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 <열린 토론실>입니다. 다비안들의 부담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사랑채>와는 달리, 보다 진지하고 깊이있는 이야기나 주제를 나누고 싶은 분들을 위한 게시판입니다. 가급적 예의를 갖추시고 열린 마음으로 대화에 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울러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토론과 대화는 다비안을 비롯한 여러 네티즌들의 온라인 상에서의 자유로운 것이기에 그 방향과 정체성이 반드시 다비아와 일치하지는 않음을 밝혀둡니다.
글 수 253
G**라는 선교 단체에서 간사로 일하는 친구가 있어서 함께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친구는 이슬람 쪽 선교에 관심이 많은데 현재 이슬람에 대해서 그 단체에서 강좌를 듣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강좌의 제목이 "이슬람의 허구성" 이란 그런 내용이었는데, 저한테도 관심이 있으면 꼭 같이 듣고 비전을 키우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일단 선교를 할려면 이슬람이라는 종교와 문화에 대한 바른 이해와 존경심에서부터 시작해야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조심스럽게 제 뜻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랬더니 많이 언짢아 하더라고요. 예수를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이슬람에 이해해줄 껀덕지가 어디에 있느냐하는 태도였습니다.
최근에 터키에서 독일인 선교사님과 터키 현지인 그리스도인들이 극렬 이슬람 주의자들에 의해서 참혹하게 살해당한 사건이 있었다고 합니다. 제가 아는 분이 터키에서 선교사로 계셔서 더 걱정이 되었더랬습니다.
이런 현상은 마치 자신의 몸에 타인의 장기를 이식할 때 나타나는 극렬한 면역반응과 비슷한 면이 있어 보입니다... 선교라고 하는 것이 본래의 의도와는 달리, 표면적으로는 "이질적인 문화가 정복적으로 침투되는 것"으로 보여지는 것 같다는 느낌...
우리도 미국을 통해서 기독교를 그런 방식으로 받아들였구요... 물론 미국 선교사님들이 우리나라를 사랑하고 모든 것을 바쳐서 이루어 놓은 선한 업적과 영향도 반쪽의 진실이지만, 우리 민족 고유의 정신적 깊이 속으로 기독교가 녹아 들어가 질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소금이 되지 못하게 하고, 기독교가 우리 문화와는 물과 기름처럼 양립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하나의 표피적인 문화로만 남게 한 지금의 현실과 그 폐해 또한 반쪽의 진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말하는 저도 이슬람에 대해서는 편견이 많습니다... 편견인지 아닐 수도 있구요...
저는 갠적으로는 이슬람 사회에서 나타나는 체제적 전근대성과 획일성에서 초래되는 비인간화 현상은 싫습니다.
이슬람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박물관에 고이 모셔져야할 이가 빠진 청동기 시대의 칼을 현대인들이 불편함을 무릅쓰고 쓰고 있다는 느낌... 전혀 진화하지 않고 현재까지 옛날 모습 그대로를 간직한 시일라칸스 물고기가 생각이 나고... 고대 율법주의 종교가 생명없이 박제되어 지금에 이르런 것도 같고...
솔직히 기독교도 이런 면에서는 자유롭지 못하죠...
상대방의 종교를 존중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편견아닌 편견을 가진 이런 딜레마... 이슬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을 하시는지... 특히나 역사적으로는 기독교에 대해서 원한이 많은 이슬람에 대한 선교는 어떤 모양을 가져야 할지, 내용적으로는 어떠해야 바람직한 것일지 말씀들을 듣고 배우고 싶습니다...
두서없는 글이지만 뜻만 이해해 주십시오... ^^;;;
***** 운영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06-14 15:35)
그래서 제가 "일단 선교를 할려면 이슬람이라는 종교와 문화에 대한 바른 이해와 존경심에서부터 시작해야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조심스럽게 제 뜻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랬더니 많이 언짢아 하더라고요. 예수를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이슬람에 이해해줄 껀덕지가 어디에 있느냐하는 태도였습니다.
