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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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정용섭 교수님 안녕하세요. 지난학기 기독교 해석학을 들었던 신대원 1학년 도무광입니다. 물론 2학기에도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있습니다. 제가 2학기에도 듣기를 소망했던 것은 교수님의 1학기 강의를 통해서 그동안 제가 바라보지 못했던 기독교 진리에 대한 지평을 한단계 더 깊이 볼수 있도록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참 기뻤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신 교수님께 감사 드립니다. 제게 또다른 차원의 고민이 있다면 성서의 너머에 있는 진리의 세계를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느냐의 문제로 모아지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것이 가능할까요? 아니 어쩌면 우리 자신이 무얼할 수 있을까요? 진리 자체가 존재로 우리에게 자신의 은폐성을 열어주지 않는다면 우리의 이런 인식의 노력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만약 우리의 진리탐구에 대한,진리 인식에 대한, 깨달음에 대한 노력이 과연 열매로 나타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될까요?.......정말 도를 닦는 사람들처럼 그런 노력들이 있어야 할까요?
교수님의 수업을 통해서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조금이나마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또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어떻게 하면 될까요?.......정말 도를 닦는 사람들처럼 그런 노력들이 있어야 할까요?
교수님의 수업을 통해서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조금이나마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또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그 깨달음의 세계는 어느 한 순간에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지곤 하기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 고비를 넘기지 못하는 거요.
아니, 그런 눈치도 채지 못하고 살아간다고보아야 하겠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성서라고 한다면
대개의 사람들은 손가락만 바라보고 신앙생활을 하는거요.
도대체 손가락과 달 사이에 무슨 방벽이 가로막혀 있길래
손가락에서 달로 시선을 옮기는 게 그렇게 힘든지 모르겠오.
존재와 생명의 신비에 눈을 뜨는 일은 무엇일까?
우선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것들을 굳어진 체제로
생각하는 습관에서 벗어나야 할거요.
그건 교회의 조직을 포함해서 모든 세계의 형태에 다 적용되는 것이오.
우리의 영적인 시각이 아무리 깊어지고 날가로워져도
그 진리, 하나님, 그 생명을 완벽하게 보기는 불가능할거요.
다만 우리는 길을 가고 있을 뿐이오.
그것이 길이라는 사실을 논리적으로 해명하는 게 바로 신학이라고 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