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 <열린 토론실>입니다. 다비안들의 부담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사랑채>와는 달리, 보다 진지하고 깊이있는 이야기나 주제를 나누고 싶은 분들을 위한 게시판입니다. 가급적 예의를 갖추시고 열린 마음으로 대화에 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울러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토론과 대화는 다비안을 비롯한 여러 네티즌들의 온라인 상에서의 자유로운 것이기에 그 방향과 정체성이 반드시 다비아와 일치하지는 않음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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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이란 무엇인가?에대해 먼저 논해 져야 할 것입니다.
이 물음에 대해 답이 있다면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이란? 그리고 타종교에서 말하는 구원이란? 것이 구별 되어질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소위 한국 정통 개신교 내에서 아니, 기독교인이라고 말하고 있는 자들이 사용하는 성경에서 나타나기를, 구원......그 구원을 처음 말씀하시고 계획하신 하나님의 구원은, 구원이 아닌 상황 안에서도 이루어내시는 은총의 산물입니다.
누군가 다른 한쪽만이 구원받게 된다는 소식이 다른 쪽을 더욱 화나게 만드는 요건이 될 수도 있는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그래서 논쟁의 쟁점이 되겠죠...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것'은 순전히 하나님께서 세운 방식인데, 인간은 그 방식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 모양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방식은 기껏해야 지 노력으로 구원받는 방식을 추구하기 때문이죠....그게 바로 거기서 스스로 위안을 받고 자기가 무언가를 이루어냈다는 지극히 인간적인 자위방법입니다..
지금 기독교의 잘 못된 방법이 바로 하나님의 은총 보다는 인간의 노력이 훨신 앞선 모습을 갖추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인간의 노력이 앞서는 타종교와 다를 바 없는게 되어버렸습니다.
타종교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구원과 우리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의 '무엇'의 차이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정통개신교단에서 이해되어지고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고백되어지고 있는 부분이 무시되고, 그것과 다른 '이름과 다른 '무엇'의 의미로 존재하려면....정통개신교단과 분명한 차이를 두시고 과감히 다른 이름으로 존재하십시요..이것은요,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 정통개신교단의 가장 큰 쟁점인 구원이라는 이름이 본래 의도와는 달리 이해 되어지는 것은 참기 어려운 일입니다.
악어의 몸통에 기생하여 사는 악어새는 악어에게 위험이 닥치게 되면 울음소리로 그 위험을 알리기라도 하지만, 그래서 공생이라고 하지만, 지금 구원에 대하여 달리 이해하고 사용하시는 분들은 차라리 악어새만큼도 안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럴바에는 다른이름으로 달리 존재하시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이 물음에 대해 답이 있다면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이란? 그리고 타종교에서 말하는 구원이란? 것이 구별 되어질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소위 한국 정통 개신교 내에서 아니, 기독교인이라고 말하고 있는 자들이 사용하는 성경에서 나타나기를, 구원......그 구원을 처음 말씀하시고 계획하신 하나님의 구원은, 구원이 아닌 상황 안에서도 이루어내시는 은총의 산물입니다.
누군가 다른 한쪽만이 구원받게 된다는 소식이 다른 쪽을 더욱 화나게 만드는 요건이 될 수도 있는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그래서 논쟁의 쟁점이 되겠죠...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것'은 순전히 하나님께서 세운 방식인데, 인간은 그 방식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 모양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방식은 기껏해야 지 노력으로 구원받는 방식을 추구하기 때문이죠....그게 바로 거기서 스스로 위안을 받고 자기가 무언가를 이루어냈다는 지극히 인간적인 자위방법입니다..
지금 기독교의 잘 못된 방법이 바로 하나님의 은총 보다는 인간의 노력이 훨신 앞선 모습을 갖추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인간의 노력이 앞서는 타종교와 다를 바 없는게 되어버렸습니다.
타종교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구원과 우리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의 '무엇'의 차이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정통개신교단에서 이해되어지고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고백되어지고 있는 부분이 무시되고, 그것과 다른 '이름과 다른 '무엇'의 의미로 존재하려면....정통개신교단과 분명한 차이를 두시고 과감히 다른 이름으로 존재하십시요..이것은요,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 정통개신교단의 가장 큰 쟁점인 구원이라는 이름이 본래 의도와는 달리 이해 되어지는 것은 참기 어려운 일입니다.
악어의 몸통에 기생하여 사는 악어새는 악어에게 위험이 닥치게 되면 울음소리로 그 위험을 알리기라도 하지만, 그래서 공생이라고 하지만, 지금 구원에 대하여 달리 이해하고 사용하시는 분들은 차라리 악어새만큼도 안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럴바에는 다른이름으로 달리 존재하시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2007.08.20 00:25:36
하나님의 방식이 인문학적인 것과 구원론에서상충된다면..좀그러내요.
성경이 하나님 방식이라면..그신비를 믿는 이들도 타종교에 대한
인간자체의 근원적인 아픔이 있습니다. 성경을 고집한다해서
그것이 배타적이다
너무도 오해의 말씀입니다
그길이 오직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이땅에
보내신보편적인 인류구원의
길입니다.그것이...은혜이지요
이것이 이해되면 그것으로 출발되는 이성적인 많은 글들이
통용되며 나누어 질텐데..
하나님께서 배타되어 지는것 같으니..
기독교가 예수십자가의구원의 방식과 다르다..
그 기독교에는 구원이 없겠군요..
나는 기독교가 예수 믿는교인줄 알았는데..
성경이 하나님 방식이라면..그신비를 믿는 이들도 타종교에 대한
인간자체의 근원적인 아픔이 있습니다. 성경을 고집한다해서
그것이 배타적이다
너무도 오해의 말씀입니다
그길이 오직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이땅에
보내신보편적인 인류구원의
길입니다.그것이...은혜이지요
이것이 이해되면 그것으로 출발되는 이성적인 많은 글들이
통용되며 나누어 질텐데..
하나님께서 배타되어 지는것 같으니..
기독교가 예수십자가의구원의 방식과 다르다..
그 기독교에는 구원이 없겠군요..
나는 기독교가 예수 믿는교인줄 알았는데..
인문학적인 성서 이해 방식을 이해하시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경험을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독교의 구원과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이 약간은 다른 방식의 다른 이해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을 유념하셔야할 것 같습니다.
이것이 가능해진다면 그리스도안에서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타인의 구원을 어떻게 이해해야할 것인지 정리가 되겠지요. 그리고 그 다음에는 다른 환경과 처지에 있는 타종교인과 타종교의 구원을 바라보는 자신의 신앙적 태도나 방식을 정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개인의 내면적 신앙과 사회 공동체적 종교 의식의 간격을 극복할 수 없는 이상, 타종교와 타인의 구원을 바라보는 믿음의 태도도 다를 수 밖에 없다고 생각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별반 다를 것 없는 일반성을 지닌 동시에 쌍둥이조차도 동일하지 않는 개별성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에 획일적이거나 독단적인 결론은 내릴 수가 없습니다.
인문학적인 태도를 벗어나 초월적, 절대적 신앙관점으로 돌아서지 않는 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