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해석의 가장 기본적인 것은, 어느 귀절을 따로 독립해서 보지 말고 전체 맥락 속에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골1:20을 잘 이해하려면 골로새서 전체 속에서, 더 나아가 바울서신 전체 안에서 조화롭게 읽어야 좋다는 말이다.
골로새서는 골로새교회에 침투한 혼합주의적 이단(골2: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을 배격하기 위한 목적과, 성도의 성숙한 삶을 위한 지침을 위해 기록되었다.
바울은 그리스도는 인간구원자 뿐만 아니라 만물의 창조자요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으며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다(골1:14~17) 라고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되심과 유일성, 배타성을 천명하고 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죽으심이 인간과 만물의 화목제물이라고 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평화를 이루셔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나 다, 기쁘게 자기와 화해시키셨습니다"(골1:20)
여기서 '화해'라는 점을 주목하자. 화해는 관계다. 빚을 탕감받은 사람이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채무자는 여전히 부담가운데 산다. 탕자는 집에 돌아와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기 전까지는 아버지의 용서를 누리지 못한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러므로 여러분은 믿음에 튼튼히 터를 잡아서, 굳건히 서 있어야 하고, 여러분이 들은 복음의 소망에서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골1:23)라고 객관적이며 역사적인 화해사건에 대한 믿음과 소망을 강조하여 화해를 구체적으로 경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게 하여 주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롬5:1)
그리스도를 통한 화해를 알지 못하는 사람,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는 사람은 거룩하고 음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심을 받지 못한다.(골1:22) 그러므로 바울은 이 복음을 모든 사람에게 증거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육체에 기쁘게 채운다고 고백한다(골1:23,24)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느니라(롬8:1~2)
만물의 화해를 위해 버려야 할 세상의 초등학문, 사람의 유전이 무엇인가?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는 것이다. 믿음없이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믿음 외 다른 것으로 하나님과 화평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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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루박님 ~ 사도바울은 사랑 앞에서 믿음을 상대화시켰습니다. 믿음없는 이에게도 악한 자에게도
하나님의 사랑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인식하는 탕자와 아버지의 사랑을 인식하지 못하는 탕자가
있을 수 있겠지요 변하지 않는 건 인식여부를 떠나서 아버지는 탕자를 사랑한다는
아버지의 진심입니다. 혹시 탕자형처럼 집나간 자식이나 그리워 하는 아버지가 미우신건 아니죠?
특정신학(다비아신학?)을 평가하기 위해서 당연히 성서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 맞는 소리인듯하지만
성서는 소리나 말을 하지 안습니다. 그 배움의 수준이 올라간 사람의 배움이 기준이겠지요. 해석해 낼...
그런 표현의 성서기준에 동의...
어느 누구라도 설교비평하는 것 가능합니다. 자유니까...
그런데 그 자유를 자유롭지 못한 공간에서 자기주장을 하니 조금 어색하여서요.
그리고 성서가 인간에 우위를 점해야 하는 건가요? 왜지요?
정용섭목사님과 성서의 관계에서의 우위 다툼에 뭔 의미가 있어서...
그리고 또 뭔 사람의 대화에 논리,이성,성서적 대화를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구요.
신학자들이 아닌데 왜 그래야 하는지...단지 논리적이며 이성적인 대화는 좋지요. 성서적 대화?...
비기독교인을 참으로 사랑하고 화해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기존 기독교에서 전도나 선교에 열정있으셔서 선동하는 분들의 표현인듯하네요.
주님이나 하나님이면 몰라도...그냥 사랑하면 되고 화해하면되지 그러기 위해서 복음이라...
내가 해야 할 삶(사랑)을 살면 되는것 아닌가?
그시대에 사도바울은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맞습니다.
사도바울이 그렇게 살았다고 해서 우리도 그런 방식으로 살아야 할 이유는 없겠지요.
사도바울이 배설물로 여긴 그의 소유한 모든 가치는 경험되어진 과정을 넘어선 포기한 배설물입니다.
예수로 인한 내안의 가치를 배설물로...
우리안에 사도바울이 가졌던 그 높은 소중했던 가치들이 있다고 생각하셨나보군요.
단지 우리에겐 그런 열정과 배움이 같은 무게로 사로잡히지 아니하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양새는
사도바울이 이야기 했던 배설된 품세에 열정을 갖는 것 같아서 냄새나네요.
사도바울은 사도바울이고 오늘 우리는 우리들 길을 가야지요.
남의 걸어간 길을 흉내 낼 필요는 없겠지요.
어찌하든 도루박님 특별한 개성이 있는분이엔 틀림없네요.
잘 안들어요. 남의 이야기를...
뭐 잃어버릴것이 없다면 충분히 이해되긴 하지만...전투력충만함...
무슨 의도가 있기도 한듯하고...

