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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두 탕 & 백무산

조회 수 1629 추천 수 0 2019.04.23 21: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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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두 탕 & 백무산

 

저의 하루는 단조로운데 오늘은 그 단조로움이 깨어지는 날이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발상태가 눈에 띠게 좋아졌습니다. 경과를 보러 한 번 더 병원에 들려야 한다는 의사의 말을 기억했습니다. 오늘은 자잘한 집안에서의 일을 다 보고 편안한 마음으로 예의 그 정형외과로 갔습니다.

의사: 발을 봅시다. 좋아졌지요?

환자: 어젯밤에는 아무 불편 없이 잘 잤고 샌들도 잘 들어가서 운전도 편했습니다.

의사: (항생제 먹지 않고도 좋아졌으니 그렇지, 하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봉와직염이 아닙니다.

환자: 그렇군요. 고맙습니다.

의사: 약은 어제 처방한 거로 충분하니 오늘은 주사만 두 대 맞으면 충분하겠습니다.

환자: 알았습니다.

 

잘 됐다 싶어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통풍성 관절염이라 했으니 환자로서 무얼 조심하는 게 좋은가요, 하고 물어볼 걸...’ 하고 생각했으나 그런 건 환자가 묻기 전에 의사가 먼저 설명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궁금증이 들더군요. 어쨌든지 발 상태가 좋아졌으니 이제 신경을 쓸 거 없겠다 싶었습니다.

우리집을 방문한 분들과 점심을 인근 송포식당에서 간단히 먹고 집에 들어가서 차와 다과를 들면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중에, 대구샘터교회 허 집사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어제 영천정형외과에 갔던 글을 다비아 사이트에서 읽었다면서, 자신이 보기에는 다른 조치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통풍이라면 일단 피검사를 하고 거기 나온 수치로 확증해야 하고, 그 수치에 따라서 컨트롤을 해나가야 하는데, 그런 거 없이 그냥 눈으로 환부를 보는 것만으로 이거다 저거다 단정해버리면 곤란하다는 거지요. 발이 좋아진 것은 세 번 먹은 항생제 효과일 수도 있다면서 남은 항생제를 일단 드시고, 불편하시더라도 내일 다른 병원에 가서 혈액 검사를 받는 게 좋다고 하는군요. 허 집사는 지난 주일에 내 발을 보고 심각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허 집사는 어느 집사로부터 정 목사의 호위무사야, 하는 칭찬(?)을 들었던 분입니다.

내일은 수요일이니 시간 내기가 빠듯하여 오늘 방문객이 돌아가신 후에 자체 내 혈액검사가 가능한 영천의 영남부속병원으로 갔습니다. 늦은 오후라 그런지 환자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정형외과 대기실에 들어서니 비구니 두 분과 일반 사람 한 분이 기다리고 있더군요. 저의 순서가 금방 왔습니다. 인상이 호감 가는 젊은 의사였습니다. 성당 신부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신부도 신부 나름이지만요.

의사: 어디가 어떠신지요?

환자: 엄지발가락 부분이 붓고 열이 나면서 통증이 심했다가 지금은 많이 가라않은 상태입니다. 통풍이라는 말도 있고 해서 혈액검사를 정확하게 받아봤으면 하고 왔습니다.

의사: (발을 보더니) 알았습니다. 일단 채혈 하시고 다시 오시면 됩니다. 이런 증상이 며칠이나 되었지요?

환자: 통증은 목요일 밤에 가장 심했고, 붓기와 열기는 일요일에 가장 심했습니다. 일요일에 지인이 걱정하면서 항생제 치료가 필요하다고 하여 세 번 먹었습니다.

의사: , 피 검사를 마치고 오세요.

환자: 알았습니다.

 

간호사가 520분까지 오라고 합니다. 두 시간이 남았습니다. 영천 도서관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도서관에 거의 도착할 때 내비 수리점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렇지 않아도 내비 업그레이드 하려고 오래 전부터 마음을 먹고 있었거든요. 사무실이 깨끗했습니다. ‘제 차의 내비를 여기서 처음 달았습니다.’ 했더니 조금 후에 전화번호를 물어 알려주자 내비가 아니라 하이페스를 달았다고 하네요. ‘아 그렇군요. 착각했습니다.’ 15분쯤 시간이 지나자 완료되었습니다. ‘너무 오래 업그레이드를 하지 않으셨네요.’ 하고 사장님이 말씀하시더군요. ‘,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습니다. 얼마지요?’ 만원을 냈습니다. 내비 업그레이드를 마치고 나니 앓던 이를 뺀 것처럼 홀가분합니다.

도서관에 들어가자 공교롭게도 쉬는 날이 바로 화요일이었습니다. 자료실만 문을 닫고 자기 책을 읽을 수 있는 룸은 문을 열었고, 특히 1층 카페가 문을 열었네요.

