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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게으름과 부지런함

조회 수 1083 추천 수 3 2016.04.13 04:4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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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이른 새벽입니다.

이 새벽 아파트의 창 밖으로 불빛이 훤한 상가들이 보입니다.

그냥 켜놓은 불이 아니라 무언가 업을 준비하기 위해 켜놓은 것으로 보입니다.

참 부지런히들 살아가고 있습니다. ^^


많은 설교에서 부지런함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경우가 상당부분 있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자본주의 초기의 청교도들의 삶과 이들에 대한 설교의 해석으로 부터 유래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것을 뒷 받침하는 성경의 구절들도 있습니다. - 물론 당연하게 이에 반하는 구절들도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도  부지런함은 미덕이고 게으름은 악덕이라는 인식은 널리 퍼저 있습니다.

자본주의 이전의 사회에서도 이런 부지런함은 강조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만 농부들의 시간이란 것은 때가 있기 마련이고 해가 떠서 해가지면 마무리 해야 하는 일들이기에 무시적으로 강요되는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하루 16시간의 노동과 같은 일들은 자본주의적 생산방식들이 들어오면서 부터 일어난 일들이고 이를 통해 부지런함은 더욱 강조되고 강요되었던 같습니다.

노동의 가치를 시간으로 측정하고자 했던 것도 이 즈음에 생겨났습니다.


문제는 근래들어 느림, 심지어는 게으름을 찬양하는 흐름이 생겨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자연에 대한 심각한 파괴, 지구의 위기가 이 '부지런함' 때문에 생겨났다고 보는 시각이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흐름에 대해 부지런함을 찬양하던 이들은 이 느림이 게으름이 아니라 부지런함의 다른 모습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느림은 주변을 세밀하고 꼼꼼히 살피고 가는 것이고 이것은 게으르면 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즉 느림도 부지런함의 한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새로운 흐름을 이전의 범주를 통해서 해석하려는 의도가 존재합니다. - 이것은 현대의 해석학이 범하는 오류이기도 합니다.

느림에는 누림과 향유, 음미와 같은 의도되지 않는 긴밀함들은 있을 지 모르겠지만 의도된 세밀함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무위함을 통해 다가오는 편안한 느림일 뿐입니다.

 

인간의 부지런함이 지구를 파괴하고 황폐하고 만들고 있습니다.

물론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만 그것이 매우 당연한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노동의 위대함과 숭고함'에 자본주의 구조에 끄달린 비루한 노동이 세상의 파괴에 일조하고 있음이 간과되고 있습니다.

노동이 세상을 창조한다고 하는데 이는 당치도 않은 이야기이며  성경적이지도 않습니다.

정확히 이야기 하면 우리는 창조된 세상에서 노동을 통해 조금씩 얻어 먹을 뿐입니다.

거기에 뿌려지고, 수확되고 다기 거기로 돌아갈 뿐입니다.

느려지고 게을러지기 위해서는 자본주의로 부터 벗어나는 삶이 필요합니다.

물론 도시를 벗어나 농촌으로 갔다고 해서 그런 삶이 살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자본주의 구조 속에서 상품화되는 것을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협종도합적 삶 또한 자본주의 구조와의 관계속에 있기에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씩 하나씩 조금씩 조금씩 이런 삶을 만들어 가는 것을 통해  편안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창조된 생명이 충만함을 느끼고 즐겁고 밝게 살아가는 것,

피곤한 강박 없이 편안히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마  에덴의 삶도 그러했을 것입니다.

고단하고 부지런한 삶은 원죄로 부터 파생된 것이기도 합니다.

이 충만함과 편안함은  원죄로 부터 벗어나는 것이기도 합니다.

선과 악의 구분으로 부터 자유로워 지는 것입니다.

모든 영역에서도 그러하겠지만 특히 부지런함과 게으름을 선과 악으로 보지 않는 것이 그러합니다.

이것은  느림, 게으름을 부지런함의 범주를 떠나 이해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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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8]여름비

2016.04.13 11:44:26
*.46.187.146

요즘 권정생 선생님의 <우리들의 하느님> 읽고 있는데 많은

부분 공감가는 얘기가 겹쳐있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하는 일 없이 진짜루 게으른 생활이 일 주일의 하루,이틀 정도

부지런하게 해준다는 생각을 가끔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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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0]떡진머리

2016.04.14 23:08:22
*.237.98.48

예전에 제 별명이 '몽실이' 였는데 저와 노동운동을 같이 하던 노동자 분이 지어준 것이었습니다.

권정생 선생님의 '몽실언니'에서 따온 것이지요. ^^

 


[레벨:12]staytrue

2016.04.13 13:57:59
*.36.154.222

ㅊ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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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6.04.13 22:01:44
*.164.153.48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습니까?

대단하시네요.

목회에서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는 게 최선이라고

늘 생각하던 사람에게 위로가 되는 단상이군요.

나는 테니스 장에서는 부지런 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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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0]떡진머리

2016.04.14 23:02:06
*.237.98.48

ㅎㅎ 아버님은 제가 목회하기를 바랬는데 핑계로 새벽기도가 자신이 없어서 못한다고 하곤 했습니다.

대체로 늦게자고(밤 2~3시) 늦게 일어나는 편인데 요즘은 조금 일찍자니 눈이 일찍 떠지곤 합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목회도 한 번쯤 생각해보는 건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제가 가진 신앙의 방식으로는 그것도 쉽지는 않을 듯 합니다.

목사님도 만만치 않으시겠지만 말입니다. ^^

우리들은 세상을 즐겁고 유쾌하게 살아가기 위해 일을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기 위해 휴식을 한다고 생각하곤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요즘은 많은 분들이 여유로움을  위해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몇 가지 일에는 부지런을 떱니다.

물론 그 일은 목사님의 테니스 처럼 즐거운 일이지요.



[레벨:12]sinsa

2016.04.13 22:21:43
*.127.1.65

느리게 운전하는 것이
빨리 운전하는 것보다
많이 힘이든다
그러나 느림은
여유가 있고 여유가 있으니
많은 것들을 본다
느림은 빠름보다 진하다
느림은 아름다움이며
경륜이요 거룩이고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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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상-게으름과 부지런함 [6] [레벨:20]떡진머리 2016-04-13 1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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