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성경의 오류들 1

 

예수의 거짓말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시게 되었다. 제자들이 길을 내면서 밀 이삭을 자르기 시작하였다. 바리새파 사람이 예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어찌하여 이 사람들은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릴 때에 다윗이 어떻게 하였는지를 너희는 읽지 못하였느냐? 아비아달 대 제사장 때에 다윗이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서, 제사장들 밖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제단 빵을 먹고 그 일행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마가복음 2:23~26)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마가복음 2:27)라는 통쾌한 말로 유명한 장면입니다.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자르자 바리새인들은 왜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율법을 어기냐고 쏘아댑니다. 그러자 예수는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자른 제자들을 변호하면서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 다윗도 그런 적이 있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예수의 말은 틀렸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서 먹어서는 안 되는 제단 빵을 먹었을 때는,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가 아니라 아히멜렉 때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의 사무엘상에 이 이야기가 나와 있습니다.

다윗은 놉으로 가서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렀다. 아히멜렉이 떨면서 나와서 다윗을 맞으며 물었다. “동행자도 없이 어떻게 혼자 오셨습니까?” 다윗이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임금님의 명령을 띠고 길을 떠났습니다. …… 그런데 지금 제사장님이 혹시 무엇이든 가까이 가진 것이 좀 없습니까? 빵 다섯 덩이가 있으면 저에게 주십시오. 그렇게 안 되면 있는 대로라도 주십시오.”…… 제사장은 그에게 거룩한 빵을 주었다. 주님 앞에 차려 놓은 빵 말고는, 다른 빵이 달리 더 없었기 때문이다. (사무엘상 21:1~6)


그렇다면 마가복음에서 언급한 아비아달은 누구일까요? 사무엘상에 의하면 아비아달은 아히멜렉 제사장의 아들입니다. 다윗은 자신에게로 도망쳐온 아비아달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함께 지내자고 이야기하는데 다윗과 아비아달의 에피소드는 그게 전부입니다.

“아히둡의 손자이며 아히멜렉의 아들인 아비아달은 거기서 피하여 다윗에게로 도망하였다.”(사무엘상 22:20)

그렇다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가 거짓말을 한 것일까요? 아니면 역사서로 유명한 구약 성경의 사무엘상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분명한 것은 사무엘상의 내용과 마가복음의 내용이 둘 다 사실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성경 본문 비평학자 바트 어만은 그의 저서 《성경 왜곡의 역사MISQUOTING JESUS》에서 이 문제로 인해 발생했던 에피소드를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문자적으로 무오하다고 생각했던 당시의 바트 어만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복잡한 이론을 전개했었습니다.

스토리 교수에게 제출한 학기말 논문에서 나는, 비록 마가가 이 사건이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일어났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사실 아비아달 대제사장이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이 아비아달이 주인공 중 하나인 성서 본문 속에서 일어난 것을 의미한다는 취지로 매우 길고 복잡한 주장을 전개했다. 관련된 그리스어 단어의 의미를 근거로 대단히 복잡한 주장을 펼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스토리 교수가 내 주장을 높이 평가할 것이라고 굳게 확신했다. 왜냐하면 그는 틀림없이 나와 마찬가지로 성서에 오류 따위는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훌륭한 기독교인 학자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토리 교수는 내 논문 말미에 간단한 한 줄 평을 써놓았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 한 마디는 나를 정통으로 꿰뚫고 지나갔다. 그는 이렇게 적어두었다.

“마가가 그냥 실수한 것이겠지.”

