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 <열린 토론실>입니다. 다비안들의 부담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사랑채>와는 달리, 보다 진지하고 깊이있는 이야기나 주제를 나누고 싶은 분들을 위한 게시판입니다. 가급적 예의를 갖추시고 열린 마음으로 대화에 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울러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토론과 대화는 다비안을 비롯한 여러 네티즌들의 온라인 상에서의 자유로운 것이기에 그 방향과 정체성이 반드시 다비아와 일치하지는 않음을 밝혀둡니다.
글 수 256
아는 전도사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전도사님께서는 하나님의 씨가 우리 안에 있기에(요일 3:9)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저에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냐고 물어보셨습니다.
저는 아버지라는 개념이 잘 들어오지 않는다고 대답했습니다. 보통 만물의 창조주이시고 주관자이시기에 주님이라는 개념은 쉽게 인식이 되지만 아버지라는 개념은 잘 인식이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도할 때 주님이라고 부르고 기도를 한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런데 계속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전도사님께서 “내가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뿌릴 날이 이르리니(렘31:27)” 라는 말씀을 가지고 마음속에 하나님의 씨가 없으면 그건 짐승의 씨라고 하시는 겁니다. 또한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신 30:19)” 말씀을 통해 생명이 아니면 사망이고 복이 아니면 저주일 뿐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면 사탄의 자녀일 뿐 그 가운데는 없다는 것이죠. 그렇기에 제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고 기도하는 것은 잘못이고 그렇게 한다는 것은 사탄의 자식이 될 뿐 이라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물론 의도는 그렇지 않으셨겠지만 꼭 저를 정죄하는듯하게 이야기가 들렸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면 사탄의 자식이 되는 것인지... 저는 꼭 아버지라는 단어에 국한을 해야 하는지가 의문입니다. 인간의 언어와 단어가 가지는 한계성이 예수님이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했을 때 담고 있는 의미와 인식을 모두 담아낼 수 있는 것인지가 가장 큰 의문이었습니다. 또한 그렇게 부르지 못하면 이분법적으로 무조건 사탄의 자식이 되어야 하는 것인지도 의문이었습니다.
정용섭 목사님의 2004년 7월 2일자 설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참고해 본다면 저는 아직 추상적인 유대인의 신 개념에 머물러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그 설교에서 아버지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두 가지 특성인 개인적인 관계와 구원,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실 창조가 이시다라는 것은 분명 제가 생각하는 하나님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다만 아버지라는 단어가 주는 모호성이라고 할까요? 그것이 제게 잘 들어오지 않을 뿐입니다.
아버지라는 단어가 지니는 의미와 언어의 한계성... 그리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사탄의 자녀일 뿐이라는 이분법... 제가 잘 못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요?
전도사님께서는 하나님의 씨가 우리 안에 있기에(요일 3:9)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저에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냐고 물어보셨습니다.
저는 아버지라는 개념이 잘 들어오지 않는다고 대답했습니다. 보통 만물의 창조주이시고 주관자이시기에 주님이라는 개념은 쉽게 인식이 되지만 아버지라는 개념은 잘 인식이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도할 때 주님이라고 부르고 기도를 한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런데 계속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전도사님께서 “내가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뿌릴 날이 이르리니(렘31:27)” 라는 말씀을 가지고 마음속에 하나님의 씨가 없으면 그건 짐승의 씨라고 하시는 겁니다. 또한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신 30:19)” 말씀을 통해 생명이 아니면 사망이고 복이 아니면 저주일 뿐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면 사탄의 자녀일 뿐 그 가운데는 없다는 것이죠. 그렇기에 제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고 기도하는 것은 잘못이고 그렇게 한다는 것은 사탄의 자식이 될 뿐 이라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물론 의도는 그렇지 않으셨겠지만 꼭 저를 정죄하는듯하게 이야기가 들렸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면 사탄의 자식이 되는 것인지... 저는 꼭 아버지라는 단어에 국한을 해야 하는지가 의문입니다. 인간의 언어와 단어가 가지는 한계성이 예수님이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했을 때 담고 있는 의미와 인식을 모두 담아낼 수 있는 것인지가 가장 큰 의문이었습니다. 또한 그렇게 부르지 못하면 이분법적으로 무조건 사탄의 자식이 되어야 하는 것인지도 의문이었습니다.
정용섭 목사님의 2004년 7월 2일자 설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참고해 본다면 저는 아직 추상적인 유대인의 신 개념에 머물러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그 설교에서 아버지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두 가지 특성인 개인적인 관계와 구원,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실 창조가 이시다라는 것은 분명 제가 생각하는 하나님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다만 아버지라는 단어가 주는 모호성이라고 할까요? 그것이 제게 잘 들어오지 않을 뿐입니다.
아버지라는 단어가 지니는 의미와 언어의 한계성... 그리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사탄의 자녀일 뿐이라는 이분법... 제가 잘 못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요?
2007.01.29 18:20:15
하느님이 아버지이신 것은 맞지만,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고 기도한다고 해서 잘못이라느니, 사탄의 자식이라느니 하는 것은 삶은 계란을 다른 방향으로 깨먹는다고 그들을 교수형에 처한 소인국 사람들의 독선 못지 않은 독선입니다. 하느님을 주인으로 믿는 사람은 주님으로 고백하면서 기도하면 되고, 하느님을 아버지로 믿는 사람은 아버지로 고백하는 기도를 하면 되는 것이지요.
가장 심각한 문제는 그 전도사가 성서를 엉터리로 해석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신명기 30:19은 바알숭배나 바알의 아내신인 아세라 숭배등, 우상숭배의 위험을 가지고 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경고하기 위한 야훼의 말씀입니다. 너희가 너희를 이집트에서 구원한 참된 신인 나를 믿고 따르면 복을 주겠지만, 너희가 나를 멀리하면 심판하시겠다는 것이지요.
예레미야 31:27도 문맥에 맞추어 해석하면 하느님의 씨와 짐승의 씨가 있다는게 아니라,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돌보아주시겠다고 약속하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지친 사람에게 마음껏 마실 물을 주고, 허기진 사람에게 배불리 먹을 양식을 주리라.
그리하여, '잠을 깨어 눈을 떠보니, 참 잘도 잤구나.' 하게 되리라.
앞으로 이런 날이 오리라. 내가 분명히 말해 둔다. 이스라엘 가문과 유다 가문을 사람이나 짐승 할 것 없이 씨를 뿌려 농사짓듯이 불어나게 하리라.
이전에는 자나깨나 이 백성을 뽑고 부수고 허물고 멸하고 해치기만 하였으나, 그만큼 이제는 눈을 똑바로 뜨고 세우며 심어주리라. 이는 내 말이라, 어김이 없다. (예레미야 31:25-28)
가장 심각한 문제는 그 전도사가 성서를 엉터리로 해석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신명기 30:19은 바알숭배나 바알의 아내신인 아세라 숭배등, 우상숭배의 위험을 가지고 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경고하기 위한 야훼의 말씀입니다. 너희가 너희를 이집트에서 구원한 참된 신인 나를 믿고 따르면 복을 주겠지만, 너희가 나를 멀리하면 심판하시겠다는 것이지요.
예레미야 31:27도 문맥에 맞추어 해석하면 하느님의 씨와 짐승의 씨가 있다는게 아니라,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돌보아주시겠다고 약속하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지친 사람에게 마음껏 마실 물을 주고, 허기진 사람에게 배불리 먹을 양식을 주리라.
그리하여, '잠을 깨어 눈을 떠보니, 참 잘도 잤구나.' 하게 되리라.
앞으로 이런 날이 오리라. 내가 분명히 말해 둔다. 이스라엘 가문과 유다 가문을 사람이나 짐승 할 것 없이 씨를 뿌려 농사짓듯이 불어나게 하리라.
