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예수뿐입니다!

안녕하세요^^
너무 오랫만이죠~
제가 요즘 따로 뭔가를 꾸미느라 괜시리 바빴어요
그동안에 사실은 많은 전쟁을 치뤘습니다. 하마터면 죽을 
뻔 했어요 무슨소리냐구요? 제 안에서 엄청난 전쟁을 치뤘답니다.

눈에 보이는 전쟁도 무섭고 위험하지만 사실은 보이지 않는 
전쟁이 더 살벌한지 아세요? 영적전쟁이라고 하는데요 
그 전쟁에서 제가 거의 죽다 살았습니다. 영적전쟁을 한마디로 
요약할순 없습니다. 다분히 주관적이고 도 객관적인 면도 많기에 
속단하기가 힘들지요.

개인적일수도 있고 공동채적일 수도 있고 넓게는 국가적이며 
세계적일 수도 있거든요. 저는 그리 폭넓은 사유에는 자신이 
없기에 축소해서 개인적인 부분에 한정을 지을까해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제 입장을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모든 영적전쟁의 최대의 목표는 “죄”와의 싸움이다. 
죄란 밖에있는것보다 자기속에 그 뿌리가 있기때문에 
눈치를 채기가 쉽지않지요. 어떤이는 그 죄가 자기속에서 
꿈틀거리는걸 모르기도 하고요. 안다고 해도 인간적으로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이 “죄의 본성“에 이미
철저하게 갇혀있었던 인간의 실존은 결국 무방비상태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쉽게 말해서 ‘죄를 인식하고 있다고’해서 그가 죄를 재어할 
힘이나 실력이 전무하다는 겁니다. 이것은 노력으로,훈련으로,
수양으로,명상을,주술적인 수단이나 방법론적으로는 안된다는 거
죠. 너무 단정적으로 말했나요?

여러분은 여러분의 마음이 자신의 힘으로 통재할거라 
자신하세요? 저는 번번히 무너지는데요. 마음한번 고쳐먹는게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사람은 압니다. 그거 쉽지않지요. 알아도 
못하고 몰라서도 못하는게 우리 인간의 한계라는걸 인정해야 
하거든요. 요즘은 그 인정하기 싫은사실을 조금씩 인정하고 
있습니다.

말이 길어졌네요. 솔직히 제가 바로 그놈입니다. 
남들은 몰라도 제 자신은 그걸 알지요. 또한 우리 주님께서 이미 
아십니다. 다른사람의 눈과 마음은 다 속여도 불꽃같은 눈동자로 
흑암을 대낮같이 보시는 하나님의 시선에 피하여 숨을곳이 없답니다. 
그래서 구약의 믿음의 사람 ‘다윗’왕도 이렇게 고백했다니까요?

「내가 “어둠에게 나를 가리고 밤에게 나를 둘러 달라” 해도 
어둠조차 주로부터 숨지 못하며 밤도 낮처럼 환하게 빛날 것입니다. 
주께는 어둠이나 빛이나 다를 바 없으니 말입니다.」
(우리말성경시편139편11,12)

더 기가막힌 다윗의 고백을 들어보실래요?

「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보셨으니 나를 아실 것입니다
. 내가 앉고 서는 것을 아시고 멀리에서도 내 생각을 아십니다. 
주께서는 내가 길을 다니는 것과 내가 눕는 것을 아시니 내가 하는 
모든 일을 샅샅이 알고 계십니다. 오 여호와여, 내가 말을 혀에 담기도 
전에 주께서는 그것마저 다 아십니다. 주께서는 나를 앞뒤로 둘러싸 
주시고 내게 손을 얹으셨습니다. 그토록 잘 아시다니 너무도 놀랍고 
너무도 높아서 나는 이를 수 없습니다.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겠습니까? 내가 주 앞을 떠나 어디로 피하겠습니까? 내가 하늘로 
올라가도 거기에 계시며 지옥에 잠자리를 마련해도 거기에 계십니다. 
내가 새벽 날개를 타고 바다 저 끝에 내려앉더라도 어디에서든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으로 나를 꼭 붙드실 것입니다」
(시편139편1~10)

우리는 하나님앞에 숨을곳이 없습니다. 
절망입니다. 그러나 단 한분이 계십니다. 우리의 모든 죄악을 
가려주시고 덮어주시고 방패가 되시고 변호해주시고 편을 들어주시는 
그분!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안에서 우리는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분이십니다.  이는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들, 곧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 보좌들과 주권들과 권력들과 권세들이 
하나님의 아들 안에서 창조됐기 때문입니다. 만물이 아들로 인해 
창조됐고 아들을 위해 창조됐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은 그분 안에 함께 서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아들은 그분의 몸인 교회의 머리십니다. 
그분은 근본이시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먼저 살아나신 
분이십니다. 이는 그분이 친히 만물 가운데 으뜸이 되시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버지께서 모든 충만으로 아들 안에 거하게 
하시기를 기뻐하셨고 그 아들의 십자가의 피로 평화를 이뤄 만물, 
곧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모든 것이 아들로 인해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셨기 때문입니다.」
( 신약-골로새서1장14~20)

