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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大愚), 즉 큰 바보
맹자는 사람이 성(性)과 정(情)과 욕(慾)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한다. 참으로 사람의 존재의 어떠함을 잘 알았다는 생각이 든다. 성(性)은 하늘의 본성으로 인의예지(仁義禮智)이고 정(情)은 사람의 감정으로 희로애락(喜怒哀樂)이고 욕(慾)은 사람의 욕심이다.
한의학의 체질의학인 사상의학의 저자 동무 이제마는 성(性)과 정(情)과 욕(慾) 가운데 욕(慾)을 중심으로 사람의 체질을 구분한다. 이는 사람에게 욕심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람의 욕심에는 네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주색재권(酒色財權: 술과 성과 재물과 권세)이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바가 다르다. 그것이 체질에 따라 다르다. 사람이 추구하는 주색재권(酒色財權)의 네 가지를 적당히 욕심하면 그것은 나를 보호하는 울타리가 되나 그 욕심이 과도하면 나를 가두는 감옥이 된다고 하였다.
경제학에서 유래된 ‘더 큰 바보 이론(The greater fool theory)’이 있다. 이 이론은 주식이나 채권, 부동산 등 특정 상품의 가격이 높은 상태라 하더라도, 더 높은 가격에 차익 실현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따라 투자에 나서는 것을 말한다. 이 이론을 만든 사람은 경제대공황(1929~1939년) 시기 프랭클린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이 위기 극복을 위해 실시한 뉴딜(New Deal) 정책의 이론적 배경이 되는 수정자본주의를 주창한 케인스학파를 이끈 존 메이너드 케인스(영국, 1883~1946년)이다.
케인스는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이라는 인간의 본성을 중요하게 여겼다. 대다수 경제활동은 합리적인 경제적 동기에 따라 이뤄지지만, 때론 야성적 충동의 영향이 중요하게 작용하기도 한다고 생각했다. 대표적인 투기의 사례를 말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파동’이다. 당시 유럽에서 가장 부자였던 네덜란드 국민들은 과시욕을 해소할 대상을 찾기 시작했는데, 튀르기예에서 수입돼 정원을 장식하던 튤립이 그 대상이었다. 귀족은 물론 중산층 사이에서도 튤립 수요가 폭증하면서 가격이 한 달 만에 50배 치솟았으나 거품이 꺼진 뒤 튤립 값은 최고치 대비 수천분의 1로 폭락했다.
케인스가 말하는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이라는 인간의 본성이 바로 맹자가 말한 욕심이다. 사람은 영과 혼과 몸으로 구성된 존재이다. 사람의 하늘을 추구하는 영성인 영에는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성(性)이 있고, 사람의 자기 중심성인 혼 안에는 희로애락(喜怒哀樂)의 감정이 있고, 사람의 몸 안에는 동물과 같은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 즉 욕심이 있다.
사람이 육체의 욕심을 따르면 야성, 즉 짐승과 같이 되나 사람이 이성으로 야성을 누르며 하늘을 따르면 욕심이 없는 큰 바보 된다. 이것을 동무 이제마는 이렇게 표현했다. “성인지심, 무욕운자, 비청정적멸여노불지무욕야. 성인지심, 심우천하지불치자, 고비단무욕야, 역미가급어일기지욕야. 심우천하지불치이미가급어일기지욕자, 필학불염이교불권야. 학불염이교불권자, 즉성인지무욕야. 호유일기지욕즉비요순지심야, 잠무천하지우즉비공맹지심야(聖人之心, 無慾云者, 非淸淨寂滅如老佛之無慾也. 聖人之心, 深憂天下之不治者, 故非但無慾也, 亦未暇及於一己之慾也. 深憂天下之不治而未暇及於一己之慾者, 必學不厭而敎不倦也. 學不厭而敎不倦者, 卽聖人之無慾也. 毫有一己之慾則非堯舜之心也, 暫無天下之憂則非孔孟之心也.” 해석하면 “성인의 마음에 욕심이 없다는 것은 노자나 부처의 무욕과 같은 청정적멸함이 아니다. 성인의 마음은 천하가 다스려지지 않음에 크게 근심하는 것이기 때문에 단지 욕심이 없을 뿐 아니라 자기 몸에 욕심이 미칠 틈이 없다. 천하가 다스려지지 않음에 크게 근심하여 자기 몸에 욕심이 미칠 틈이 없는 사람은 반드시 배우기를 싫어하지 않고 가르치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가르치기를 싫어하지 않고 배우기를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 곧 성인의 무욕이다. 터럭만큼 자기 몸의 욕심이 있으면 요순의 마음이 아니고, 잠시라도 천하를 근심하는 마음이 없다면 공맹의 마음이 아니다.”
