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안사건이란 무엇이 위험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 위험할 때 나오는 것이다.

이번 통진당 사태에서 앞의 무엇은 당연히 통진당이고 뒤의 무엇은 박근혜 정부를 의미한다.

우리들은 흔히 거꾸로 생각한다.

정부가 판단키에 통진당이 위험해서 그들을 탄압하는 것이고 검속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이것은 사태를 반대로 해석하는 것이다.

거꾸로 정부로부터 출발한 문제가 통진당 같은 조직을 위험한 조직으로 만들고 그런 요인을 키워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볼 때 헌정사상초유의 사태란 말에 어울릴 만큼 통진당이 위험성을 가진 존재라는 점은 의문이간다.

아마도 통진당의 위험함은 그 어디에서도 증명되지 않을 것이다.

위험함은 누구에게나 우스갯소리로 들릴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진지하게 하던 통진당이 구성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을 수밖에 없는 박근혜 정부에게 있는 것이다.

전자는 몽상가들의 말공부를 의미한다.

오히려 현실적인 것은 후자이다. 여기서 현실적이란 의미는 현존하고 있는 ‘위기의 증가과정’을 의미한다.

그렇게 말하고 싶은 이들과 그렇게 들어야만 하는 이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통진당의 내사가 3년여 동안 진행되었다는 것은 당연히 그들의 위험함을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인데 이것은 위험하지 않아서 찾아내지 못했거나 통진당이 이런 위험을 치밀하게 은폐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의 사태에서 보듯이 통진당의 보안은 결코 치밀한 것은 아니었으며 오히려 허술하기 조차 했다는 점에서 결코 후자의 치밀함이 3년의 세월을 내사토록 한 것은 아닐 것이다.내사는 일상적이고 사건이란 이런 일상이 필요에 따라 일상이기를 멈추는 과정일 뿐이다.. 바로 통진당 문제가 사건화 된 것은 그것을 터트려야 할 위험한 때가 온 것이기 때문이다.

대체로의 공안사건은 이렇게 발생했고 그렇게 사용되었다.

국정원, 국군사이버사령부의 댓글사건과 보훈처 등의 박근혜 정부에 대한 편향이 ‘양의 되먹임’ 끝에 오는 파멸처럼 박근혜 정부의 안정성을 흔들고 있으며 이에 근거해 통진당은 위험한 세력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조금은 이상하게 자꾸 이번 사건이 TV선거유세에서 수모를 당한 박근혜의 뒤끝이 섞여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녀가 어디서 그런 수모를 당해봤겠는가.

물론 이런 생각이 이번 사태를 너무 개인적이고 협소하게 보는 것일지도 모른다.하지만 통진당이 그렇게 위험한 조직이 아니었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댓글 사건 등이 정부의 결정적 위기의 요인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이런 가정이 진실이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정말 그렇다면 오히려 문제는 심각해진다.

개인으로부터 나오는 이런 사태에는 전제군주적 주권이란 것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신시대의 도래라는 말을 많이 한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7,80년대의 독재의 재귀로 해석하는 것은 옳은 일인가?

그렇게 해석하는 것은 마뜩치 않다. 그것은 그 시대와 동일한 방식의 대응을 준비하도록 할 것이고 무엇인가 후퇴한 시간을 되돌리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않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니체의 ‘영원회귀’라는 개념이 있다.

물론 니체의 ‘영원회귀’를 여기에 적용하는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적절치 않다는 생각은 들지만 분석의 방법론으로 차용해 보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영원회귀’란 말의 의미는 동일한 것이 영원히 지속적으로 반복된다는 것이 아니라 이 반복 속에 영원성이 있으며 이 영원성리란 바로 ‘차이’이고 이 차이가 영원히 반복되어 돌아온다는 것이다.

87년에 이미 종결된 것으로 보였던 한국사회의 독재가 다시금 다가오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대중들의 정치적 의식이 그 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간 것이 아니라면 그것을 종결된 토대위에서 다시금 반복시키는 어떤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차이’에 주목해야하는 이유이다.

이전에 존재했던 동일한 것에 대한 투쟁의 잠재성은 이미 비축되어 있다.

싸움을 위해서는 차이를 읽어낼 줄 알고 차이를 만들어 낼 줄 아는 기술이 필요하다.

변화된 차이를 읽어내고 그 차이를 무력하게 만들거나 거스르는 또 다른 흐름의 차이를 만들어 낼 줄 아는 것이 바로 진정한 싸움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