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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저자 문제

조회 수 4996 추천 수 1 2018.07.04 11:5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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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으로 요한복음이 저자는 예수의 사랑하시는 제자=사도 요한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아서, 나사로나 막달라 마리아 또는 실제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제자가 저자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물론 역사비평/본문비평적으로 볼 때, 단일 저자의 작품이라기 보다는 요한 공동체라는 전체 공동체의 독특한 신앙고백이 덧입혀진 창작물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여기에 내가 그 동안 조사해오고 생각해왔던 것들과 나의 순전한 추측을 조금 보태어서 요한복음의 저자문제를 밝혀보고자 합니다. 저한테는 나름 흥미진진한 주제인데, 아무래도 본인이 이과출신이라 문장이 매끄럽지 않고 재미가 없다면 양해를 바랍니다.

우선, 요한복음 저자 문제에 앞서 12사도에 대해 알아봅시다. 12사도라 하면 예수의 가장 측근이었던 12제자를 말하는데, 베드로와 요한을 제외하고는 사도행전에서 그 자취를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물론 가롯 유다를 대신한 맛디아 이야기가 있기는 하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12사도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의 12지파와 균형을 맞추기 위한 후대의 창작이라는 것이죠. 그러나, 신약성경 중 가장 먼저 쓰여진 바울의 서신서들 중 예수 부활의 목격자들을 설명하는 고린도전서 15장을 보면 그 열둘 (The twelve)’이라고 명확히 명시되어 있어, 적어도 복음서가 작성될 시기 이전에 열 두 제자가 있었다는 전승자체는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열 두 제자는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요? 여기서부터는 완전히 전설의 영역에 속합니다. 가톨릭 전승에 따르면 모두 흩어져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였다고 전해집니다.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이제 검증할 방법은 없으나, 확실한 것은 초대 기독교가 형성될 당시에 베드로와 요한을 제외한 다른 제자들의 초기 공동체에 대한 영향력은 미미했다는 점입니다. 특히 서기 44년에 있었던 헤롯 아그립바의 박해로 인한 위기로 인해 그나마 영향력이 있던 12사도의 권위는 예수의 동생이었던 야고보에게 넘어가게 됩니다. 이 때 12사도 중 하나였던 야고보(대 야고보-사도 요한의 형)가 순교하였다고 전해집니다.

그 이후로는 바울로 대표되는 디아스포라 기독교 공동체와 예루살렘의 야고보가 수장으로 있는 아직 유대교에서 독립하지 못한 기독교 공동체가 공존하다가 역사의 흐름에 따라 유대-기독교는 사라지고 새로운 종교로써 기독교가 형성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12사도 중에 그래도 사도행전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인데 이들은 복음서에서 묘사된 12사도 중에서도 예수의 최 측근 3인에 해당됩니다. 셋 다 어부이면서 12제자 중에서 가장 먼저 제자가 된 이들입니다. 이 들은 예수가 변화되는 모습과 야이로의 딸의 소생을 볼 수 있었던 12제자 중에서도 이너서클을 형성하였던 그룹입니다.

문제는 요한복음에 나타난 예수의 사랑받는 제자는 이 이너서클의 인물이 아닌 것으로 묘사된다는 점입니다. 요한복음에는 나다나엘이나 니고데모, 나다나엘, 나사로, 막달라 마리아, 아리마대 요셉 등 공관복음과는 명백히 다른 제자그룹이 언급되며, 따라서 예수의 사랑받는 제자는 이들과 밀접한 인물이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또한 요21:2에 세베대의 아들들(야고보와 요한)이 따로 언급되는 것으로 볼 때 요한복음이 편집 될 때, 편집자들은 요한복음의 원저자인 예수의 사랑하시는 제자를 사도 요한과 다른 인물로 본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됩니다.

요한 복음에 나타난 예수의 사랑하시는 제자는 굉장히 독특한 위치를 가집니다. 만약 그가 요1:35에 나오는 세례 요한의 두 제자 중 한 명이라면(나머지 한 명은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 베드로보다 예수를 먼저 만났으며, 대사제와 아는 사이라서 예수가 붙잡히던 날 밤에 예수와 함께 대사제의 저택 안쪽에 들어갈 수 있었던 인물이며, 유일하게 예수가 십자가에서 처형 당할 때 옆에 있으면서 그의 어머니를 부탁 받았던 제자이며, 빈 무덤을 목격하였고, 부활 이후에도 예수를 만났던 인물입니다. 그러면서도 12제자에는 속해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저러한 조건에 맞는 사람이 장수한 사도 요한이라고 생각하면 많은 모순점이 해결되기 때문에 이 때까지 사도 요한이 요한복음의 저자라고 생각하는 것이 정설입니다. 하지만, 만일 사도 요한이 야고보와 마찬가지로 빨리 순교하였고 그 이후에 다른 요한이라는 인물이 현재 알려진 사도 요한의 위치를 차지했다고 추정한다면 어떨까요?

