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어떤 목사가 이런 말을 했다. 자신이 최근에 짬을 얻어 칼빈, 루터, 웨슬리, 조지
윗필드, 스펄전 이러한 대 신앙선대들에 관한 서적을 탐독했는데, 그로서 알게 된 공통
된 사실 하나는 그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어떤 사람(예 '어떤 목사')에게 영향을 받았다
는 그런 얘기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대신에 그사람들 모두는 오직 성경말씀 가운데서
어떤 "답"을 찾아냈던 것이라는 그런 얘기였고, 아울러서 "성경적 지식만이 우리에게 
유일 무이한 '길'"이라는 그런 말이었다.

필자는 근자에 성서신학을 공부한 어떤 분이 제시한 간단한 몇 가지 담론으로부터 실로
중차대한 사실을 알게 된바 있는데, 성서신학이 이렇게 (신앙 정립에) 가치가 있는 줄은
50년을 교회 다닌 내가 이제껏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그런 일이다. 

대부분의 설교자들(교회 지도자들)은 우리가 주일학교 시절에 한 번쯤 들었던 얘기
들에다 자신 스스로가 즐겨하거나 혹은 남에게 가르치거나 말해 줄 필요가 있다고 느끼
는 서신서 내용들을 추가하는 정도로 소위 신앙교육을 시키고 있는 게 한국교회의 현실
이다.

그러니 신앙의 성숙과 진보는 사라지고 대신에 신앙적 자가당착, 신앙적 도그마, 모순
적인 신앙의 양상만 나타나게 된다. 비근한 예로, 성서 기록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알지 못하는 구약 텍스트의 순 문자적 이해(오해)는 결국 곡해와 왜곡된 종교 인식을
낳게 만들고 만다. 그렇게 함으로 인해서 살아 있는 메시지적인 거대 내러티브로서의
성서의 본래적인 기능은 사라지고 대신에 성경 말씀은 순전히 종교 행위적 도구로 변
질되고 만다.

이러한 문제와 더불어 또 한 가지 큰 문제 중 하나는 한국 신학계가, 그게 아주 오래된
어거스틴이든 혹은 근래의 어떤 유명 서양 신학자든지 간에, 계속해서 서양의 신학들을
답습하고, 그걸 익히고, 되뇌이는데만 아까운 소명의 세월과 정력을 소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래는 본문의 위 제목과 관련된 교계 인터넷 매체 <뉴스앤조이>의 기사 내용이다.

"이제 한국교회와 신학은 서구의 모방, 번역, 답습이 아니라 스스로의 창조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그것을 가지고 같은 기독교 수용 역사의 경험을 지닌 변경의 신학과 대화하여야 한다. 그리하여서
새로운 신학적 감동보다는 그동안 축적된 방법론만을 파는 '서구 신학'에 대해 새로운
자극과 도전을 주어야 할 사명 앞에 당도해 있다."  

전체 기사 보기 : http://www.newsnjo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7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