IMG_1772.JPG

혹시나 해서 집에서 나올 때 백무산의 시집 <길은 광야의 것이다>를 챙겼습니다. 카페에서 스무디 한잔을 시켜놓고 백무산의 시를 읽었습니다. 첫 시 <풀씨 하나>를 읽어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작은 풀씨 하나가

내 손에 들려 있다

이 쬐그만 풀씨는 어디서 왔나

 

무성하던 잎을 비우고

환하던 꽃을 비우고

 

마침내 자신의 몸 하나

마저 비워버리고

이것은 씨앗이 아니라

작은 구멍이다

 

이 텅 빈 구멍 하나에서

어느날 빅뱅이 시작된다

150억년 전과 꼭같이

꽃은 스스로 비운 곳에서 핀다

 

이렇게 작은 구멍을 들여다본다

하늘이 비치고

수만리 굽이진 강물소리 들리고

내 손에 내가 들려 있다

 

시가 좋지요? 자연과 세계를 바라보는 저의 시각과 비슷해서 백무산 시인이 더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20년 전인 1999115일에 초판으로 나온 이 시집을 제가 1999613일에 구입했습니다. 백 시인은 1955년 영천 출신이시네요. 그의 시를 영천시립도서관 카페에서 연배가 비슷한 제가 읽다보니 감회가 새롭네요. 여러 편을 읽었습니다. 시간이 되어 다시 의사 앞에서 앉았습니다.

 

의사: 기다리시느라 힘드셨지요?

환자: 괜찮습니다.

의사: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면서) 요산 수치는 혈액 검사에서 문제없는 걸로 나왔습니다. 수치가 낮아도 통풍일 수 있고, 높아도 아닐 수도 있긴 합니다. , 신장 수치도 좋구요. 당뇨가 있으신가요?

환자: 아닙니다.

의사: 염려할 정도는 아니지만 당뇨가 약간 높게 나왔는데, 아마 점심 식사를 하셨으니 그런지 모르지요. 염증 수치도 높지는 않습니다. 지금 많이 좋아지는 것 같습니다. 통풍일 수도 있고, 또는 봉와직염이 함께 왔을 수도 있습니다. 그게 여러 가지 이유로 벌어지는 건데, 지금은 일단 증상이 끝나가는 중이니까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내 기억에 없지만 대략 이해할 수 있는 의학용어를 말하면서, 그것은 아마 세포 조직이 찢어지는 걸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것도 함께 올 수 있는 겁니다.

환자: 항생제를 며칠 처방해주실 수 있을까요?

의사: , 그런데 지금 드시는 약이 있으신가요?

환자: 먼저 의원에서 처방해준 게 있긴 한데, 항생제가 필요 없다고 하여 그만 먹을까 합니다. 한 가지 질문을 해도 될까요?

의사: (얼마든지 하시라는 표정으로) 말씀해보세요.

환자: 저의 오른 발 증상이 혹시 이런 데서 온 게 아닐까 해서요. 테니스를 과격하게 치면서 근육에 스트레스가 쌓였고, 아프기 하루 전에 텃밭 일을 많이 해서 돌 같은 걸 무의식중에 밟아 그쪽 근육이나 관절이 삐끗한 건 아닌지요?

의사: , 그럴 수도 있습니다. 군대에서 군인들이 행군을 하다가도 이런 증상이 나타납니다. 제가 4일치를 처방해드리겠습니다.

환자: 고맙습니다.

 

병원 밖 약국에 들어갔습니다. 지금이 중요합니다. 30대 여성이 청소를 하면서 약국 닫을 준비를 하는 것 같습니다. 안쪽에는 노부부가 앉아계시네요. , 첫 인상이 뭐라 할지, 늙은 천사들 같이 보였습니다. 두 분이 대략 75세 내외로 보입니다. 혹시 잘못 보았을지도 모르지만요. 아내 되는 분이 처방전을 받았습니다. 조제실로 들어가더니 달그락 하는 소리는 나는데 예상 외로 시간을 좀 끄시네요. 아주 조용한 상황입니다. 평화로운 순간이라고도 할 수 있구요. 약을 들고 그분이 프론트로 나왔습니다. 온화한 미소를 지으면서, ‘너무 느리게 일을 하지요? 요거 보세요. 이거는 소염제이고, 이거는 위장약이고, 이거는 항생제에요. ...’ 또 한 가지는 기억에 남지 않는군요. ‘일련번호가 중간에 두 개가 빠졌지만 제가 전체로는 숫자를 다 챙겼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두 번 드시면 됩니다. 처방전을 여기 넣어드리겠습니다.’ 말하면서도 계속 온화한 미소를 띤다. 드문 분이다. 젊은 약사들도 심드렁한 분들이 제법 되는데 말이다. ‘정말 친절하게도 설명해주시네요.’ ‘뭐요, 당연한 거지요.’ 약값을 계산하고 나오자 등 뒤에서 속히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는 노파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 고맙습니다.’ 차를 끌고 비가 내리는 영천 북안 길을 거쳐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IMG_1780.JPG

위에는 처방전이고, 아래는 인상깊은 노부부 약사의 약국입니다.

