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 <열린 토론실>입니다. 다비안들의 부담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사랑채>와는 달리, 보다 진지하고 깊이있는 이야기나 주제를 나누고 싶은 분들을 위한 게시판입니다. 가급적 예의를 갖추시고 열린 마음으로 대화에 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울러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토론과 대화는 다비안을 비롯한 여러 네티즌들의 온라인 상에서의 자유로운 것이기에 그 방향과 정체성이 반드시 다비아와 일치하지는 않음을 밝혀둡니다.
글 수 256
어느 철학 수업 시간.
"오늘은 과학과 예수 그리스도 사이의 문제점에 대해서 얘기해보도록 하지." 그리고는 무신론자인 철학과 교수가 한 학생을 일으켜세웠다.
"자네는 크리스챤이지?"
"네."
"그러면 자네는 신을 믿나?"
"물론입니다."
"신은 선한가?"
"당연히 선합니다."
"신은 막강하지? 신은 아무것이나 할 수 있겠군?"
"그렇습니다."
"자네는 선한가 아니면 악한가?"
"성경에 따르면 저는 악합니다."
"아, 성경!"
교수는 회심의 미소를 지은뒤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말했다.
"내가 예를 하나 들어보겠네. 만약 지금 아픈 사람이 이곳에 있고 자네가 그 사람을 치료할 수 있다고 가정해보세. 자네는 치료해줄 수 있네. 그러면 치료를 할텐가? 적어도 치료하려고 노력은 해보겠나?"
"네. 그럴 것입니다."
"그럼 자네는 선하군!"
"그렇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왜지? 아프고 불구가 된 사람을 기꺼이 도와주려는데 말야. 사실 우리가 할 수만 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도와주려고 할 걸세. 단지 신은 그러지 않을 뿐이지."
(침묵)
"신은 도와주지 않아. 그렇지 않은가? 내 동생은 크리스챤이었는데 암으로 죽었네. 예수에게 고쳐달라고 기도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어. 그런데 예수가 어떻게 선하다고 할 수 있지? 대답해 볼 수 있겠나?"
(침묵)
나이 든 교수는 다소 동정심이 생겼다.
"대답할 수 없지, 그렇지 않은가?"
그리고는 학생이 긴장을 늦출 수 있도록 책상에 놓인 물컵을 들어 물을 조금 마셨다. 철학에 입문하는 학생을 호되게 다루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시 시작해보지. 신은 선한가?"
"음.... 네."
"사탄은 선한가?"
"아닙니다."
"사탄은 누가 만들었지?
학생은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시....신이요."
"그렇지. 신이 사탄을 만들었어. 그렇지 않은가?"
노교수는 뼈마디가 앙상한 손가락으로 숱이 별로 없는 머리를 쓸어 올리고는 키득키득 웃고 있는 다른 학생들을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이번 학기는 아주 재밌는 학기가 될 것 같군요."
그리고는 크리스챤 학생을 향했다.
"말해보게. 이 세상에 악이 존재하나?"
"네. 그렇습니다."
"악은 모든 곳에 존재하지. 그렇지 않나? 그리고 신이 모든 것을 만들었지?"
"네."
"누가 악을 만들었나?"
(침묵)
"이 세상에 질병이 있는가? 부도덕은? 증오? 추악함? 이 모든 끔찍한 것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가?"
학생은 안절부절하며 대답했다.
"네."
"누가 만들었지?"
(침묵)
교수는 갑자기 학생에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누가 만들었지? 대답해봐!"
마치 먹이를 노리는듯 교수는 학생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신이 모든 악을 만들었어. 그렇지 않은가?"
학생은 대답을 하지 못하고 차마 교수의 노련하고 집요한 눈빛을 이겨내지 못했다.
그리고 갑자기 교수는 교실 제일 앞쪽으로 어슬렁 어슬렁 걸어갔고 모든 학생들은 이 상황에 푹 빠져들고 있었다.
"말해보게." 교수는 계속해서 말했다.
"이 세상의 모든 악을 창조했는데 어떻게 신이 선할 수가 있는가?"
그리고는 이 세상의 모든 악을 가르키기라도 하는 것처럼 팔을 휘휘두르며 물었다.
"모든 증오, 잔인함, 고통, 죽음, 추악함 그리고 모든 고통을 신이 만들었어. 그렇지 않은가?"
(침묵)
"어딜 가도 볼 수 있지 않은가?" 그리고는 잠시 멈추고 다시 물었다.
"그렇지?"
마침내는 학생의 얼굴 가까이 다가가 속삭이듯이 물었다.
"신이 선한가?"
(침묵)
"자네는 예수를 믿는가?"
학생의 목소리는 갈라지기 시작했다. "네. 믿습니다."
노교수는 고개를 흔들며 유감스러운 듯 말했다.
"과학에서 우리는 오감으로 우리 주변의 세상을 인지할 수 있다고 하네. 자네는 예수를 봤나?"
"아뇨. 못 봤습니다."
"그러면, 예수가 말하는 것을 들어는 봤나?"
"아뇨."
"예수를 만져는 봤나? 맛을 보기는 했나? 아니면 냄새를 맡아봤나? 아니면 자네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감각기관으로 느끼기는 하나?"
(침묵)
"대답해보게."
"아뇨. 유감스럽게도 느끼지 못합니다."
"유감스럽게도 느끼지 못한다고?"
"네."
"그렇지만 여전히 신이 존재한다고 믿고?"
"...네..."
"그것이 믿음이란 것이군!" 노교수는 미소를 띄며 학생을 바라보았다.
"과학에서 말하는 실험, 확인, 증명의 방법에 의하면 자네의 신은 존재하지 않네.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자네의 신은 지금 어디에 있지?"
학생은 대답하지 못했다.
"앉게나."
학생은 침통하게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또 다른 크리스챤 학생이 손을 들었다.
"교수님, 제가 이야기해도 되겠습니까?"
교수는 학생을 돌아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아, 크리스챤 선봉대중 한 명인가 보군. 그럼, 괜찮지, 말해보게나. 다른 학생들에게 자네의 지혜를 들려주게."
크리스챤 학생은 교실을 한 번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말했다.
"교수님이 말씀하신 점은 나름대로 논리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질문이 있는데요. 이 세상에 온기(heat)가 존재할까요?"
"그럼, 온기는 존재하지."
교수는 대답했다.
"'냉기'도 있나요?"
"물론이네. 냉기도 있네."
"아닙니다. 없습니다."
교수는 얼굴이 굳어졌고 교실의 분위기는 갑자기 싸늘해졌다.
학생은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온기를 많이 가질 수는 있습니다. 고온, 초고온도 가능하고 저온도 가능하고 온도가 0 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냉기' 라는 건 존재하지 않아요. 0도 아래로 458 도가 될 수는 있습니다. 그게 바로 절대 온도 0 라는 것이죠. 그렇지만 그 아래로는 내려갈 수 없습니다. 만약 '냉기'라는 것이 있다면 그 아래로 내려갈 수 있어야 겠죠. 그러니까 '냉기'라는 것은 단지 '온기'가 없다는 것을 나타낼 뿐입니다. '냉기'를 잴 수는 없어요. '온기'는 에너지이니까 온도를 잴 수 있습니다. '냉기'는 '온기'의 반대가 아닙니다. 단지 '온기'의 부재일 뿐입니다."
