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전도사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전도사님께서는 하나님의 씨가 우리 안에 있기에(요일 3:9)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저에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냐고 물어보셨습니다.
저는 아버지라는 개념이 잘 들어오지 않는다고 대답했습니다. 보통 만물의 창조주이시고 주관자이시기에 주님이라는 개념은 쉽게 인식이 되지만 아버지라는 개념은 잘 인식이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도할 때 주님이라고 부르고 기도를 한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런데 계속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전도사님께서 “내가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뿌릴 날이 이르리니(렘31:27)” 라는 말씀을 가지고 마음속에 하나님의 씨가 없으면 그건 짐승의 씨라고 하시는 겁니다. 또한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신 30:19)” 말씀을 통해 생명이 아니면 사망이고 복이 아니면 저주일 뿐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면 사탄의 자녀일 뿐 그 가운데는 없다는 것이죠. 그렇기에 제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고 기도하는 것은 잘못이고 그렇게 한다는 것은 사탄의 자식이 될 뿐 이라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물론 의도는 그렇지 않으셨겠지만 꼭 저를 정죄하는듯하게 이야기가 들렸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면 사탄의 자식이 되는 것인지... 저는 꼭 아버지라는 단어에 국한을 해야 하는지가 의문입니다. 인간의 언어와 단어가 가지는 한계성이 예수님이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했을 때 담고 있는 의미와 인식을 모두 담아낼 수 있는 것인지가 가장 큰 의문이었습니다. 또한 그렇게 부르지 못하면 이분법적으로 무조건 사탄의 자식이 되어야 하는 것인지도 의문이었습니다.

  정용섭 목사님의 2004년 7월 2일자 설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참고해 본다면 저는 아직 추상적인 유대인의 신 개념에 머물러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그 설교에서 아버지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두 가지 특성인 개인적인 관계와 구원,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실 창조가 이시다라는 것은 분명 제가 생각하는 하나님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다만 아버지라는 단어가 주는 모호성이라고 할까요? 그것이 제게 잘 들어오지 않을 뿐입니다.

아버지라는 단어가 지니는 의미와 언어의 한계성... 그리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사탄의 자녀일 뿐이라는 이분법... 제가 잘 못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