘터리에서 보신 것처럼,
동성애 관계 가운데서도 이성애와 똑같은 현상이 흔합니다.
남성간의 동성애에 있어,
전통적인 남성의 역할(동성애 은어로 공, 때짜, 탑),
여성의 역할(수, 마짜, 바텀)로 나눠지는 경우가 많죠.
이것은 성관계 시의 역할을 말하는 건데,
물론, 두 연인이 평등한 관계로
서로 역할을 번갈아 하는 사이도 많습니다.
여성간의 동성애에서도,
남성 역을 맡는 부치, 여성 역인 팸으로 나누는데요,
이것은, 균형님께서도 "서열"이라 지적하셨듯이,
이성애의 남성우월적 지배종속 구도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라 봐도 될 것입니다.
동성애라는 것은, 단지 성적인 지향성이
동성에게 쏠린다는 것이지,
지금껏 살면서 주입되어 온 사회적 틀과 가치기준은,
똑같다는 말이 됩니다.
그래서, 제가 위의 댓글에서,
동성애자들 역시 '호모포비아'적 자의식에
시달린다 했던 거구요.
그래서, 많은 동성애자 지식인들은,
이성애적 지배종속 구도를 왜 동성애자들마저 반복하는가,
그래선 안 되며, 타파해야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요.
즉, 말씀하신 지배종속 구도는,
동성애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이성애적, 가부장적, 패권주의적 폐단이라고 봐야 옳겠습니다.
동성애라는, 일견 성차별 없는
평등해 보이는 애정 관계 가운데서도,
기존의 지배종속 구도는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힘과 지배, 억압, 착취가
인류 문명에 얼마나 뿌리깊게 박혔는지 알 수 있습니다.
동성애에서조차 이러하니,
새삼스러운 재발견인 게지요.
미디어의 문제는 정말 중요한 지적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역시, 위의 언급과 이어지는 맥락일 것입니다.
미디어들이 미끼로 내거는 성적 자극,
이것이 설령 동성애적 자극이라 할지라도,
여성의 성상품화라는 가부장적, 지배, 억압적 이데올로기의
연장이라는 점을 많은 사회학자들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정복하려 드는 가부장적 성향의 동성애자 남자가 탑의 역할을 맡고,
그보다 어리거나 힘이 약하면 바텀이 되는 것,
이러한 지배-피지배 구도가 미디어의 차원으로 연장되면,
여성의 상품화의 연장으로서,
남성의 동성애 코드 상품화로 이어지는 거지요.
오래 전부터 휩쓸고 있는 미소년 신드롬,
이쁘장하고 여성스러운, 연약해 보이는 남자가 인기를 끄는 것,
이러한 맥락 아닐까요?
설령, 그렇지 않은 경우의 동성애 코드라 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구매력을 가진 소비자는 우위에 있고,
자본은 그 비위를 맞춰주니까,
여기서도 사회적인 차원의 탑-바텀의 구도가 재현되는 겁니다.
물론, 동성애에 대한 편견과 차별, 억압에 대한,
정당한 항의로서의 영화, 드라마 등까지 도매끔으로 매도할 수는 없겠지요.
"이제는 보편으로 치닫는 징후를 감지하기에"라고 하셨는데,
저는, 기우라고 봅니다.
인권이 신장되고 인간과 생명 등의 가치가 회자된 것,
우리나라의 경우 불과 최근입니다.
지금은 과도기이고, 그러한 와중에,
가치관의 혼란과,
이에 편승한 미디어의 장삿속이 판치는 상황이 아닐까 싶네요.
미디어의 독재(제4권력을 넘어, 가히 독재라 할만합니다)는
정말 우려할 만하죠. 철저히 경계하고 시민이 감시해야 됩니다.
그러나, 현대의 미디어는 권력, 즉 자본을 추종합니다.
지금 같은 혼란기에 동성애 코드가 자극적으로 어필하니까,
즉, 팔리니까 상품화하는 거지요.
미디어에 대한 시민된 경계의식은 늦추지 말되,
좀 더 기다려 보는 게 어떨까요?
보편으로 치닫지 않습니다. 이성애가 압도적으로 많은데,
어찌 동성애가 보편으로 치닫겠습니까?
일찌감치 개방한 유럽, 미국도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위의 댓글에서 "억지 중의 억지"라 꼬집었듯이,
균형님의 우려도 기우요 억측 같습니다.