최근에 터키에서 독일인 선교사님과 터키 현지인 그리스도인들이 극렬 이슬람 주의자들에 의해서 참혹하게 살해당한 사건이 있었다고 합니다. 제가 아는 분이 터키에서 선교사로 계셔서 더 걱정이 되었더랬습니다.
이런 현상은 마치 자신의 몸에 타인의 장기를 이식할 때 나타나는 극렬한 면역반응과 비슷한 면이 있어 보입니다... 선교라고 하는 것이 본래의 의도와는 달리, 표면적으로는 "이질적인 문화가 정복적으로 침투되는 것"으로 보여지는 것 같다는 느낌...
우리도 미국을 통해서 기독교를 그런 방식으로 받아들였구요... 물론 미국 선교사님들이 우리나라를 사랑하고 모든 것을 바쳐서 이루어 놓은 선한 업적과 영향도 반쪽의 진실이지만, 우리 민족 고유의 정신적 깊이 속으로 기독교가 녹아 들어가 질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소금이 되지 못하게 하고, 기독교가 우리 문화와는 물과 기름처럼 양립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하나의 표피적인 문화로만 남게 한 지금의 현실과 그 폐해 또한 반쪽의 진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말하는 저도 이슬람에 대해서는 편견이 많습니다... 편견인지 아닐 수도 있구요...
저는 갠적으로는 이슬람 사회에서 나타나는 체제적 전근대성과 획일성에서 초래되는 비인간화 현상은 싫습니다.
이슬람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박물관에 고이 모셔져야할 이가 빠진 청동기 시대의 칼을 현대인들이 불편함을 무릅쓰고 쓰고 있다는 느낌... 전혀 진화하지 않고 현재까지 옛날 모습 그대로를 간직한 시일라칸스 물고기가 생각이 나고... 고대 율법주의 종교가 생명없이 박제되어 지금에 이르런 것도 같고...
솔직히 기독교도 이런 면에서는 자유롭지 못하죠...
상대방의 종교를 존중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편견아닌 편견을 가진 이런 딜레마... 이슬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을 하시는지... 특히나 역사적으로는 기독교에 대해서 원한이 많은 이슬람에 대한 선교는 어떤 모양을 가져야 할지, 내용적으로는 어떠해야 바람직한 것일지 말씀들을 듣고 배우고 싶습니다...
두서없는 글이지만 뜻만 이해해 주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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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12 23:27:35
기독교에 대해서 원한이 많을 거라고 생각하셨다면,
선교의 첫 걸음은 그 쌓인 원한을 풀어주는 방법밖엔 없을텐데
그게 기독교를 선교하면서 가능할까?
(지금도 그 원한이 줄어들기는 커녕 기독교 국가들 덕분에 꾸준히 쌓여 가기만 하는데)
기독교에 맺힌 한을 풀려면, 기독교로 개종하면 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사랑과 용서를 배울 수 있으므로?)
기독교 국가들은 원수를 침략하는데, 침략당한 우리는 원수를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
한 쪽은 침략하고 탈취해야 구원 받는데, 한 쪽은 개종해야 구원 받는다 ?
breeze가 선교에 대해 비판적, 냉소적이냐구요?
위 내용은 첫날처럼님의 글을 읽고서, 바쁘게 이 곳 이슬람 학생들 몇 몇에게 의견을 직접 물어본 결과를
요약한 것입니다.
그들도 이슬람교도들이 기독교로 개종하는 경우를 알고 있더군요. 그런데 전혀 개의치 않아요.
지금 세계 주요종교 중에서 신자 수가 가장 빨리 증가하는 종교가 바로 이슬람이니까요.
선교의 첫 걸음은 그 쌓인 원한을 풀어주는 방법밖엔 없을텐데
그게 기독교를 선교하면서 가능할까?