침묵이 흘렀고 교실은 적막해졌다.
"교수님, 어둠이라는 것이 있나요?"
"그건 바보같은 질문이군. 어둠이 없다면 밤이 있을 수가 없지 않은가? 도대체 뭘 말하려는 건가?"
"그러니까 어둠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거죠?"
"그렇네..."
"다시 한 번 틀리셨습니다. 어둠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의 부재를 표현하는 단어일 뿐입니다. 희미한 밝음, 보통 밝음, 강한 밝음은 있죠. 그리고 계속 적으로 '밝음'이 없으면 그것을 '어둠'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그렇게 우리가 '어둠'이라는 단어를 정의합니다. 실제로 어둠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아요. 만약 존재한다면 어둠을 더 어둡게 만들수도 있어야 되고 어둠을 병에 담을 수도 있겠죠. 어둠을 병에 담으실 수 있겠습니까, 교수님?"
교수는 학생의 모욕적인 발언에 힘들게 웃었다. 그리고 이번 학기는 흥미진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네의 요점이 뭔지 말해주지 않겠나?"
"네. 교수님.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교수님의 철학적 가정에 오류가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수님의 결론에도 오류가 있을 수 밖에요."
교수는 화가 났다.
"오류가 있다고? 아니 어디서 감히!"
"제가 그 이유를 설명해도 되겠습니까?"
다른 학생들은 숨죽여 듣고 있었다.
"설명해보게, 그래 설명해봐."
교수는 화를 내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를 쓰며 말했다. 그리고는 다른 학생들을 조용히 시켜 크리스챤 학생이 계속 이야기를 하도록 했다.
"교수님은 이분법(duality)을 가정하고 계십니다." 학생은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다는 식이지요. 선한 신과 악한 신을 가정하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신의 개념을 우리가 크기를 잴 수 있는 어떤 유한한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계시는 겁니다. 그렇지만 교수님, 과학은 심지어 우리의 생각조차 설명하지 못합니다.
과학에서 우리는 '전기'와 '자기'를 이야기하지만 우리가 볼 수는 없습니다. 심지어 완전히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죽음을 삶의 반대라고 보는 것은 '죽음' 이라는 것이 그 자체로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망각한 결과입니다. 죽음이란 삶의 반대가 아니라 삶의 부재입니다. "
학생은 옆 자리의 학생이 가지고 있던 신문을 들어 보이며 계속했다.
"이 신문은 우리 나라에서 가장 저질적인 신문입니다. 자, 그렇다면 부도덕이라는 것이 있을까요?"
"물론이지. 잠깐만, 이봐..."
"다시 틀리셨습니다. 생각해보세요. 부도덕이라는 것은 도덕의 부재일 뿐입니다. 불의라는 것이 있을까요? 아뇨. 불의란 정의의 부재입니다. 악이 있을까요?"
학생은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는 다시 물었다.
"악이란 선의 부재가 아닐까요?"
너무 화가 난 교수는 얼굴 색이 변하고 말도 안 나올 지경이었다.
학생은 계속했다.
"이 세상에 악이 있고, 우리 모두가 그걸 알고 있다고 하죠. 신이 만약에 존재한다면, 혹시 악을 통해서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신이 성취하려는 일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성경을 보면 그것은 바로 우리 인간 개개인이 자유 의지로 악을 대신해서 선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라고 나와있습니다. "
교수는 치를 떨며 말했다.
"철학자로서, 나는 이 문제가 우리가 무슨 선택을 하는지와는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네. 현실주의자로서, 나는 신의 존재나 다른 어떤 신학적인 요소들을 현실안의 공식안에 끼워 맞출 수가 없네. 왜냐하면 신은 관찰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지 않은가."
학생은 대답했다.
"저는 신의 도덕 기준을 이 세상에서 찾아 볼 수 없다는 것 만으로도 신의 존재를 알려주는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문은 매주마다 그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려서 수십억의 돈을 벌지 않습니까!
교수님, 지금 저희들이 원숭이에서 진화했다고 가르치시는 겁니까?"
"자네가 진화론을 말하는 것이라면, 그렇네. 그렇게 말할 수 있지."
"진화를 눈으로 보신 적이 있나요?"
교수는 학생을 차가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교수님, 아무도 진화가 진행되는 것을 본적이 없을 뿐더러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고 증명할 수도 없습니다. 혹시 교수님 의견을 믿으라고 하시는 것은 아닌지요? 그러면 과학자가 아니라 목회자라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번 일은 철학 논쟁중 일어난 일이니 내 눈감아 주지. 이제 다 끝냈나?" 교수는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니까 교수님은 선행을 해야 한다는 신의 도덕률을 믿지 않으신다는 건가요?"
"나는 있는 그대로를 믿네. 그것이 과학이지!"
"아! 과학요!" 학생은 갑자기 씩 웃었다.
"교수님, 과학은 인지 가능한 현상을 관찰하는 학문이라고 하셨지요. 그렇다면 과학에도 오류가 있습니다."
"과학에 오류가 있다고?"
교실은 갑자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학생은 교실이 잠잠해질때까지 서서 기다렸다.
"처음 학생에게 하시던 이야기로 돌아가서, 제가 예를 하나 들어봐도 되겠습니까?"
교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학생은 교실을 둘러보더니 이렇게 물었다.
"교수님의 뇌를 본 적이 있는 사람?"
교실은 웃음 바다가 되었다.
그리고 학생은 당황스러워하는 노교수를 가리키며 다시 말했다.
"여기 있는 사람중에서 교수님의 뇌 소리를 들어본 사람, 아니면 만져봤거나 냄새를 맡아본 사람?"
아무도 대답하지 않자 학생은 유감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무도 교수님의 뇌를 감각 기관을 통해서 느껴보지 못한 것 같군요. 과학의 실험, 확인, 증명 방법에 따르면 교수님은 뇌가 없으십니다."
교실은 소란스러워졌다. 그리고 학생은 자리에 앉았다.
-·-·-·-·-·-·-·-·-·-·-·-·-·-·-·-·-·-·-·-·-·-·-·-·-·-·-·-·-·-·-·-·-·-·-·-·-·-·-·-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는게 인간이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진화론 또는 창조론을 선택하게 되고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고자 한다.
신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에게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면 신은 존재한다.
결국 내가 할 일은 하나다.
내가 발견한 '진리'에 나의 '믿음을 쏟는 것.
it's just up to you
"오늘은 과학과 예수 그리스도 사이의 문제점에 대해서 얘기해보도록 하지." 그리고는 무신론자인 철학과 교수가 한 학생을 일으켜세웠다.
"자네는 크리스챤이지?"
"네."
"그러면 자네는 신을 믿나?"
"물론입니다."
"신은 선한가?"
"당연히 선합니다."
"신은 막강하지? 신은 아무것이나 할 수 있겠군?"
"그렇습니다."
"자네는 선한가 아니면 악한가?"
"성경에 따르면 저는 악합니다."
"아, 성경!"
교수는 회심의 미소를 지은뒤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말했다.
"내가 예를 하나 들어보겠네. 만약 지금 아픈 사람이 이곳에 있고 자네가 그 사람을 치료할 수 있다고 가정해보세. 자네는 치료해줄 수 있네. 그러면 치료를 할텐가? 적어도 치료하려고 노력은 해보겠나?"
