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와 진화론 3



1. 동성애는 확산되는가?

기독교가 동성애자를 억압해 온 또 다른 이유는 동성애 확산을 우려해서였습니다. 동성애의 확산은 죄의 확산이었고, 동성애를 방조하는 것은 죄의 확산을 방조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중세시대 피렌체에서는 ‘동성애 전염’을 막기 위해 동성애자에 대한 감시를 강화했습니다. 감옥에서도 ‘전염’에 대한 걱정 때문에 동성애자들을 다른 죄수들과 격리해 감금했습니다.1)

오늘날의 기독교도 동성애 확산을 우려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2007년, 법무부가 제시한 ‘차별금지법’에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 등 성적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 금지 조항이 빠집니다. 많은 영향력 있는 기독교 단체들이 동성애의 확산을 우려해 동성애자차별금지안 저지에 앞장섰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동성애자차별금지법안 저지 의회선교연합’을 출범하고 “동성애는 윤리도덕에 어긋난 성적행위로써 결코 용납되어질 수 없는 사회악”이며 “동성애자 차별금지법은 부도덕한 행위를 합법화하고, 나아가 동성애 확산을 막으려는 모든 건전한 노력을 불법화하고 처벌함으로써 소수자 보호라는 이유로 대부분의 국민을 역차별 하는 망국적 법안”이라고 말합니다. 기독교 학자인 길원평 교수는 “이 법안이 발효되면 동성애를 나쁘다고 가르칠 수 없고, 동성애로 물의를 일으키는 학생을 징계할 수 없고 기숙사에서 나가게 할 수도 없다.”며 “동성애가 이 사회에 확산되는 것을 막을 길이 없다”고 말합니다.

“동성애는 확산된다.”는 주장 뒤에는 이를 뒷받침해주는 이론적인 근거가 있습니다. 바로 학습이론입니다. 학습이론은 이성과의 불만족스러운 경험이나 동성과의 만족스러운 경험이 어떤 결정적인 시기에 강화되어 동성애가 된다고 설명합니다. 즉, 동성애가 잘못된 학습의 결과이고 올바른 학습을 통해 이성애로 수정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학습이론은 그 예로 올바른 학습을 통해 동성애에서 양성애로 전환한 몇 명의 사람을 언급합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학습 이론이 이야기하는 것과 유사하게 동성애를 생각합니다.



2. 동성애자로 태어나는 것
그러나 학습이론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습니다. 학습이론의 논리라면, 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한 여자는 남자를 혐오하게 되고, 그 결과 여자를 좋아하는 동성애자로 발전한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성폭행을 당한 사람이 동성애가 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오히려 성폭행을 당한 사람 중에 동성애자를 찾아보기 극히 어려운 까닭은 무엇일까요? 학습이론은 이에 대해 명쾌히 설명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학습이론의 가장 큰 문제점은 동성애를 이성애로 수정 가능하다고 보는데 있습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등 몇 개의 TV프로그램에서 동성애를 다룬 적이 있는데 거기에 출연한 동성애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동성애자로 태어난 것 같다”고 말합니다. 동성애는 고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동성애자들은 사람마다 성에 대한 고유한 정체성이 있으며 그 ‘주어진’ 정체성은 개인의 의식과 의지에 의해 선택하거나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올바른 학습이 아무리 이루어졌더라도, 동성애가 이성애로 수정된 사례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학습이론에서 내세우는 양성애로 전환된 사례 역시, 동성애에서 양성애로 ‘수정’된 것이 아니라 뒤늦게 양성애임을 ‘발견’한 것임이 드러났습니다. 양성애로 수정된 줄 알았더니 본래부터 양성애자였던 것입니다.

학습이론의 문제점들을 극복하고 동성애를 가장 잘 설명하는 권위 있는 이론은 정신분석 이론입니다. 정신분석 이론은 3세~5세 사이 오이디푸스기에 성주체성이 결정되는데 이 과정에서 심리적인 성性이 리비도의 작용에 의해 동성애로 구조화된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성주체성의 결정은 주체의 의지가 아닌 무의식적인 선택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어린 시절 결정된 성주체성은 잠복기를 거쳐 일반적으로 청소년기에 겉으로 드러납니다. 쉽게 말해 아주 어린 시절 자기도 모르게 심리적인 성性이 결정되고, 이때 결정된 성은 바꿀 수 없다는 것입니다.

최근, 권위 있는 학자들은 정신분석 이론을 포함한 여러 연구 결과들을 토대로 “동성애로 태어나는 것 같고 수정 불가능하다”는 관점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습니다. 이성애를 동성애로 수정할 수 없듯이, 동성애는 치료가 필요한 병이 아니며 치료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동성애자들이 말하는 내용과도 일치합니다. 이에 따라 1976년 미국의 정신의학회에서는 동성애를 정신과적 질병으로 보지 않게 되었고 1980년 정신의학적 진단분류체계에서도 동성애를 삭제하였습니다.

오랫동안 기독교인들은 동성애의 확산을 우려하여 동성애자를 억압해 왔지만 동성애가 실질적으로 확산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동성애가 이성애로 바뀔 수 없듯이 이성애가 동성애로 수정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동성애자가 공개적으로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드러낸다면 공식적인 동성애자의 수는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동성애의 확산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물속에 있어서 잘 안보이던 개구리가 물 밖으로 나왔다고 실질적으로 개구리가 늘어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인 교리에 따르면 동성애에서 이성애로의 수정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동성애자는 찰흙의 뾰족한 부분을 평생 달고 살아야 합니다. 즉 <죄를 평생 달고 살아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죄인인 모든 인간의 숙명입니다. 오히려 동성애자는 인간의 숙명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고마해라. 마이 묵었다 아이가.” 라는 영화 대사가 떠오를 만큼 동성애자는 끈질기게 핍박받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정죄하고 억압할 대상이 아니라 사랑해야할 대상입니다.  이제는 그만 동성애자에 대한 오해와 심판을 거두어들이고, 예수가 이 땅에서 보여줬듯이 낮은 자세로 그들을 섬겨야 합니다. 동성애자 역시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며,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랑받기에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서로 남을 심판하지 마십시다. 형제자매 앞에 장애물이나 걸림돌을 놓지 않겠다고 결심하십시오.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또 확신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무엇이든지 그 자체로 부정한 것은 없고, 다만 부정하다고 여기는 그 사람에게만 부정한 것입니다. (로마서 14:13~14)



(계속) 동성애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회부터는 진화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