(지금도 그 원한이 줄어들기는 커녕 기독교 국가들 덕분에 꾸준히 쌓여 가기만 하는데)
기독교에 맺힌 한을 풀려면, 기독교로 개종하면 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사랑과 용서를 배울 수 있으므로?)
기독교 국가들은 원수를 침략하는데, 침략당한 우리는 원수를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
한 쪽은 침략하고 탈취해야 구원 받는데, 한 쪽은 개종해야 구원 받는다 ?
breeze가 선교에 대해 비판적, 냉소적이냐구요?
위 내용은 첫날처럼님의 글을 읽고서, 바쁘게 이 곳 이슬람 학생들 몇 몇에게 의견을 직접 물어본 결과를
요약한 것입니다.
그들도 이슬람교도들이 기독교로 개종하는 경우를 알고 있더군요. 그런데 전혀 개의치 않아요.
지금 세계 주요종교 중에서 신자 수가 가장 빨리 증가하는 종교가 바로 이슬람이니까요.
2007.06.13 01:51:44
개신교만이 아니라 카톨릭도 선교는 기독교로의 개종이 확대되어가는 것을 선교라 여겼다.
그래서 선교사들이 군대와 함께 총칼을 들고 들어가서 강제로 개종시키는 것도 당연시 여길 수 밖에 없는 것이 그들은 그것이 크나큰 은총을 배푸는 것이었기때문이다.
미개한 종교를 가진 현지인을 고귀한 종교인 기독교로 개종시켜주는 엄청난 노력을 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총칼을 앞세워서 선교지를 확대해가는 것이 아마도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이라 여겼으리라.
이제 우리는 선교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자들에게 예수님이 하나님이라고 인정하게 만드는 것이 선교인가?
현대선교학은 교회의 선교를 폭넓게 조망하고 정의하고 있다.
먼저, 선교는 창조질서 보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환경과 자원의 관리는 하느님의 선교(missio dei)의 관점에서 조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류의 보편성과 무차별을 강조한다.
또한, 예수가 구원의 유일한 길임을 선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아가, 하느님의 정의가 실현되는 사회를 구현하는 것이 선교의 궁극적 과제임을 역설한다.
마지막으로, 교회는 하느님과 사람 사이에 회복된 관계와 자유를 누리는 공동체로서 악하고 부패한 사회와 세상 속에 본이 되고 희망을 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 마디로, 현대교회의 선교에의 접근은 신학적인 동시에 인간학적이다.
아울러, 그 접근은 개인의 영혼구원을 강조하는 동시에 집단 속에서 구조악(構造惡)의 문제와 씨름하는 인류의 사회적 구원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인다.
위에서 언급한 사전적인 의미의 선교도 중요하다.
그러나, 예수님은 복음을 증거하라고 하신다.
도대체 복음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들에게 기쁜 소식이 되는 것이 총과 칼로 다가간다는 것이 복음일 수 없지는 않는가?(혹자는 영혼구원만을 생각해서 그렇게 해서라도 전해야한다고 할 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의 짧은 소견으로는 복음을 증거한다는 것은 바로 예수의 뜻(가르침)대로 살아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는 것이 왜 복음인가를 깊이 생각해 보면 좋겠다.
또 한가지 예수가 구원의 유일한 길임을 선포하는 배타적 입장은 필연적으로 현지의 문화와 역사적 사실을 뒤엎고자 할 수 밖에 없다.
바로 우리 한민족의 문화를 저급하고 미개한 문화로 취급하고, 오직 서양의 문물만이 고상하고 귀한 것으로 여기게 만든 것처럼 말이다.
어찌 하나님이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란 말인가?
전 우주의 하나님이 오직 유대땅 그 조그마한 나라에만 계시하시고 다른 대륙에는 나몰라라 하셨단 말인가?
이슬람만이 아니라 불교와 유교, 그 외의 모든 고등종교를 보아라.