동성애 뿐만 아니라, 일반론적인 차원에서,
미디어, 즉 자본의 독재 가운데서,
우리 아이들 뿐만 아니라, 우리 시민 자신들을 지켜나가는 일,
정말 시급하고 필요합니다.
이것은, 사회의 건강성에 달린 문제라고 봅니다.
과연 우리 사회가 그 정도로 성숙한가?
즉, 자발적 민주성을 발휘할 정도의 역량을 가졌나?
이 점에 있어, 저는 요즘 대단히 회의적입니다.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공동선을 지향하며,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사고와 삶을 영위하게끔 시민들을 이끌 책임,
저는, 종교와 교육에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작금의 한국 교회는 거꾸로 가고 있지 않는가?
이 동성애의 문제만 놓고 보더라도,
세상의 사물, 현상이라는 것이,
정말 복잡다단하게 중층적으로 얽히고 설켜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동성애에 대한 판단 문제가 세계 그리스도교의 뜨거운 감자라지만,
앞으로, 이보다 더한 난제는 계속 우리 앞에 나타날 겁니다.
곤란한 사안이라고 회피하거나,
기존의 가치관과 맞지 않다고 정죄하거나 해서는,
그리스도교의 미래는 없지 않을까 싶네요.
균형님께서 저의 말을 귀담아 들어 주신 것에 대해서도 감사드립니다^^*
말씀하신 바대로, 경험과 환경은 중요합니다만,
그것으로 규정된다는 단점 또한 있습니다.
더 폭넓은 경험(간접경험을 포함한)과 반성적 사유,
그리고 최종적으로, 자신의 세계와 아집에 갇히지 않고,
하느님 나라와 어떻게 맥락적으로 연계되며,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
이러한 것들이 뒷받침되어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BBC 다큐멘터리에서 보신 것처럼,
동성애 관계 가운데서도 이성애와 똑같은 현상이 흔합니다.
남성간의 동성애에 있어,
전통적인 남성의 역할(동성애 은어로 공, 때짜, 탑),
여성의 역할(수, 마짜, 바텀)로 나눠지는 경우가 많죠.
이것은 성관계 시의 역할을 말하는 건데,
물론, 두 연인이 평등한 관계로
서로 역할을 번갈아 하는 사이도 많습니다.
여성간의 동성애에서도,
남성 역을 맡는 부치, 여성 역인 팸으로 나누는데요,
이것은, 균형님께서도 "서열"이라 지적하셨듯이,
이성애의 남성우월적 지배종속 구도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라 봐도 될 것입니다.
동성애라는 것은, 단지 성적인 지향성이
동성에게 쏠린다는 것이지,
지금껏 살면서 주입되어 온 사회적 틀과 가치기준은,
똑같다는 말이 됩니다.
그래서, 제가 위의 댓글에서,
동성애자들 역시 '호모포비아'적 자의식에
시달린다 했던 거구요.
그래서, 많은 동성애자 지식인들은,
이성애적 지배종속 구도를 왜 동성애자들마저 반복하는가,
그래선 안 되며, 타파해야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요.
즉, 말씀하신 지배종속 구도는,
동성애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이성애적, 가부장적, 패권주의적 폐단이라고 봐야 옳겠습니다.
동성애라는, 일견 성차별 없는
평등해 보이는 애정 관계 가운데서도,
기존의 지배종속 구도는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힘과 지배, 억압, 착취가
인류 문명에 얼마나 뿌리깊게 박혔는지 알 수 있습니다.
동성애에서조차 이러하니,
새삼스러운 재발견인 게지요.
미디어의 문제는 정말 중요한 지적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역시, 위의 언급과 이어지는 맥락일 것입니다.
미디어들이 미끼로 내거는 성적 자극,
이것이 설령 동성애적 자극이라 할지라도,
여성의 성상품화라는 가부장적, 지배, 억압적 이데올로기의
연장이라는 점을 많은 사회학자들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정복하려 드는 가부장적 성향의 동성애자 남자가 탑의 역할을 맡고,
그보다 어리거나 힘이 약하면 바텀이 되는 것,
이러한 지배-피지배 구도가 미디어의 차원으로 연장되면,
여성의 상품화의 연장으로서,
남성의 동성애 코드 상품화로 이어지는 거지요.