이전에는 자나깨나 이 백성을 뽑고 부수고 허물고 멸하고 해치기만 하였으나, 그만큼 이제는 눈을 똑바로 뜨고 세우며 심어주리라. 이는 내 말이라, 어김이 없다. (예레미야 31:25-28)
2007.01.29 19:57:34
세 분 댓글 잘 보았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특히 바우로님이 제시해주신 예레미아 말씀(공동번역인 것 같군요)을 읽어보니 뭐 크게 생각할 것 없이 사람과 가축 모두 번성하게 해주겠다는 축복의 말씀이더군요. 제가 개역한글판 성경만 봐서 문맥을 읽어도 그 전도사님 말씀처럼 그렇구나 했는데 개역개정, 공동번역, 표준새번역 어느 것을 읽어도 다 자연스럽게 축복의 말씀인 걸 알겠네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더더욱 의문이 가는 것이 생겼습니다.
바우로님이 제시해 주신 성경구절을 찾으려고 인터넷 검색창에 예레미아 31:27절을 쳤는데... 신천지에서 한 설교말씀이 딱 뜨는 것입니다. 설교 제목이 하나님의 씨와 마귀의 씨였습니다. 그런데 그 전도사님이 하신 말씀과 너무나 닮아있었습니다.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하나님의 씨와 마귀의 씨로 해석하는 것도 같고요.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자연스럽게 신천지의 성경공부에 대해 검색을 또 해보았는데...
제가 그 전도사님께 지금까지 들었던 말씀하고 놀랍도록 닮아있었습니다.
언약의 완벽한 성취, 영분별, 선악분별, 하나님의 씨, 예수님께서 주시는 양식...
어쩜 그리 비슷한지 정말 기절할 뻔 했습니다.
영분별을 이야기 하시면서 지금 사탄이 교회 속에서 하나님인냥 하고 있다고 신자들이 스스로 영분별 하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고 하셨는데 그 때는 그냥 현실 교회에 비판적이구나 하는 생각만 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정말 의심이 갑니다. 그들이 하는 말을 듣고 영분별 해야 된다는 이야기도 신천지에 그대로 있더군요.
한 가지 걸리는 것은 그 전도사님이 지금은 예장통합측 교회에서 전도사님으로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분이 교회에서 활동하는 것보다 청년들 성경공부를 위해 이곳저곳 돌아다니느라 바쁘다라고 하신걸 보면 더 의심이 가기도 하네요.
개역한글판 성경만이 가장 좋은 번역이라고 하는 것도 신천지랑 비슷하고요.
아무튼 이래저래 의심도 가고 두렵기도 합니다. 지금 그 전도사님과 이야기 나누는 청년들은 정말 이번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전도사님 말씀을 외우고 있습니다. 저는 조금씩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알아보기도 하고 있긴 한데요.
잘 아시는 다비안이 계시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특히 바우로님이 제시해주신 예레미아 말씀(공동번역인 것 같군요)을 읽어보니 뭐 크게 생각할 것 없이 사람과 가축 모두 번성하게 해주겠다는 축복의 말씀이더군요. 제가 개역한글판 성경만 봐서 문맥을 읽어도 그 전도사님 말씀처럼 그렇구나 했는데 개역개정, 공동번역, 표준새번역 어느 것을 읽어도 다 자연스럽게 축복의 말씀인 걸 알겠네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더더욱 의문이 가는 것이 생겼습니다.
바우로님이 제시해 주신 성경구절을 찾으려고 인터넷 검색창에 예레미아 31:27절을 쳤는데... 신천지에서 한 설교말씀이 딱 뜨는 것입니다. 설교 제목이 하나님의 씨와 마귀의 씨였습니다. 그런데 그 전도사님이 하신 말씀과 너무나 닮아있었습니다.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하나님의 씨와 마귀의 씨로 해석하는 것도 같고요.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자연스럽게 신천지의 성경공부에 대해 검색을 또 해보았는데...
제가 그 전도사님께 지금까지 들었던 말씀하고 놀랍도록 닮아있었습니다.
언약의 완벽한 성취, 영분별, 선악분별, 하나님의 씨, 예수님께서 주시는 양식...
어쩜 그리 비슷한지 정말 기절할 뻔 했습니다.
영분별을 이야기 하시면서 지금 사탄이 교회 속에서 하나님인냥 하고 있다고 신자들이 스스로 영분별 하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고 하셨는데 그 때는 그냥 현실 교회에 비판적이구나 하는 생각만 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정말 의심이 갑니다. 그들이 하는 말을 듣고 영분별 해야 된다는 이야기도 신천지에 그대로 있더군요.
한 가지 걸리는 것은 그 전도사님이 지금은 예장통합측 교회에서 전도사님으로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분이 교회에서 활동하는 것보다 청년들 성경공부를 위해 이곳저곳 돌아다니느라 바쁘다라고 하신걸 보면 더 의심이 가기도 하네요.
개역한글판 성경만이 가장 좋은 번역이라고 하는 것도 신천지랑 비슷하고요.
아무튼 이래저래 의심도 가고 두렵기도 합니다. 지금 그 전도사님과 이야기 나누는 청년들은 정말 이번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전도사님 말씀을 외우고 있습니다. 저는 조금씩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알아보기도 하고 있긴 한데요.
잘 아시는 다비안이 계시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2007.01.29 21:04:01
신천지라면 경계심을 늦추지 말아야겠네요.
저희카페 상담방에 공지로 올려두었던 내용을 올립니다.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예향 상담방에 신천지 집단이 뱀처럼 교묘하게 침투하고 있습니다.
상담자들에게 혹은 접속자들에게 개별적으로 메일이나 쪽지를 보내서
신천지라는 사실을 전혀 밝히지 않고
"무료로 신학을 공부해 보겠느냐?"
혹은 "같이 성경 공부를 해 보겠느냐?"
는 식으로 접근하는 수법을 씁니다..
최근 들어서는 '바울선교센타' 라는 이름으로 영혼을 미혹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끼에 걸려들면 본격적으로
3개월 6개월 1년 단위로 여호와 증인식 세뇌교육에 들어가게 됩니다.
말씀의 뿌리가 약하고 연약한 분들은
그들의 알레고리한 해석에 매료되어 쉽게 넘어갑니다.
그들이 주로 쓰는 성경 해석방법은 알레고리식 영적주해라는 것인데
이들은 그들에게 필요한 성경 구절들을 한 곳으로 모아
교리의 목걸이처럼 하나로 나열해 서로 연결합니다.
어떤 것은 진리의 깊은 것을 건드리기도 하고
감추어져 있었던 비밀을 캐내기도 하면서
하나 하나씩 사람들을 유인해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그들의 교리는 마치 독버섯과 같습니다.
얼른 보면 화려하고 그럴듯하고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지만
먹게 되면 영혼이 병들거나 죽게 되는 그런 교리들입니다.
모든 이단들이 다 그렇지만 처음에는 치명적인 매력으로 다가옵니다.
처음에는 말씀을 말씀으로 풀어주니 오묘하고 신기한 것 같아도
점 점 가면 갈 수록 성령의 인도하심을 부인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기도는 장신구요, 필요가 없으며 그들이 가르쳐 주는 성경을
그들이 가르쳐 주는데로만 아는 바로 그것이 영생이라고 영혼들을 속입니다.
또 예수님의 신성과 유일무이한 구세주 되심을 부인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오실 선지자, 오실 재림주... 오실 감람나무
오실 두 증인" 등으로...다니엘고 계시록등 예언서를 집중적으로 파고 들면서
<어떤 사람>을 기다리거나 사모하거나 기대하게 합니다.
<어떤 사람>은 마치 모든 진리를 알고 모든 말씀과
계시록의 비밀을 풀어주는 예수님과 같은 선지자다, 라는 식으로 세뇌합니다.