"네. 그럴 것입니다."
"그럼 자네는 선하군!"
"그렇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왜지? 아프고 불구가 된 사람을 기꺼이 도와주려는데 말야. 사실 우리가 할 수만 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도와주려고 할 걸세. 단지 신은 그러지 않을 뿐이지."
(침묵)
"신은 도와주지 않아. 그렇지 않은가? 내 동생은 크리스챤이었는데 암으로 죽었네. 예수에게 고쳐달라고 기도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어. 그런데 예수가 어떻게 선하다고 할 수 있지? 대답해 볼 수 있겠나?"
(침묵)
나이 든 교수는 다소 동정심이 생겼다.
"대답할 수 없지, 그렇지 않은가?"
그리고는 학생이 긴장을 늦출 수 있도록 책상에 놓인 물컵을 들어 물을 조금 마셨다. 철학에 입문하는 학생을 호되게 다루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시 시작해보지. 신은 선한가?"
"음.... 네."
"사탄은 선한가?"
"아닙니다."
"사탄은 누가 만들었지?
학생은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시....신이요."
"그렇지. 신이 사탄을 만들었어. 그렇지 않은가?"
노교수는 뼈마디가 앙상한 손가락으로 숱이 별로 없는 머리를 쓸어 올리고는 키득키득 웃고 있는 다른 학생들을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이번 학기는 아주 재밌는 학기가 될 것 같군요."
그리고는 크리스챤 학생을 향했다.
"말해보게. 이 세상에 악이 존재하나?"
"네. 그렇습니다."
"악은 모든 곳에 존재하지. 그렇지 않나? 그리고 신이 모든 것을 만들었지?"
"네."
"누가 악을 만들었나?"
(침묵)
"이 세상에 질병이 있는가? 부도덕은? 증오? 추악함? 이 모든 끔찍한 것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가?"
학생은 안절부절하며 대답했다.
"네."
"누가 만들었지?"
(침묵)
교수는 갑자기 학생에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누가 만들었지? 대답해봐!"
마치 먹이를 노리는듯 교수는 학생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신이 모든 악을 만들었어. 그렇지 않은가?"
학생은 대답을 하지 못하고 차마 교수의 노련하고 집요한 눈빛을 이겨내지 못했다.
그리고 갑자기 교수는 교실 제일 앞쪽으로 어슬렁 어슬렁 걸어갔고 모든 학생들은 이 상황에 푹 빠져들고 있었다.
"말해보게." 교수는 계속해서 말했다.
"이 세상의 모든 악을 창조했는데 어떻게 신이 선할 수가 있는가?"
그리고는 이 세상의 모든 악을 가르키기라도 하는 것처럼 팔을 휘휘두르며 물었다.
"모든 증오, 잔인함, 고통, 죽음, 추악함 그리고 모든 고통을 신이 만들었어. 그렇지 않은가?"
(침묵)
"어딜 가도 볼 수 있지 않은가?" 그리고는 잠시 멈추고 다시 물었다.
"그렇지?"
마침내는 학생의 얼굴 가까이 다가가 속삭이듯이 물었다.
"신이 선한가?"
(침묵)
"자네는 예수를 믿는가?"
학생의 목소리는 갈라지기 시작했다. "네. 믿습니다."
노교수는 고개를 흔들며 유감스러운 듯 말했다.
"과학에서 우리는 오감으로 우리 주변의 세상을 인지할 수 있다고 하네. 자네는 예수를 봤나?"
"아뇨. 못 봤습니다."
"그러면, 예수가 말하는 것을 들어는 봤나?"
"아뇨."
"예수를 만져는 봤나? 맛을 보기는 했나? 아니면 냄새를 맡아봤나? 아니면 자네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감각기관으로 느끼기는 하나?"
(침묵)
"대답해보게."
"아뇨. 유감스럽게도 느끼지 못합니다."
"유감스럽게도 느끼지 못한다고?"
"네."
"그렇지만 여전히 신이 존재한다고 믿고?"
"...네..."
"그것이 믿음이란 것이군!" 노교수는 미소를 띄며 학생을 바라보았다.
"과학에서 말하는 실험, 확인, 증명의 방법에 의하면 자네의 신은 존재하지 않네.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자네의 신은 지금 어디에 있지?"
학생은 대답하지 못했다.
"앉게나."
학생은 침통하게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또 다른 크리스챤 학생이 손을 들었다.
"교수님, 제가 이야기해도 되겠습니까?"
교수는 학생을 돌아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아, 크리스챤 선봉대중 한 명인가 보군. 그럼, 괜찮지, 말해보게나. 다른 학생들에게 자네의 지혜를 들려주게."
크리스챤 학생은 교실을 한 번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말했다.
"교수님이 말씀하신 점은 나름대로 논리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질문이 있는데요. 이 세상에 온기(heat)가 존재할까요?"
"그럼, 온기는 존재하지."
교수는 대답했다.
"'냉기'도 있나요?"
"물론이네. 냉기도 있네."
"아닙니다. 없습니다."
교수는 얼굴이 굳어졌고 교실의 분위기는 갑자기 싸늘해졌다.
학생은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온기를 많이 가질 수는 있습니다. 고온, 초고온도 가능하고 저온도 가능하고 온도가 0 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냉기' 라는 건 존재하지 않아요. 0도 아래로 458 도가 될 수는 있습니다. 그게 바로 절대 온도 0 라는 것이죠. 그렇지만 그 아래로는 내려갈 수 없습니다. 만약 '냉기'라는 것이 있다면 그 아래로 내려갈 수 있어야 겠죠. 그러니까 '냉기'라는 것은 단지 '온기'가 없다는 것을 나타낼 뿐입니다. '냉기'를 잴 수는 없어요. '온기'는 에너지이니까 온도를 잴 수 있습니다. '냉기'는 '온기'의 반대가 아닙니다. 단지 '온기'의 부재일 뿐입니다."
침묵이 흘렀고 교실은 적막해졌다.
"교수님, 어둠이라는 것이 있나요?"
"그건 바보같은 질문이군. 어둠이 없다면 밤이 있을 수가 없지 않은가? 도대체 뭘 말하려는 건가?"
"그러니까 어둠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거죠?"
"그렇네..."
"다시 한 번 틀리셨습니다. 어둠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의 부재를 표현하는 단어일 뿐입니다. 희미한 밝음, 보통 밝음, 강한 밝음은 있죠. 그리고 계속 적으로 '밝음'이 없으면 그것을 '어둠'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그렇게 우리가 '어둠'이라는 단어를 정의합니다. 실제로 어둠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아요. 만약 존재한다면 어둠을 더 어둡게 만들수도 있어야 되고 어둠을 병에 담을 수도 있겠죠. 어둠을 병에 담으실 수 있겠습니까, 교수님?"
교수는 학생의 모욕적인 발언에 힘들게 웃었다. 그리고 이번 학기는 흥미진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네의 요점이 뭔지 말해주지 않겠나?"
"네. 교수님.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교수님의 철학적 가정에 오류가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수님의 결론에도 오류가 있을 수 밖에요."
교수는 화가 났다.
"오류가 있다고? 아니 어디서 감히!"