과연 그들의 가르침이 선에서 나왔겠는가 악에서 나왔겠는가?
그리스도교의 교회전통과 전례를 중요시하는 입장에서는 종교로서의 기독교가 중요할 지 모르지만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이 더 중요한 나의 입장에서는 선교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선교사들이 군대와 함께 총칼을 들고 들어가서 강제로 개종시키는 것도 당연시 여길 수 밖에 없는 것이 그들은 그것이 크나큰 은총을 배푸는 것이었기때문이다.
미개한 종교를 가진 현지인을 고귀한 종교인 기독교로 개종시켜주는 엄청난 노력을 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총칼을 앞세워서 선교지를 확대해가는 것이 아마도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이라 여겼으리라.
이제 우리는 선교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자들에게 예수님이 하나님이라고 인정하게 만드는 것이 선교인가?
현대선교학은 교회의 선교를 폭넓게 조망하고 정의하고 있다.
먼저, 선교는 창조질서 보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환경과 자원의 관리는 하느님의 선교(missio dei)의 관점에서 조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류의 보편성과 무차별을 강조한다.
또한, 예수가 구원의 유일한 길임을 선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아가, 하느님의 정의가 실현되는 사회를 구현하는 것이 선교의 궁극적 과제임을 역설한다.
마지막으로, 교회는 하느님과 사람 사이에 회복된 관계와 자유를 누리는 공동체로서 악하고 부패한 사회와 세상 속에 본이 되고 희망을 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 마디로, 현대교회의 선교에의 접근은 신학적인 동시에 인간학적이다.
아울러, 그 접근은 개인의 영혼구원을 강조하는 동시에 집단 속에서 구조악(構造惡)의 문제와 씨름하는 인류의 사회적 구원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인다.
위에서 언급한 사전적인 의미의 선교도 중요하다.
그러나, 예수님은 복음을 증거하라고 하신다.
도대체 복음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들에게 기쁜 소식이 되는 것이 총과 칼로 다가간다는 것이 복음일 수 없지는 않는가?(혹자는 영혼구원만을 생각해서 그렇게 해서라도 전해야한다고 할 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의 짧은 소견으로는 복음을 증거한다는 것은 바로 예수의 뜻(가르침)대로 살아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는 것이 왜 복음인가를 깊이 생각해 보면 좋겠다.
또 한가지 예수가 구원의 유일한 길임을 선포하는 배타적 입장은 필연적으로 현지의 문화와 역사적 사실을 뒤엎고자 할 수 밖에 없다.
바로 우리 한민족의 문화를 저급하고 미개한 문화로 취급하고, 오직 서양의 문물만이 고상하고 귀한 것으로 여기게 만든 것처럼 말이다.
어찌 하나님이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란 말인가?
전 우주의 하나님이 오직 유대땅 그 조그마한 나라에만 계시하시고 다른 대륙에는 나몰라라 하셨단 말인가?
이슬람만이 아니라 불교와 유교, 그 외의 모든 고등종교를 보아라.
과연 그들의 가르침이 선에서 나왔겠는가 악에서 나왔겠는가?
그리스도교의 교회전통과 전례를 중요시하는 입장에서는 종교로서의 기독교가 중요할 지 모르지만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이 더 중요한 나의 입장에서는 선교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밖에 없다.
2007.06.13 03:27:32
성질대로 단칼에 결론내리자면
나는 한국 기독교가 어른이 되는 날은
외국에 선교사 보내는 짓을 하지 않는 날이라고 봅니다.
지금의 서구 교회들처럼.
영국에 유학가서 선교학 공부했던 목사님이 교수가
"너희 한국인은 왜 서구선교가 실패한 것을 배우지 못하느냐?"는
말을 하더래요.
19 세기 선교사를 가장 많이 배출한 대학이라나?
버밍함 대학? 오래되서 분명치 않습니다.
미국의 근본주의 신앙의 하청을 받은 교파 중심의 선교를 비판한 것이겠지요.