스토리 교수의 말처럼 이 단락에서 발생한 오류의 원인은 단지 성경을 쓴 마가의 실수 때문입니다. 예수가 틀린 것도 아니고 사무엘상의 내용이 틀린 것도 아닙니다. 로이드 존스는 “하나님의 영감은 성경의 기자가 기록을 함에 있어 과실을 저지를 수 없도록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감독을 받았다.” 라고 이야기하지만 마가복음의 이 구절에서만큼은 마가의 과실이 명백합니다. 이 단락은 성경이 문자적으로 무오하지 않으며 실수를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두 개의 탄생 이야기
성경을 기록한 사람의 실수 외에도, 성경에는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네 권의 복음서들은 많은 부분에서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는데 그 중 몇 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셨다. 그런데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말하였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에 계십니까?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습니다.” 헤롯왕은 이 말을 듣고 당황하였고, 온 예루살렘 사람들도 그와 함께 당황하였다. (마태복음 2:1~3)


그 때에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칙령을 내려 온 세계가 호적 등록을 하게 되었는데, 이 첫 번째 호적 등록은 구레뇨가 시리아의 총독으로 있을 때에 시행한 것이다. 모든 사람이 호적 등록을 하러 저마다 자기 고향으로 갔다. 요셉은 다윗 가문의 자손이므로, 갈릴리의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에 있는 베들레헴이라는 다윗의 동네로, 자기의 약혼자인 마리아와 함께 등록하러 올라갔다. 그 때에 마리아는 임신 중이었는데, 그들이 거기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 마리아가 해산할 날이 되었다. 마리아가 첫 아들을 낳아서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눕혀 두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방이 없었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2:1~7)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오는 예수의 탄생 이야기입니다. 조금만 읽어봐도 두 복음서의 이야기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에는 한 번쯤 나올 법한 헤롯왕의 이야기가 전혀 나오지 않고 마태복음에는 호적 등록 이야기나 구레뇨의 이야기가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한데 두 이야기의 시기가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에 따르면 예수는 기원전 4~5년에 탄생했습니다. 실제로 예수는 이 때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기원전 4년 즈음에 요셉과 마리아가 호구조사를 위해 갈릴리에서 베들레헴으로 이동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 무렵에는 호구조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로마의 황제였던 아우구스투스가 직접 기록한《업적록》에 의하면 그 당시 호구조사는 세 번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그 자신과 아그리파가 집정관이었던 기원전 28년.
두 번째는 가이우스 켄솔리누스와 가이우스 아시니우스가 집정관이었던 기원전 8년.
세 번째는 섹스투스 폼페이우스와 섹스투스 아풀레이우스가 집정관이었던 서기 14년.1)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로마사 연구에만 매진해 그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시오노 나나미는 자신의 걸작《로마인 이야기》에서 누가복음의 훈훈한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합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본적지로 돌아가는 길에 예수가 태어났다는 것은 아름다운 에피소드지만, 사실 이 무렵에는 국세조사가 실시되지 않았다.”

그녀는 예수가 태어난 때와 호구조사가 실시된 때의 시간차가 너무 크다는 것과 당시 유대의 상황이 독자적인 호구 조사가 어려운 때였음을 지적합니다.

“예수가 탄생한 것으로 되어 있는 기원 1년을 전후해서는 로마의 국세조사가 실시되지 않았다. 멀리 떨어진 속국이니까 시간차가 있었다고 해도, 8년의 차이(기원전 8년의 호구조사)는 너무 크다. 또한 유대의 독자적 조사였다고 생각하기도 어렵다. 당시 유대는 헤롯 대왕이 죽은 뒤 내분 상태에 있어서 국세조사를 할 계제가 아니었다.”

그리고 호구조사를 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 또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호구조사는 국가에서 세금을 제대로 징수하기 위해 하는 것인데 바보가 아닌 이상 먼 곳에 사는 사람까지 불러서 호구조사를 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현명했던 로마인들도 현재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호구를 조사했습니다. 김용옥은 《기독교 성서의 이해》에서 원적原籍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호구조사는 없었다고 단언합니다.

“누가의 기록이 비상식적이라는 것은 모든 호구조사는 원적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고 거주하고 생활하고 있는 현주소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원칙에 비추어도 알 수 있다. 옛날에 자동차가 있지도 않았고, 목수 신분의 요셉은 만삭에 가깝도록 배부른 마리아를 데리고 터덜터덜 700리길을 걸어갔을 텐데, 그것도 단지 원적 호구조사에 응하기 위하여 ... 좀 상상하기가 어렵다.”