사도 요한이 순교하였다고 암시되는 구절이 있습니다. 20:20 이하의 구절인데, 세배대의 아들들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와서 자기 아들들을 후에 예수의 좌우에 앉혀달라고 청탁하는 장면이입니다. 이에 예수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라고 묻고 그들은 할 수 있다고 하자 예수는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라고 대답합니다. 이는 이미 마태복음이 기록 될 당시에 세베대의 아들들이 예수의 잔을 마셨다는 것을 암시하는 장면으로 사도 야고보와 요한은 이미 순교했음을 나타냅니다.

그렇다면 요한복음을 적은 요한은 누구일까요? 바로 에페소의 장로 요한입니다.

기독교 역사가인 유세비우스는 이미 장로 요한을 요한 계시록의 저자로 알고 있었으며, 장로 요한과 사도 요한을 구별하였습니다. 그가 언급한 초대 교부 파피아스는 장로 요한의 제자였으며, 파피아스는 AD60년경에 태어난 인물로, 만일 사도 요한이 일찍이 순교하였다면 파피아스가 사도 요한의 제자일 수가 없을 것입니다.

에페소의 장로 요한은 그 스스로 예수의 제자였으며, 예수의 어머니를 모셨고, 요한복음과 요한 서신서, 그리고 요한 계시록을 작성한 인물일 것입니다. 후대로 갈수록 그의 위치가 올라갈 필요가 있었고, 자연히 행방이 묘연한 (아마도 순교하였을) 사도 요한의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이 아닐까요? 공관복음에 나오는 사도 요한은 보아너게(천둥의 아들)’로 불릴만큼 성정이 급하고 불과 같은 인물이었으며, 갈릴리의 어부였습니다. 요한복음의 예수의 사랑하시는 제자는 차분하고 지적인 인물이면서 대사제와 관련이 있는 인물입니다. 후대에 와서 이 두 인물이 하나로 합쳐진 게 아닐까 하는 것이 나의 추측입니다.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18.07.04 21:57:11
*.182.156.27

복서 님의 글을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신학을 전공하지 않은 분이 전공한 사람보다 더 전문적 안목으로 글을 쓰셨네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profile

[레벨:14]웃음

2018.07.05 00:00:36
*.99.223.135

재미있습니다.


참고로 당시의 문서들은 저자가 중요한 위치에 있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볶음서가 책이 된다고 상상하지 못했던 당시의 저자들은 당연히 더욱 그리했을것입니다.


현대의 책이란 개념은 저자와 제목 그리고 출판사와 가격 저자의 약력 프롤로그 에필로그 등의 구성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는 출판이나 인쇄에 대한 개념이 현대와 비교가 되지 않을만큼 떨어져 있어서 저자는 이 복음서가 퍼지리라 생각하지도 않았을것입니다. 


당연히 출판연월일 저자 제목 등의 단서가 남아 있을 이유조차 없었던것이지요


후대에서만 그 제목과 저자를 찾으려는 시도가 계속되는것일뿐 당시의 눈으로 보면 아마도 왜 저자를 찾을까? 하고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레벨:8]복서겸파이터

2018.07.05 08:36:08
*.175.120.34

피드백 감사드립니다. 


말씀하신대로 현대의 출판이나 인쇄 또는 저작권의 개념과 고대는 많이 달랐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자가 누구였는지가 중요한 위치에 있지 않았다는 것은 동의하기 힘듭니다. 


이는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뭔가 신기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야 누가 한 말이야?"라고 묻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요? 이는 고대인이라고 다르지 않을 겁니다. 


다만 권위를 이어받은 제자가 스승이 남긴 글을 모으고 거기에 자신의 의견을 더 첨가하여 스승의 이름으로 발표하고 이런건 드문 일이 아니었을 겁니다. 마치 야고보서나 후기 바울 서신서처럼요. 초대 교부들이 정경 목록에 있는 책들의 저자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거기에 대한 전승이 모두 존재하는 것을 보면 고대라고 저자에 대한 관심이 없지 않았을 겁니다.  


스승의 이름으로 발표하거나, 현재 정경 목록중 아예 글쓴이가 제목으로 존재하는 책이 많다는 것 자체가 저자가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라 봅니다. 


더구나 요한복음 같은 경우는 복음서 내에 주의 사랑하시는 제자가 이책을 썼다는 것을 상정하고 있습니다. 말씀대로 고대의 문서가 저자가 중요한 위치에 있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요한복음 만큼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레벨:28]첫날처럼

2018.09.04 12:32:58
*.168.51.35

좋은 글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요한복음은 참 묘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나머지 3복음서가 영화에 가깝다면, 요한복음은 연극에 가깝구요... 예수의 모놀로그가 연극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뭔가 치밀한 구성도 느껴지고...


이런 것을 헬라어도 모르는 어부 요한이 썼다는 것도 어불성설이고, 최소한 요한의 구전을 받아서 어떤 식자가 썼다고 하더라도 요한복음의 치밀한 구성을 어부 요한이 기획했다고 보기도 힘들 듯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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