9.11 사태이후 영국의 한 종교학자가
모슬렘의 신앙이 개인화 할 수있도록 돕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던 말이
인상 깊습니다.
모슬렘의 신학을 지금 기독교처럼 발전할 수있도록 도와야 된다는 의미지요.
나는 한국 기독교가 어른이 되는 날은
외국에 선교사 보내는 짓을 하지 않는 날이라고 봅니다.
지금의 서구 교회들처럼.
영국에 유학가서 선교학 공부했던 목사님이 교수가
"너희 한국인은 왜 서구선교가 실패한 것을 배우지 못하느냐?"는
말을 하더래요.
19 세기 선교사를 가장 많이 배출한 대학이라나?
버밍함 대학? 오래되서 분명치 않습니다.
미국의 근본주의 신앙의 하청을 받은 교파 중심의 선교를 비판한 것이겠지요.
9.11 사태이후 영국의 한 종교학자가
모슬렘의 신앙이 개인화 할 수있도록 돕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던 말이
인상 깊습니다.
모슬렘의 신학을 지금 기독교처럼 발전할 수있도록 도와야 된다는 의미지요.
2007.06.13 11:06:48
어느 정도는 지목사님의 말씀에 동감하지만(사실은 거의 대부분)
선교의 사역이 달라져야하는 것이지 선교사 자체는 더 나가야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목표가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지금처럼 개종이 목표가 되어 그들의 문화와 삶의 틀을 바꾸는게 아니라 헐벗고 굶주리며 하나님의 뜻이 통하지 않는 외로운 땅에가서 그들의 눈물이 되어주고, 그들의 손과 발이 되어주는 선교사라면 ,
즉 그들을 개종시키는 것이 아니라 선교사가 현지에 동화되어 갈 수만 있다면 가지 않는 것 보다도 훨~씬 낫지 않을까요?
다만 지금과 같은 선교사의 파송이라면 당장이라도 그만 두는 것이 옳을 것이란 말에는 양손 합해 두 표 올인합니다.
선교의 사역이 달라져야하는 것이지 선교사 자체는 더 나가야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목표가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지금처럼 개종이 목표가 되어 그들의 문화와 삶의 틀을 바꾸는게 아니라 헐벗고 굶주리며 하나님의 뜻이 통하지 않는 외로운 땅에가서 그들의 눈물이 되어주고, 그들의 손과 발이 되어주는 선교사라면 ,
즉 그들을 개종시키는 것이 아니라 선교사가 현지에 동화되어 갈 수만 있다면 가지 않는 것 보다도 훨~씬 낫지 않을까요?
다만 지금과 같은 선교사의 파송이라면 당장이라도 그만 두는 것이 옳을 것이란 말에는 양손 합해 두 표 올인합니다.
2007.06.13 12:43:55
지성수 목사님의 말씀에 정말 공감이 많이 됩니다...
모슬렘의 신앙이 개인화 할 수 있도록 돕는 것... 모슬렘의 신학이 지금 기독교처럼 발전할 수 있도록 도우는 것... 정말 중요한 이야기이고 핵심적인 분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종교의 가르침을 일방적으로 베푼다는 의미의 선교라는 말도 궁극적으로는 지양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일방적 선교" 보다는 "종교간의 대화를 통한 가르침의 나눔" 이라는 패러다임으로 변했으면 좋겠습니다.
모슬렘의 신앙이 개인화 할 수 있도록 돕는 것... 모슬렘의 신학이 지금 기독교처럼 발전할 수 있도록 도우는 것... 정말 중요한 이야기이고 핵심적인 분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종교의 가르침을 일방적으로 베푼다는 의미의 선교라는 말도 궁극적으로는 지양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일방적 선교" 보다는 "종교간의 대화를 통한 가르침의 나눔" 이라는 패러다임으로 변했으면 좋겠습니다.
