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나의 여름 휴가 기행문

조회 수 1064 추천 수 1 2018.08.03 13:3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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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생활하게 된 지도 한 달이 다 되어가고, 8월 말이 되어야 가족들을 다시 만나게 된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혼자 있는 생활에도 익숙해져버려서 외로움 같은 것은 별로 타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올해 휴가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일단 휴가가 시작되는 지난 주말에는 안동을 가고, 마침 콰미가 시간이 된다고 해서 작년 여름에 웃겨 누님 더웃겨 형님을 만났던 진안으로 가는 계획이 잡혔다. 혼자 떠나는 여행은 항상 기대감으로 들뜨게 만든다.


지난 주 토요일 일을 다 마무리하고 2시가 약간 넘어 안동을 향했다. 휴가로 안동을 가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지 마지막 길목에서 약간 밀렸지만 교통 체증을 경험하지 않았다. 탁 트인 길을 홀로 운전해 가는 느낌은 어떻게 표현할 길이 없다. 생텍쥐페리의 '야간 비행' 이 생각났다. (요즘엔 눈이 어두워졌는지 밤에 운전하기가 영 상가롭지만, 예전엔 여행 갔다가 혼자 밤 운전을 하면서 돌아돌 때 묘한 쾌감이 느껴지기도 했었다.)


나에게 안동은 마음의 고향처럼 끌리는 곳이다. 역사 교사로 재직하시다가 은퇴하신 삼촌, YMCA 일을 지금까지 꾸준히 하고 계시는 숙모, 그리고 사랑하는 사촌들이 있는 곳... 삼촌은 전두환, 노태우 시절에 해직 교사로 고초를 당하셨다가 복직하는 아픔을 겪기도 하셨다. 물질적인 넉넉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안동은 나에게 정신적 풍요함을 선물로 주는 곳이다. 


삼촌과 숙모, 그리고 사촌 동생은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딱 2년 만이었다. 이야기 보따리가 풀어지고 수많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안동의 구시가지를 함께 거닐면서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맘모스 빵집을 찾았고, 주일 날엔 삼촌이 장로님으로 계시는 안동교회를 갔다가 오후엔 경북도청을 거쳐서 봉정사 극락전을 찾았다.


1000년의 역사를 지닌 사찰답게 뭔가 신기한 느낌을 주었다. 태어나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벌새 나방도 보았다. 저녁 예불 시간이 되자 비구니 스님이 승복을 경건하게 여미고는 타종을 시작하셨다. 그 울림은 묘하게도 우리 마음 깊은 곳을 향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불상과 탱화를 보았다. 그 속에 그려져 있는 캐릭터들 하나 하나를 보면 선과 악이 혼재된 듯 혼란스러워보이는데 부처님을 중심으로 보면 아주 대칭적이고 안정적인 질서가 느껴진다. 이건 마치 융이 말하는 것처럼 "자기" 원형이 우리의 정신을 구성하는 모든 대극적인 요소들을 통합하는 상황을 표현하는 것 같았다... 만다라...


문화는 종교의 형식이라고 폴 틸리히가 말했는데, 불교라는 문화가 드러내는 종교가 느껴졌다.


안동을 떠나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월요일 아침엔 새로운 기대가 도사리고 있는 또 다른 마음의 고향, 진안으로 향했다. 친누나 같은 따뜻함을 가지신 웃겨 누님과, 항상 쾌활한 개구장이 더웃겨 형님이 계시는 곳... 이 번에는 콰미 말고도 웃겨 누님이 아끼는 후배 한 명이 더 오시기로 되어 있었다. 가는 길은 멀었지만 마음은 이미 진안에 가있는 듯 했다.