예수님은 유일무이한 구세주가 아니라
모세와 엘리야. 엘리사 이사야, 등과 같이 시대가 낳은
하나의 선지자로 격하되게 되며...
성령의 존재는 무시되고 성령의 인도하심은 멸시되게 됩니다.
기도할 이유와 필요성을 약화시키는 대신
그들이 해석한 그럴듯한 해석을 아는 것이 바로 영생이라고 말합니다.
요한복음17:3절에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에서의 아는 것(야다)이 영생이라는 의미는
단순히 성경 지식이나 성경의 어떤 말씀의 해석을 아는 것이 아니라
부부관계처럼 서로 체험적으로 긴밀하게 실제적으로 아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실제적으로 아는 것이 영생이라는 의미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성경 원어 본래의 의미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무지합니다.
그들은 예수 복음에 대한 이런 명백한 성경구절은 철처하게 은폐하거나
왜곡하면서 교묘하게 예수님이 아닌.......
<어떤 사람, 어떤 선지자, 재림예수,두 증인>을 기다리게 합니다.
결국 완전히 세뇌가 되어 있던 믿음을 빼앗기고
건전한 이성이 망가져 갈 단계까지가면(이는 피라밋 다단계 세뇌교육과 흡사합니다)
그들이 기다리던 바로 그 선지자(예수)는 바로
그들의 교주인 이만희라는 결론을 내려주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이들은 그렇게 하여 예수님의 구원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그들이 성경을 교묘하게 끼워맞추어 억지 해석한
깊은 숨은 간계와 목적을 따라 결국 허망하게도
사람(이만희)를 재림주와 성령과 선지자로 믿고 따르게 됩니다.
이런 일이 없도록 함께 감시해 주시고 각자 조심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성경에 무지한 천주교인들 중에서는 마리아를 통해서..
안식교인들은 안식일을 지킴으로써..
신천지 무료 성경학교는 그들의 비유풀이 해석을 통해서..
어떤 사람은 자선과 구제와 봉사를 통해서..
어떤 사람은 그들의 목사나 교주를 통해서..
하나님께 인도되거나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주예수는 작고 소외된 하나님이거나
하나님이 아니거나, 선지자의 하나이거나, 심지어 사람일 뿐이거나
혹은 그들의 목사나 재림주(교주)가 보충해줘야만 할,
미완성의 구세주로 조작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를 무너뜨리는 것, 예수님의 하나님이심을 무너뜨리는 것은
사단의 가장 핵심적이며 은밀하며 집요한 최고 공격대상이 됩니다.
우리의 믿음도, 기도도, 사랑도 봉사도 교제도
모두 주 안에서 주의 이름으로 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주예수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께 갈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며
주예수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으로부터 올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구원도 축복도 응답도 모두 중보자이신 주예수로 인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예수만이 하나님이시자 동시에 사람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주예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주예수를 만난 자가 하나님 아버지를 본 것이 되는 것입니다.
사단의 가장 깊고 교묘한 속임수에 속아서
이 중요한 핵심 원리에서 어긋나기 시작하면 자기 생명과 믿음을 도둑맞게 되고
배도자와 미혹자가 되어 자기도 모르게 열심으로 가라지와 늑대의 길을 걷게 됩니다.
굳세지 못한 자들이나 연약한 자들,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한 자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자들은 너무도 쉽게 속아 넘어가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유일무이한 구세주를 선지자와 동일한 위치에 두게되고
그들의 교묘한 사설에 참된 믿음과 영생을 빼앗기게 됩니다.
"그(예수)는 근본 하나님과 본체시나 (빌2:5-8)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나(예수)는 길이요,진리요, 생명이니 (요44:6)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저희카페 상담방에 공지로 올려두었던 내용을 올립니다.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예향 상담방에 신천지 집단이 뱀처럼 교묘하게 침투하고 있습니다.
상담자들에게 혹은 접속자들에게 개별적으로 메일이나 쪽지를 보내서
신천지라는 사실을 전혀 밝히지 않고
"무료로 신학을 공부해 보겠느냐?"
혹은 "같이 성경 공부를 해 보겠느냐?"
는 식으로 접근하는 수법을 씁니다..
최근 들어서는 '바울선교센타' 라는 이름으로 영혼을 미혹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끼에 걸려들면 본격적으로
3개월 6개월 1년 단위로 여호와 증인식 세뇌교육에 들어가게 됩니다.
말씀의 뿌리가 약하고 연약한 분들은
그들의 알레고리한 해석에 매료되어 쉽게 넘어갑니다.
그들이 주로 쓰는 성경 해석방법은 알레고리식 영적주해라는 것인데
이들은 그들에게 필요한 성경 구절들을 한 곳으로 모아
교리의 목걸이처럼 하나로 나열해 서로 연결합니다.
어떤 것은 진리의 깊은 것을 건드리기도 하고
감추어져 있었던 비밀을 캐내기도 하면서
하나 하나씩 사람들을 유인해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그들의 교리는 마치 독버섯과 같습니다.
얼른 보면 화려하고 그럴듯하고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지만
먹게 되면 영혼이 병들거나 죽게 되는 그런 교리들입니다.
모든 이단들이 다 그렇지만 처음에는 치명적인 매력으로 다가옵니다.
처음에는 말씀을 말씀으로 풀어주니 오묘하고 신기한 것 같아도
점 점 가면 갈 수록 성령의 인도하심을 부인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기도는 장신구요, 필요가 없으며 그들이 가르쳐 주는 성경을
그들이 가르쳐 주는데로만 아는 바로 그것이 영생이라고 영혼들을 속입니다.
또 예수님의 신성과 유일무이한 구세주 되심을 부인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오실 선지자, 오실 재림주... 오실 감람나무
오실 두 증인" 등으로...다니엘고 계시록등 예언서를 집중적으로 파고 들면서
<어떤 사람>을 기다리거나 사모하거나 기대하게 합니다.
<어떤 사람>은 마치 모든 진리를 알고 모든 말씀과
계시록의 비밀을 풀어주는 예수님과 같은 선지자다, 라는 식으로 세뇌합니다.
예수님은 유일무이한 구세주가 아니라
모세와 엘리야. 엘리사 이사야, 등과 같이 시대가 낳은
하나의 선지자로 격하되게 되며...
성령의 존재는 무시되고 성령의 인도하심은 멸시되게 됩니다.
기도할 이유와 필요성을 약화시키는 대신
그들이 해석한 그럴듯한 해석을 아는 것이 바로 영생이라고 말합니다.
요한복음17:3절에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에서의 아는 것(야다)이 영생이라는 의미는
단순히 성경 지식이나 성경의 어떤 말씀의 해석을 아는 것이 아니라
부부관계처럼 서로 체험적으로 긴밀하게 실제적으로 아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실제적으로 아는 것이 영생이라는 의미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성경 원어 본래의 의미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무지합니다.
그들은 예수 복음에 대한 이런 명백한 성경구절은 철처하게 은폐하거나
왜곡하면서 교묘하게 예수님이 아닌.......
<어떤 사람, 어떤 선지자, 재림예수,두 증인>을 기다리게 합니다.
결국 완전히 세뇌가 되어 있던 믿음을 빼앗기고
건전한 이성이 망가져 갈 단계까지가면(이는 피라밋 다단계 세뇌교육과 흡사합니다)
그들이 기다리던 바로 그 선지자(예수)는 바로
그들의 교주인 이만희라는 결론을 내려주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이들은 그렇게 하여 예수님의 구원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그들이 성경을 교묘하게 끼워맞추어 억지 해석한
깊은 숨은 간계와 목적을 따라 결국 허망하게도
사람(이만희)를 재림주와 성령과 선지자로 믿고 따르게 됩니다.
