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대표기도 내용 중에 ‘죄악이 관영하는 세상...’ 이라는 표현이 많이 언급됐었다.

언제부터인가 몰라도 이제는 그러한 내용의 기도가 거의 사라진 듯하다. 실은 세상이 갈수록 더욱 더 악해지고 있는 것인데도 말이다. 이러한 흐름은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나이가 들고 세상사에 눈을 뜨게 되면서 세상에 근원적인 악(惡)이 존재한다는 이치를 깨달았다. 어떤 거대한 “근원적 악”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인류의 문명이 발달한다고 하는 것이 결국은 인류사 위에 군림하는 근원적 악이 총체적인 완성을 이루어내기 위해서, 그게 어디론가인지는 몰라도 계속해서 앞으로 밀고 나가는 그런 형국인 셈인 것 같다. 속된 표현으로, 갈 데까지 가고야 마는 그런 것이리라.

 

  근원적 악을 둘러싼 이와 같은 개념들을 성서적 관점으로 해석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금까지 터득해온 기초적인 성서지식에 의지한 관점으로 보자면, 아담이 죄 범하여 영원히 낙원을 상실하게 된 이후로 인류는 원죄의 속박을 받게 됐으며, 그 후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바와 같이 세상에 하나님의 공의가 완성될 적어도 그 때가 도래하기까지는 이 거대하고 강력한 근원적 악이 세상에서 절대로 굴복하지 않을 것이며, 악이 고개를 숙이기보다는 오히려 주님의 다시 오심이 가까워질수록 더욱 더 기승을 부리며 인류사를 장악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악한 세상의 단면을 단지 막연하게만 느껴지게 할 어떤 관념적인 얘기에서 벗어나 몇가지 실재적이고도 현실적인 예를 들어보고자 한다.

  먼저 컴퓨터 혹은 반도체 문명으로 나타나는 현대 전자문명을 생각해 본다. 이것들은 개발 초기에는 마치 인류사를 궁극적으로 보다 좋은 바람직스러운 모습으로 만들 만한 것으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은 지금의 컴퓨터 문명이 인간과 인류를 단단히 구속 / 속박하고 있다. 근대문명 이후 지고의 가치로 인식되어온 인간의 자유는 이제는 어떤 부류의 사람들에 의해서 구속받는 게 아니라 최종적으로 현대 컴퓨터문명에게 굴복당하고 말게 됐다.

  컴퓨터문명으로 인해서 부는 더욱 더 극심하고 빠르게 한 곳으로 편중되어가고 있으며 인간의 정신세계는 황폐해져 가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을 필요로 하던 수작업시대의 일자리가 순식간에 사라져버리게 됐으며, 그 결과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기가 어렵게 되고 말았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알면서도 이제는 어느 누구라도 컴퓨터 혹은 그와 유사한 반도체 문명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게 되고 말았으며, 어떠한 위대한 능력으로도 이러한 일들을 과거의 자리로 다시 되돌려 놓을 수는 없게 되고 말았다.

  반도체 문명에 대한 한 가지 단적인 예로, 핸드폰이라는 것은, 실은 있어도 별 필요가 없는 경우가 태반이지만 이제는 그게 없으면 사람대접 받기가 어려운 세상이 되고 말았다. 엄청난 액수의 돈이 통신회사와 핸드폰 제작사들에게 지속적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은 인류 문명이 붕괴되지 않는 한 아마도 향후 수천, 수만 년간이라도 지속 될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 벌이가 적은 사람들은 먹고 입는 것보다도 오히려 핸드폰으로 인한 통신요금이 더욱 무거운 짐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어린 소녀들이 핸드폰을 갖기 위해서 몸을 망치는 일을 감행한다는 기사가 나온 적이 있었지만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유감스럽게도 그런 일은 끝없이 계속될 것으로 보이기만 한다.

 

  이어서 근래 물질세계 흐름의 주요 매개체인 신용카드라는 것을 생각해 본다. 신용카드라는 것은 현금을 소지하고 다니는 대신 얇은 플라스틱카드 한 장으로 지불을 처리할 수 있게 한다는 처음의 뜻을 놓고 보면 매우 발전되고 궁극적인, 기가막힌 문명의 이기의 하나인 것처럼 보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지불기능(직불 기능)은 물론이고 신용기능(즉 외상구매 기능)까지 합쳐지면서 그로 인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빚의 노예로 전락하게 됐다. 또한 매출액의 4퍼센트 전후에 이르는 비싼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로 인해서 영세 상인들은 그나마 장사를 계속하기가 버겁게 되고 말았다. 그와는 상반되는 기대효과를 단단히 독차지하며 누리게 된 부류는, 첫째는 소비재를 만드는 제조 대기업들과 대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는 백화점들과 대형 유통매장들이다. 또한 신용카드는 무분별한 소비를 부추기는 효과를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것이어서, 나라 경제를 맡은 관료들과 금융당국자들은 경제성장율을 끌어 올릴 수 있다라는 판단 하에, 소비를 부추기기 위해서 일반 국민들을 상대로 공공연히 카드 가입을 조장하고 부추겨 왔다.

  이제는 한국사회에서 플라스틱 카드가 없으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도 쉽지가 않게 되고 말았으니, 이러한 현상은 편리성을 지나치게 추구하다가 그만 인간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공간마저도 잃고 마는 그러한 무서운 현상의 하나인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그러한 방향으로 끌고 나가는 것은 역시 사회의 근원적인 악이다.

 

  또 한 가지, 현대 광고문화를 생각해 본다. 원래 광고라는 것은, 좋은 것이 있음에도 그것을 몰라서 구매하지 못하거나 혹은 좋은 제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존재를 몰라서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널리 알려주고자 하는 순기능을 겨냥한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개념은 교과서에나 나오는 얘기일 뿐이고, 실제로는 광고에 나오는 사람들이 그러한 것에 전혀 연연하지 않고 그저 광고 출연료를 챙기기에만 혈안이 돼있다. 광고에 출연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소위 말하는 그 시대의 스타들이다.   그 사람들은 자기 얼굴과 목소리로 선전하는 그 상품의 좋고 나쁨을 알 필요도 없고 그에 관해 책임질 일도 전혀 없다. 그 사람들이 높은 출연료를 받아 챙기고나면 결국 그 뒷감당은 모두 소비자들의 몫으로 돌아가게 돼있다. 광고료가 기업의 경영비용으로 책정되어 결국 생산원가로 합산 계상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어떤 나이 어린 스포츠 스타가 여러 광고에 출연하고 있는 게 눈에 띤다. 아마도 그 사람은 광고 출연으로 인해서 많은 돈을 벌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이 그가 등단하기 전보다 나아진 것은 하나도 없을 것이고, 결국은 사회적 부만 한 곳으로 더욱 몰리게 되었을 것이며, 역시 그 뒷바라지 책임은 이 사회 불특정 다수의 몫으로 부가되고 말 것이다. .

 

  앞의 이러한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공의에 어긋나는 일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조건이 되기에 충분할 것이다. 인간은 악하고 그 악으로 인해서 인간들의 행사는 언제나 악할 뿐이라고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뇌리에 떠오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