"제가 그 이유를 설명해도 되겠습니까?"
다른 학생들은 숨죽여 듣고 있었다.
"설명해보게, 그래 설명해봐."
교수는 화를 내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를 쓰며 말했다. 그리고는 다른 학생들을 조용히 시켜 크리스챤 학생이 계속 이야기를 하도록 했다.
"교수님은 이분법(duality)을 가정하고 계십니다." 학생은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다는 식이지요. 선한 신과 악한 신을 가정하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신의 개념을 우리가 크기를 잴 수 있는 어떤 유한한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계시는 겁니다. 그렇지만 교수님, 과학은 심지어 우리의 생각조차 설명하지 못합니다.
과학에서 우리는 '전기'와 '자기'를 이야기하지만 우리가 볼 수는 없습니다. 심지어 완전히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죽음을 삶의 반대라고 보는 것은 '죽음' 이라는 것이 그 자체로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망각한 결과입니다. 죽음이란 삶의 반대가 아니라 삶의 부재입니다. "
학생은 옆 자리의 학생이 가지고 있던 신문을 들어 보이며 계속했다.
"이 신문은 우리 나라에서 가장 저질적인 신문입니다. 자, 그렇다면 부도덕이라는 것이 있을까요?"
"물론이지. 잠깐만, 이봐..."
"다시 틀리셨습니다. 생각해보세요. 부도덕이라는 것은 도덕의 부재일 뿐입니다. 불의라는 것이 있을까요? 아뇨. 불의란 정의의 부재입니다. 악이 있을까요?"
학생은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는 다시 물었다.
"악이란 선의 부재가 아닐까요?"
너무 화가 난 교수는 얼굴 색이 변하고 말도 안 나올 지경이었다.
학생은 계속했다.
"이 세상에 악이 있고, 우리 모두가 그걸 알고 있다고 하죠. 신이 만약에 존재한다면, 혹시 악을 통해서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신이 성취하려는 일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성경을 보면 그것은 바로 우리 인간 개개인이 자유 의지로 악을 대신해서 선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라고 나와있습니다. "
교수는 치를 떨며 말했다.
"철학자로서, 나는 이 문제가 우리가 무슨 선택을 하는지와는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네. 현실주의자로서, 나는 신의 존재나 다른 어떤 신학적인 요소들을 현실안의 공식안에 끼워 맞출 수가 없네. 왜냐하면 신은 관찰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지 않은가."
학생은 대답했다.
"저는 신의 도덕 기준을 이 세상에서 찾아 볼 수 없다는 것 만으로도 신의 존재를 알려주는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문은 매주마다 그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려서 수십억의 돈을 벌지 않습니까!
교수님, 지금 저희들이 원숭이에서 진화했다고 가르치시는 겁니까?"
"자네가 진화론을 말하는 것이라면, 그렇네. 그렇게 말할 수 있지."
"진화를 눈으로 보신 적이 있나요?"
교수는 학생을 차가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교수님, 아무도 진화가 진행되는 것을 본적이 없을 뿐더러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고 증명할 수도 없습니다. 혹시 교수님 의견을 믿으라고 하시는 것은 아닌지요? 그러면 과학자가 아니라 목회자라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번 일은 철학 논쟁중 일어난 일이니 내 눈감아 주지. 이제 다 끝냈나?" 교수는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니까 교수님은 선행을 해야 한다는 신의 도덕률을 믿지 않으신다는 건가요?"
"나는 있는 그대로를 믿네. 그것이 과학이지!"
"아! 과학요!" 학생은 갑자기 씩 웃었다.
"교수님, 과학은 인지 가능한 현상을 관찰하는 학문이라고 하셨지요. 그렇다면 과학에도 오류가 있습니다."
"과학에 오류가 있다고?"
교실은 갑자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학생은 교실이 잠잠해질때까지 서서 기다렸다.
"처음 학생에게 하시던 이야기로 돌아가서, 제가 예를 하나 들어봐도 되겠습니까?"
교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학생은 교실을 둘러보더니 이렇게 물었다.
"교수님의 뇌를 본 적이 있는 사람?"
교실은 웃음 바다가 되었다.
그리고 학생은 당황스러워하는 노교수를 가리키며 다시 말했다.
"여기 있는 사람중에서 교수님의 뇌 소리를 들어본 사람, 아니면 만져봤거나 냄새를 맡아본 사람?"
아무도 대답하지 않자 학생은 유감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무도 교수님의 뇌를 감각 기관을 통해서 느껴보지 못한 것 같군요. 과학의 실험, 확인, 증명 방법에 따르면 교수님은 뇌가 없으십니다."
교실은 소란스러워졌다. 그리고 학생은 자리에 앉았다.
-·-·-·-·-·-·-·-·-·-·-·-·-·-·-·-·-·-·-·-·-·-·-·-·-·-·-·-·-·-·-·-·-·-·-·-·-·-·-·-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는게 인간이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진화론 또는 창조론을 선택하게 되고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고자 한다.
신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에게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면 신은 존재한다.
결국 내가 할 일은 하나다.
내가 발견한 '진리'에 나의 '믿음을 쏟는 것.
it's just up to you
2007.12.04 21:35:24
자신의 의견이 옳다는 가정하에 자신보다 상대적으로 약한자에게 의견을 강요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죠 하지만 아무리 자신의 의견에 확신을 가지고 있어도 자신보다 강한 상대에게 맞설수 있는 것은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2007.12.04 22:52:33
오늘 날씨 무쟈게 춥더군요.
길 건넛마을 언덕길을 올라가 나 사는 쪽을 바라보았는데,
북한산자락이 어둠을 품고서 장중하게 웅크리고 있고,
그 아래쪽 동네의 불빛들이 옹기종기 정겨웠어요.
살을 파고드는 추위 속에서,
곱창 한 접시 사먹을까 고민하다가,
그냥 들어왔네요.
온기와 냉기, 빛과 어둠, ,,,
뭐라 이름 짓고 개념을 다듬더라도,
어떤 ‘현실’ 속에 우리가 놓여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죠.
선과 악, ,,,
현실 속에서의 ‘관계’가 드러나는 사태이구요.
있냐, 없냐, 선하냐, 악하냐의
판단 대상으로서의 ‘신’이 아니라,
‘관계’의 그물망으로 얽혀있는 ‘현실’,
그 속에서의 우리의 입장, 마땅한 태도, 고백의 과정을 통해
우리가 느끼는 그 실재와 그 너머에,
경외의 마음으로 ‘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죠.
현실을 매개로, 현실에 적응하며, 현실의 변화를 부르며,
현실과 그 너머에 계신 분을,, ^^
물론, 인간을 닮은 하나의 개체로서의 신이라는 표상은
얼른 졸업해야할, 소중하지만, 유치한 과정이구요. ㅋㅋ^^
길 건넛마을 언덕길을 올라가 나 사는 쪽을 바라보았는데,
북한산자락이 어둠을 품고서 장중하게 웅크리고 있고,
그 아래쪽 동네의 불빛들이 옹기종기 정겨웠어요.
살을 파고드는 추위 속에서,
곱창 한 접시 사먹을까 고민하다가,
그냥 들어왔네요.
온기와 냉기, 빛과 어둠, ,,,
뭐라 이름 짓고 개념을 다듬더라도,
어떤 ‘현실’ 속에 우리가 놓여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죠.
