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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신명과 기쁨의 구성체

조회 수 1817 추천 수 0 2012.05.24 23:3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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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오월은 돌아온다.

그리고 우리들은 그 오월을 기념한다.

시계적 시간의 오월이 가지는 의미는 표상되어진 것들로 '객관적 시간'을 통해 강제적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것은 표상되어진 것들을 기념하기를 강요한다.

지워져 있던 기억을 상기시키지만 그것은 이미 '국가의 발전을 위한 민주화운동'으로 고정되어 버린 기억일 뿐이다.

이러한 의례적 기념식이란 표상화 된 것을 재현하는 것일 뿐이다.

'국가의 발전을 위한 민주화 운동'으로 기억하고 있다면 우리들은 그 기억을 지워버리는 것이 현명할지도 모른다.

 

새삼스레 그날을 기억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주변에서 오월은 항상 지속되고 새롭게 반복되어지고 있다.

누군가에겐 삶의 어려움으로, 젊은이들에겐 취업의 고통으로, 아이들에겐 지옥의 입시로 그렇게 지속되고 있는 것이 바로 오월 아니던가.

그리고 이것은 6월 항쟁으로, 촛불집회로, 희망버스로, 강정마을로 '차이의 반복'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것은 80년 광주에서 그랬듯이 우리들이 죽음과 슬품, 분노와 고통, 공포와 불안을 이겨내며 찾아낸 것들이다.

신명과 기쁨이 그것이다.

 

80년 광주는 그렇게 싸우고 그렇게 어우러졌다.

그래서 광주는 '무엇을' 위해 싸웠는가 보다 '어떻게'싸웠나가 훨씬 의미 있게 다가온다.

서로를 위해 가진 것을 내주고 함께 나누는 새로운 관계, 새로운 세계가 나타났다.

이질적인 것들이 그대로 연결되고 확장되며 변해가는 세계가 만들어진 것이다.

'흐름의 대중', 다양체로서의 '집합적 신체'가 구성된 것이다.

공수부대를 물리치는 것 외에는 어떤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 모든 것들이 원초적으로 평등하며 어떤 자격이나 조건 없이 어울리는 구성체가 도래한 것이었다.

이것은 기쁨의 감응을 통해서였다.

스피노자가 '다른 것과 만남으로써 힘이 증가하는 감응의 총칭'이라고 했던 그것이었다.

이렇듯 공포나 불안을 초과하는 감응이 광주의 사람들로 하여금 투쟁으로 나서게 한 것이다.

 

80년 광주에서는 다양하고 이질 것인 것들이 어우러지고 만나면서 새로운 것들을 생성시키고 있었다.

들뢰즈가 '특이점'이라고 했던 것을 특이한 능력들이 어우러져 작동시키며 '흐름의 구성체'를 형성했던 것이다.

이것은 기존의 사회가 질서 지워놓은 지위나 이름을 지워버리며 비인칭적 특이점들이 언제 어디서든 출현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지식, 재산, 혈통, 성별 그 어떤 것도 다른 것을 억압하거나 배제할 근거가 되지 못하는 세상이 만들어 진 것이다.

척도가 작동하지 않는, 더 이상 척도를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

이것이 80년의 광주였던 것이다.

 

광주가 남긴 것은 우리들을 항상 배신하는 '권력화 하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이질적인 사람들이 서로에게 맞추어가며 함께 투쟁했던 경험이 남겨놓은 잠재성이다.

그리고 그 잠재력은 지금까지 우리들을 싸우게 만드는 힘이 되고 있는 것이다.

광주는 표준적인 해석의 '민주화'라는 명명을 통해 법의 안으로 들어와 버린 사건이 아니라 역사조차 감당하지 못하며 역사의 밖으로 범람해 버렸던 사건임을 기억해야 한다.

'다시는 반복해서는 안 될 비극', '국가권력의 폭력에 의한 희생자'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질서의 밖으로 뛰쳐나간 운동인 것이다.

 

80년 오월 떠나간 형을 생각해 본다.

그가 신나게 부르던 'Crazy love'를 흥얼거리며 우리들이 만들 미친 세상을 생각해 본다.

26일 그렇게 기도했건만 냉혹하게 다가온 형의 죽음이, 자신을 버리는 아버지를 원망하던  예수의 죽음이 '차가운 진실'을 통해 부활한다.

우리들은 동화에서처럼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 앞에서가 아니라 죽음이라는 벼랑 앞에서 현실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비극'이란 이런 현실이 때문이 아니라 '이성'이란 이름으로 흩어버린 개인의 죽음과 공포 앞에 붙여진 이름이다.

신명과 기쁨의 감응이 아닌 '개인적 결단의 고통'을 통해 공포 속에서 투쟁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비극'인 것이다.

 

고전적 비극을 중지시킬 다양체의 구성은 불가능한 것인가?

이질적인 것들이 어우러지는 '흐름의 구성체'를 우리들은 80년 광주를 통해서, 촛불의 대중을 통해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일상에서 지속시키는 것을 꿈꾸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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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월, 신명과 기쁨의 구성체 [레벨:20]떡진머리 2012-05-24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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