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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런버핏-선행의 진실

조회 수 2252 추천 수 0 2011.08.20 01: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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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세상의 것들이 증권화되는 세상에 증권에 대한 비판의 글을 써 보았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돈에 포획되어가고 있음을 보면서 주식투자에 대해 한번쯤은 다같이 생각하고 넘어갈 기회를 만들어 보자는 의미에서 글을 썼습니다.
주식투자를 하지 않고도 잘살 수 있는 세상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세상을 바랍니다.


사실 워런버핏이란 인물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한다.
물론 세상에 그에 대한 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와 있어 조금 더 많이 알려면 그 책들을 읽어 보면 되겠지만 우선은 그에 대해 그렇게 자세히 알아볼 만큼의 가치를 느끼지 못했고 또한 그렇게 나온 책들이 그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들일까 하는 의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가 주식투자를 통해 돈을 벌었다는 것과 그것으로 세계에서 한 두 손가락 안에 꼽는 부자가 되었다는 것, 그 부를 사회에 환원 한다느니 하는 보도가 있었다는 정도가 내가 그에 대하여 알고 있는 전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워런버핏을 이야기하기에는 그 정도만으로도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된다.
그 이유는 내가 비판하고자 하는 것의 주된 부분은 주식투자가 행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주식에 투자를 하는 많은 사람들이 워런버핏을 롤 모델로 삼고 있는 듯하다.
단기 투자를 하지 않고 장기투자를 한다느니 하는 그의 투자방식은 마치 주식투자에 있어서 정석이며 건전한 방식으로 좀 더 도덕적인 듯이 보이기도 한다.
이런 이야기들은 하나의 환상을 만들어 내며 모든 것이 증권화 되어버린 요즘 세상에 주식투자를 정당화 시켜주는 구실을 마련해 주기도 한다.


우선 증권에 대해 이야기 해보면 증권의 가치분석은 존재하고 있는 가치에 대한 분석이 아니다. 그것은 실현되지 않은 가치의 분석이다.
그 가치는 담보된 상품의 가치가 아니라 그 상품에 참여한 이들의 상호 주관적 분석에 의하여 결정되어진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선 이러한 주관적 분석의 정확성에 그 가치가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자본력에 의한 힘에 의하여 실현된다.
퀀텀펀드의 소로스가 공매도를 통해 영국의 파운드화와 달러를 번갈아 사가면서 1992년도에 10억 달러의 수익을 낸 것은 유명한 일화다. 물론 이것은 그가 사고팔면서 그 영향으로 환율과 달러의 가치가 변화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실상 환율의 가치를 빼앗음으로 발생한 이익이다.
그리고 워런버핏도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가 장기적인 투자라고 하지만 그가 사고 팜에 따라 의 투자한 증권의 가치가 변화한다.
그가 샀기에 생산과 무관하게 회사가 보유한 주식의 가치는 증가하고 변화한다.
이것은 가치의 탈취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탈취에 의한 가치증식’은 금융자본의 증식을 위한 일반적 전략이다.
한국의 외환 위기나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처럼 폭락하면 사들여 이를 다시 부풀리는 방식으로 자본의 증식은 일어난다.
물론 여기에는 이 증권화 사업에 뛰어들지 않은 많은 이들의 세금이 투여되면서 다시금 부풀려지기 시작한다.
한국의 외환은행 등이 바로 그 좋은 예이다.


증권거래는 정확히 제로섬게임이다.
그 이야기는 증권시장의 수익의 총량과 손실의 총량이 틀림없이 일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것은 도박판과 동일하다.
물론 동네의 놀음판에는 딴 돈의 총액과 잃은 돈의 총액이 항상 차이가 나지만 말이다.
문제는 도박판의 책임은 돈을 잃은 누군가가 손해를 보거나 망하거나 하면 되는 제로섬게임 이지만 증권시장은 내기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의 돈까지 빼앗아 간다는 점이다.
곡물시장의 선물거래를 통한 이익은 잃은 이의 손실에서 발생되지만 곡물가가 올라 그것을 사먹는 이들은 비싼 가격으로 사먹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석유시장에서도 마찬가지 이다. 최근의 비싼 기름 값은 수요와 공급과 무관하게 여기에서 기인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기업주식에 대한 투자는 돈을 번이와 잃은 이의 관계 속에서 부의 이동이 일어나긴 하지만 여기에 참여하지 않는 이들은 주가 상승만큼 가난해진다.
부동산 투기도 역시 마찬가지로 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주택이나 토지 가격의 상승으로 인한 고통을 가져다준다.
부동산은 단순히 실물에 대한 투기라기보다는 은행의 담보를 통한 증서대출 형태의 역시 증권화된 투기이다. 이 증서들은 다시금 담보로 활용되어지거나 CDO 등으로 판매되어져 생겨난 돈들이 다시금 부동산에 대한 투기로 연결되어지는 고리가 무수히 형성된다는 의미에서 증권투자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주지해야 할 사실은 현실적으로 증권의 가치는 결코 제로섬에 머물지 않고 항상 총량적으로 증가한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증권시장에서 부를 털린 채 떨어져 나간 이들을 존재하며 소위 경제위기라는 시점에서 증권의 시장가치가 실현되기 불가능할 때는 항상 ‘공적자금투여’라는 형태로 착취를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국가의 역할이다. - 아마도 증권(security)의 영어적 의미가 바로 안보(security)인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바로 이때 증권의 판돈은 결코 투자자들뿐만 아니라 이익의 공유가 아닌 손실의 전가라는 의미에서 그 모든 대중의 몫이라는 사실이 드러나 버린다.
이것은 마치 도박판에서 한쪽으로 돈이 몰려 판이 깨지게 될 때 도박과 관계없는 이들의 돈을 빼앗아 판돈을 대주어 판이 지속되도록 하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아무리 그럴싸한 경제논리 등으로 위장을 한다고 하더라도 워런버핏 역시 이러한 증권의 가치탈취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아니 자유롭지 못한 것이 아니라 가장 큰 주범이라 불리우는 것이 온당하다.
워런버핏의 재산의 사회 환원이 안하는 것 보다는 났지 않느냐고 말할지는 모르겠지만 근본적으로 그것은 강도질을 통해서 번 돈으로 선행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물론 의적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그는 가난한 이들의 주머니까지 털기 때문이다.