동무(東武) 이제마(李濟馬)의 말은 옳다. 그는 욕심(慾心)을 버리면 안 되고, 욕망(慾望)을 더 키워야 한다고 말한다. 조그만한 욕심을 가지고 사니까 괴롭다. 성인은 가장 큰 욕망을 가졌다. 중생들은 처자식만 건사하겠다고 하지만, 성인은 일체 중생을 건지겠다고 나선다. 큰 욕망을 가지니 적은 욕심이 저절로 사라지는 것이다. 큰 욕망을 가지면 적은 욕심은 사라져 내 것 네 것이 없어진다. 그것이 무소유다. 성인은 욕심이 사라진 뒤 우울증에 걸렸는가? 아니다. 그 때부터 진짜 인생을 살기 시작했다. 진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은 만나는 사람들 모두에게 그런 법을 설했다. 사람들은 욕심을 버리면 큰일 나는 줄 아는데, 욕망을 키워 원력(原力)이 되게 하면 욕심을 이길 수 있게 된다. 욕망은 욕심이 바뀐 것이다. 욕망은 욕심을 미워하게 된다. 욕망을 키우면 사랑과 어짊이 된다. 그러니 욕심을 없애려고 하지 말고 욕망을 키우려는 큰 원(願)을 세워야 한다. 그렇게 자기 삶을 새롭게 디자인해야 한다.
욕심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심지어 하나님도 욕심이 있으시다. 그런데 그 욕심이 우리와 다르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보이시다.
하느님 바보 - 조희선
높은 것
낮은 것도 구별할 줄 모르고
좋은 것
싫은 것도 골라낼 줄 모르고
손해
이익 따위 계산할 줄 모르고
네 편
내 편도 만들 줄 모르는
하느님은 바보
오직 하나,
사랑만 아시는
사랑밖에 모르는 하느님, 바보!
나는 내 호를 대우(大愚), 즉 큰 바보라고 지었다. 대우(大愚), 즉 큰 바보는 회개함으로, 즉 생각을 바꾸어 돌이킴으로 욕심을 욕망으로 바꾸어 사는 자이다. 그 길을 가는 자는 자기를 부인함으로 어리석음의 상징인 십자가를 지고 가는 자이다. 대우(大愚), 즉 큰 바보는 사량분별지심(思量分別之心: 이것이 좋고 저것이 나쁘다고 분별하는 마음), 즉 선과 악의 지식, 곧 내가 가진 지식으로 좋고 나쁨을 분별함이 없게 된다. 그러니 오직 사랑뿐이 된다. 그러니까 대우(大愚), 즉 큰 바보이다.
나는 종심(從心), 즉 칠순, 곧 일흔이 바로 코 앞인데 아직 거기에 이르지 못했다. 평생 대우(大愚), 즉 큰 바보로 살기를 원했지만 고지가 아직 멀다. 아니 노욕(老慾)이 더 생겨 욕심쟁이의 우두머리가 되어 가는 것 같다. 오, 나는 비참한 사람이로다. 누가 있어 나를 욕심에서 건져내어 욕망으로 이끌 수 있을까?
아니 브니엘남 님은 호가 몇개인지요.
일전에 아래 같이 말하시던데요. ㅎㅎ
"참고로 제 호는 남상(濫觴), 반진(返眞), 상용(商容), 동경(銅鏡), 개석(介石), 일충(一充) 등이 있습니다."
저에게 어울리는 호를 하나 생각해주세요.
마음에 들면 받아들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