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예배"를 꿈꾸며 애타게 찾는 자의 외침이다.

어떤게 좋은 예배인가?
좋은 예배가 이 땅 어디에 있는 것인가?
왜 우리 주변에 예배다운 예배가 보이지를 않는 것인가?

그래서 나는 지금 이러한 화두를 꺼낸다. 
"과연 어떤 것이 예배인가?"

유태교식 제사로의 복귀는 아니더라도, 예배에는 분명히 적합한 "숭배의 행위"와 그러한 모습이 있어야 하겠다.
우리는 인간이고 주님은 우리와는 다른 신적인 존재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개신교 예배에는 숭배의 행위가 이미 사라져버렸다.
그래서, 그건 차라리 예배라기 보다는 "집회"에 가까울 것이다.
개신교 예배가 예전 미국 땅 곳곳에서 성황하던 히피들의 자발적 "집회의식(儀式)" 그것만도 못해서는 곤란할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카톨릭 성당 안에 좋은 예배가 있는 것이 아니다. 내 눈에는 그게 더 못하다.
신앙의 선배 워치만 니도 그걸 가장 좋지 않은 형태의 것으로 보고 그러한 견해를 분명하게 밝혔다.

지금 우리의 시각과 사고가 혹 로마 카톨릭교회 아니면 서양식 개신교 예배에만 너무 깊이 젖어있는게 아닐까?
그리고 넓게 볼 때는 이러한 부정적 대상에 러시아 정교회도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왜, 교회 개체수 측면에서 보아 결코 좁지가 않은 한국 땅 전체에서, 오직 장충동에 자리하고 있는 어떤 한 교회,
그 교회만이 "예전"에 관해서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그 교회의 예전이 좀 다르기는 하지만, 내가 그걸 단지 비교론적으로 우월하다거나 혹은 온전한 것이라고
말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그래도 그 교회는 최소한 예전에 신경을 쓰고는 있다는 말이다.
나는 그걸 어떤 깨어있는 모습인 것으로 평하고 싶다.

예배는 적당히 구경해도 좋은 "부흥회"가 아니다. 그렇다고 누군가 자신의 교리를 선전하는 장이 되어서도 안 되겠다.
모든 교리들의 주인은 오직 주님 한 분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주님은 말씀하셨다. "너희 중에는 선생도 없고 지도자도 없다. 너희는 모두 형제일 뿐이다."
예배는 누군가가 우리(예배드리려 모인 무리)의 선생님이 되어 가르치려드는 그러한 장이 되어서도 안 되겠고,
따분해서 졸리는 그런 장소가 되어서도 안되겠으며, 모금하는 장소가 되어서는 더더욱 안 되겠다.

예배는 모인 모든 무리들이 똑 같은 위치에서 주님을 찬양하고 흠모하고자하는 자발적 의지와 열성으로 한자리에
모이는 것이며, 그와 함께 죄를 회개하고 그에 관해 기도하며, 주님의 가르침들을 그 때마다 새로이 선포하고, 각자의
신앙을 간증하기도 하는 본래 그런 의식일 것이다.
상상해 볼 때 초대교회의 예배 모습도 아마도 그런 것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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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티비에서 잠시, 언뜻 보게 된 아르메니아땅의 어떤 정교회에서 있었던 일일 정례예배? 인듯한 모습은
내게 상당히 새로운 어떤 무엇인가가 있었다.

<다음은 누군가에 의해 소개된 아르메니아 정교회 예배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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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afe.daum.net/dialogueunity/7SlH/72?docid=1GXA8|7SlH|72|20090402172915&q=%BE%C6%B8%A3%B8%DE%B4%CF%BE%C6%20%C1%A4%B1%B3%C8%B8&srchid=CCB1GXA8|7SlH|72|20090402172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