모든사람들이 예수를 믿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통하여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구원”과도 직결되는 이유지요. 어느분이 (저한테 질문한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의문을 달았습니다. “예수를 믿어야만 구원을 얻는가?” 이 질문의 또다른 의도는 ‘다른길은 없는가?와 타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라는 뉘앙스를 깔고 있다고 보는데요. 꼭 예수만 믿어야 구원을 얻는가라는 문제제기겠죠. 이건 굉장히 민감한 부분이죠. 저같은 무식자가 다룰수 없는부분입니다. 그러나 한사람의 ‘예수 믿는자’로서 즉, 기독교인으로서 개인적으로는 대답을 해야겠지요? 제 대답은 이겁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그리스도외에 다른길이 없다는 것이 저의 대답이고 성경의 대답입니다. 다른종교에게 돌질을 당하겠지만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다른 종교를 무시하거나 부정하거나 적대적으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기독교가 완전하다는 뜻도 아닙니다. 다른종교가 틀렸다는 뜻도 아닙니다. 다만, 서 있는 자리가 다릅니다. 가는 길이 다른것이지요. 우린 모두 각자의 길을 가는것 뿐입니다. 그리고 또 저는 “종교 다원주의자”는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의 ‘평화’를 소망합니다. 다른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주장에 인정합니다. 다만, 구원의 본질,내용,성격,가치관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이죠. 어떤 종교나 심지어 무신론자들에게도 각자의 구원은 존재합니다. 예를 들자면, 죽을병에 든 사람은 병에서 치유받는것이 구원이라면 틀린걸까요? 그외에도 많죠? 알콜중독, 도박등에서 해방이 된다면 그것도 구원이겠지요.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은 좀더 차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런면에서 오직 “예수”외에 다른구원이 없다는게 저의 고백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여러 의견들이 있습니다. 기독교의 배타성과 편협성을 예로 들면서 항변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들의 주장에도 일견 타당성이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동감합니다. 예를 든다면, 예수이름을 들어보지도 못하고 죽은 조상들이나 어린아이들이나 오지에 있는 수 많은 종족들은 구원에서 제외된거냐는것과 하나님의 사랑이 그렇게 협소하고 설마하니 예수 안믿었다고 지옥보내시겠는가라는 의견들이죠. 다른종교에는 구원이 없다는 것으로 기독교를 밀어붙이면서 압박을 하더군요. 심지어 기독인들이 그런생각을 맘한구석에 품고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분들의 걱정이나 안타까움을 십분 이해 합니다만 저는 지금 그런문제가 중요하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과거에 이미 돌아가신 조상들의 문제때문에 지금 고민하고 갈등하고 만약 조상들이 예수안믿어서 구원받지 못했다면 나는 그런 하나님은 안믿겠다라는 고집으로 무장하신분들께 개인적으로 조심스럽게 한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과거의 문제보다는 현제 자신을 돌아보시는게 순서일거라고요. 우리에게 오늘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내일이 온다는 보장이 있습니까? 모든인간에게 내일이 온다는 믿음이 있습니까? 아무도 우린 한치앞을 장담할 수 가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직면하고있는 현실이며 우리의 주재랍니다. 주재파악을 해야한다는 뜻입니다. 내가지금 성경에서 요구하는 그 “예수”를 믿고 있는가? 만약 믿고있다면 그것이 내가 원해서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은혜인가? 를 생각해보시고 결론은“나같은 죄인” 살리신 주은혜 놀라워를 찬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상들이 구원을 받았는지 못받았는지는 하나님앞에 가면 확인할 수 있는문젭니다. 구원이 어떤 공식도 아니고 방법도 아니고 원리도 아닙니다. 인간적인 면에서 우리가 아무리 모색을 해도 구원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기쁘신 뜻으로 구원을 배푸십니다. 조상들의 구원문제는 우리의 영역 밖의 문제입니다. 그 문제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주권에 관한 부분입니다. 그러니까 조상들이나 자살이나 여러가지 이유로, 죽음은 인간이 피할 수가 없지만 그 죽음이후의 세계는 우리가 알 수 없고 하나님께 있기에 우리가 지금 관심을 갖고 살아야 하는것은 “나”는 어떻게 반응하며 살고 있는가? 에 초점이 있어야합니다. 왜 우리가 이문제를 재껴놓고서 시간을 낭비합니까? 지금 우리에게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어제 만났던 그사람을 다음에 또 만날수 있을지 없을지를 알 수가 없는것입니다. 