선과 악, ,,,
현실 속에서의 ‘관계’가 드러나는 사태이구요.
있냐, 없냐, 선하냐, 악하냐의
판단 대상으로서의 ‘신’이 아니라,
‘관계’의 그물망으로 얽혀있는 ‘현실’,
그 속에서의 우리의 입장, 마땅한 태도, 고백의 과정을 통해
우리가 느끼는 그 실재와 그 너머에,
경외의 마음으로 ‘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죠.
현실을 매개로, 현실에 적응하며, 현실의 변화를 부르며,
현실과 그 너머에 계신 분을,, ^^
물론, 인간을 닮은 하나의 개체로서의 신이라는 표상은
얼른 졸업해야할, 소중하지만, 유치한 과정이구요. ㅋㅋ^^
2007.12.05 01:29:45
누가 어떤 의도에서 위와 같은 글을 처음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도 마지막 부분이 잘리운
상태에서 돌아다니고 있더군요.
그 잘린 마지막 부분을 첨부합니다.
-------------------------------------------------------------------------------
그 소란의 와중에, 청강생으로 참석한 듯한, 양복을 빼입은 한 중년 남자가 짧은 콧수염을 매만지며
일어섰다.
"이보게. 당장 교수의 두개골을 열어 뇌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면 어떨까?"
그 학생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게 무슨 소리죠? 당신은 누굽니까?"
중년 남자는 교단 앞으로 가서 교수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요즘은 의학 기술이 발달해서 두개골을 열어 본다고 사람에게 큰 위해가 되는 일은 없지.
그러면 지금 이 교수를 이 학교 병원으로 보내 두개골을 열어보면 어떨까? 아니, 그럴 것도 없지.
요즘은 ‘단층 촬영 기법(MRI)’이라는 것도 있다던데 말이야. 눈으로 확인해 보면 어떨까?"
학생은 당황하며 일어섰다. 교실은 다시 정적 속에 잠겼다.
"그걸 확인해 본다는게 어떻다는 겁니까?"
중년 남자는 교수를 밀어내고 교단 위에 서서 그 학생을 노려보았다.
"자넨 한 가지 사실을 간과했어. 교수의 뇌는 언제든지 열어 볼 수 있지만 신은 그럴 수 없지.
신의 존재를 느낄 가능성이란 게 있기나 한 것인지 묻고 싶다.
자네의 말은 논리적으로는 그럴싸해 보이지만 실체가 없어."
학생은 다시 입을 열었다.
"신을 증명하진 못하겠지만 신을 부정할 수도 없는 것 아닙니까. 과학에도 오류란 것이 있습니다."
중년 남자가 턱을 괴고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전부 비논리적인 반박에 불과해. 이분법이 어쨌다는 건가? 자네는 신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지?"
그 학생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대답했다.
"신은 성경에 나온 대로, 전지전능한 창조주입니다."
"그거 웃긴 설명이군. 우리의 생각이 신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고 했나? 그렇다면 자네의 뇌 속에
들어찬 그 신에 대한 생각들이야말로 자네의 신을 규정지어버는 것 아닌가?.
이분법이든 뭐든 자네 역시 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그러면서 입으로만 떠들고 있지 않은가."
학생은 다시 말했다.
"하지만 성경은 신에 대해서 그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중년 남자는 어깨를 들썩이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신은 절대선인 존재이면서 이 세상의 악을 만들어낸 꽤나 악취미적인 작자가 되는 거로군.
자네는 신을 본 적도 없고, 만진 적도 없고, 냄새맡은 적도 없으며 관찰은 더더욱 해 본 일이 없지."
"하지만 그건 과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진화를 관찰한 일이 있습니까?"
중년 남자는 검은 제복의 옷깃을 접으면서 대답했다.
"있지. 37년간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핀치의 부리를 연구한 사람이 있다네."
학생은 이상한 얼굴로 물었다.
"다윈을 말하는 겁니까?"
"아니. 생물학자 부부야. 그 둘은 그 짧은 시간 동안 핀치 부리의 변화과정을 관찰하고 진화방향을 추적,
예측했네. 진화는 그렇게 긴 시간 동안 무작위적 돌연변이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네.
진화론 역시 진화하고 있어. 자네가 그렇게 만만히 볼 것은 못 되네."
남자는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가 끼워 맞춘 이야기들 중 일부는 맞지만 일부는 틀렸어. 핵심적인 곳에서 말이지.
자네는 논점을 교묘히 흩뜨리면서 이 멍청한 교수에게 원하는 답을 유도시켰네.
빛의 부재를 어둠이라 할 수 있지. 하지만 선의 부재가 악인 것은 아니야.
자연과 인간 뇌 속의 개념을 혼동하지 말게.
아까 멍청한 답을 했던 저 학생이 이 교실에서 나간 후 자네를 찔러 죽인다면 어떨까?
자네의 돈을 빼앗기 위해서 말이지."
"그건 악한 행동입니다."
"그래. 악한 행동이지. 하지만 선의 부재는 아니야. 선의 부재라는 것은 자네가 칼에 찔려 피를 흘리고
죽어가고 있을 때 옆에서 지나가던 사람이 자네를 내버려두고 그냥 지나가는 것이지.
악한 행동은 분명히 개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네. 자네 말대로의 관념이 인류 보편적인 것이라면 악하다, 나쁘다란 말은 생겨날 수가 없겠지. 선하지 않다, 좋지 않다로 모든 것이 해결될 테니까.
마치 조지 오웰이 쓴 <1984>의 세계 같지 않은가."
학생은 아무 말이 없었다.
"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싶다면 내용 없는 반박과 성경이라는 부정확한 책에 의지하지 말고
과학적인 증거를 제시하게. 나머지는 전부 쓸데 없는 행동일 뿐이야. 나는 그런 것을 싫어한다네."
학생은 제모를 눌러 쓰고 문 밖으로 나서는 중년 남자에게 물었다.
"당신은 누굽니까?"
"......난 1945년 4월, 베를린의 망령일세 (히틀러를 말함)."
--------------------------------------------------------------------------------------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는게 인간이다.(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이란
말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그런데 이 같은 말을 할 때 '나' 또는 '우리'는 진리를 믿는데 '너' 또는 '당신들은'
진리를 부정하고 그저 스스로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는 의미를 은근히 전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명백한 모순이지요. ("나는 인간이 아니다" 라고 확신하지 않는 한)
님이 의도는 님도 그 인간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겸손하게 표현한 것으로 생각하고 싶군요.
상태에서 돌아다니고 있더군요.
그 잘린 마지막 부분을 첨부합니다.
-------------------------------------------------------------------------------
그 소란의 와중에, 청강생으로 참석한 듯한, 양복을 빼입은 한 중년 남자가 짧은 콧수염을 매만지며
일어섰다.
"이보게. 당장 교수의 두개골을 열어 뇌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면 어떨까?"
그 학생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게 무슨 소리죠? 당신은 누굽니까?"
중년 남자는 교단 앞으로 가서 교수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요즘은 의학 기술이 발달해서 두개골을 열어 본다고 사람에게 큰 위해가 되는 일은 없지.
그러면 지금 이 교수를 이 학교 병원으로 보내 두개골을 열어보면 어떨까? 아니, 그럴 것도 없지.