도루박님이 지금 파고드는 문제가 단순한 문제도 아니고
또 이 꼭지글이 이번주 정용섭 목사님 설교 말씀을 비꼬아서
한 말이 분명 하기에 논쟁을 할려면 다른 식으로 글을 올려서 하자는
것이 저의 마음 이었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제가 잘못 짚은 지는 몰라도 논쟁에도 사이즈가 잇는 것입니다..
도루박 님은 말씀으로 훈련이 잘 된분 같네요..
이런 분들과는 저는 논쟁하기 싫습니다..
남의글을 내리라 말라 하는건 좀 무리한 요구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도루박님의 글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 하시는 순둥이 님의 글은 이해
매우 양보한다고 해도 다소 이해 되지 않는 경우가 있군요.
도루박님의 글들 잘 읽었으며 매우 설득력 있고 절제되어 있다 생각
합니다.
도루박님의 이정도 글에 논리와 이성이 다소 결여된 약간 감정적인 글을
보면서 다소 안타까운 느낌이 듭니다.

도루박님의 글을 자신의 신학적인 표현으로 인정하고
저도 자연스럽게 흘러 가겠습니다..
그럼 저도 진지한 토론의 장으로 생각하고
이 주제를 열심히 보고 또 댓글 달 만하면 저도 달겠습니다..

저는 종교 다원주의자는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저는 예수님 말고는 구원자가 없다고
확실히 말합니다.
오늘은 아침부터 저는 그냥 구경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밤이 되니 도루박 님이 일을 만들고 있기에
제가 나서는 것입니다..
내가 볼때는 님이 계속 이런 방법으로 나간다면
이곳 정 목사님과 도루박 님과는 온라인 상에서는
조은 모양새는 나오지 않을것 같습니다
그것의 이유는 정 목사님 보다는 도루박 님에게 더 있다고 봅니다
도루박님이 평신도라면 이런 글을 쓸수가 없습니다.
모르겠습니다.
도루박 님이 꼭 이렇게 까지 해야 되는지는 몰라도
모양새는 정말 안좋습니다..
아 그리고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저의 말에 조금이라도 공감이 간다면
이 꼭지글 좀 스스로 내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제가 언잖은 것은 당근 아니구요, 님의 이런 자세를 기다린 것은 맞습니다.
아직(아마도 영원히~) 부족한 제가 그간 눈팅을 하다보니 다비아에는 신학적 내공이 상당하신 분들도 꽤 계시고, 신앙적 경험과 지식이 충분히 겸비하신 분들도 많았습니다.
그분들이 평소에는 조용히 지켜만 보시다가도 나설 때가 되면 자연히 나서시더군요.
그래서 저는 다비아에는 충분한 자정능력이 있다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순둥이님의 열정은 저도 참 본받고 싶군요.
주님의 평화가 모든 이에게!!!
얼마든지 다른 식으로 자기 주장을 할수 있을텐데
몇 사람하고 대화 해보고 안되니 이젠 이런 방법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