죽음의 문이 나는 피하고 다른사람에게만 열린다고 속단하지 마십시오. 다른나라에서 전쟁이나 질병이나 여러가지 이유로 죽어가는 그들의 문제가 꼭 남의나라문제가 아니라 우리에게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놓치지 마십시오. 이렇게 긴급하고 절박하게 살아가는 사실을 아는이가 별로 없습니다. 세상은 우리로 하여금 정신을 못차리게 현란하게 속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언제나 우리에게 ‘내일’은 오늘보다 낳을거라고 속입니다. 이런문제에 이분들을 거론해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지금 아프칸에 억류된 사람들이 이럴줄 알았을까요? 대구 지하철 화재를 알고 출근했을까요? 물놀이로 피서지에서 죽은 이들에게도요. 폭우속에서 밭을 돌아보다가...하우스를 점검하다가... 출근하다가 미국의 9.11사건에도요... 그들은 여러가지 모양으로 가족들과 “같다올께”라는 인사를 했지만 끝내는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다시한번 죄송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짧은 ‘찰나’의 시간에 살고 있는지 실감하세요? 이런 긴급한 사실을 생각한다면 얼마나 시간을 낭비하고 사는지 반성하게 됩니다. 우리는 (믿는자들께) 우리속에 숨어있는‘죄’를 억누르는데도 힘이 달립니다. 지금 누구를 비난하며, 정죄하며, 판단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 ‘감사’하기도 부족합니다. 오늘 내가 밥한끼 먹을 수 있는것도 내가 힘있고 능력있고 잘나서 그런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는걸 아시나요? 다시한번 정리합니다. 구원의 길은 “오직 예수”를 믿는것 뿐입니다. 여러분이 받아들이시든 거절하시든 자유입니다. 다만 그 자유에대한 책임도 여러분에게 돌아갑니다. 구원은 분명히 “배타적‘입니다. 그러나 구원은 모두에게 언제나 열려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내가지금 ‘예수“를 믿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십시오. 믿음을 주신것도 내 실력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랍니다.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알 수 없는 은혜를 기억하십시오. 그 길은 오직 예수외에 없습니다. 성경에서 우리에게 제시한 유일한 길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을 성경기록자들은 다양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심층적으로 다 다룰수는 없고요. 저는 화평이라는 대목을 잠깐 살펴볼까해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우리를 화목시켜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이 같고 있는 내용이죠. 하나님의 자녀. 후사, 칭의, 중생, 영광등 모든것을 포함하지요. 제 개인적인 채험에 결부를 하면 서두에서말한것처럼 “영적전쟁”에서 화평을 말하고자 합니다. 흔히 ‘회개’라고 하는 단어 들어보셨죠? 한동안 제가 영적전쟁을 하면서 내 속에 꿈틀거리는‘ 죄’와의 싸움에서 끙끙거리고 있었습니다. 그시간에는 뭔가 알 수 없는 강력한 힘이 압박을 하고 있었습니다. 영적으로 콱막힘을 느꼈습니다. 제가 원래 영적이지 못했지만 그때만큼은 꼼짝을 못했어요. 기도도 안돼고요. 기도할 힘이 없어요. 말씀도 안들어오고 맘이 괭장히 답답했어요. 사실은 죄를 멀거니 보고서 수수방관했다는게 옳습니다. 그때 거절하고 도망을 했어야 하는데 어느정도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거든요. 나중에는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죽을것 같은 기분이 들자 그때서야 정신이 들더군요. 내가 이래서는 안돼지. 다른방법이 없었지요. 맘속에 들어있던 죄의 쓰레기를 비워내야했습니다. 그것이 못내 미련이 남고 아쉬움도 있었지만 더 이상 늦으면 큰일나겠다 싶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주님께서 제 양심과 마음을 통해 계속 싸인을 보내셨는데 죄의 달콤한 유혹에 갈등했었지요. 다윗의 고백처럼 “내 속에 숨은 죄를 토설”하게 하시고 돌아서게 하시자 비로소 화평을 맛볼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죽다 살아났다는 것입니다. 이게 제 실력으로 가능햇을까요? 아닙니다. 주께서 불쌍히 보시고 건저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도 하나님과 화목하라 그랬나봅니다. 예수 안에서 더욱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라고 노래했습니다. 주의 은혜로 돌아서는 힘을 받고나니 맘속에 막혔던 것이 사라졌습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경험입니다. 이 모든것을 가능하게 하신분이 하나님이시며 그 길이 예수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제가 여러분들께 전하고픈 소식입니다. “오직 예수” 감사합니다. 작은자 올림.

by 작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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