요즘은 ‘단층 촬영 기법(MRI)’이라는 것도 있다던데 말이야. 눈으로 확인해 보면 어떨까?"
학생은 당황하며 일어섰다. 교실은 다시 정적 속에 잠겼다.
"그걸 확인해 본다는게 어떻다는 겁니까?"
중년 남자는 교수를 밀어내고 교단 위에 서서 그 학생을 노려보았다.
"자넨 한 가지 사실을 간과했어. 교수의 뇌는 언제든지 열어 볼 수 있지만 신은 그럴 수 없지.
신의 존재를 느낄 가능성이란 게 있기나 한 것인지 묻고 싶다.
자네의 말은 논리적으로는 그럴싸해 보이지만 실체가 없어."
학생은 다시 입을 열었다.
"신을 증명하진 못하겠지만 신을 부정할 수도 없는 것 아닙니까. 과학에도 오류란 것이 있습니다."
중년 남자가 턱을 괴고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전부 비논리적인 반박에 불과해. 이분법이 어쨌다는 건가? 자네는 신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지?"
그 학생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대답했다.
"신은 성경에 나온 대로, 전지전능한 창조주입니다."
"그거 웃긴 설명이군. 우리의 생각이 신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고 했나? 그렇다면 자네의 뇌 속에
들어찬 그 신에 대한 생각들이야말로 자네의 신을 규정지어버는 것 아닌가?.
이분법이든 뭐든 자네 역시 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그러면서 입으로만 떠들고 있지 않은가."
학생은 다시 말했다.
"하지만 성경은 신에 대해서 그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중년 남자는 어깨를 들썩이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신은 절대선인 존재이면서 이 세상의 악을 만들어낸 꽤나 악취미적인 작자가 되는 거로군.
자네는 신을 본 적도 없고, 만진 적도 없고, 냄새맡은 적도 없으며 관찰은 더더욱 해 본 일이 없지."
"하지만 그건 과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진화를 관찰한 일이 있습니까?"
중년 남자는 검은 제복의 옷깃을 접으면서 대답했다.
"있지. 37년간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핀치의 부리를 연구한 사람이 있다네."
학생은 이상한 얼굴로 물었다.
"다윈을 말하는 겁니까?"
"아니. 생물학자 부부야. 그 둘은 그 짧은 시간 동안 핀치 부리의 변화과정을 관찰하고 진화방향을 추적,
예측했네. 진화는 그렇게 긴 시간 동안 무작위적 돌연변이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네.
진화론 역시 진화하고 있어. 자네가 그렇게 만만히 볼 것은 못 되네."
남자는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가 끼워 맞춘 이야기들 중 일부는 맞지만 일부는 틀렸어. 핵심적인 곳에서 말이지.
자네는 논점을 교묘히 흩뜨리면서 이 멍청한 교수에게 원하는 답을 유도시켰네.
빛의 부재를 어둠이라 할 수 있지. 하지만 선의 부재가 악인 것은 아니야.
자연과 인간 뇌 속의 개념을 혼동하지 말게.
아까 멍청한 답을 했던 저 학생이 이 교실에서 나간 후 자네를 찔러 죽인다면 어떨까?
자네의 돈을 빼앗기 위해서 말이지."
"그건 악한 행동입니다."
"그래. 악한 행동이지. 하지만 선의 부재는 아니야. 선의 부재라는 것은 자네가 칼에 찔려 피를 흘리고
죽어가고 있을 때 옆에서 지나가던 사람이 자네를 내버려두고 그냥 지나가는 것이지.
악한 행동은 분명히 개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네. 자네 말대로의 관념이 인류 보편적인 것이라면 악하다, 나쁘다란 말은 생겨날 수가 없겠지. 선하지 않다, 좋지 않다로 모든 것이 해결될 테니까.
마치 조지 오웰이 쓴 <1984>의 세계 같지 않은가."
학생은 아무 말이 없었다.
"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싶다면 내용 없는 반박과 성경이라는 부정확한 책에 의지하지 말고
과학적인 증거를 제시하게. 나머지는 전부 쓸데 없는 행동일 뿐이야. 나는 그런 것을 싫어한다네."
학생은 제모를 눌러 쓰고 문 밖으로 나서는 중년 남자에게 물었다.
"당신은 누굽니까?"
"......난 1945년 4월, 베를린의 망령일세 (히틀러를 말함)."
--------------------------------------------------------------------------------------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는게 인간이다.(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이란
말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그런데 이 같은 말을 할 때 '나' 또는 '우리'는 진리를 믿는데 '너' 또는 '당신들은'
진리를 부정하고 그저 스스로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는 의미를 은근히 전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명백한 모순이지요. ("나는 인간이 아니다" 라고 확신하지 않는 한)
님이 의도는 님도 그 인간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겸손하게 표현한 것으로 생각하고 싶군요.
2007.12.05 12:18:45
그렇기에, "악은 선의 결핍이다"라 한,
성 아우구스티노의 말은 논리적으로 옳았습니다.
우리는, 낱말로 명명한 언어의 틀에 얽매여,
대상을 규정하는 오류에 빠지기 일쑤입니다.
인간이 만든 언어에 인간 스스로가 낚여 파닥거리는 거지요.
하지만, 대상은 언어 이전에 존재하므로,
언어 그 자체를 의심해 봐야 하는 겁니다.
위의 본문에 등장하는 철학 교수와 그 일화는,
그리스도인이 가상으로 만든 인물과 사건이 아닐까 싶은데요.
과거의 철학 학설과 사조들이라면 모르겠습니다만,
현대 철학이라면, 위와 같은 순진한 과학주의의 한계를 모를 리도 없고,
성 아우구스티노의 선악 규정을 모를 리도 없을텐데요.
(모른다면, 그 철학자가 무식한 거고.
선악 규정에 관한 가장 고전적인 언설인데)
아무튼,
올리신 글의 그 철학자도 그렇고,
'학생 2'로 상정된, 또, 이 이야기를 지었으리라 추측되는
그리스도교 쪽(그리스도교도 워낙 다양합니다만서도) 역시,
둘 다, 거시기~ 합니다.
'나이브'한 건 아닌지 말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노의 말은 논리적으로 옳았습니다.
우리는, 낱말로 명명한 언어의 틀에 얽매여,
대상을 규정하는 오류에 빠지기 일쑤입니다.
인간이 만든 언어에 인간 스스로가 낚여 파닥거리는 거지요.
하지만, 대상은 언어 이전에 존재하므로,
언어 그 자체를 의심해 봐야 하는 겁니다.
위의 본문에 등장하는 철학 교수와 그 일화는,
그리스도인이 가상으로 만든 인물과 사건이 아닐까 싶은데요.
과거의 철학 학설과 사조들이라면 모르겠습니다만,
현대 철학이라면, 위와 같은 순진한 과학주의의 한계를 모를 리도 없고,
성 아우구스티노의 선악 규정을 모를 리도 없을텐데요.
(모른다면, 그 철학자가 무식한 거고.
선악 규정에 관한 가장 고전적인 언설인데)
아무튼,
올리신 글의 그 철학자도 그렇고,
'학생 2'로 상정된, 또, 이 이야기를 지었으리라 추측되는
그리스도교 쪽(그리스도교도 워낙 다양합니다만서도) 역시,
둘 다, 거시기~ 합니다.