오래 전부터 휩쓸고 있는 미소년 신드롬,
이쁘장하고 여성스러운, 연약해 보이는 남자가 인기를 끄는 것,
이러한 맥락 아닐까요?
설령, 그렇지 않은 경우의 동성애 코드라 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구매력을 가진 소비자는 우위에 있고,
자본은 그 비위를 맞춰주니까,
여기서도 사회적인 차원의 탑-바텀의 구도가 재현되는 겁니다.
물론, 동성애에 대한 편견과 차별, 억압에 대한,
정당한 항의로서의 영화, 드라마 등까지 도매끔으로 매도할 수는 없겠지요.
"이제는 보편으로 치닫는 징후를 감지하기에"라고 하셨는데,
저는, 기우라고 봅니다.
인권이 신장되고 인간과 생명 등의 가치가 회자된 것,
우리나라의 경우 불과 최근입니다.
지금은 과도기이고, 그러한 와중에,
가치관의 혼란과,
이에 편승한 미디어의 장삿속이 판치는 상황이 아닐까 싶네요.
미디어의 독재(제4권력을 넘어, 가히 독재라 할만합니다)는
정말 우려할 만하죠. 철저히 경계하고 시민이 감시해야 됩니다.
그러나, 현대의 미디어는 권력, 즉 자본을 추종합니다.
지금 같은 혼란기에 동성애 코드가 자극적으로 어필하니까,
즉, 팔리니까 상품화하는 거지요.
미디어에 대한 시민된 경계의식은 늦추지 말되,
좀 더 기다려 보는 게 어떨까요?
보편으로 치닫지 않습니다. 이성애가 압도적으로 많은데,
어찌 동성애가 보편으로 치닫겠습니까?
일찌감치 개방한 유럽, 미국도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위의 댓글에서 "억지 중의 억지"라 꼬집었듯이,
균형님의 우려도 기우요 억측 같습니다.
동성애 뿐만 아니라, 일반론적인 차원에서,
미디어, 즉 자본의 독재 가운데서,
우리 아이들 뿐만 아니라, 우리 시민 자신들을 지켜나가는 일,
정말 시급하고 필요합니다.
이것은, 사회의 건강성에 달린 문제라고 봅니다.
과연 우리 사회가 그 정도로 성숙한가?
즉, 자발적 민주성을 발휘할 정도의 역량을 가졌나?
이 점에 있어, 저는 요즘 대단히 회의적입니다.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공동선을 지향하며,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사고와 삶을 영위하게끔 시민들을 이끌 책임,
저는, 종교와 교육에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작금의 한국 교회는 거꾸로 가고 있지 않는가?
이 동성애의 문제만 놓고 보더라도,
세상의 사물, 현상이라는 것이,
정말 복잡다단하게 중층적으로 얽히고 설켜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동성애에 대한 판단 문제가 세계 그리스도교의 뜨거운 감자라지만,
앞으로, 이보다 더한 난제는 계속 우리 앞에 나타날 겁니다.
곤란한 사안이라고 회피하거나,
기존의 가치관과 맞지 않다고 정죄하거나 해서는,
그리스도교의 미래는 없지 않을까 싶네요.
2007.03.05 16:38:38
무명재 님,
한자세대도 아니고 접할 기회도 적다보니 그만 실례 했네요.
(친절하게 교정해 주시는 구도자님께 감사드립니다.)
긴 답글 잘 읽었구요.
급변하는 시대의 변화 속에서도
지켜야 할 가치와 기준은 무엇인지 좀더 고민해야 겠다는 단초를 제공 하시네요.
‘기우’와 ‘우려’이길 저도 희망하고요.
물론 그 전에 그렇게 낙관 할 만한 근거를 찾을 수 있겠느냐가 관건이겠지요.
좀더 기다려 보자는 제안이 인상적이군요.
궁극적인 판단은 조금 더 미뤄 두자는 의미이지요.
혹은 다비아의 구호처럼, 종말을 향해 기다리는 태도이기도 하겠구요.
그럼요, 하나님나라가 임하는 과정에
인간이 할 수 있는 기여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궁극적으로 그 분께 기댈 수 밖에요.
한편 과분하게도 그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여지를 열어 두셨는데,
과연 짧은 생각으로 그분의 마음을 충분히 표현하고 있는 것인지 다시 생각해 보네요.
이점에서 부당한 오해에 대한 수정이라는 의도가
또 다른 판단으로 비춰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동성애 옹호와 동상애자 이해가
좀더 상세하게 구분하는 것은 어떨까 생각되네요.