[레벨:5]이택환

2011.08.23 00:31:11
*.139.108.138

다비아에도 투자론을 전공한 사람이 있을 것 같은데  이글에 대한 반론이 없군요. 증권시장이 도박성을 가지고 있음에 대해서는 저도 부인하지 않습니다. 증권거래소는 일면 국가가 공인한 도박장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주식시장이 순전히 악하다고만 볼 수 없는 순기능이 있을 겁니다. 경제학이나 경영학 원론에도 관련 내용들이 있습니다. 제가 전공자나 관계자가 아니라서 하나하나 구체적인 예를 들지 못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오히려 <떡진머리>님께 궁금한 게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은행 예금/적금에 대해서는 <떡진머리>님이 어떻게 생각하실까 입니다. 주식을 하는 사람은 나름대로 경제 공부도 하고 산업 동향을 파악하는 등 최소한의 노력을 하는데, 그야말로 오직 이자라고 하는 불로소득을 기대하며 은행을 찾는 이들은 괜찮은 사람들인지 말입니다. 물론 위 글의 논조는 개미군단보다 워렌버핏이라는 특정 인물을 타겟으로 하고 있지만, 도박판에 뛰어든 개미들도 워렌 버핏을 꿈꾼다는 점에서 비판의 대상이 된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거액의 예금이자 소득을 통해 부를 얻는 사람들에게도 동일한 비판이 가해져야 겠고, 소액 예금/저축자들 역시 아무리 액수가 작아도 불로소득을 바란다는 점에서 문제가 많은 사람들로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식투자자들과 그들의 투자 행위에 대해 선/악을 명확히 말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생각에서 몇 자 적어보았습니다. 

 

 

   

 

profile

[레벨:20]떡진머리

2011.08.23 01:34:46
*.237.98.114

예금`적금도 증권적 형태를 지님은 다름이 없습니다.

우리들은 은행에 돈을 맞기고 나면 예금증서라는 통장을 받습니다.

거기에는 이자가 당연한 것 처럼 붙게 됩니다.

하지만 여기서 염두해 두어야  할 것이 있는데 이것은 인플레라는 것입니다.

산업자본주의 형태에서는 소위 노동시간의 절취에 의한 노동력의 착취를 통하여 산업자본에 투자된 예금 형태의 금융자본에 이자율이 형성되어졌습니다.

이 시기에는 인플레와 무관하게 은행이 편취한 이윤 중 일부를 배당하는 형태로 어느 정도의 이윤이 보장되어 집니다.

이것은 당시의 금융자본이 자본을 동원할 유일한 통로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시대에 들어와서는 전혀 다른 형태를 지니게 됩니다.

거의 모든 예금과 적금은 인플레율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이 일반화 되게 되었습니다.

이자율이 인플레 율을 뛰어넘지 못하면 이는 오히려 수탈구조에 편입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제 전통적이 예`적금은 더 이상 부의 축적 수단으로 자리잡지 못하게 됩니다. 오히려 수탈당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에 신자유주의 시대에 등장한 것들이 바로 적립식 펀드 등의 새로운 형태의 예`적금 입니다.

금융법규의 완화에 따라 은행에서도 전통적인 예`적금 외에 파생상품 등에 투자하는 적립식 펀드 등이 성행하고 있습니다. 이 경우는 본질적으로 다른 형태를 가집니다.

이는 금융자본이 금융상품과 운명을 같이하도록 동맹을 만드는 것입니다.

물론 이는 쉽게 금융자본 자신은 망하는 경우가 없이 개별적 펀드에 가입한 이들만 망하면 되는 동맹이지만 말입니다.