IMG_1778.JPG


오늘 병원을 두 탕 뛰었습니다. 처음 갔던 의원의 의사는 늙었고, 오늘 간 병원의 의사는 젊었습니다. 늙은 의사는 시외버스 정류장 근처에 6층 짜기 자기 건물이 있는 부자입니다. 젊은 의사는 어떻게 사는지 모르겠으나 월급 의사입니다. 늙은 의사는 권위의식이 강했습니다. 이래요, 저래요, 내 말이 맞지요, 봉와직염이 아니고요 하는 식이다. 말도 경상도 남자들 특유의 그런 방식으로 툭툭 던집니다. 자신의 캐릭터이려니 하고 저는 받아들였습니다. 문제는 환자와의 공감능력이 떨어진다는 겁니다. 자기 식으로 공감하는 것이겠지만 모든 환자를 선생이 제자에게 한수 가르치는 듯한 자세를 보입니다. 요즘 표현으로 꼰대인 거지요. 젊은 의사는 위에서 묘사한 것 외에도 더 많은 것을 자세하게 설명하더군요. 내 말을 들으려고 했습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발을 보지도 않고 족저근막염이라고 진단했다가 나중에 봉와직염이 아니라 통풍 관절염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늙은 의사와 달리,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거니 진행상황을 보면서 관리를 해나가면 된다는 관점입니다. 다시 발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괜찮을 수도 있으니 생기면 다시 오라고 합니다.


늙은 의사와 젊은 의사를 이번에 경험하면서 목사도 늙으면 빨리 은퇴하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재미로 들으세요. 어려움을 호소하는 신자에게 당신 기도가 부족해서 그래, 믿음 없어서 그래. 십일조 떼어먹었구먼.’ 하는 식으로 말하는 목사들도 제법 있거든요. 인간 실존이 얼마나 복잡한데 그걸 일반화 시켜서 자기 경험이라는 잣대로 재단하는 전문가가 사회에는 제법 많습니다. 법 전문가, 의학 전문가, 교회 전문가 등등이요. 오늘 아주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백무산의 시집을 다시 읽었구요. 인간적인 얼굴을 한 젊은 의사를 보았고, 약국에서 미소가 얼굴에 배어 있는 노부부 약사를 보았습니다. 지금 비가 내립니다. 내일 오전까지 내린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백무산의 시 한편으로 사진으로 올립니다.

IMG_1777.JPG


[레벨:21]주안

2019.04.24 11:01:30
*.69.199.48

아름다운 라일락을 보기 위해!
등등ㆍㆍㆍㆍㆍㆍ
백무산의 <풀씨 하나>를 읽어주기 위해!
천사 같은 약사를 만나기 위해!
목사님의 발이 아팠나 보네요.
profile

[레벨:29]캔디

2019.04.24 11:56:03
*.72.247.97

목사님의 병원 두탕 덕분에

이렇게 좋은 시를 3편이나 접할수 있었네요ㅎㅎ ^^*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19.04.24 22:48:29
*.182.156.135

우리 삶의 과정에 나타나는 모든 장면들이 다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무엇이 좋다 나쁘다 말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이제 발이 훨씬 좋아져서 며칠 안으로 뛰어다닐 수 있겠습니다.

곧 찔레꽃 피는 계절이 올테니,

백무산의 시집 중에서 '찔레꽃' 두번째 연을 읽겠습니다.


.....

잘되었지 뭐, 아프면 한 열흘은 아프라지

아주 한 석달은 누우라지

나 없는 오월에 저 혼자 날개를 달아선 안돼

아주 삼백날은 누우라지

네 꽃잎이 다 벌어지도록 이슬 하나 보탠 일

없는데 어찌 네 향기에 젖을 수 있겠나

.....



[레벨:17]홍새로

2019.04.25 08:02:36
*.151.83.22

씨만 들여다 보면 거기는 무성했던 잎도
꽃도 없으니 비웠다고 했군요.
더 자세히 보면 원자핵보다 어마어마하게 큰
빈 공간을 가진게 원자이니 씨를 구멍이라고
할수 밖에 없네요.
구멍인 무에서 이 모든것이 창조되었으니
씨에서 하늘이 비치는군요.
생명으로서 씨와 나는 동일하네요.
풀씨하나, 이 시는 목사님 설교말씀 같습니다.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19.04.25 21:10:56
*.182.156.135

백무산의 <풀씨 하나>에서 많은 걸 느낄 수 있지요?

풀씨 하나가 우주라는 걸 실감하면 세상이 달라보일 겁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번 주일의 주보에 저 시를 실을까 생각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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