물론 현상과 그 현상을 담고 표현하는 사람을 구분하는 작업이
결코 수월한 작업이 아님에 동의하교요.
유연한 글 쓰기와 글의 전개를
대하는 기분이 상큼 합니다.
진솔하고 진지한 의견 감사 합니다.
한자세대도 아니고 접할 기회도 적다보니 그만 실례 했네요.
(친절하게 교정해 주시는 구도자님께 감사드립니다.)
긴 답글 잘 읽었구요.
급변하는 시대의 변화 속에서도
지켜야 할 가치와 기준은 무엇인지 좀더 고민해야 겠다는 단초를 제공 하시네요.
‘기우’와 ‘우려’이길 저도 희망하고요.
물론 그 전에 그렇게 낙관 할 만한 근거를 찾을 수 있겠느냐가 관건이겠지요.
좀더 기다려 보자는 제안이 인상적이군요.
궁극적인 판단은 조금 더 미뤄 두자는 의미이지요.
혹은 다비아의 구호처럼, 종말을 향해 기다리는 태도이기도 하겠구요.
그럼요, 하나님나라가 임하는 과정에
인간이 할 수 있는 기여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궁극적으로 그 분께 기댈 수 밖에요.
한편 과분하게도 그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여지를 열어 두셨는데,
과연 짧은 생각으로 그분의 마음을 충분히 표현하고 있는 것인지 다시 생각해 보네요.
이점에서 부당한 오해에 대한 수정이라는 의도가
또 다른 판단으로 비춰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동성애 옹호와 동상애자 이해가
좀더 상세하게 구분하는 것은 어떨까 생각되네요.
물론 현상과 그 현상을 담고 표현하는 사람을 구분하는 작업이
결코 수월한 작업이 아님에 동의하교요.
유연한 글 쓰기와 글의 전개를
대하는 기분이 상큼 합니다.
진솔하고 진지한 의견 감사 합니다.
2007.03.05 18:22:38
저도 참 답답하고 대책이 안 서는 지점입니다.
선천적, 또는 유아기에 결정된 동성애 지향의 분의 동성애와,
균형님께서 염려하셨다시피, 자본이 내거는 성상품화로서의 동성애 코드,
물론, 동성애에 대한 시각의 변화를 환기하는 그런 미디어 보도, 작품 등도 구별해야 될 것이고,
저 동성애자는 되는데, 왜 우리는 즐기면(!) 안 되느냐, 불평등이다,
그런 항의가 들어올 수 있고,
사실, 균형님과 저라는 개인 대 개인의 토론이니 서로 말이 쉽게 풀리지,
(그나마도 쉽게 소통되지 않는 사안이지요. 여기서도 예전에 몇 번 확인했고.
그 점에서, 저는 균형님과 같은 보수주의자(맞으신가요?^^)이되, 열린 분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윤리신학자 라인홀드 니버 책 제목이던가요,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도덕이 아닌 의견의 문제라도, 집단 단위로 가 버리면 일이 쉽지 않으니 참 문제입니다.
설령, 개인의 사유의 차원이라도,
저와 균형님의 의견 교환 가운데서도,
동성애에 관해 더 생각해야 될 풀지 못하거나 발견 못한 난제들은 아직도 쌓였습니다.
저는, 대책없는, 나아가 무책임한 다원주의는 극구 반대하며,
민주주의를 중우주의로 타락시키는 작금의 사회 풍조에 대하여 대단히 우려하고 있습니다.
비록 천주교의 대표적인 조직신학자이시지만,
동시에 완고한 보수주의자로 이름높은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요제프 라칭어),
저는 거부감이 드는 분이긴 하지만,
그분이 늘 강조하는,
세속적 다원주의에 맞서 그리스도교적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는
그분의 보수주의의 문제의식에는 원칙적으로 동감해 마지 않습니다.
사실, 칼 바르트를 격찬하고, 교파 및 종교간의 대화에도 진력하고 계시는 분이니,
'대책없는' 보수주의자는 아니시라고 봅니다.
