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사의(考名思意)'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이름을 고찰하여 그 뜻을 헤아린다는 말입니다.

대화를 나눔에 있어,
같은 한국어를 하는 데도,
조금만 얘기를 진행시키다 보면,
뜻이 어긋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스도교 안에서도, 이런 현상은 유난히 심해 보입니다.

예컨대,
같은 '선교'라는 말을 사용해도,
보수주의 신앙을 가진 이들이 으레 떠올리는,
강권해서라도 예수님을 영접하게 이끄는, 그런 전도 류의 선교와,
에큐메니칼 진영 쪽이 연상하는,
전도 이전에, 하느님의 평화와 정의가 사회와 개인의 삶의 영역에 미치는,
'하느님의 선교'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이같이, 서로 상반되는 입장에서,
명칭만 똑같은 '선교'라 해서는, 서로 얘기가 진행되기보다는,
도리어, 명칭이 똑같기에, 대화의 혼란만 일어날 뿐입니다.
저같은 사람이 보기에, 현 시점에서 이슬람 문명권에 대한 '선교'는,
지금껏 그리스도교가 이슬람에 가했던 못할 짓들과,
품어 왔던 편견 등을 사과, 해소하고,
그 지역의 평화와, 서로의 화해를 위해 참회와, 무엇보다도,
작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침략 전쟁과 점령의 무력을 철수하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당분간 될 수 있는 한, 그 지역에 가지 않구요.
더욱이, 그리스도교라는 티를 내고 가는 일은 절대 없어야겠습니다.
그러나, 보수복음주의 쪽은, 반대 생각이신 것 같습니다.
정부에서 가지 말라고 만류하는데도 불구하고,
어떤 악조건 아래에서도, 일사각오의 순교 정신으로,
오직 유일한 구원의 길인 예수를 전하는 것이,
예수를 모르고 지옥 갈 그들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단 하나의 방법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같은 '선교'라도, 정반대인 겁니다.
(그래도, 어찌 되었건,
샘물교회 분들, 무사히 돌아오셔야 할텐데 말입니다)

역시, 같은 '교회'라는 용어를 쓴다 해서,
예를 들어,
이번에 교황 베네딕토 16세께서 발표하신 교서에서,
(사실, 교황 교서는, 교황의 재치권 영역인, 천주교 안에서의 내부 문서이므로,
개신교인들이 뭐라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A사 경영진의 내부 문건에 대하여 B사에 속한 사람들이 불평, 비판하는 것부터가,
대단히 넌센스입니다)
안수(서품)에 의해 적법하게 내려온 사도계승에 기초한 가톨릭 모델에서의 '교회' 개념과,
그것을 무시하고 믿음을 가진 하느님 백성의 모임이라고만 여기는 개신교 모델의 '교회' 상이 다르므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가장 기초적, 일상적 용어인 '교회'라는 명칭이 같다 해서,
서로의 용어 정의만을 떠올리면서 얘기를 하려 들면,
같은 우리말로 대화하더라도, 오히려 외국어로 소통하는 것보다 더 난감한 상황이 발생하는 겁니다.
늘 그래왔지만, 특히, 이번 교황 교서에 대하여,
개신교 측에서, 유능하고 관록있는 신학자들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대뜸 비판부터 앞세운 이유가 이것이라고 봅니다.
같은 그리스도교라도, 가톨릭과 개신교의 신학적 개념들과,
그에서 유추되는 신학 사유의 구조와 방법은, 판이하게 다릅니다.
그런데, 상대를 모르기에, (자신과) 같다고 오해하는 거지요.

독실하고 소박한 보수복음주의 교우님과,
실존적, 사회적 문제 의식을 품은 비평적 시각의 교우님이 만나,
"인간은 죄 때문에 죽을 운명이다"
라고 얘기의 운을 뗀 상황이라 가정할 때,
제가 보기에는, 여기에서 더 이상 대화의 진도를 나가기 전에,
'죄'가 무엇인지부터, 개념 정리를 해야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요컨대,
우리가, 지극히 당연하고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용어들의 개념이,
실상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며,
당연하고 아무렇지 않게, 평소 자신이 사용하는 용례대로 그 용어를 쓸 때,
자신의 그 용어 정의를 일반화시키는 오류에 함몰되고 만다는 겁니다.
사실, 의견과 입장의 차이는,
근본적이고 기초적인 개념과 용어의 차이에서부터 비롯한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이 점에서 서로의 차이를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의 대화는,
자칫 헛수고 내지, 오히려 대립의 골을 더 깊이 팔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