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서울샘터교회 10년… >

조회 수 1270 추천 수 0 2018.12.11 10: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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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jpg

적지 않은 사람들의 길들이 거미줄처럼 얽히고
짐작도 할 수 없는 우연에 우연이 겹쳐나더니
건물 꼭대기마다 펄럭이는 붉은 십자가들 틈을 비집고
'노숙자들의 종말론적 예배공동체號' 라는 이 생경한 이름의 배가 떴더랬습니다.
 
겸손한 척, 뱃심좋게 배에 올랐으나
돛 말곤 뭐라도 하나 그럴듯하게 달린 게 없던 이 배가 움직이자니
배 안의 것들을, 내 안의 것들을 하나하나 비워내야 했습니다.
 
배.jpg

눈을 감아 바람을 듣고
힘을 빼어 바람결을 느끼고
불안과 평안 사이에서 바램과 맡김을 오가며
여전함과 새로움 사이에서 비움과 채움을 저울질하다 보니
얼추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을 타는 뱃사람 흉내를 내는 것 같습니다.
 

별회오리.jpg 

별의 처음과 나중을 캐어 묻다가
하늘과 땅의 기초가 놓아지던 시간 속으로 빙그르 휘말려 들어갈 때면
아무것도 없이 떠다닌다는 불안에서 잠시 해방을 맛봅니다.
 
없는 듯이 피었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지고 있는 한 꽃에 눈을 맞추다 보면
꽃이 우주만해져 보일 때가 있습니다.
꽃 속엔 하나님나라로 통하는 웜홀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알 겁니다.
 
밤등대.jpg

“내가 …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라던 욥의 고백이야 깜깜해서 영 못 닿아볼 테지만
등대 따라, 고개 들어 별 보며, 눈을 맞춰 꽃을 노래하다 보니
달랑 돛 하나 달린 배 안에서 겨우 바람이나 쐬면서도
지루한 줄 모르고 십 년을 흘러 여기까지 왔습니다.



처음 이 배에 올랐던 얼굴들은 이제 주름이나 흰머리가 늘기도 했으며
반가운 새 얼굴들, 그 위로 그리운 옛 얼굴들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5년 전 이 날, ‘서울샘터’의 이름으로 모인 그 얼굴들을 보며
“수행의 공동체로 함께 걸어가자!” 하더니…
어쩌면, 우주의 아득함이나 꽃이나 별빛의 오묘함 따위에 홀려
발 디딘 곳의 역사를 사뿐히 이탈한 채,
    대심문관이 되어버린 교회를 향한 세상의 냉소도
    시대정신의 모습을 한 우상에 대한 경계도
    하나님의 미래를 향한 역동적 참여도
행여 다 잊고서 ‘구도수행’이라는 우리만의 의로운 놀이에 빠져버린 것은 아닌지요?

수련회.jpg

강산이 변하는 동안,
우리의 기도는 다시 주기도, 사도신경으로 돌아가서
이제 스스로는 한마디 입을 떼지 못하고 있으며,
모순과 역설의 틈새에 핀 진리 앞에선
아직도 맨발로 떨고 있는 어린 아이와 같습니다.
등대 불빛을 좇아 한참을 갔나 싶어 쳐다보면,
그 빛은 어느새 저만치 가있어 우린 마냥 그 자리이곤 합니다.


안개등대.jpg 

그래도 다행히 여전함으로 비춰주는 등대가 있으매
한 십 년 또 눈을 감고 힘을 빼고
바람결에 돛을 대어보려 합니다.

창립예배.jpg

그러다 보면, 저 배로 건너가는 분들과 아쉬움을 나눌 것이며
그래도 이 배가 쉴만하다며 찾아오는 노숙자들을 맞을 것이며,
시나브로 달궈지는 우리의 모든 열정을 내려놓고 그들과 더불어
생명의 주인께, 구별된 가장 거룩한 시간을 드릴 것입니다.

5주년예배.jpg

그러다 보면, 두려움과 떨림이 기쁨과 환희가 되고
허무한 세상, 존재의 불안을 넘어, 하나님의 미래를 향해
반생명, 반평화의 역사와 투쟁할 용기를 허락 받을 날이 오겠지요.


성찬기.jpg 

이천 년 각자의 언어로 드려온 주기도와 사도신경을 모두어
한시에 하나된 언어로 참된 기도를 드릴 그 날이 오겠지요.

우주전체의 시간, 공간만이 아니라
그 너머까지 통치하시는 역사의 주인을 볼 날도 오겠지요.

대림절초.jpg

이렇게 우리 모인 자들의 마음이 한 길로 향하고,
이렇게 우리 기다리는 자들의 소망이 단단하다면
그 후로도 또 십 년, 배를 탈 담대함을 얻겠지요.
그것 말고 뭐가 더 필요할까요?

키리에 엘레이손!

겨울나무.jpg




   - 서울샘터교회 김용성 집사 -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18.12.11 22:43:00
*.182.156.135

당일 짠한 울림이 있었습니다.

처음에 함께 시작했다가 지금은 대전에 계신 김 아무개 집사가 교우들에게

'교회를 잘 지켜주어서 고맙습니다.'는 인사말을 했다지요?

영적인 노숙자들로서 불안과 자유의 영성을 붙들고 앞으로 나아갑시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만큼.

[레벨:13]쿠키

2018.12.11 23:07:52
*.123.54.208

아~멘입니다. 정말 교회는 배인거 맞네요!

날마다, 하루 하루, 일상의 자리에서 종이배라도 정성껏, 곱게 접으면 그 배에 함께 탄거 맞죠?


수련회 사진에 제 모습이 보이네요. 그 때 시편 몇 편을 해석해 주셨는데 창 밖 너머 먼 곳을 응시하시면서 아득한 세계로 안내하시던 목사님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네요... 

profile

[레벨:33]우디

2018.12.12 15:25:15
*.42.123.36

암요, 사진까지 찍혔으면 확실히 한 배 탄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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