구체적인 각론으로 들어가면 극심한 의견 차이가 생기는데,
그러나, 대화의 여지가 없는 보수주의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균형님과의 대화가 저로서도 참으로 유익하고 기쁜 것이,
지금껏 우리 다비아에서, 저를 비롯한 많은 분들이 서로 대립각만 세웠지만,
이렇게 공감도 하고, 의견의 차이를 좁히기도 하며,
의견이 갈라지는 지점과 원인을 알아갈 수 있다는 것이,
희망이 아닐까 해서입니다.
저 또한, 저의 기준에서,
그리스도교, 사회를 바라보며 '저건 아닌데'라고 의문이 드는 사안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워낙에 중층적이고 복잡하게 얽히고 설켜 있으니,
속단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마냥 지켜보기에는 작금의 사회의 속도가 너무 빠르고,
(지켜보자고 말씀드렸지만, 저도 안절부절입니다. 앞으로 더 빨라지겠지요)
이러한 가운데에서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그리스도교가 당면할 도전은 앞으로도 더 많을 겁니다.
어떻게 해야 될지,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지혜의 은총이 필요하겠지요.
선천적, 또는 유아기에 결정된 동성애 지향의 분의 동성애와,
균형님께서 염려하셨다시피, 자본이 내거는 성상품화로서의 동성애 코드,
물론, 동성애에 대한 시각의 변화를 환기하는 그런 미디어 보도, 작품 등도 구별해야 될 것이고,
저 동성애자는 되는데, 왜 우리는 즐기면(!) 안 되느냐, 불평등이다,
그런 항의가 들어올 수 있고,
사실, 균형님과 저라는 개인 대 개인의 토론이니 서로 말이 쉽게 풀리지,
(그나마도 쉽게 소통되지 않는 사안이지요. 여기서도 예전에 몇 번 확인했고.
그 점에서, 저는 균형님과 같은 보수주의자(맞으신가요?^^)이되, 열린 분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윤리신학자 라인홀드 니버 책 제목이던가요,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도덕이 아닌 의견의 문제라도, 집단 단위로 가 버리면 일이 쉽지 않으니 참 문제입니다.
설령, 개인의 사유의 차원이라도,
저와 균형님의 의견 교환 가운데서도,
동성애에 관해 더 생각해야 될 풀지 못하거나 발견 못한 난제들은 아직도 쌓였습니다.
저는, 대책없는, 나아가 무책임한 다원주의는 극구 반대하며,
민주주의를 중우주의로 타락시키는 작금의 사회 풍조에 대하여 대단히 우려하고 있습니다.
비록 천주교의 대표적인 조직신학자이시지만,
동시에 완고한 보수주의자로 이름높은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요제프 라칭어),
저는 거부감이 드는 분이긴 하지만,
그분이 늘 강조하는,
세속적 다원주의에 맞서 그리스도교적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는
그분의 보수주의의 문제의식에는 원칙적으로 동감해 마지 않습니다.
사실, 칼 바르트를 격찬하고, 교파 및 종교간의 대화에도 진력하고 계시는 분이니,
'대책없는' 보수주의자는 아니시라고 봅니다.
구체적인 각론으로 들어가면 극심한 의견 차이가 생기는데,
그러나, 대화의 여지가 없는 보수주의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균형님과의 대화가 저로서도 참으로 유익하고 기쁜 것이,
지금껏 우리 다비아에서, 저를 비롯한 많은 분들이 서로 대립각만 세웠지만,
이렇게 공감도 하고, 의견의 차이를 좁히기도 하며,
의견이 갈라지는 지점과 원인을 알아갈 수 있다는 것이,
희망이 아닐까 해서입니다.
저 또한, 저의 기준에서,
그리스도교, 사회를 바라보며 '저건 아닌데'라고 의문이 드는 사안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워낙에 중층적이고 복잡하게 얽히고 설켜 있으니,
속단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마냥 지켜보기에는 작금의 사회의 속도가 너무 빠르고,
(지켜보자고 말씀드렸지만, 저도 안절부절입니다. 앞으로 더 빨라지겠지요)
이러한 가운데에서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그리스도교가 당면할 도전은 앞으로도 더 많을 겁니다.
어떻게 해야 될지,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지혜의 은총이 필요하겠지요.
2007.04.07 20:03:38
저는 일단.
동성애가 죄다!라기보다는.
짝궁의 개념에서.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고.
아담이 하와에게 느꼈던 첫 감정인 그것!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랑'의 감정이.
하나님이 창조한 '예시'에 서 벗어나.
이성의 짝궁이 아닌.