2007.06.13 14:39:39
개신교에서는 이런 논리도 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슬람인들에게 못할 짓을 한 것은 천주교이지 개신교가 아니다... 일견 맞는 말 같기도 하면서도, 틀린 말 같기도 하면서도... 그렇지만 이슬람에 대해서는 천주교든 개신교든 공동 부채 의식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슬람에서 선교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전문적 직능 사역자들인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그 직능에 해당하는 봉사를 첨에 행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그 봉사에 감화받은 현지인들에게 맨투맨으로 다가가서 전도하고 비밀리에 성경공부하고 그런다고 합니다.
터키에는 신분증에 종교를 표시하는 란이 있는데, 대부분 이슬람이고 굳이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라도 그 란은 이슬람으로 그대로 둔다고 합니다. 그런데 선교사님들의 전도를 받은 현지인 그리스도인들은 굳이 그 란을 기독교로 바꾸어서 위험을 자초한다고 합니다... 이 번에 선교사 및 현지 기독교인 피살 사건도 같은 맥락이구요...
북한 선교를 하고 있는 어떤 단체는 탈북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전도를 통해서 기독교인을 만들어서 다시 북한으로 되돌려 보내어 순교자를 만든다는 이야기도 들어보았습니다...
저는 이런 방식에 근본적인 회의가 듭니다... 신심이 부족해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이슬람에서 선교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전문적 직능 사역자들인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그 직능에 해당하는 봉사를 첨에 행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그 봉사에 감화받은 현지인들에게 맨투맨으로 다가가서 전도하고 비밀리에 성경공부하고 그런다고 합니다.
터키에는 신분증에 종교를 표시하는 란이 있는데, 대부분 이슬람이고 굳이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라도 그 란은 이슬람으로 그대로 둔다고 합니다. 그런데 선교사님들의 전도를 받은 현지인 그리스도인들은 굳이 그 란을 기독교로 바꾸어서 위험을 자초한다고 합니다... 이 번에 선교사 및 현지 기독교인 피살 사건도 같은 맥락이구요...
북한 선교를 하고 있는 어떤 단체는 탈북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전도를 통해서 기독교인을 만들어서 다시 북한으로 되돌려 보내어 순교자를 만든다는 이야기도 들어보았습니다...
저는 이런 방식에 근본적인 회의가 듭니다... 신심이 부족해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2007.06.13 18:20:07
첫날처럼 님이 올려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저는 이슬람에 대한 한국 기독교계의 사고가 너무 편협한게 아닐까 싶습니다. 요르단에서 선교활동을 하는 장로교선교사인 김동문 선교사의 표현을 빌리면 이슬람의 극히 일부만으로 이슬람을 판단하고 부정적으로 보는 편견 그리고 무슬림=이스마엘의 자손, 유대인=이사악의 자손이라는 인종적인 편견을 갖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2007.06.18 22:14:22
저는 골수 보수신앙 개신교 전도사인데요. 무슬림 친구들, 힌두교 친구들, 불교 친구들(모두 외국인)이랑 좋은 사이로 지내고 있습니다. 무슬림(이슬람교도)들은 다 extreme인것 같은 부정적인 오리엔테이션때문에 이슬람 가면 다 죽고, 감옥에 갇히고 쫓겨나고 그런것 같지만, 이슬람이라는 카테고리 자체가 너무 큽니다.