이런 일이 없도록 함께 감시해 주시고 각자 조심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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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무지한 천주교인들 중에서는 마리아를 통해서..
안식교인들은 안식일을 지킴으로써..
신천지 무료 성경학교는 그들의 비유풀이 해석을 통해서..
어떤 사람은 자선과 구제와 봉사를 통해서..
어떤 사람은 그들의 목사나 교주를 통해서..
하나님께 인도되거나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주예수는 작고 소외된 하나님이거나
하나님이 아니거나, 선지자의 하나이거나, 심지어 사람일 뿐이거나
혹은 그들의 목사나 재림주(교주)가 보충해줘야만 할,
미완성의 구세주로 조작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를 무너뜨리는 것, 예수님의 하나님이심을 무너뜨리는 것은
사단의 가장 핵심적이며 은밀하며 집요한 최고 공격대상이 됩니다.
우리의 믿음도, 기도도, 사랑도 봉사도 교제도
모두 주 안에서 주의 이름으로 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주예수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께 갈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며
주예수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으로부터 올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구원도 축복도 응답도 모두 중보자이신 주예수로 인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예수만이 하나님이시자 동시에 사람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주예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주예수를 만난 자가 하나님 아버지를 본 것이 되는 것입니다.
사단의 가장 깊고 교묘한 속임수에 속아서
이 중요한 핵심 원리에서 어긋나기 시작하면 자기 생명과 믿음을 도둑맞게 되고
배도자와 미혹자가 되어 자기도 모르게 열심으로 가라지와 늑대의 길을 걷게 됩니다.
굳세지 못한 자들이나 연약한 자들,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한 자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자들은 너무도 쉽게 속아 넘어가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유일무이한 구세주를 선지자와 동일한 위치에 두게되고
그들의 교묘한 사설에 참된 믿음과 영생을 빼앗기게 됩니다.
"그(예수)는 근본 하나님과 본체시나 (빌2:5-8)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나(예수)는 길이요,진리요, 생명이니 (요44:6)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2007.01.29 21:45:37
조현아님 감사합니다~
그 전도사님이 이야기하실 때 특징이 바로 조현아님이 올려주신 글의 알레고리식 영적주해라는 것과 비슷합니다. 말씀 주제를 정해놓고 그에 해당하는 성경 구절을 하나하나 들어주면서 그 주제를 밝혀나가는 방식이죠. 그러다 보니 그 말씀이 어떤 배경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은 생략한 체 문자적으로 연결된다는 것만 강조하게 됩니다.(바우로님이 지적한 성경해석상의 오류도 그런 식으로 이루어진 것일 수도 있겠네요)그러기 위해 비유를 참 많이 풀더군요. 구약의 이 비유는 신약에 이렇게 연결되고 이렇게 성취되었다. 그러므로 신약의 새 언약도 모두 성취될 것이다라는 식이죠. 뭐 틀린말은 아니지만 그러면서 계속 적으로 우리가 재림 예수가 오시는 노정을 알아야 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노정을 모르면 그 분을 맞이할 수도 없다는 것이죠. 그 분이 살며시 이만희로 둔갑 될까요? 아직은 속단할 수 없지만 경계를 늦추면 안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씨앗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자신의 설명을 들으면서 이제야 여러분 마음속에 하나님의 씨앗이 뿌려지기 시작했다고 하더군요. 지금까지 제가 신앙생활 한 것은 다 소용 없었다는 듯이요... 그런걸 보면 더욱 조심해야겠습니다. 아무튼 관심 가져주시고 댓글 달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전도사님이 이야기하실 때 특징이 바로 조현아님이 올려주신 글의 알레고리식 영적주해라는 것과 비슷합니다. 말씀 주제를 정해놓고 그에 해당하는 성경 구절을 하나하나 들어주면서 그 주제를 밝혀나가는 방식이죠. 그러다 보니 그 말씀이 어떤 배경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은 생략한 체 문자적으로 연결된다는 것만 강조하게 됩니다.(바우로님이 지적한 성경해석상의 오류도 그런 식으로 이루어진 것일 수도 있겠네요)그러기 위해 비유를 참 많이 풀더군요. 구약의 이 비유는 신약에 이렇게 연결되고 이렇게 성취되었다. 그러므로 신약의 새 언약도 모두 성취될 것이다라는 식이죠. 뭐 틀린말은 아니지만 그러면서 계속 적으로 우리가 재림 예수가 오시는 노정을 알아야 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노정을 모르면 그 분을 맞이할 수도 없다는 것이죠. 그 분이 살며시 이만희로 둔갑 될까요? 아직은 속단할 수 없지만 경계를 늦추면 안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씨앗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자신의 설명을 들으면서 이제야 여러분 마음속에 하나님의 씨앗이 뿌려지기 시작했다고 하더군요. 지금까지 제가 신앙생활 한 것은 다 소용 없었다는 듯이요... 그런걸 보면 더욱 조심해야겠습니다. 아무튼 관심 가져주시고 댓글 달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2007.01.29 22:05:15
다비아에서는 돌(비난) 맞을 소리이겠습니다만...
저는 그분의 그 판단은 정확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양자의 영을 받은 자만이
(물과 성령으로 확실하게 거듭난 자들만이)
하나님을 감히 아바(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됩니다.
저는 그분의 그 판단은 정확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양자의 영을 받은 자만이
(물과 성령으로 확실하게 거듭난 자들만이)
하나님을 감히 아바(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됩니다.
2007.01.29 22:49:15
성서에 무지한 가톨릭 교인들 중에서는 마리아를 통해서..라고 하셨는데, 조현아님. 가톨릭 교회도 믿음을 통한 구원을 믿습니다. 물론 로마 가톨릭교회의 성모 마리아에 대한 공경이 지나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해서 성모 마리아를 통해서 구원받는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bonk3님..
신앙적으로 혼동을 많이 겪으시는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현아님의 말씀대로 안상홍의 증인회나 신천지등의 사이비종교들은 성서의 문맥을 무시하는 해석을 하는게 특징입니다. 이를테면 특정구절만 떼어내서는 자기네 교주가 그리스도라거나, 하느님이라거나 하면서 우상화하는 겁니다. 님이 말한 그 전도사의 예레미야 3:17에 대한 잘못된 해석도 성서에 대한 문맥을 무시한 해석이죠..
한글 개역판만 옳다고 주장한다는 것도 흠정역성서만 옳다고 주장하는 말씀보존학회라는 사이비종교와 비슷한 교리이죠..사실 한글개역판외에도 제가 인용한 공동번역성서, 표준새번역, 개역개정판은 각자의 장점과 단점이 있다는 점에서 모두 하느님의 말씀으로 존중하는게 옳습니다. 예수님이 오시는 노정을 알아야 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게, 교회는 대림절을 통해서 예수님을 기다릴 분으로 믿지, 그분의 노정을 알아야 할 분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전도사의 교리는 그리스도교의 교리와 신앙 전통에서 벗어나 잘못된 해석이죠..
그 엉터리 전도사가 통합측 장로교 전도사라고 하셨는데, 장로교나 성결교회등의 프로테스탄트교회의 성직자라고 해서 안심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극히 일부이겠지만 프로테스탄트교회의 성직자나 신자가 사이비종교의 교주가 되는 경우도 있거든요. 그 실례가 만민중앙성결교회의 이재록 교주와 천부교의 창시자 박태선 교주 아닙니까?특히 이재록 교주는 성결대학교 학생인 제 친구의 표현을 빌리면 아주 부끄러운 선배라고 합니다.
bonk3님..
신앙적으로 혼동을 많이 겪으시는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현아님의 말씀대로 안상홍의 증인회나 신천지등의 사이비종교들은 성서의 문맥을 무시하는 해석을 하는게 특징입니다. 이를테면 특정구절만 떼어내서는 자기네 교주가 그리스도라거나, 하느님이라거나 하면서 우상화하는 겁니다. 님이 말한 그 전도사의 예레미야 3:17에 대한 잘못된 해석도 성서에 대한 문맥을 무시한 해석이죠..