동성간애도 있을 수 있다.라는 것은
왠지..ㅋㅋㅋ 느낌이 싫습니다.ㅋ
'동성애를 느끼는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다.'는 말은.
하나님에 대한 속단인 것 같고요.ㅋ
동성애를 하나님이 원하시진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제 주위에 동성애자가 있다면.
저는 사랑이네 아니네 구원이네 아니네
하기보다는
사랑을 포기하라고 하겠습니다.
하나님만 사랑하라.ㅋㅋㅋ
너무 치졸한가?
복재인간이 나오면 어쩌실 겁니까?
복재인간은 영혼이 있나요?
구원이 있나요?
저는 영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 몫이니까.
그건 가봐야 아는 거니까.
이순신 형님은 어떻게 됐을까?
일단 하나님 곁에 있고 볼일 입니다.ㅋ
진리는 토론할 내용이 아닙니다.
모르는 것은 모르는데로 두는 것이 좋겠지요.
다만 하나님에 대한 속단으로 섯불리
우리의 그릇을 하나님의 그릇인 양.
정죄하고 판단해선 안될 것입니다.ㅋ
다들 핑안!~
동성애가 죄다!라기보다는.
짝궁의 개념에서.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고.
아담이 하와에게 느꼈던 첫 감정인 그것!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랑'의 감정이.
하나님이 창조한 '예시'에 서 벗어나.
이성의 짝궁이 아닌.
동성간애도 있을 수 있다.라는 것은
왠지..ㅋㅋㅋ 느낌이 싫습니다.ㅋ
'동성애를 느끼는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다.'는 말은.
하나님에 대한 속단인 것 같고요.ㅋ
동성애를 하나님이 원하시진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제 주위에 동성애자가 있다면.
저는 사랑이네 아니네 구원이네 아니네
하기보다는
사랑을 포기하라고 하겠습니다.
하나님만 사랑하라.ㅋㅋㅋ
너무 치졸한가?
복재인간이 나오면 어쩌실 겁니까?
복재인간은 영혼이 있나요?
구원이 있나요?
저는 영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 몫이니까.
그건 가봐야 아는 거니까.
이순신 형님은 어떻게 됐을까?
일단 하나님 곁에 있고 볼일 입니다.ㅋ
진리는 토론할 내용이 아닙니다.
모르는 것은 모르는데로 두는 것이 좋겠지요.
다만 하나님에 대한 속단으로 섯불리
우리의 그릇을 하나님의 그릇인 양.
정죄하고 판단해선 안될 것입니다.ㅋ
다들 핑안!~
2007.04.15 21:40:22
소나기님^^
불트만 선생 말씀마따나, 인간은 하느님 및 존재에 관하여 말할 수 없긴 하죠.
그러나,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머리와 가슴, 입을 주신 까닭은,
생각하고 이바구하고 나누라고 주셨다고 봅니다만.
모르는 것에 대하여 모른다고 솔직하게 시인하는 태도는 정말 필요합니다.
우리 인간에게 가장 부족한 부분이죠.
그러나, 모르는 것에 대하여 당장 곤란하므로 회피하는 편리한 방법을 쓰거나,
"왠지..ㅋㅋㅋ 느낌이 싫습니다.ㅋ" 하신 바와 같이,
반성적인 성찰과 깊이 알려는 노력 없이, 그저 싫게 느껴지니까라는 식으로,
대책없이, 무개념(죄송합니다~ 안 미워하는 거 알죠?^^)으로 대꾸한다면,
이건, 더 곤란하고, 복음의 정신에도 반하는 것 아닐까요?
그리스도교 신앙과 신학은, 마치 콘크리트 양생하듯이,
그렇잖아도 견고한 고정관념을 물려받아 그것을 재생산 및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습니다.
세간에서는, 이것을 훌륭한 신앙이라고 대접하는 것도 같네요.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살지 않으셨고,
보편타당해 보이는 그 견고함에, 계속 딴지를 거시다가,
결국 괘씸죄로, 반역으로 몰려 사형당하셨잖아요?
예수님의 딴지의 정신, 그 딴지에 깔린 원리와 지향성이 무엇인가,
이것을 알아가는 데 신앙과 신학의 관건이 있지 않을까 생각도 듭니다.
불트만 선생 말씀마따나, 인간은 하느님 및 존재에 관하여 말할 수 없긴 하죠.