또한 예수가 탄생했을 때의 시리아 총독은 구레뇨가 아니라 퀴리니우스(Publius Sulpicius Quirinius)였습니다. 구레뇨는 퀴리니우스가 시리아 총독을 지내고 난 한참 후 서기 6년 이후에 시리아를 통치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축자무오론자들의 억지 반론

로이드 존스가 “성경의 난제들과 모순들이라고 하는 많은 문제들이 고고학과 성경의 더 자세한 언어학적 파악의 결과로 지난 몇 년 동안 설명되었다.”고 주장하는 바와 달리, 오히려 역사적 고증과 고고학에 의해 누가복음의 사실성이 비판을 받게 되자 성경 축자 무오론자들은 어떻게든 누가복음의 사실성을 수호하기 위해 여러 가지 주장을 해 나갑니다.

“복음서를 기록한 저자들의 목적은 분명히 실제로 일어난 사실을 기록하는 것이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가장 충실하고 객관적으로 역사적 진실을 기록했다.”고 말하는 리 스트로벨은 《예수는 역사다》에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예수 탄생 시기가 일치하지 않는 문제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주장도 기원전 4년 즈음에 구레뇨가 시리아의 총독이 아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무시하지는 못합니다.

“제리 바르다만이란 저명한 고고학자가 이 점에 관해 많은 연구를 했다. 그는 소위 ‘가는 글씨의’ 글자라고 부르는 매우 작은 글씨체로 구레뇨라는 이름이 적힌 동전을 발견했다. 이것은 그가 BC 11년부터 헤롯 왕이 죽은 후까지 수리아와 길리기아의 총독으로 지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구레뇨란 사람이 분명히 두 명이었다는 뜻이다.

추가로 연구를 해보았을 때 켐브리지 대학교에서 교수로서 있었던 故 윌리엄람세이가 유사한 이론을 제안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가 다양한 비문을 살펴본 결과, 구레뇨라는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는데 시간적으로 별도로 두 차례에 걸쳐 수리아를 통치했으며 그 기간에 더 이른 인구 조사 기간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른 학자들은 누가의 본문이 “이 인구 조사가 구레뇨가 수리아를 통치하기 전에 행해졌다.” 라고 번역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 문제는 해결된다.

그 문제는 원하는 만큼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았다. 그러나 맥레이와 다른 사람들이 몇 가지 가능한 설명을 제시했다고 인정해야만 했다. 나는 예수 출생 기간 동안 인구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지금도 이상하게 생각되지만 사람들이 고향에 정말로 돌아가야만 했다고 자신 있게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리 스트로벨은 몇몇 학자들의 주장을 예로 들며 누가복음의 기록이 역사적 사실이고 따라서 모순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억지로 끼워 맞추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구레뇨가 두 명이었다, 한 명의 구레뇨가 두 번 통치를 했다, 성경을 구레뇨가 수리아를 통치하기 전에 행해졌다고 번역해야 한다하는 주장들이 모두 다르고 그 증거도 겨우 ‘아주 작은’ 글씨로 구레뇨라고 적혀 있는 동전을 하나 발견했다는 것뿐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하나쯤 만들어 낼 수 있는, 주먹구구식 주장입니다. 이 책 스스로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마음에 걸렸는지 “이상하게 생각되지만” “자신 있게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라는 자기 모순적인 말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 본 것처럼 누가복음의 예수 탄생 이야기는 여러모로 역사적 사실과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예수가 기원전 8년이나 서기 14년에 태어나지 않았으며 당시 시리아의 총독도 구레뇨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성경 축자 무오설의 주장대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기록이 모두 사실이라면, 예수가 기원전 4년에 태어났다가 18년 후인 서기 14년에 또 태어나는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연출될 것입니다.


 <(문자주의 비판 3)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