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적 핵반응에는 '분열'과 '융합'이라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교회는 오직 '빠져나옴’과 분열하는 일을 거듭함으로써 지금 이 시대까지 생명을 가진 모습으로 이어져 나왔다고 말할 수 있겠다.


석가모니가 단독으로 불교를 창안해 만들어낸 것과는 달리, 기독교는 유대교로부터 발전해 나왔으며, 유대교는 본래 중동지역과 그 주변 인류의 신앙 모습이 진보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단, 이는 종교학적 표현의 말은 아니다) 어떤 것이 종교 본래적 양태의 것이냐는 명확할 일이다.


아브라함은 고향, 문명과 우상의 땅 메소포타미아를 빠져나와 미지의 땅, 비문명의 터 가나안으로 가서 거기서 정착해 여호와 앞에 제사를 드리는 종교 전통을 확립시켰으니 곧 유대교의 시작이었다.

그 후 수십 세기가 지난 시점에서 그리스도 예수는 유대교를 믿는 사람들의 패역함(신의 뜻으로부터 멀어짐)을 바로잡고자 하셨으며, 결국 그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고, 예수 이후 그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기독교가 새로운 그루터기로 자라나 민족적, 지역적 경계를 탈피하여 범세계적인 새로운 역할을 담당하기 시작했다.


16세기를 전후하여 유럽 곳곳에서는 이미 진부하여 부패해버린 카톨릭의 그루터기를 빠져나온 프로테스탄트(혹은 영국 국교회) 교회들이 새로운 그루터기로 성장해 나갔다. 그 새로운 그루터기를 개신교(혹은 성공회)라고 통칭한다. 그 이후에도 개신교는 계속해서 분열(분화)되거나 새로운 그루터기로 혹은 새로운 형태의 신앙공동체로 뻗어나갔다.(형제단 < Brethren>" 등 그 중의 일부는 일반 개신교와는 완전히 다른 형질의 것도 있었다)


이와 같이 교회는 묵은 그루터기에서의 이탈 혹은 분열활동 양상을 통해서 계속해서 살아있는 모습으로 이어져 내려왔다. 이는 알고 보면 일종의 분열주의 혹은 분파주의적인 양상으로서, 이러한 일에 대하여 세속 교계가 쉽게 지탄의 대상으로 삼아버리는 그런 개념과는 다른 차원의 것임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신상세계의 지금까지의 이러한 진행 양상이 지금 이후로도 지속될 것인가, 또한 그렇게 계속되어야만 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는 세대를 이어 ‘주의 사람들’이 영적인 지각과 주님으로부터 허용되는 달란트를 통해서 참여되거나 해결해 나가야할 일이리라.


조직은 비대해지면 강해보이지만 반면에 반드시 성인병이 오도록 돼있다. 교회가 한 곳으로 뭉치고 덩치를 키워 그에 필연적으로 따라오게 되는 성인병적인 현상을 유발시키기보다는 적당히 작고 아담한 모습(순수 신앙공동체적인 형태)으로 세포분열을 지속함으로써 소년처럼 젊게 살아있는 모습을 갖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겠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창립된 후 불과 십 년도 못 되어서 근자에 또다시 4개의 공동체로 과감히 분립을 마친 서울 모 교회의 운영방식은 참으로 기독교 본래적인 모습에 부합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단, 여기서 말하려는 건 오직 그 교회의 존립방식이다). 그리고 그 성공과 실패의 결과론은 사람의 것이 아니라 주님께 속한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