그러나,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머리와 가슴, 입을 주신 까닭은,
생각하고 이바구하고 나누라고 주셨다고 봅니다만.
모르는 것에 대하여 모른다고 솔직하게 시인하는 태도는 정말 필요합니다.
우리 인간에게 가장 부족한 부분이죠.
그러나, 모르는 것에 대하여 당장 곤란하므로 회피하는 편리한 방법을 쓰거나,
"왠지..ㅋㅋㅋ 느낌이 싫습니다.ㅋ" 하신 바와 같이,
반성적인 성찰과 깊이 알려는 노력 없이, 그저 싫게 느껴지니까라는 식으로,
대책없이, 무개념(죄송합니다~ 안 미워하는 거 알죠?^^)으로 대꾸한다면,
이건, 더 곤란하고, 복음의 정신에도 반하는 것 아닐까요?
그리스도교 신앙과 신학은, 마치 콘크리트 양생하듯이,
그렇잖아도 견고한 고정관념을 물려받아 그것을 재생산 및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습니다.
세간에서는, 이것을 훌륭한 신앙이라고 대접하는 것도 같네요.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살지 않으셨고,
보편타당해 보이는 그 견고함에, 계속 딴지를 거시다가,
결국 괘씸죄로, 반역으로 몰려 사형당하셨잖아요?
예수님의 딴지의 정신, 그 딴지에 깔린 원리와 지향성이 무엇인가,
이것을 알아가는 데 신앙과 신학의 관건이 있지 않을까 생각도 듭니다.
2007.04.17 15:46:27
예수님은 진리이시기 때문에 선포의 자격이 있으시고.ㅋ
우리는 다만 눈과 입과 귀로 또 영으로 마음으로 느낄 뿐.
진리는 아니기 때문에 토론할 것이고 이야기 할 것이고
이바구 나눌 것이죠.ㅋ
그러나.
아주 객관적이고 아주 논리적인 것.
또한 아주 과학적인 것도.
진리가 아닐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오늘날 '원소'라고 부르는 것이.
물질의 어떤 체계를 이미지화 시켜서.
약속한 것에 불과한데.
사람들은 만물의 근원을 원자나 세포 따위로 부터 시작하려고 하니.
그것은 그야말고 보고있는 것에 진리를 가져다 붙이는 식이 아닐까요.
자석에 대해 설명할 때.
플러스 마이너스 전자의 방향으로 설명을 하던데.
제가 그럼 자석을 완전한 구로 자르면 어떻게 되지?
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는 역시 아무도 모른다 였습니다만.
사람들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플러스 마이너스 부터 시작합니다.
뭐 물론 저도 모르지만.
알려졌고 배웠고, 보여진 것들로. 보이지 않는 것들을 추적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딱 나쁜 것은 아니지만.
장님이 장님을 인도하는 식이나.
덮어놓고 믿으라는 식이나.
같은 것 같습니다.
동성애요?
과학적으로 전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어떤지도 정확하게 들어보고
여쭤보지 않아서 모르겠습니다만.
동성부부에게 자녀가 입양되면.
그 아이가 어떻게 자랄지.
그 성정체성은 어떻게 될른지.
별로입니다. 느낌이...
그러나 그건 아닙니다!라고 그들을 설득할 근거는 충분히 없습니다.(적어도 제게는)
그러나 말리고는 싶습니다.
이걸 어쩌라는 말이죠?ㅋㅋㅋ
무명재님의 제시는 정말 제가 가진 단점을 아주 타이트하게 요구하십니다.ㅋ
정말 이건 겸손이 아니고.ㅋ 워낙 제가 학문에 체계도 없고.ㅋ
언어표현의 맛도 없습니다.ㅋ 그냥 속에서 복잡하게 얽혀있는
마음들을 풀어내 보려니.두서없고 개념없는 글이 나옵니다.ㅋ
그러나 역시 제 마음은 아실 듯하고.ㅋㅋㅋ
(조심스레 짐작합니다만.ㅋ)
부탁드리옵기는.
저의 일자무식한 이 말들들이 아주 멋진 거름쇠에 잘~걸러져서.
빛을 본자들이 경험할 법한 그 총명한 것.
아주 미흡하고 부족한 사랑의 마음만 남겨주시기를..ㅋ
다비아는 여러가지를 함께 아주 풍성하게 마련해 주십니다.ㅋ
다들 핑안에 핑안~ㅋ
우리는 다만 눈과 입과 귀로 또 영으로 마음으로 느낄 뿐.