진안에 도착하자 누님의 후배는 벌써 누님 일을 돕고 있었고, 우리는 누님이 일하시는 센터에서 곤드레밥과 맛있는 반찬으로 대접을 받았다. 서로를 바라보는 우리 다섯 명은 마치 오래된 친구를 다시 만난 것처럼 행복한 느낌이었다. 누님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새로 짓고 있는 교회를 구경했다. 소박하지만 마치 작은 성당같은 느낌을 주는, 시골에서는 보기 힘든 교회였다.  누님의 집에 여장을 풀고 우리는 용담호를 향했다. 용담호 둘레를 돌아 집으로  오는 길은 꽤 멀었지만, 지는 해와 산, 그리고 물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신비함을 자아내었다. 


늦은 시간에 누님의 이런 저런 요리와 함께 구운 고기로 식사를 했고, 함께 동석하신 목사님 내외분과 담소를 나누었다. 

이분들은 농촌 목회를 하시는 분들로서, 교회를 담임하시는 것이 아니라 전업으로 농사 일을 하시면서 귀농한 분들을 돕는 귀한 일을 하고 계셨다. 그 얼굴에 드러나는 선한 모습은 어떻게 만들어 낼려고 해서 되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밤이 되자 타고난 입담꾼 더웃겨 형님은 피곤하신지 일찍 잠에 드셨고, 우리 네 명은 늦게까지 이야기 꽃을 피웠다. 대화는 '믿음'이 무엇일까라는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옮아갔고, 해답은 나오지 않았지만 상당히 깊은 대화로 이어졌다. 


다음 날 우리는 누님 후배의 작은 아버지께서 가꾸고 계시는 과수원과 집을 방문해서 이런 저런 대접을 받았다. 그러고 나서 콰미와 후배님과는 아쉬운 작별을 고해야 했고, 누님과 형님은 못내 아쉬워 하시면서 나에게 하룻밤을 더 묵고 가라고 

하셨다. 나도 사실은 헤어짐이 많이 아쉽긴 했던 차였다. 


우리 세명은 마이산으로 향했고, 마이산 탑까지 들어가면서 이런 저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분이 손을 잡고 걸어가시는 모습은 인상깊었다. 서로 다른 사람이 하나가 되어 평생을 친구처럼 함께 한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이지만 참 아름다운 일이기도 하다.


밤에도 이런 저런 이야기가 이어졌고, 아쉬웠지만 시간이 너무 늦어질 거 같아서 결국은 모두 잠을 청했다. 나에게는 황토방이 허락되었다. 나는 거기서 내 인생의 꿀잠을 잤다.


아침에는 누님이 끓여주신 호박죽을 먹고, 수박이랑 직접 재배하신 농작물들을 한가득 받아서 차에 싣고는 아쉬운 마음으로 인사를 드리고 대구로 향했다.


너무도 좋은 누님을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벗들을 만나러 이 세상에 태어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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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8.08.03 21:19:01
*.182.156.177

좋은 사람만 만나고 좋은 경치 구경하고,

멋진 휴가를 보내셨군요, 첫날처럼 님이.

가족이 어디 외국으로 나가셨나 보네요.

그럼 기러기 아빠가 되신 건지요.

콰미 님은 결혼했는지 궁금하군요.

첫날처럼 님을 알게 된지 벌서 10년이 다 되어갑니다.

서울샘터교회 설립 예배에 참석하셨으니까요.

휴가 스케치에 내가 아는 분들이 많이 나오니 좋군요.

[레벨:28]첫날처럼

2018.08.03 22:37:11
*.166.155.46

목사님도 잘 지내시죠? 목사님 마지막 뵌 것이
3년 전이군요. 언제 또 뵙고 식사와 담소를 나누어야할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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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43]웃겨

2018.08.06 14:11:57
*.139.82.200

첫날님, 콰미님, 모두 다비아가 맺어준 인연들이지요...

정 목사님, 콰미님은 아직 총각입니다.ㅎㅎ

시골 내려오니 이런 좋은 분들과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고

깊은 대화를 나누는 기회가 더 많이 주어지네요.

정말 큰 은총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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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예베슈

2018.08.27 03:50:08
*.219.238.174

저희 부부도 언젠가 그 인연에 합류하기를 고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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