리스크를 펀드에 가입한 이들에게 떠넘기는 대신에 높은 수익율로 투자자를 끌어 모음니다.

물론 여기에도 이들의 수익은개별적`국가적  탈취에 의해 확대되어지는 제로섬 게임에 그대로 적용을 받습니다.

 

다시 인플레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산업자본이 성하던 시대에는 인플레가 매우 높은 비율로 상승했습니다.

이 시기에는 예`적금보다는 물건을 들고 있는 경우가 더욱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

집이나 뭐 이런거 말입니다.

그래서 한국에도 부동산 투기가 그렇게 성했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주로 금융자본의 세상이 되어버렸으니 당연히 인플레를 억제하려고 합니다.

물론 이 속에서도 당연히 선물투자 등 실물에 대한 투자는 일어나고 있습니다만 이 역시 증권화되어 실물과 분리된채 움직이게 됩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인플레 억제가 주요한 정책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물론 전통적 예`적금의 이자율은 매우 특수한 경우 - 금융권의 급전 공급 등 - 를 제외하고는 항상 이 아래에서 움직이게 됩니다.

단순히 맡겨놓은 돈에 인플레 이상의 이익이 생성되는 것은 금융자본이 바라는 형태가 결코 아닙니다. 이래서야 제로섬 게임에서 손해보는 이가 없기 때문이며 자본력, 방대한 정보 등 자신들의 유익한 무기가 의미없어 지기 때문 입니다.

주식에서 개미투자가들은 그들의 행위는 워런버핏과 동일하게 출발하지만 결과는 결코 동등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비판받고 동정받을 만한 이들입니다.

저는 자본주의사회를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존재한다고 당연한 것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불온하죠.

선과 악을 이야기 하기 보다는 나의 것을, 우리들의 것을 탈취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싱거운 소리 하나 하고 마치겠습니다.

후배 한 명이 있는데 얼마 전 옆에서 전화를 열심히 받으며 이것 저것 묻고 하더니 대뜸 하는 말이 "그렇게 돈이 될 것 같으면 니가 사지 그래요?"

말인 즉슨 부동산이라는 데서 전화가와 땅을 사라고 해서 장난삼이 시간을 끌다가 한 소리라는 것입니다.

우스운 농담이지만 여기에는 진실이 있습니다.

금융권이 온갖 달콤한 이야기로 투자자를 유치하는 것도 동일한 것입니다.

투자에 실패를 하더라도 금융회사는 망하지 않는 것이 바로 '안정된 자본주의' 사회인 것입니다.

[레벨:5]이택환

2011.08.23 15:08:40
*.139.108.138

자본주의의 본질을 꿰뚫어 설명해 내는 <떡진머리>님의 지식에 감탄합니다. 모든 것을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자본주의 큰 그림에는 대부분 공감합니다. 이자를 인플레와 관련하여 설명하셨는데, 사람들은 결국 높은 이자를 주는 곳에 투자하기 마련이지요. 동시에 안전성을 추구하는 것이 두 마리 토끼를 좇는 모순이지만, 사람들은 대개 양자의 타협점에서 투자를 결정하게 됩니다. 문제는 그 중심에 주식시장이 있다는 것이지요.

 

비록 우리가 직접 주식투자를 하지 않아도, 또 증권회사 펀드에 가입하지 않아도, 설령 은행에 예금을 하든 보험에 가입을 하든, 연금에 들든, 그 돈은 결국 주식시장으로 들어갑니다. 우리가 직접 투자한 것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기관으로 하여금 투자를 하게 하는 간접투자가입니다. 그런 식으로 국민 100%가 주식시장과 연계되어 있고 그 누구도 여기에서 제외되지 않습니다.

 

물론 은행이 주식투자가 아니라도 예대마진의 돈놀이를 통해 이익을 창출합니다. 그 과정에 서민들의 등골을 빼먹게 되는데(대출 시는 높은 이자, 예금 시는 낮은 이자로), 우리는 그 수혜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됩니다. 우리 가운데는 은행 직원도 있고 증권사 직원도 있고, 적은 연금을 내고 많은 연금을 타는 은퇴자도 있을 겁니다. 자신은 몇 번 보험 들지 않았지만, 약관에 의해 다른 사람이 낸 보험금으로 자신의 사고비용을 배 이상 충당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것이 전적으로 악인가 하면, 무시할 수 없는 순기능이 있다는 거죠. 또 그 덕에 우리가 살아가는 면도 적지 않습니다. 육식이 좋지 않아도 육식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물론 순수한 채식주의자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살 수 없습니다), 이미 우리는 자본주의의 틀 안에 너무나도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물론 지적하신 대로 존재하는 것이 다 선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존재하는 것을 부정한다고 악이 제거되는 것도 아니지요.

 

가라지의 비유 - 가라지를 송두리째 없애려고 하다가는 알곡까지 해치게 되므로 추수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 가 생각납니다. 그리고 선과 악이 우리와 그들 사이를 지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그들 모두를 관통한다고 한 솔제니친의 말도 생각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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