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이곳 아카데미에서 논란이 된 것처럼, 최근 기독교 구교(이러한 표현은 다른 뜻이 없는 하나의 일반적 개념이다)와 불교계 인사가 던지고 간 "화두"가 한국 땅에서 크게 회자('자자한 칭송')되고 있다. 그 화두의 하나는 "사랑"이고, 또 다른 하나는 "무소유"였다. 

우선, 필자인 나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이곳 회원들이 아마도 개신교도인 것으로 안다. 최근의 이러한 종교계 정황들은 개신교도인 우리를 더욱 더 방황하게 만들 수 있거나 실재로 그렇게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근래들어 성당에 등록하는 사람들은 늘고 교회에 등록하는 사람은 (반사적으로)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러한 상황을 두고 판단할 때, 지금 한국의 개신교는 참패한 모습이거나 혹은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의 이러한 상황들을 우려한 나머지, 이러다가 개신교가 (거의) 사라지고 대신 구교가 크게 확세되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으나, 영적 지성 워치만 니는 이미 오래전에 그의 저서 <교회의 정통>을 통하여 요한 계시록의 계시를 근거로 해석하여 구교와 개신교, 그리고 또다른 모습의 '기독교 신교' 이 세가지 유형의 교회가 계시록적인 개념의 '세상 끝날'까지 이 땅에 그대로 존재한다고 명확하게 언급한바 있다.

우선, "사랑"이라는 화두에 관하여는, 예수의 가르침이나 그분이 실제로 인류를 향해 베푸신 그것이 너무도 큰 것이어서 더이상 말할 수조차, 그리고 우리가 그에 관해 부언해서 언급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다만  "무소유"라는 화두를 놓고 생각해 보자. 필자가 일전에 <사랑채> 방에서 언급했던 "감리교회는 지천에 깔렸지만 웨슬리는 없다"라는 제하의 글에서 소개한 적도 있었지만, 감리교 창시자로 일컬어지는 영국의 요한 웨슬리는 그가 죽고 나자 낡은 코트 한 벌과 찻주전자 하나 그리고 숟가락 두 개만이 남겨져 있었다고 알려졌다. 이러한 그에 관한 전래 소문이 그대로 사실이라면, 어찌 웨슬리의 "無所有"가 불교계 인사 法頂의 그것보다 그 등급이 낮을 수 있겠는가?
물론 거기에 그 두 사람의 "참뜻"이 각각 있을망정, 두 사람의 것을 놓고 비교우위를 언급할 일은 아닐 것이다.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웨슬리의 감리교회가 지천인 이 한국 땅에서 왜 웨슬리는(혹은 웨슬리적인 모범은) 수많은 개신교도들과 그 외 세인들의 이미지에서 부각되지 못하고 타종교 인물이 화려한 서포트라이트를 받게 되었는지의 그 점과 연관된 문제들, 그리고 성당에 비해 교회에 등록하는 사람들이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다고 하는 이러한 문제, 이는 이 시대의 개신교도인 우리 모두가 깊이 생각해야할  신앙계의 시대적 사안임이 분명할 것이라는 바로 그 얘기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안에 내재된 '문제의 핵심'은, '패배의 피상적인 모습'이기 보다는 오히려 '일어나 빛을 발하라!' 라고 외치지만 스스로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여지는 바로 그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