한글 개역판만 옳다고 주장한다는 것도 흠정역성서만 옳다고 주장하는 말씀보존학회라는 사이비종교와 비슷한 교리이죠..사실 한글개역판외에도 제가 인용한 공동번역성서, 표준새번역, 개역개정판은 각자의 장점과 단점이 있다는 점에서 모두 하느님의 말씀으로 존중하는게 옳습니다. 예수님이 오시는 노정을 알아야 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게, 교회는 대림절을 통해서 예수님을 기다릴 분으로 믿지, 그분의 노정을 알아야 할 분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전도사의 교리는 그리스도교의 교리와 신앙 전통에서 벗어나 잘못된 해석이죠..
그 엉터리 전도사가 통합측 장로교 전도사라고 하셨는데, 장로교나 성결교회등의 프로테스탄트교회의 성직자라고 해서 안심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극히 일부이겠지만 프로테스탄트교회의 성직자나 신자가 사이비종교의 교주가 되는 경우도 있거든요. 그 실례가 만민중앙성결교회의 이재록 교주와 천부교의 창시자 박태선 교주 아닙니까?특히 이재록 교주는 성결대학교 학생인 제 친구의 표현을 빌리면 아주 부끄러운 선배라고 합니다.
2007.01.29 23:06:13
바우로님~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혼동이요?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계속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성경공부 하자고 해서 처음 만난게 아니라 조그마한 개척교회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만났기에 처음에 큰 의심을 안했던 것이고요. 점차 이야기 해 나가면서 이상하다는 것을 더욱 더 느꼈습니다. 제 생각만으로 판단하기 힘들었기에 이렇게 다비아에 글을 올렸던 것이고요. 그나마 다비아를 통해 제 신앙관과 성경관이 어느정도 확립되어 있었기에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지 작년 이맘때 그런 일이 있었다면 꼼짝없이 그런 줄 알고 따라갔을 것 같습니다. 같이 봉사활동을 했던 다른 청년들은 지금 너무 좋은 말씀 이라고 거의 맹신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특히 제대로된 성경적 지식 없이 현실 교회에 대한 비판의식만 가진 성도들에게는 정말 독약일 될 듯 합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혼동이요?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계속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성경공부 하자고 해서 처음 만난게 아니라 조그마한 개척교회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만났기에 처음에 큰 의심을 안했던 것이고요. 점차 이야기 해 나가면서 이상하다는 것을 더욱 더 느꼈습니다. 제 생각만으로 판단하기 힘들었기에 이렇게 다비아에 글을 올렸던 것이고요. 그나마 다비아를 통해 제 신앙관과 성경관이 어느정도 확립되어 있었기에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지 작년 이맘때 그런 일이 있었다면 꼼짝없이 그런 줄 알고 따라갔을 것 같습니다. 같이 봉사활동을 했던 다른 청년들은 지금 너무 좋은 말씀 이라고 거의 맹신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특히 제대로된 성경적 지식 없이 현실 교회에 대한 비판의식만 가진 성도들에게는 정말 독약일 될 듯 합니다.
2007.01.29 23:14:54
bonk3님.. 다음 기사들을 읽어보시면 도움이 될 듯 합니다.
http://www.newsnjo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996
http://www.newsnjo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953
http://www.newsnjo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212
http://www.newsnjo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948
http://www.newsnjo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262
http://www.newsnjo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996
http://www.newsnjo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953
http://www.newsnjo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212
http://www.newsnjo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948
http://www.newsnjo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262
2007.01.30 01:03:24
저는 예수가 말씀하신 '아버지'라면 때때로 '어머니'로 부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의 '아바' 안에는 우리 문화에서는 '어머니'의 성품에 포함되는 돌봄과 공감의 역할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죠.
그 전도사님께서 '아버지' 라는 단어에 유난히 강조점을 두신다면
그분의 숨은 의도가 조금은 보이는듯 하네요.
예수의 '아바' 안에는 우리 문화에서는 '어머니'의 성품에 포함되는 돌봄과 공감의 역할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죠.
그 전도사님께서 '아버지' 라는 단어에 유난히 강조점을 두신다면
그분의 숨은 의도가 조금은 보이는듯 하네요.
2007.01.30 01:31:24
실은 낮에 올리신 글을 읽고 전도사님 말씀이 신천지의 가르침과 비슷하다는 말씀을 드리려다
꾹 참았습니다. 추수꾼이라는 이름으로 기존의 교회에 잡입해서 성도들 꼬셔가는 경우가 비일비재
하고 그 수법이 아주 가증스럽습니다.
사실 부끄럽지만 저도 우연한 기회에 신천지의 성경공부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에는 그것이 신천지인지 몰랐습니다. 다만 제가 읽고 있던 유진피터슨 번역의 메시지와
표준새번역을 의뭉스럽게 보는 것과 성경을 문맥으로 읽지 않고 특유의 건너뛰기 수법으로
일관하는 점이 다소 수상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이상한 성경 공부 모임 정도로 생각을
했더랬지요. 그래서 두번째 모임을 하고는 다시는 가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자의로 시작한 것도
아니었구요.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곳에 계시는 분들이 다 기존 교회에 출석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 후에 신천지라는 곳에 대해서 조금 알아보았더니 앞서 말씀 드린 대로
추수꾼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해서 사람들을 빼가는 일들이 있었던 거구요.
만약에 그 전도사님 의심이 가신다면 본교에 조심스레 알리시고 확실하게 검증을 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꾹 참았습니다. 추수꾼이라는 이름으로 기존의 교회에 잡입해서 성도들 꼬셔가는 경우가 비일비재
하고 그 수법이 아주 가증스럽습니다.
사실 부끄럽지만 저도 우연한 기회에 신천지의 성경공부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에는 그것이 신천지인지 몰랐습니다. 다만 제가 읽고 있던 유진피터슨 번역의 메시지와
표준새번역을 의뭉스럽게 보는 것과 성경을 문맥으로 읽지 않고 특유의 건너뛰기 수법으로
일관하는 점이 다소 수상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이상한 성경 공부 모임 정도로 생각을
했더랬지요. 그래서 두번째 모임을 하고는 다시는 가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자의로 시작한 것도
아니었구요.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곳에 계시는 분들이 다 기존 교회에 출석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 후에 신천지라는 곳에 대해서 조금 알아보았더니 앞서 말씀 드린 대로
추수꾼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해서 사람들을 빼가는 일들이 있었던 거구요.
만약에 그 전도사님 의심이 가신다면 본교에 조심스레 알리시고 확실하게 검증을 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2007.01.30 11:21:40
참 혼란스러운 카페라는 생각이 든다. 신학적 자유주의를 따르는 학교,교회의 사람들의 의견을 실제로 접해보니 답답하다. 조현아님의 글에만 이해가 된다. 하나님을 '어머니'라고 불러도 될것 같다? 이런 신성모독적인 표현이 어디있나! 성경에서나, 이 천년 교회역사에 있어서 그런 표현을 사용하는것이 신학적으로 문제 없다고 주장하던 시대가 있었나? 요즘은 신학적 막가파 시대다.남녀분별을 말함에도,남녀차별로 이해해서 모든 부분에서 남녀동일을 주장한다. 하나님의 창조원리,질서를 말함에도,요즘은 그것도 차별이요 타파의 대상이 되는 시대인 것이다. 여자목사제도가 생겨난 것도 지난세기의 일이다. 그것을 차별로 보고 불평하기 때문이다.19세기의 자유주의,인본주의의 영향과 20세기의 포스트 모더니즘의 시대에 이제는 진리의 말씀인 성경도 줄 끊어진 연을 보는 것처럼 얼마나 인간의 시대상식에 의해서 난도질을 당할지 모르겠다. 어느시대나 '살인'은 죄라는 것은 진리이다.그러나 앞으로는 살인도 죄가 아니라 인간의 연약성,부족함정도로 이해해서 별 문제삼지 않는 시대가 올지도 모르겠다.
