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 <열린 토론실>입니다. 다비안들의 부담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사랑채>와는 달리, 보다 진지하고 깊이있는 이야기나 주제를 나누고 싶은 분들을 위한 게시판입니다. 가급적 예의를 갖추시고 열린 마음으로 대화에 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울러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토론과 대화는 다비안을 비롯한 여러 네티즌들의 온라인 상에서의 자유로운 것이기에 그 방향과 정체성이 반드시 다비아와 일치하지는 않음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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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을 제안한 지도 어느덧 2주가 지났습니다. 턱을 괴고 졸린 표정의 유니스님도 지금쯤 서문 정도는 읽지 않았을까요? ㅎㅎ
사실 <고대 이스라엘의 발명>은 어느 부분이든 한 두 챕터만 읽어도 그 주제가 극명히 들어나고 충분한 토론거리를 제공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서로가 읽은 범위 안에서라도 궁금증도 물어보고, 간단한 소감도 표명하고 하는 자유토론(대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주제는 활짝 열려있습니다.
저와 대화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하시고. '가급적' 저는 교통정리하는 입장을 유지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전 꼭지글의 주제도 계속 오픈되어 있으니 한 번 의견 제시 부탁해요.
2009.04.05 03:54:25
오랜 침묵의 사슬을 과감히 끊어버린 빈이님의 결단에 다함께 박수를----.
시험들게 만든다구요? 그 점에 대해선 보다 연륜있는 다비안들로부터 좋은 말씀들이 있을 걸로 믿슙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역사적 질문과 신앙적(신학적) 질문을 할 때 그 답을 구하는 방법들도 역시 역사적으로 또 신앙적으로
구별되는 것 같아요. 이 둘이 섞이면서 성경이 본래 말하고자 하는 바도 뒤틀리게 되는 것 같구요.
여호수아서, 사사기, 사무엘서, 열왕기는 바빌론 유수의 충격으로부터 기반한 과거 역사에 대한 재해석(재구성) 이라는 측면에서 보고 싶군요. 마치 '부활'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에 기반해서 복음서 이야기가 시간을 거슬러 가면서 쓰여지듯이. 열왕기하에 나오는 성전 파괴라는 사건에서부터 뒤로 거슬러가면서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구하는 과정이라고 큰 맥락에서 생각해봅니다.
결국 제 생각은 여호수아서는 신명기의 명령에 충실한 순종의 결과를 보여주는 신학적 재구성이라는 것입니다. 사사기에서 열왕기에 이르는 부분은 그 반대의 예가 되겠지요. 여기서 역사적 사실 여부를 묻는 질문들에 여러가지 답을 구할 수 있고 또 나름 의미도 있겠으나 신학적(신앙적) 질문과 답변보다 더 중요하진 않을 것 같군요.
문제는 신학적인 질문과 답변들을 목적으로 쓰여진 텍스트를 현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역사적인 질문들과 답변들로 치장해 버리는 정치 세력들이 있다는 점이고 휘틀럼의 책은 그러한 사실들에 대한 비판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다윗과 솔로몬에 대한 이야기는 일단 접어두기로 하고, 휘틀럼의 주장을 깎아서 읽는다고 해도,
외지인이었던 고대 이스라엘 민족이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전쟁을 통해 점령했다기 보다는,
원래 가나안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이 이런저런 사정으로 고대 이스라엘의 선조가 되었다는 주장이
고고학 쪽에서는 거의 정설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이 주장을 인정한다는 전제 하에, 구약을 어떻게 읽는 것이 좋을 지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정목사님 설교 ("약속의 하나님") 에서처럼 세밀하게 읽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만,
통독 중에 여호수아서를 앞에 두고 나오는 한숨이란, 참, 사람을 시험들게 만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