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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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를 배운다. 아무리 해도 코드 하나 잡기 힘들고 손은 자꾸 엉뚱한 곳을 짚어 포기하고 싶어진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아픈 손가락에 굳은살이 생기고, 어느 날 문득 손가락이 저절로 코드를 잡는다.
영어를 배운다. 들어도 들어도 들리지 않아 절망스럽다. 그래도 계속 듣고, 단어를 외우고, 돌아서면 잊어버려도 또다시 외운다. 문법을 익히고 문제를 풀어본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영어가 들리기 시작하고, 어눌했던 혀가 영어를 말하는 순간이 온다.
믿음의 경지도 이와 같이 보인다. 보이지 않는 믿음의 세계, 예수님의 제자들이 깨닫고 믿었던 '예수님이 구원자시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믿음이 나의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계몽주의 이후 더욱 어려운 일이 되었다.
무속신앙과 밀의신앙에 익숙한 이들은 예수님이 구원자시며 자신이 십사만 사천 명에 들어간다는 것을 믿고 환호한다. 하지만 정상적인 인지능력을 가진 사람, 인문학적 사고를 하는 사람에게는 이것이 참으로 어렵다. 그래서 고민하는 것이다.
악기를 배울 때나 언어를 배울 때처럼, 아기가 걸음마를 배울 때처럼 수없이 포기하고 싶어진다. 그냥 고민하지 않고 대충 묻어가고 싶다. 스트레스 받지 않고 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오늘 설교에서 목사님은 여러 번 아이들을 언급하셨다. 예배당에 들어오실 때 본 김태영 집사님의 아이들, 성찬식에서 빵을 뗄 때 나아온 아이와 눈을 맞추시며 정성껏 빵을 떼어주시던 모습에서 목사님의 마음이 와닿았다. 빵을 받아가는 아이가 순수하게 예수님의 살과 피를, 구원의 진리를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영접하기를 바라시는 마음이었다.
길은 여기에 있을지 모른다. 내가 가진 고정관념과 쥐꼬리만한 지식이 하나님이 열어 놓으신 구원의 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짙은 녹색 튤립 잎 속에 화려한 꽃이 숨어 있어도 믿음 없이는 보지 못한다. 생명 하나 없어 보이는 허허벌판에 다음 달이면 녹색 생명이 움터 오를 것임을, 보이지 않으나 경험으로 믿는다.
믿음의 세상도 이와 같지 않을까?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다. 믿음의 조상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다고 했다. 어떤 이는 이것이 예수님의 제자들만이 가졌던 밀의의 세계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측면에서는 믿음의 선진들이, 목사님이 설교 복기 시간에 예로 드셨듯이, 이미 양자역학 측면에서 진리의 세계를 본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 뇌가 진화 과정에서 형성한 패턴 인식 체계를 지닌 이상, 제자들이 깨달았던 이 믿음의 세계는 영원한 허구가 될 수박에 없다. 마치 2차원 생명체가 3차원 현상을 이해하려는 것과 같은 인지적 한계를 보이듯이 말이다.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가자. 예수님은 "누구든지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선언하셨다. C.S 루이스의 표현처럼 매일 성찬을 "처음 먹는 것처럼" 영적 유아기의 마음을 지녀야 한다. 사회적 지위와 경력 등 '인공적 정체성'을 의식적으로 포기하고 거짓된 자아를 해체해야 한다. 비우지 않는 이상 채울 수 없다.
이것을 이 땅에서 살면서 누려야 한다. 톨스토이는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고 했다. 이해하고 믿는 것이 아니라, 믿고 이해하는 삶을 살고 싶다. 환갑이 훌쩍 넘은 나이에 너무 늦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생명이 있는 한 기회는 열려있다.
절망하는 것은 내가 조급하기 때문이다. 내 생각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처럼 말씀의 젖을 빨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다 보면, 시나브로 내 인생에도 믿음의 꽃이 필 것이다. 새봄에 피어날 튤립처럼.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명절때 들어온다는 중국의 그 아이들인 모양이네요 영상으로 보이지 않아서 나이도 추측하기 어려운데 그래도 아이들이라고 해서 아이들인가보다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도 아이들을 중국에서 키웠습니다.
세명의 아이가 있는데 그들도 모두 영어도 1,2,3 순위가 있고
중국어도 1,2,3 순위가 있더군요
더군다나 신앙도 큰딸은 보수적기독교인이고 둘째딸은 별말없는 많이 성실하지 않는 기독교인이고 막내 아들은 이제 거의 무신론적 기독교인입니다. 셋의 차이가 점점 벌어져가네요
저도 어렸을때는 아이들을 잘 데리고 교회에 출석했는데 이제 보니 각자 다 따로 놉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