2007.01.30 13:15:07
구름님 일단 답글은 일단 본 게시물과 연관이 없는 답글에 대한 논평이시네요.
위 내용을 살펴보시면 한 청년이 지금 한 사람을 보혜사라고 주장하는
이단적 교회일 가능성이 큰 곳에서 신앙적 혼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자문을 구하고 있는데
다비아와 다비아 구성원들에 대한 비판적인 글을 올려놓으시면서 자유주의 신학이네 뭐네
하시는 것은 썩 좋아보이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복음과 생명에 관심이 있는 분이시라면
고민 중인 청년에게 할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진심어린.
위 내용을 살펴보시면 한 청년이 지금 한 사람을 보혜사라고 주장하는
이단적 교회일 가능성이 큰 곳에서 신앙적 혼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자문을 구하고 있는데
다비아와 다비아 구성원들에 대한 비판적인 글을 올려놓으시면서 자유주의 신학이네 뭐네
하시는 것은 썩 좋아보이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복음과 생명에 관심이 있는 분이시라면
고민 중인 청년에게 할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진심어린.
2007.01.30 18:50:23
하느님을 아버지라고만 불러야 한다?물론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이지만, 하느님을 아버지로 보는 교리가 로마 가톨릭교회의 성모 마리아에 대한 극단적 공경교리와 연옥교리를 만들었음을 기억하시라! 그리고 자유주의라는 말을 남발하시기전에 자유주의 신학이 무엇인지 정확히 공부하시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안의 형제 구름님..
2007.01.30 21:53:41
조현아님!
위의 대글에서 다음과 같이 맞장구를 치셨군요.
"다비아에서는 돌(비난) 맞을 소리이겠습니다만...
저는 그분의 그 판단은 정확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위에 글쓴 분의 말에 따르면 문제의 전도사님의 <마귀의 씨와 하나님의 씨>주장은
신천지의 것과 너무 닮았다는군요. 도대체 어떻게 된건가요?
조현아님의 신앙과 신천지의 신앙이 비슷하다는 건가요?
그런데 위에서 신천지와 비슷하다는 말을 듣고 난 뒤에는
슬쩍 말이 바뀌었네요. 경계해야한다고...
<저는 그 분의 그 판단은 정확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만일 처음부터 신천지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면 위의 주장은 할 수 없었을텐데
안타깝게도 성급하게 먼저 동조하고 말았군요.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하군요.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아는 사람이 있고
맛을 보지 않고도 척 보면 아는 사람이 있다고 하죠?
그런데 이번 경우 현아님은 이미 맛을 보고 똥인지 알게 된 형국과 비숫하군요.
안타깝습니다.
평소에 그렇게 영, 영적, 영분별 운운하더니.....
위의 대글에서 다음과 같이 맞장구를 치셨군요.
"다비아에서는 돌(비난) 맞을 소리이겠습니다만...
저는 그분의 그 판단은 정확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위에 글쓴 분의 말에 따르면 문제의 전도사님의 <마귀의 씨와 하나님의 씨>주장은
신천지의 것과 너무 닮았다는군요. 도대체 어떻게 된건가요?
조현아님의 신앙과 신천지의 신앙이 비슷하다는 건가요?
그런데 위에서 신천지와 비슷하다는 말을 듣고 난 뒤에는
슬쩍 말이 바뀌었네요. 경계해야한다고...
<저는 그 분의 그 판단은 정확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만일 처음부터 신천지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면 위의 주장은 할 수 없었을텐데
안타깝게도 성급하게 먼저 동조하고 말았군요.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하군요.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아는 사람이 있고
맛을 보지 않고도 척 보면 아는 사람이 있다고 하죠?
그런데 이번 경우 현아님은 이미 맛을 보고 똥인지 알게 된 형국과 비숫하군요.
안타깝습니다.
평소에 그렇게 영, 영적, 영분별 운운하더니.....
2007.01.31 02:44:27
구름님께.
하나님이 어머니로 나타나는 전통은 성경에 분명히 있습니다.
내가 오랫동안 조용히 침묵을 지키며 참았으나, 이제는 내가 숨이 차서 헐떡이는, 해산하는 여인과 같이 부르짖겠다.
(사 42:14)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네게 보낸 예언자들을 죽이고, 돌로 치는구나!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 품듯이, 내가 몇 번이나 네 자녀들을 모아 품으려 하였더냐! 그러나 너희는 원하지 않았다.
(마 23:37)
그리고 마태복음 6장에서 예수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아버지' 의 성품은
'돌보심' 으로 요약될 수 있는데요,
(주기도문의 앞,뒤 맥락을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 알려주신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선한 자와 악한 자에게 똑같이 비를 주시고
들의 백합화와 하늘의 새를 친히 돌보시는 분이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성품을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현대 한국어 단어는 '아버지' 보다는 '어머니' 입니다.
우리의 어머니가 자기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으시며 우리를 양육하신 것처럼
하나님도 그렇게 하시는 분이시니까요.
하나님을 부르는 데에 한국어 단어 '아버지'에 강조점을 두게 되면
예수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하나님에게 초점이 모아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아버지의 이미지에 하나님을 가둬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사랑'과 '돌보심'이라는 그분의 성품 보다는
'군사부 일체'의 아버지를 떠올리게 만들 위험성도 있지요.
이런 용어 사용은 분명히 우리 주님의 의도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제 논리로 구름님이 설득당하지는 않으시겠죠.
하지만 성령께서 구름님의 마음을 움직이시어
하나님의 마음 깊은 곳을 알게 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어머니로 나타나는 전통은 성경에 분명히 있습니다.
내가 오랫동안 조용히 침묵을 지키며 참았으나, 이제는 내가 숨이 차서 헐떡이는, 해산하는 여인과 같이 부르짖겠다.
(사 42:14)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네게 보낸 예언자들을 죽이고, 돌로 치는구나!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 품듯이, 내가 몇 번이나 네 자녀들을 모아 품으려 하였더냐! 그러나 너희는 원하지 않았다.
(마 23:37)
그리고 마태복음 6장에서 예수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아버지' 의 성품은
'돌보심' 으로 요약될 수 있는데요,
(주기도문의 앞,뒤 맥락을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 알려주신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선한 자와 악한 자에게 똑같이 비를 주시고
들의 백합화와 하늘의 새를 친히 돌보시는 분이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성품을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현대 한국어 단어는 '아버지' 보다는 '어머니' 입니다.
우리의 어머니가 자기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으시며 우리를 양육하신 것처럼
하나님도 그렇게 하시는 분이시니까요.
하나님을 부르는 데에 한국어 단어 '아버지'에 강조점을 두게 되면
예수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하나님에게 초점이 모아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아버지의 이미지에 하나님을 가둬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사랑'과 '돌보심'이라는 그분의 성품 보다는
'군사부 일체'의 아버지를 떠올리게 만들 위험성도 있지요.
이런 용어 사용은 분명히 우리 주님의 의도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제 논리로 구름님이 설득당하지는 않으시겠죠.
하지만 성령께서 구름님의 마음을 움직이시어
하나님의 마음 깊은 곳을 알게 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2007.01.31 03:33:15
이 글은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ㅇㅇㅇ 전도사님의 질문에 대한 ㅇㅇㅇ 목사님의 답신입니다.)
