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오류들 2



첫 번째 제자들과의 만남

예수의 탄생 이야기보다 더 명확한 차이를 보이는 부분은 예수가 첫 번째 제자들인 시몬과 안드레를 만나는 장면입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의 이야기는 비슷하지만 요한복음의 이야기는 전혀 다릅니다.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셨다. (중략) 예수께서 갈릴리 바닷가를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가 바다에서 그물을 던지고 있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그들은 곧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갔다. (마가복음 1:14~18)

다음 날 요한이 다시 자기 제자 두 사람과 같이 서 있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보고서 “보아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다.”하고 말하였다. 그 두 제자는 요한이 하는 말을 듣고 예수를 따라갔다. 예수께서 돌아서서, 그들이 따라오는 것을 보시고 물으셨다. “너희는 무엇을 찾고 있느냐?” 그들은 “랍비님,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와서 보아라.” 그들이 따라가서, 예수께서 묵고 계시는 곳을 보고, 그 날을 그와 함께 지냈다. 때는 오후 네 시쯤이었다.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라간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시몬 베드로와 형제간인 안드레였다. 이 사람은 먼저 자기 형 시몬을 만나서 말하였다.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소.” 그런 다음에 시몬을 예수께로 데리고 왔다. (요한복음 1:35~42)

마가복음에서는 바다에서 그물을 던지고 있던 시몬과 안드레를 예수가 부르는 반면 요한복음에서는 안드레가 예수를 먼저 따라가고 나중에 형 시몬을 예수께 데리고 옵니다. 그리고 마가복음에서는 예수가 세례 요한이 감옥에 잡힌 뒤에 제자들을 만나지만 요한복음에서는 요한이 옥에 갇히기 전으로, 세례요한이 자신의 제자들을 예수께 보냅니다.

그렇다면 그 중 어느 것이 사실일까요? 예수를 비롯해 시몬과 안드레가 모두 단기 기억 상실증에 걸렸던 것이 아닌 이상, 아무리 보고 또 봐도 세 개의 복음서 모두 사실일 수는 없습니다.


두 번의 성전 정화사건?
성전을 깨끗하게 한 사건, 즉 예수가 예루살렘 성전 뜰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쫓아내는 이야기는 네 권의 복음서에 모두 나옵니다. 그러나 복음서들은 서로 다른 시간에서 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특히 요한복음과 다른 복음서와의 차이가 두드러집니다. 복음서별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마태복음 : 요한이 붙잡힘 -> 첫 번째 제자를 부름 -> 왕의 신하의 아들이 병 고침을 받음 ->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임(오병이어 사건) -> 물 위를 걸으심 -> 예루살렘 입성 -> 성전을 깨끗하게 함

마가복음 : 요한이 붙잡힘 -> 첫 번째 제자를 부름 -> 오병이어 사건 -> 물 위를 걸으심 -> 예루살렘 입성 -> 성전을 깨끗하게 함

누가복음 : 요한이 붙잡힘 -> 왕의 신하의 아들이 병 고침을 받음 -> 오병이어 사건  -> 예루살렘 입성 -> 성전을 깨끗하게 함

요한복음 : 첫 번째 제자를 부름 -> 성전을 깨끗하게 함 -> 왕의 신하의 아들이 병 고침을 받음 -> 오병이어 사건 -> 물 위를 걸으심 -> 예루살렘 입성

공관 복음(마태, 마가, 누가복음)에는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장면과 성전을 깨끗하게 한 사건이 거의 뒷부분에, 클라이막스처럼 등장합니다. 반면 요한복음에서 예수가 성전을 깨끗하게 한 사건은 2장 13절부터 등장합니다. 이는 예루살렘에 입성하기 전이며 세례 요한이 감옥에 갇히기도 전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이 사건이 이렇게 빨리 등장하는 이유는 다른 복음서에서 비중 있게 다루는 예루살렘 입성 사건을 특별하게 다루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을 자세히 보면 예수가 예루살렘, 가버나움, 갈릴리 할 것 없이 자유롭게 넘나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의 예수는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으며 공관 복음의 예수보다 자유로워 보입니다.



바울은 어디로 갔는가?

기독교인에게 가장 인기 있는 사도인 바울에 기록도 성경마다 서로 다릅니다. 사도행전에서 바울은 예수를 만난 후 다마스쿠스에서 잠시 머무른 후 예루살렘으로 떠난 반면,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않고 바로 아라비아로 갔습니다.

(예수를 만난 직후) 사울은 며칠 동안 다마스쿠스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지냈다. 그런 다음에 그는 곧 여러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선포하였다. …… 사울이 예루살렘에 이르러서 거기에 있는 제자들과 어울리려고 하였으나 그들은 사울이 제자라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어서, 모두들 그를 두려워하였다. (사도행전 9:20~26)


그 아들을 이방 사람에게 전하게 하시려고 그를 나에게 기꺼이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그 때에 나는 사람들과 의논하지 않았고, 또 나보다 먼저 사도가 된 사람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곧바로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마스쿠스로 되돌아갔습니다. (갈라디아서 1:16~17)

이외에도 성경은 많은 부분에서 시간적으로 서로 일치하지 않습니다. 마가복음의 예수는 유월절 식사를 한 후에 십자가에 달리고 요한복음의 예수는 유월절 식사 전에 숨을 거둡니다.1) 그리고 누가복음의 예수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후 한 달 뒤 나사렛으로 돌아와 정결예식을 행한 반면(누가복음 2:21~22), 마태복음의 예수는 이집트로 피신합니다.(마태복음 2:13~15)



동시 부활?

어떤 사람은 여태까지 살펴 본 성경 속의 오류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나 부활과 같은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사건들과는 관계가 없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음의 장면들은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사건인 부활 사건마저도 복음서들끼리의 진술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였다.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 나셔서, 그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니, 그들은 거기서 그를 뵙게 될 것이라고 하여라.”…… 열한 제자가 갈릴리로 가서, 예수께서 일러주신 산에 이르렀다. 그들은 예수를 뵙고, 절을 하였다. (마태복음 28:5~17)
 

“그(예수 그리스도)는 그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실 것이니, 그가 그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들은 거기에서 그를 볼 것이라고 하시오.”(마가복음 16:7)


마침 그 날에 그들 가운데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한 삼십 리 떨어져 있는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고 있었다. 그들은 일어난 이 모든 일을 서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들이 이야기하며 토론하고 있는데, 예수께서 가까이 가서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 (누가복음 24:13~15)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은 예수가 갈릴리에서 부활한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고 누가복음은 예루살렘에서 부활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복음서의 모든 이야기가 문자적으로 틀림이 없다면 그리스도는 나사렛과 예루살렘에서 동시에 부활하여야 하는 불필요한 부지런함을 보여야 합니다.




<(문자주의 비판 4) 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