'나이브'한 건 아닌지 말입니다.
2007.12.06 22:41:03
인터넷에 이런 글 많지요.
애국심 고취용, 감은효성용 등등....
다비아에도 가끔 그런 글을 퍼다 게재한 걸 본 적이 잇는데...
그것들의 문학성이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일단은 진실성이 없다는 것이고
글의 구성력이 떨어진다는 원초적인 죄(?)가 있어서지요.
윗글도 정말 나이브하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구성력이 떨어지네요.
본문의 글에 나온 어거스틴이나 데카르트 논변, 라이프니츠 가능성 논설등은 철학 기초개론에 다 나와있는 거고 이미 여러 형식으로 논박되고 (깡디드라는 볼테르의 책을 보면 극을 달립니다) 심지어 대학 논술고사에도 비슷한 주제가 나온 걸로 기억하는데....
유치뽕짝인 다이얼로그로 얻고자하는 게 대체 뭔지 감이 잡히긴 합니다만,
요즘같은 교육받은 대중을 상대로 한 것이라면,
더구나 그 대중의 상당수가 공감하지 못할 논리적 연결이라면
오히려 반감만 사기에 아주 적당한 글이네요.
애국심 고취용, 감은효성용 등등....
다비아에도 가끔 그런 글을 퍼다 게재한 걸 본 적이 잇는데...
그것들의 문학성이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일단은 진실성이 없다는 것이고
글의 구성력이 떨어진다는 원초적인 죄(?)가 있어서지요.
윗글도 정말 나이브하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구성력이 떨어지네요.
본문의 글에 나온 어거스틴이나 데카르트 논변, 라이프니츠 가능성 논설등은 철학 기초개론에 다 나와있는 거고 이미 여러 형식으로 논박되고 (깡디드라는 볼테르의 책을 보면 극을 달립니다) 심지어 대학 논술고사에도 비슷한 주제가 나온 걸로 기억하는데....
유치뽕짝인 다이얼로그로 얻고자하는 게 대체 뭔지 감이 잡히긴 합니다만,
요즘같은 교육받은 대중을 상대로 한 것이라면,
더구나 그 대중의 상당수가 공감하지 못할 논리적 연결이라면
오히려 반감만 사기에 아주 적당한 글이네요.
2007.12.06 22:44:53
꼭지글을 올린 분에 대한 좀 이해가 필요한 글입니다.
불가사의님은 한창 이런 얘기가 재미있는 중2의 학생입니다.
당연 구성력이나 논리적인 면에서 부족할 수 있지요.
귀엽게 봐 주세요!!!
불가사의님은 한창 이런 얘기가 재미있는 중2의 학생입니다.
당연 구성력이나 논리적인 면에서 부족할 수 있지요.
귀엽게 봐 주세요!!!
2007.12.06 22:48:07
헉! 개인정보를 몰라서 그렇게 됐네요. ^^;
불가사의 학생~ 가능하면 NAVER 지식인을 멀리하세요~
말그대로 KIN이 '즐' 이니까...^^
불가사의 학생~ 가능하면 NAVER 지식인을 멀리하세요~
말그대로 KIN이 '즐' 이니까...^^
2007.12.07 06:35:16
'불가사의'가 예인양의 닉네임이었군요. 조금만 신경썼드라면 알 수 있었을텐데.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낯선 이름도 아니거든요.
음---, 브리즈 '오빠'라고 해야 팍팍 와닿는데 많은 다비안들의 어처구니 없어하는 표정이 눈에
너무 선하므로 브리즈 '아저씨' 정도로 할께요.
수많은 정보들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인터넷이란 도구는 참 편리함한 것임에 틀림없어요.
대신에 정보의 출처와 근거는 그 만큼 흐릿해 지는거구요.
위에 예인양이 올린 글도 누가, 언제, 어떤의도로 작성했는지 알 수 없을거예요.
본문의 1/3만 뚝 따서 여기저기 올리면 마치 기독교인이 할 말을 잃은 셈이되고,
2/3만 가져다 나르면 논쟁에서 기독교인이 통쾌하게 이기는 것 같다가,
전체를 놓고 보면 '이게 뭐야!' 하는 글이 되구요.
많은 양을 짧은 시간에 편하게 접할 수 있는 잇점과 그 근거와 출처 및 권위를 확인하는데
소요되는 시간과 끈기를 같이 고려해 보면 '올바른 정보'를 획득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잔소리가 길어졌죠?
사소한 정보도 항상 그 정보가 언제 어떤 경로로 어떤 이에 의해 제공되었는지를 확인할려는
습관을 키우기를 부탁하고 싶은 거예요.
다시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또 있기를 바라면서
오빠 (퍽!), 아니, 아저씨는 이제 그만.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낯선 이름도 아니거든요.
음---, 브리즈 '오빠'라고 해야 팍팍 와닿는데 많은 다비안들의 어처구니 없어하는 표정이 눈에
너무 선하므로 브리즈 '아저씨' 정도로 할께요.
수많은 정보들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인터넷이란 도구는 참 편리함한 것임에 틀림없어요.
대신에 정보의 출처와 근거는 그 만큼 흐릿해 지는거구요.
위에 예인양이 올린 글도 누가, 언제, 어떤의도로 작성했는지 알 수 없을거예요.
본문의 1/3만 뚝 따서 여기저기 올리면 마치 기독교인이 할 말을 잃은 셈이되고,
2/3만 가져다 나르면 논쟁에서 기독교인이 통쾌하게 이기는 것 같다가,
전체를 놓고 보면 '이게 뭐야!' 하는 글이 되구요.
많은 양을 짧은 시간에 편하게 접할 수 있는 잇점과 그 근거와 출처 및 권위를 확인하는데
소요되는 시간과 끈기를 같이 고려해 보면 '올바른 정보'를 획득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잔소리가 길어졌죠?
사소한 정보도 항상 그 정보가 언제 어떤 경로로 어떤 이에 의해 제공되었는지를 확인할려는
습관을 키우기를 부탁하고 싶은 거예요.
다시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또 있기를 바라면서
오빠 (퍽!), 아니, 아저씨는 이제 그만.
2007.12.07 09:10:32
제 기억이 맞다면, 예인양이 아니라 예인군일 텐데요,, ㅋㅋ^^
불가사의님의 글에 해당하는 부분,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는 게 인간이다’에 공감했구요.
다만, 흥미롭게 읽은, 옮겨 쓴 부분에 대해서,
저 스스로 대답해 본 것이, 위에 쓴 저의 댓글이었지요. ^^
불가사의님의 글에 해당하는 부분,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는 게 인간이다’에 공감했구요.
다만, 흥미롭게 읽은, 옮겨 쓴 부분에 대해서,
저 스스로 대답해 본 것이, 위에 쓴 저의 댓글이었지요. ^^
2007.12.07 11:54:30
"무에야?" 예인'양'이 아니라 예인'군"이라?
이거 어쩜 좋노. 쟁토방이라 댓글 수정도 안되는 것을!
예인군, 진심으로 사과합니다.
브리즈 형(퍽!), 아니, 아저씨의 실수가 많았어요.