ㅇㅇㅇ 전도사님, 안녕하세요? 저는 지금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와 있습니다. 이 곳에서 수고하고 있는 한국 선교사님들과 약 두 주간 성경공부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어제는 토요일이라 오전 공부를 한 후 이 나라의 수도인 Dar Es Salaam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가량 떨어진 Bagamoyo를 방문했습니다. 해변가에 있는 그 자그만 마을은 심한 역사적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현장입니다. 19세기 아프리카 대륙의 흑인들을 모아 노예시장이 있는 Zanzibar 섬으로 보내는 배의 선착장이 있는 곳입니다. 그 곳은 또한 Zambia에서 사망한 Livingstone의 시신이 잠시 머물다가 영국으로 운구된 항구이기도 합니다. 그 마을에 있는 박물관과 주변의 지역들을 살펴보며 착잡한 마음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노예로 팔려간 사람들이나 그 가족들의 형언할 수 없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부당한 이득을 챙기기 위해 그 악행을 합리화하며 그에 타협하던 인간들이 얼마나 이기적이며 악한 존재인가 하는 것을 어느정도 가늠할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 인간들의 악함도 외부로 드러난 양식이 다를 따름이지 그 본질적인 면에서는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전도사님이 질문한 ‘하나님 어머니’라는 망발은 그와 다른 경우이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인간의 악한 사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시대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하나님 아버지’가 아니라 ‘하나님 어머니’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생각입니다. 나아가 일부 무지한 목사들이 생각없이 그에 동조하는 것 역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전도사님 말씀처럼 설교를 하면서 ‘하나님 어머니, 하나님 아버지’라는 제목을 붙이는 목사가 있다는 사실은 한국교회의 허물어진 강단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더욱 한심한 일은 그런 식으로 주장하고 생각하는 자들은 자기가 시대를 앞서가는 선각자인 양 스스로 착각하고 있을 것이란 점입니다. 최근에 있었던 주기도문의 번역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서 ‘아버지’를 문제삼거나 그에 동조하는 듯한 일부 신학자들을 보면 한국 신학계의 영적 수준을 충분히 가늠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은 아예 신학적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조차 없는 한심한 사고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성경에는 하나님을 어머니로 묘사한 곳이 한 군데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 부르게 하시고(마6:9), 사도들이 하나님을 그렇게 부르고 있으면 더 이상 할 말이 전혀 필요 없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신앙의 선배들이 언제 하나님을 어머니로 호칭했던가요? 그런 말도 되지 않는 자기 합리화를 꾀하고 있는 자들은 하나님께 어머니의 성품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렇지만 그것만큼 말이 되지 않는 비논리적인 어거지가 없습니다. 만일 그런 식으로 말한다면, 앞으로 하나님을 ‘형님’, ‘누나’ ‘오빠’ ‘언니’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등장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나님 언니’ ‘하나님 누나’라는 말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일컫는 것이며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어머니라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일컫는 것이며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든 신앙의 근거를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두고 있습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분명하게 가르치며 교훈하고 있는 내용이라면 그에 순종해야만 합니다. 인간들이 만들어 낸 잘못된 의도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넘어 하나님을 어머니라 불러야 한다는 주장은 죄악입니다.
저는 한국의 다수 여성신학자들을 비롯한 일부 신학자들의 주장을 보며 심히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그들이 아무리 신학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고 학문을 부지런히 연구했다고 할지라도 그들의 신앙은 아직 유치한 어린아이의 수준을 전혀 넘어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 가운데는 말씀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잘못된 남의 신학적 주장에 생각없이 편승한 사람들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정신을 차려 말씀을 통한 주님의 뜻 가운데로 돌아와야 할 것입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제가 상당히 격한 어조로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제가 다소 격한 용어들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그들의 말을 듣고 잘못된 풍조에 막연히 휩쓸려가는 어린 성도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감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어머니로 불러야 한다든지 그렇게 부르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이미 상식적인 신학적 대화를 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고 있습니다. 그들은 말씀의 가르침을 벗어나 막무가내로 자기주장을 펼치면서 어린 성도들에게 그것이 마치 옳은 것인 양 선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극히 혼탁한 사조에 노출된 한국교회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진리를 허물고 훼손하려는 세력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고 신앙이 어린 성도들은 그 의미도 모르는 채 그에 따라 가려는 경향성을 띠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어린 성도들 가운데는 신학박사들도 끼어 있을 수 있고 나이든 목사들도 끼어 있을 수 있음을 잘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한국교회의 이런 현실을 보며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굳건히 붙들어야 할 것이며, 성도들이 그로부터 악한 영향을 받지 않도록 말씀을 통한 교육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다니 열심히 잘 공부하시기를 바랍니다. 교수님들 중 신약신학을 가르치는 허주 교수님은 저도 잘 알고 있는 분이니 혹 뵙는 기회가 있으면 안부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곳 탄자니아에서는 지금이 일년 중 가장 시원한 계절이라는데 그래도 매우 덥습니다. 밤에는 모기가 극성을 부리는군요. 짬을 내 간단한 답변을 드렸습니다. 부족하지만 약간의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안녕히 계세요.
2005. 7. 4
(Dar Es Salaam, Tanzania)
ㅇㅇㅇ 목사
ㅇㅇㅇ 전도사님, 안녕하세요? 저는 지금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와 있습니다. 이 곳에서 수고하고 있는 한국 선교사님들과 약 두 주간 성경공부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어제는 토요일이라 오전 공부를 한 후 이 나라의 수도인 Dar Es Salaam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가량 떨어진 Bagamoyo를 방문했습니다. 해변가에 있는 그 자그만 마을은 심한 역사적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현장입니다. 19세기 아프리카 대륙의 흑인들을 모아 노예시장이 있는 Zanzibar 섬으로 보내는 배의 선착장이 있는 곳입니다. 그 곳은 또한 Zambia에서 사망한 Livingstone의 시신이 잠시 머물다가 영국으로 운구된 항구이기도 합니다. 그 마을에 있는 박물관과 주변의 지역들을 살펴보며 착잡한 마음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노예로 팔려간 사람들이나 그 가족들의 형언할 수 없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부당한 이득을 챙기기 위해 그 악행을 합리화하며 그에 타협하던 인간들이 얼마나 이기적이며 악한 존재인가 하는 것을 어느정도 가늠할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 인간들의 악함도 외부로 드러난 양식이 다를 따름이지 그 본질적인 면에서는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전도사님이 질문한 ‘하나님 어머니’라는 망발은 그와 다른 경우이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인간의 악한 사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시대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하나님 아버지’가 아니라 ‘하나님 어머니’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생각입니다. 나아가 일부 무지한 목사들이 생각없이 그에 동조하는 것 역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전도사님 말씀처럼 설교를 하면서 ‘하나님 어머니, 하나님 아버지’라는 제목을 붙이는 목사가 있다는 사실은 한국교회의 허물어진 강단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더욱 한심한 일은 그런 식으로 주장하고 생각하는 자들은 자기가 시대를 앞서가는 선각자인 양 스스로 착각하고 있을 것이란 점입니다. 최근에 있었던 주기도문의 번역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서 ‘아버지’를 문제삼거나 그에 동조하는 듯한 일부 신학자들을 보면 한국 신학계의 영적 수준을 충분히 가늠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은 아예 신학적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조차 없는 한심한 사고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성경에는 하나님을 어머니로 묘사한 곳이 한 군데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 부르게 하시고(마6:9), 사도들이 하나님을 그렇게 부르고 있으면 더 이상 할 말이 전혀 필요 없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신앙의 선배들이 언제 하나님을 어머니로 호칭했던가요? 그런 말도 되지 않는 자기 합리화를 꾀하고 있는 자들은 하나님께 어머니의 성품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렇지만 그것만큼 말이 되지 않는 비논리적인 어거지가 없습니다. 만일 그런 식으로 말한다면, 앞으로 하나님을 ‘형님’, ‘누나’ ‘오빠’ ‘언니’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등장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나님 언니’ ‘하나님 누나’라는 말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일컫는 것이며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어머니라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일컫는 것이며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든 신앙의 근거를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두고 있습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분명하게 가르치며 교훈하고 있는 내용이라면 그에 순종해야만 합니다. 인간들이 만들어 낸 잘못된 의도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넘어 하나님을 어머니라 불러야 한다는 주장은 죄악입니다.