이슬람내에서도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구요. 나라와 민족에 따라서 색깔이 다릅니다. 시아파, 수니파가 존재하고 터키 이슬람은 이단시 취급당하는 이슬람이구요, 온건파, 강경파..그리고 민족별로 문화가 다양합니다. 그냥 이슬람이라고 하면,... 어디서 부터 접근해야 할까요? 아무튼 이슬람과 선교..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이슬람에서의 선교 내지 무슬림을 개종시키기 요렇게 범위를 축소하면 더 좋겠네요. 암튼 자신들의 역사건 아니건 무슬림들이 기독교에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오리엔테이션도 우리가 그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듯이 똑같이 그렇게 바라보지요. 이슬람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뒤 기독교 복음증거자로 삼고 있는 모..형제는 기독교가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을 제대로 실천했다면 이슬람은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라고 이야기 했다고 하는데요. 유대교나 기독교나 이슬람이나 구약성경을 공통 경전으로 생각하고, 강조점이 유일신 하나님이냐, 예수 그리스도냐, 유일한 선지자 모함마드냐 여기서 부터 갈라진다고 보이네요. 뭐 이단들도 하나님도 믿고 성경도 믿는다 하지만 그들의 교주의 가르침이나 경전을 더 우선시 하듯이요... 좀 벗나갔는데요... 아무튼 이슬람 선교가 필요하지만 터키에서 순교한 선교사 부인의 말처럼.. 무슬림들이 다른 나라에 취업을 나가든 이민을 가든 다른 나라에서 무슬림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듯, 우리는 기독교인으로 살아왔고 내가 서구에 있던 터키에 있던 내가 있는 곳에서 우리는 기독교인으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기독교인으로 살아갈 것이다.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어떤 개종을 시키겠다. 저들을 변화시키겠다. 뒤집어 엎겠다. 마음은 좋지만, 인간의 노력으로는 또다른 십자군 전쟁을 치를수 있다고 보구요. 수많은 무슬림들 가운데서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기독교인이든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이든 일관성있게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친구가 되어주고 도움을 주고 받고, 오해로 인해 어려움을 당하더라도... 삶으로 복음으로 감동을 주는 것이 선교사의 삶이 아닌가 싶구요. 저도 일하러 한국에 온 외국인들하고 친하게 지내는데요... 무슬림들은 기본적으로 다른 민족, 다른 종교에 배타적이더라구요. 내가 의도를 가지고 가지 않아도.. 그냥 교회다 전도사다 뭐 이러면 아주 적대시하고 경계에 경계를 하더군요.
누가 죽인답니까? 해치기를 한답니까? 주로 인도네시아 인들이 그런 태도를 가지고 대한반면 파키스탄에서 온 친구들은 아주 관용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손님을 최고로 대해주고 그들 라마단 기간에 다른 선교단체에서는 역라마단 기도를 하며 이슬람을 대적하고 있을때 저는 그들의 저녁식사에 초대받아서 함께 먹고 마시고 즐기며 놀다왔습니다. 물론 그들이 언젠가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예수님을 만나길 간절히 마음으로 기도했지만요... 교리적으로 설득함도 필요하겠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하시도록 기도하고 격려하고 감동을 주고 친구가 되어주고 하는 것들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인도네시아인들도 친근한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말레이시아가 약간 더 포용적이고 친절하더군요.. 아무튼 무슬림도 나라와 민족에 따라서 그리고 그들이 외국에 있느냐 본국에 있느냐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이는 것 같습니다. 선교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 하라면 필요하지만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구요. 뭉뚱그려 이슬람 선교다 이런 것이 아니라 각 종족별로 언어별로 그들의 문화와 전통을 이해하고 준비해서 친구가 되어주고, 그나라에서 기독교인으로서 살아가는 모범을 보여주고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려고 몸부림치고 남에게는 관대하고... 아무튼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 치는 모습이 저들에게 감동을 주진 않을까요? 산상수훈의 가르침대로요.. 두서없이 주저리 주저리 몇자 적습니다.