댓글의 '양'은 모두 '군'으로 바꿔서 읽고, '오빠'는 '형'으로 바꿔 읽어 주어요.
그런데 이러한 상황이 기억은 잘 안나지만, 전혀 낯설지 않은 이유는 뭘까요?
누군가 똑같은 실수를 하셨던 것 같은데 ?????
이거 어쩜 좋노. 쟁토방이라 댓글 수정도 안되는 것을!
예인군, 진심으로 사과합니다.
브리즈 형(퍽!), 아니, 아저씨의 실수가 많았어요.
댓글의 '양'은 모두 '군'으로 바꿔서 읽고, '오빠'는 '형'으로 바꿔 읽어 주어요.
그런데 이러한 상황이 기억은 잘 안나지만, 전혀 낯설지 않은 이유는 뭘까요?
누군가 똑같은 실수를 하셨던 것 같은데 ?????
2007.12.08 23:33:57

흠, 뭐가 뭔지...... 단 한가지 찐한 공감,
늘오늘님, "곱창 한 접시 사먹을까 고민하다가 그냥 들어"오시다니"
웬만하면 사 잡수시지...... 날씨도 그렇게 추웠는데....
늘오늘님, "곱창 한 접시 사먹을까 고민하다가 그냥 들어"오시다니"
웬만하면 사 잡수시지...... 날씨도 그렇게 추웠는데....
2007.12.09 04:40:34
벌써 닷새나 지난 일이 되었네요. ^^
요즘 추위 말인데요,,
손님이 춥다고 호들갑(?)이시기에, 맞장구를 쳤는데,
손님왈 손과 귀는 시렵지만, 발이 시렵지 않은 걸로 봐서는,
별 추위도 아니라기에, 또 맞장구를 쳤지요. ㅋㅋ
글찮아도, 그저께, 소주 한 잔 했습니다.
곱창볶음 한 접시 앞에 놓고,,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그러데요,
선거 끝날 때 까지는 술에 취해 말 잘못했다간 얻어터진다고.
그러구나서 그날 제가 얻어터졌다는 거 아닙니까. ^^;
신 목사님으로부터 장문의 쪽지로,,^^; 그래서 며칠 자중할려구 했는디,,
윤만호님께 댓글 드리다가,,, 또 선거 얘길 하고 말았네용. ㅋㅋ^^
요즘 추위 말인데요,,
손님이 춥다고 호들갑(?)이시기에, 맞장구를 쳤는데,
손님왈 손과 귀는 시렵지만, 발이 시렵지 않은 걸로 봐서는,
별 추위도 아니라기에, 또 맞장구를 쳤지요. ㅋㅋ
글찮아도, 그저께, 소주 한 잔 했습니다.
곱창볶음 한 접시 앞에 놓고,,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그러데요,
선거 끝날 때 까지는 술에 취해 말 잘못했다간 얻어터진다고.
그러구나서 그날 제가 얻어터졌다는 거 아닙니까. ^^;
신 목사님으로부터 장문의 쪽지로,,^^; 그래서 며칠 자중할려구 했는디,,
윤만호님께 댓글 드리다가,,, 또 선거 얘길 하고 말았네용. ㅋㅋ^^
2007.12.09 20:52:51
이럴수가
쟁토방을 오랜만에 들어와보니 우리 아들이 사고를(?)쳤네요
방학기간에 집에와서 학교형들 홈피에있는걸 퍼와서 올렸네요
예인이는 기독교 대안학교를 다닙니다, 기존 교회의 가르침과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너그럽게 .............
쟁토방을 오랜만에 들어와보니 우리 아들이 사고를(?)쳤네요
방학기간에 집에와서 학교형들 홈피에있는걸 퍼와서 올렸네요
예인이는 기독교 대안학교를 다닙니다, 기존 교회의 가르침과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너그럽게 .............
2007.12.17 19:10:37
글의 마지막 부분이 잘려서 돌아다닌다기보다, 원래 누군가(아마도 기독교인)에 의해서 작성된 원글에, 또다른 누군가가 뒷 1/3부분을 추가했다라고 보는 것이 더 그럴 듯한 설명이라 생각이 됩니다. 또다른 누군가 이번엔 베를린의 망령을 상대로 논쟁을 벌이는 내용이 추가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2007.12.28 13:01:01
대안학교 다니는 예인군(양?)도 이곳에서 글올려서 궁금한 점을 해소 할수 있습니다.
어리다고 부족하다고 올린글에 대해서 쟁론방에서 다른 곳의 글을 옮겼느니...
그러지 말고 글 내용에 충실한 댓글이 선행됨이 옳을듯 하네요...
글을 읽고 "판넨 베르크 설교"의 내용을 인용
하나님의 부재는 하나님의 무력하다는 징표가 아니라 심판의 공적인 선포요 그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부재는 인간이 독자적으로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자기욕망과 그 결과에
내버려두십니다. 우리는 이런 결과가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그 어떤 강제력없이 살아갈 때만 흡족해 한다는 사실이 바로 우리시대의 가장 유해한 광기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은 모든 면에서 잘못이 없지는않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소위 말하는 진보적인 입장을 취하는 게 좋다는 허영심이 자극됩니다. 그게 지나쳐서 이제는 기독교 시민들이나 기독교 정당들도 기독교적인 됨됨이를 증명하기는 커녕 기독교적인 이름을 부끄러워합니다. 육체대로 뿌리는 사람은 그 육체에서 썩을 것을 거두게 될 것이라는 바울의 이 말에는 신비주의적인 구석이 하나도 없습니다. 무상한 것에만 관심을 갖는 사람은, 그리고 무상한 것에 자기의 삶을 걸어두는 사람은 이 무상한 것들과 더불어 몰락할 것입니다. 물론 어느 정도까지는 이 무상한 것들이 종종 그에게 그 흔적을 남길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상은 그에게 남아있을 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
어리다고 부족하다고 올린글에 대해서 쟁론방에서 다른 곳의 글을 옮겼느니...
그러지 말고 글 내용에 충실한 댓글이 선행됨이 옳을듯 하네요...
글을 읽고 "판넨 베르크 설교"의 내용을 인용
하나님의 부재는 하나님의 무력하다는 징표가 아니라 심판의 공적인 선포요 그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부재는 인간이 독자적으로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자기욕망과 그 결과에
내버려두십니다. 우리는 이런 결과가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그 어떤 강제력없이 살아갈 때만 흡족해 한다는 사실이 바로 우리시대의 가장 유해한 광기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은 모든 면에서 잘못이 없지는않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소위 말하는 진보적인 입장을 취하는 게 좋다는 허영심이 자극됩니다. 그게 지나쳐서 이제는 기독교 시민들이나 기독교 정당들도 기독교적인 됨됨이를 증명하기는 커녕 기독교적인 이름을 부끄러워합니다. 육체대로 뿌리는 사람은 그 육체에서 썩을 것을 거두게 될 것이라는 바울의 이 말에는 신비주의적인 구석이 하나도 없습니다. 무상한 것에만 관심을 갖는 사람은, 그리고 무상한 것에 자기의 삶을 걸어두는 사람은 이 무상한 것들과 더불어 몰락할 것입니다. 물론 어느 정도까지는 이 무상한 것들이 종종 그에게 그 흔적을 남길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상은 그에게 남아있을 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