저는 한국의 다수 여성신학자들을 비롯한 일부 신학자들의 주장을 보며 심히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그들이 아무리 신학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고 학문을 부지런히 연구했다고 할지라도 그들의 신앙은 아직 유치한 어린아이의 수준을 전혀 넘어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 가운데는 말씀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잘못된 남의 신학적 주장에 생각없이 편승한 사람들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정신을 차려 말씀을 통한 주님의 뜻 가운데로 돌아와야 할 것입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제가 상당히 격한 어조로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제가 다소 격한 용어들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그들의 말을 듣고 잘못된 풍조에 막연히 휩쓸려가는 어린 성도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감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어머니로 불러야 한다든지 그렇게 부르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이미 상식적인 신학적 대화를 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고 있습니다. 그들은 말씀의 가르침을 벗어나 막무가내로 자기주장을 펼치면서 어린 성도들에게 그것이 마치 옳은 것인 양 선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극히 혼탁한 사조에 노출된 한국교회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진리를 허물고 훼손하려는 세력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고 신앙이 어린 성도들은 그 의미도 모르는 채 그에 따라 가려는 경향성을 띠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어린 성도들 가운데는 신학박사들도 끼어 있을 수 있고 나이든 목사들도 끼어 있을 수 있음을 잘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한국교회의 이런 현실을 보며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굳건히 붙들어야 할 것이며, 성도들이 그로부터 악한 영향을 받지 않도록 말씀을 통한 교육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다니 열심히 잘 공부하시기를 바랍니다. 교수님들 중 신약신학을 가르치는 허주 교수님은 저도 잘 알고 있는 분이니 혹 뵙는 기회가 있으면 안부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곳 탄자니아에서는 지금이 일년 중 가장 시원한 계절이라는데 그래도 매우 덥습니다. 밤에는 모기가 극성을 부리는군요. 짬을 내 간단한 답변을 드렸습니다. 부족하지만 약간의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안녕히 계세요.
2005. 7. 4
(Dar Es Salaam, Tanzania)
ㅇㅇㅇ 목사
2007.01.31 04:56:44
구름님/ 제가 가르치는 중고등부 학생 중에는, 어릴 적 부모님의 이혼으로 인해 아버지에 대한 개념이 없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빠’처럼 인자하고 따뜻한 분으로 여기라고 가르쳐도 잘 와닿지 않는다는 겁니다. 어머니와 살다가 몇 년 전부터 새 아버지와 살고 있는 한 아이는, 아버지란 단어를 떠올리면 오히려 어색함과 분노의 감정까지 생긴다고 하더군요. 그 얘에게 어머니를 떠올리면 어떠냐고 물었지요. 안쓰러움과 눈물이 날만큼 진한 애정의 감정을 가지고 있더군요. 따스함, 헌신, 돌봄, 이런 이미지를 어머니를 통해서 배운거지요. 저는 그 아이에게, 그러면 하나님을 엄마처럼 느끼라고 했고, 부르고 싶으면, ‘하나님 어머니, ‘엄마 하나님’ 이라고 불러도 괜찮다고 했습니다.
아시겠지만, 예수님 당시에는 하나님을 하나님이라고 부르지 못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이름이 망령되이 일컫어 짐을 피하기 위해 유대인들은 ‘야훼’라는 이름 대신, 주님이라는 뜻의 ‘아도나이’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던 시절에 예수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을 ‘아바’ (아빠)로 까지 부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그들에게 신성모독으로 들렸을 겁니다. 마치, '하나님 어머니'를 그렇게 느끼는 것 처럼요..
예수님께서 그런 가르침을 주신 이유는, 경외와 두려움의 대상만이 아니라, 우리를 돌보시는 친밀한 하나님의 이미지를 가르치기 위해 그러셨을 겁니다. 그렇다면 그런 친밀함을 어머니를 통해 느끼는 이가 하나님 어머니라고 불렀다고 해서, 예수님이 신성모독이라는 반응을 보이실까요? 예수님은 오히려 그들과 함께 ‘하나님 어머니’라 부르셨을 거라고 전 생각합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하나님은 ‘아버지’도 ‘어머니’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영이신 그 분은 육체의 씨로 맺어진 인간들의 혈연관계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다만, 그분의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아버지라고 부른 것 뿐입니다. 성서 속에서, 전통 속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른 것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신학적 상상력을 통해 하나님을 어머니라고 부른다고 해서 정죄 받을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공동체의 공적 기도에서 문제가 된다면 조심할 필요는 있겠지만, 개인 기도 시간에야 ‘아버지’, ‘아빠’, ‘어머니’, ‘엄마’로 하나님을 부른다면 뭐 문제 이겠습니까? 하나님을 어머니로 부르는 것이 불경스럽게 느껴진다면, 이렇게 불러보는 것은 어떨까요? “어머니 같으신 하나님 아버지”
아시겠지만, 예수님 당시에는 하나님을 하나님이라고 부르지 못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이름이 망령되이 일컫어 짐을 피하기 위해 유대인들은 ‘야훼’라는 이름 대신, 주님이라는 뜻의 ‘아도나이’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던 시절에 예수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을 ‘아바’ (아빠)로 까지 부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그들에게 신성모독으로 들렸을 겁니다. 마치, '하나님 어머니'를 그렇게 느끼는 것 처럼요..
예수님께서 그런 가르침을 주신 이유는, 경외와 두려움의 대상만이 아니라, 우리를 돌보시는 친밀한 하나님의 이미지를 가르치기 위해 그러셨을 겁니다. 그렇다면 그런 친밀함을 어머니를 통해 느끼는 이가 하나님 어머니라고 불렀다고 해서, 예수님이 신성모독이라는 반응을 보이실까요? 예수님은 오히려 그들과 함께 ‘하나님 어머니’라 부르셨을 거라고 전 생각합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하나님은 ‘아버지’도 ‘어머니’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영이신 그 분은 육체의 씨로 맺어진 인간들의 혈연관계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다만, 그분의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아버지라고 부른 것 뿐입니다. 성서 속에서, 전통 속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른 것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신학적 상상력을 통해 하나님을 어머니라고 부른다고 해서 정죄 받을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공동체의 공적 기도에서 문제가 된다면 조심할 필요는 있겠지만, 개인 기도 시간에야 ‘아버지’, ‘아빠’, ‘어머니’, ‘엄마’로 하나님을 부른다면 뭐 문제 이겠습니까? 하나님을 어머니로 부르는 것이 불경스럽게 느껴진다면, 이렇게 불러보는 것은 어떨까요? “어머니 같으신 하나님 아버지”
2007.01.31 06:58:20
신의 이름으로,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우월이 조장되어왔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연에 대한 인간의 탐욕/착취가 미화되어왔습니다.
하나님이 어찌 남성이나 여성이겠으며,
신께서 어찌 세상을 인간의 탐욕을 위해 지으셨겠습니까.
하나님나라를 향한 인식의 변화, 실천의 심화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을 ‘어머니 하나님’으로 고백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우월이 조장되어왔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연에 대한 인간의 탐욕/착취가 미화되어왔습니다.
하나님이 어찌 남성이나 여성이겠으며,
신께서 어찌 세상을 인간의 탐욕을 위해 지으셨겠습니까.
하나님나라를 향한 인식의 변화, 실천의 심화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을 ‘어머니 하나님’으로 고백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사람의 생각이란게 좀처럼 바뀌지 않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