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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白石)과 자야(子夜)

조회 수 433 추천 수 0 2023.06.10 06:3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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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白石)과 자야(子夜)



누구는 죽는 것이 걱정이라 했고 누구는 사는 것이 걱정이라 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이는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도 하다.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다가 꽃향기처럼 사라져간 한 인물을 다시 기억하며 추모한다.

​그녀는 부잣집 딸에서 하루아침에 끔직한 가난의 나락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내 한 몸 희생하여 가족을 책임지겠다.”라는 마음으로 찾아 간곳은 기생조합, 권번이었다. 스승으로 부터 진향(眞香)이란 기명(妓名)을 받았다. 당면하게 될 각종 풍파 속에서도 맑음을 잃지 말라는 당부가 담겨 있었을 것이다.

​스물 둘, 한창 피어나는 꽃봉오리처럼 아름다운 그녀에게 첫사랑이자 평생의 연인인 백석(白石) 시인을 만나게 된다. 백석(白石)은 중국 전설 속 여인의 이름을 따 그녀에게 자야(子夜)라는 아호를 붙여줬다.

그들은 사랑하면서도 부부가 되지 못한 채 백석(白石)은 홀로 만주로 떠났고 연락이 끊어진 채 생사조차 알 길이 없었다. 그리고 1950년 한국전쟁으로 백석(白石)은 북, 자야(子夜)는 남, 두 사람은 영원한 이별을 맞았다.

​백석(白石)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만큼 그녀는 많은 재산을 모아 <대원각>이라는 큰 요정을 운영하게 되었고 1970년대 밀실 정치가 극에 달한 무렵에는 <삼청각> <청운각>과 더불어 3대 요정으로 이름을 떨쳤다.

​그러던 그녀가 생애에 높고 아름다운 회향(廻向)을 꿈꾸며 당시 1천억이 넘는 전 재산을 법정스님의 무소유란 책을 읽고 불교 신자가 아닌 그녀가 대원각을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를 하였. 그리고 그녀가 받은 것은 길상화(吉祥華)”라는 법명과 염주 하나뿐이었고 19971114일 육신의 옷을 벗었다. ​유언에 따라 첫눈이 도량을 순백으로 장엄하던 날 그의 유골은 길상사 뒤쪽 언덕에 뿌려졌다

​그녀가 머물렀던 자리, 향락의 상징이었던 대원각은 19971214일 청정도량으로 바뀌었다. 놀이 공간이었던 대연회장은 <설법전>으로, 본체는 <극락전>으로, 고기 냄새와 음악소리로 가득 찼던 공간은 <시민선방>으로, 기생들의 숙소는 수행스님의 <요사체>, 기생들이 옷을 갈아입던 팔각정은 불음을 전하는 <범종각>으로 거듭났다.

​당시 이 많은 재산을 내어놓고도 아깝지 않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것은 사랑하는 백석(白石) 시인의 시() 한 줄보다 못한 것이라고 했다. 나는 지금까지 이 만큼 내 몸에 찌르르한 전류를 흐르게 한 어떤 말도 듣지 못했다.

​그녀가 떠난 그 자리에는 아직도 맑고 장엄한 범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곳이 <길상사(吉祥寺)>라는 절이며 그녀의 이름은 김영한 아니 길상화(吉祥華) 보살이다. 부모로부터 받은 이름은 김영한이고 16살에 진향(眞香)이라는 이름을 받아 기생이 되었고 한때는 백석(白石) 시인으로부터 자야(子夜)라는 아명으로 불리었다.


백석(白石)이 자야(子夜)를 위해 쓴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보자. 이 시가 그리스도인인 나에게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白石)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천재 시인 백석(白石)<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라는 시에서 나오는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라는 구절이 나의 마음에 와 닿는다.


요즘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자연에 들어가 사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병을 고치러 들어가는 자와 사회 부적응자이다. 현실 도피와 질병 치료가 목적이다. 그러나 소로우의 저자 윌든과 같이 정신적 건강을 위해 자연에 들어가 사는 사람들도 있다.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은() 나라 제후 고죽군(孤竹君)의 두 아들이다. 이들은 주 무왕(周武王)이 은 주왕(殷紂王)을 치려는 것을 말리다가 무왕(武王)이 듣지 않으니, 수양산(首陽山)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어 먹으며 숨어 살다가 굶어 죽었다. 이들은 현실 도피의 목적으로 수양산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그들은 아성(亞聖)으로 일컬어질 수밖에 없었다. 성인은 현실 도피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불교의 심우도(尋牛圖)를 보면 참 자아를 찾은 깨우친 도인은 세상으로 나오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원효대사는 결혼을 하여 자식을 낳기도 하였고 경허 스님은 곡주(穀酒), 즉 술을 마시고 여자와 같이 자기도 하였다. 성경을 보면 세례 요한은 현실 도피로 광야에서 하나님 나라의 도()를 외치는 소리였지만 예수님은 현실 속으로 들어와 사람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며 하나님 나라의 도()를 외치는 소리였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과 죽고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면서 세상에는 속하지 말도록 명하셨다.


백석(白石)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그는 아직 성인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 이 시를 그가 젊었을 때에 썼으므로 그가 아직 성숙하지 못한 증거라고 볼 수도 있다. 세상에 살면서 세상을 이기는 자가 되어야 성인이 될 수 있다. 백석(白石)과 달리 그의 연인 자야(子夜)는 세상에 살면서 세상의 것을 초개와 같이 여겼으니 참으로 성숙한 생명에서 생명에 이르는 향기가 나는 사람, 진향(眞香)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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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23.06.10 20:54:01
*.104.32.110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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