이슬람내에서도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구요. 나라와 민족에 따라서 색깔이 다릅니다. 시아파, 수니파가 존재하고 터키 이슬람은 이단시 취급당하는 이슬람이구요, 온건파, 강경파..그리고 민족별로 문화가 다양합니다. 그냥 이슬람이라고 하면,... 어디서 부터 접근해야 할까요? 아무튼 이슬람과 선교..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이슬람에서의 선교 내지 무슬림을 개종시키기 요렇게 범위를 축소하면 더 좋겠네요. 암튼 자신들의 역사건 아니건 무슬림들이 기독교에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오리엔테이션도 우리가 그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듯이 똑같이 그렇게 바라보지요. 이슬람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뒤 기독교 복음증거자로 삼고 있는 모..형제는 기독교가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을 제대로 실천했다면 이슬람은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라고 이야기 했다고 하는데요. 유대교나 기독교나 이슬람이나 구약성경을 공통 경전으로 생각하고, 강조점이 유일신 하나님이냐, 예수 그리스도냐, 유일한 선지자 모함마드냐 여기서 부터 갈라진다고 보이네요. 뭐 이단들도 하나님도 믿고 성경도 믿는다 하지만 그들의 교주의 가르침이나 경전을 더 우선시 하듯이요... 좀 벗나갔는데요... 아무튼 이슬람 선교가 필요하지만 터키에서 순교한 선교사 부인의 말처럼.. 무슬림들이 다른 나라에 취업을 나가든 이민을 가든 다른 나라에서 무슬림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듯, 우리는 기독교인으로 살아왔고 내가 서구에 있던 터키에 있던 내가 있는 곳에서 우리는 기독교인으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기독교인으로 살아갈 것이다.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어떤 개종을 시키겠다. 저들을 변화시키겠다. 뒤집어 엎겠다. 마음은 좋지만, 인간의 노력으로는 또다른 십자군 전쟁을 치를수 있다고 보구요. 수많은 무슬림들 가운데서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기독교인이든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이든 일관성있게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친구가 되어주고 도움을 주고 받고, 오해로 인해 어려움을 당하더라도... 삶으로 복음으로 감동을 주는 것이 선교사의 삶이 아닌가 싶구요. 저도 일하러 한국에 온 외국인들하고 친하게 지내는데요... 무슬림들은 기본적으로 다른 민족, 다른 종교에 배타적이더라구요. 내가 의도를 가지고 가지 않아도.. 그냥 교회다 전도사다 뭐 이러면 아주 적대시하고 경계에 경계를 하더군요.
누가 죽인답니까? 해치기를 한답니까? 주로 인도네시아 인들이 그런 태도를 가지고 대한반면 파키스탄에서 온 친구들은 아주 관용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손님을 최고로 대해주고 그들 라마단 기간에 다른 선교단체에서는 역라마단 기도를 하며 이슬람을 대적하고 있을때 저는 그들의 저녁식사에 초대받아서 함께 먹고 마시고 즐기며 놀다왔습니다. 물론 그들이 언젠가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예수님을 만나길 간절히 마음으로 기도했지만요... 교리적으로 설득함도 필요하겠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하시도록 기도하고 격려하고 감동을 주고 친구가 되어주고 하는 것들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인도네시아인들도 친근한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말레이시아가 약간 더 포용적이고 친절하더군요.. 아무튼 무슬림도 나라와 민족에 따라서 그리고 그들이 외국에 있느냐 본국에 있느냐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이는 것 같습니다. 선교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 하라면 필요하지만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구요. 뭉뚱그려 이슬람 선교다 이런 것이 아니라 각 종족별로 언어별로 그들의 문화와 전통을 이해하고 준비해서 친구가 되어주고, 그나라에서 기독교인으로서 살아가는 모범을 보여주고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려고 몸부림치고 남에게는 관대하고... 아무튼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 치는 모습이 저들에게 감동을 주진 않을까요? 산상수훈의 가르침대로요.. 두서없이 주저리 주저리 몇자 적습니다.
개신교 찬송가에만 유독 싸움, 전투, 군병 등의 단어들이 골백번도 더 나옵니다.
천주교, 성공회 등 타 교파의 성가집에는 전혀 안 나오는 말이지요.
혹, 교우님들께서는, 찬송을 부르시면서, 이런 단어와 표현들 앞에서,
이건 아닌데~ 라는 의문을 품은 적이 있으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