진리는 아니기 때문에 토론할 것이고 이야기 할 것이고
이바구 나눌 것이죠.ㅋ
그러나.
아주 객관적이고 아주 논리적인 것.
또한 아주 과학적인 것도.
진리가 아닐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오늘날 '원소'라고 부르는 것이.
물질의 어떤 체계를 이미지화 시켜서.
약속한 것에 불과한데.
사람들은 만물의 근원을 원자나 세포 따위로 부터 시작하려고 하니.
그것은 그야말고 보고있는 것에 진리를 가져다 붙이는 식이 아닐까요.
자석에 대해 설명할 때.
플러스 마이너스 전자의 방향으로 설명을 하던데.
제가 그럼 자석을 완전한 구로 자르면 어떻게 되지?
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는 역시 아무도 모른다 였습니다만.
사람들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플러스 마이너스 부터 시작합니다.
뭐 물론 저도 모르지만.
알려졌고 배웠고, 보여진 것들로. 보이지 않는 것들을 추적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딱 나쁜 것은 아니지만.
장님이 장님을 인도하는 식이나.
덮어놓고 믿으라는 식이나.
같은 것 같습니다.
동성애요?
과학적으로 전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어떤지도 정확하게 들어보고
여쭤보지 않아서 모르겠습니다만.
동성부부에게 자녀가 입양되면.
그 아이가 어떻게 자랄지.
그 성정체성은 어떻게 될른지.
별로입니다. 느낌이...
그러나 그건 아닙니다!라고 그들을 설득할 근거는 충분히 없습니다.(적어도 제게는)
그러나 말리고는 싶습니다.
이걸 어쩌라는 말이죠?ㅋㅋㅋ
무명재님의 제시는 정말 제가 가진 단점을 아주 타이트하게 요구하십니다.ㅋ
정말 이건 겸손이 아니고.ㅋ 워낙 제가 학문에 체계도 없고.ㅋ
언어표현의 맛도 없습니다.ㅋ 그냥 속에서 복잡하게 얽혀있는
마음들을 풀어내 보려니.두서없고 개념없는 글이 나옵니다.ㅋ
그러나 역시 제 마음은 아실 듯하고.ㅋㅋㅋ
(조심스레 짐작합니다만.ㅋ)
부탁드리옵기는.
저의 일자무식한 이 말들들이 아주 멋진 거름쇠에 잘~걸러져서.
빛을 본자들이 경험할 법한 그 총명한 것.
아주 미흡하고 부족한 사랑의 마음만 남겨주시기를..ㅋ
다비아는 여러가지를 함께 아주 풍성하게 마련해 주십니다.ㅋ
다들 핑안에 핑안~ㅋ
저도, 같이 이야기해보자고 올린 거구요.
하지만, 제가 볼 때엔, 김영완님이야말로 억지이고, 제가 본문에서 밝혔다시피,
그같은 입장에 저 또한 치를 떱니다.
김영완님은 천주교에 대해서 별로 아시는 것도 없고, 알려고 노력도 않으시는 듯한데,
맞습니까?
땅, 사람, 어쩜 그렇게 구분을 잘 하시는지?
김영완님 등 보수주의자들을 하느님,
또는 하느님께 직통 계시를 받는 모세 정도로 떠받들어야 될지 모르겠네요.
인정받으려고 끌어붙인 거라고 보신다면, 마음대로 그렇게 보십시오.
저는, 사리에 닿는 타당성을 근거로 서로 얘기해 보자는 겁니다.
그런데, 김영완님의 댓글에는, 반대다, 옳지 않다, 땅의 것, 사람의 것이라고 정죄만 했지,
(동어반복 아닙니까?)
내용은 전혀 없군요.
아니, 내용이 없지는 않네요. 동성애다, 아니다라고 사람을 범주화하는 비인간적 오류를,
김영완님 역시 땅, 사람 등으로 되풀이하고 계시니까요.
이게 복음적인 겁니까?
율법학자 따라하기 아닙니까?
인간이 만든 틀로 사람을 판단하고 재단하는 짓,
김영완님이 그렇게 혐오하는 인간적인 것 아닙니까?
토론하실 자신이 없으면, 댓글을 안 다시는 게 옳지 않겠습니까?
물론, 말씀드렸다시피, 댓글을 다실 권리는 있겠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