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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

조회 수 625 추천 수 0 2016.09.17 07:5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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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

이상한데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오늘의 신앙인들의 문제가 곧 불신앙이다. 무슨 말인가하면 예수 당시에 예수의 말을 알아 들은 사람들이 하나도 없었다. 오죽하면 제자들마저도 예수 살아 생전에는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오늘은 어찌 이렇게 잘 알아 듣고 이해해서 열심을 내는 신앙인이라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것인가? 물론 오순절 후에 성령의 임하심으로 그것이 가능해졌다는 이론을 믿고 있지만 성경 자체가 그것을 부인한다.

성경은 오순절 직후에 베드로가 비로소 예수의 말씀을 이해하고 디아스포라들의 자기들의 난 곳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 설명하는 것을 보고 듣고 소통할 떄 나서서 그 현상을 복음적으로 설명하는 것으로 그런 시작을 보는 것이다. 물론 베드로나 스데반 집사 등은 분명 그런 깨우침을 가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반적으로 오늘처럼 예수 이름을 믿는다고 하면 누구나에게는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의 이런 ...우리들과 같은 모습들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분명한 것은 개인적으로 성령의 임함이 있고 그 성령의 임함은 곧 그 말씀의 깨우침 성경의 율법적 이해가 아닌 진리적 이해로 나타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집단적으로라고 말할 수 없다. 오순절의 사건 이후에 보여지는 여러가지 모습들은 개인적이지 집단적인 경우가 흔치 않았다. 어떤 분위기는 있었다고 해도 집단 자체가 전부 그런 현상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즉 오늘의 기독교의 모습은 아니라고 해야 할 것이란 의미다. 뭔가 다르다.

오늘의 기독교의 모습은 그런 각도로 충분히 의심해 보아야 마땅하다는 생각이다. 오늘은 너무 종교적으로 치우쳤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진정으로 성경이 말하는 그런 신앙 모습이 아니다. 그저 역사와 전통을 이어온 기독교라는 종교의 모습일 뿐이다. 에수가 말하는 성경의 그 신앙 형태가 아니다. 성경과는 상관없는, 성경을 근거하고 있기에 성경과 비슷한 그러나 분명 성경은 아닌 종교적인 모습일 뿐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성경이 기준이라면 이건 아니다.

문제는 종교적 신앙과 성경적 신앙의 구별을 할 능력이 없다는 안타까운 사실이다. 진정한 신앙은 기본적으로 영분별을 할 수 있다. 무엇이 성경적인지를 알 수 있다. 마치 극단적 예를 들자면 인간이면 아무리 비슷하다고 해도 원숭이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과 같다. 그것을 구별할 줄 모른다면 그가 인간이 아니라는 말이다. 자기가 분명한 인간이라면 구별 할 줄 못할리가 없기 때문이다. 거듭난 존재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거듭난 자의 시각이 있는 것이다.

물론 사람이라도 갓난 아이는 그것을 구별을 하지 못한다. 그러기에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늑대소년같은 이야기가 회자되는 것이기도 하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것은 특별한 경우라고 할 수 있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구별하게 된다. 그것이 짐승과 인간의 차이이기도 하다. 보편이고 일반적으로 그렇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당연하게 그 인간만이 갖는 인간다움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그 짐승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그 인간다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면에서 영분별이란 특별히 구별된 은사가 아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거듭난 사람다운 그 시각이라고 할 수 있다. 거듭났다는 것은 영적 존재라는 것인데 그 영적 존재이면 당연하게 그 영적 존재 다운 시각이 생길 것이 아니겠는가! 그것이 없으면서 무슨 신기한 체험을 했다고 영적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기도 하다. 거듭났다는 것은 그런면에서 그런 시각이 생겼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다. 그러기에 바울은 그것을 '마음 눈'이라고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 눈이 열릴 때 비로소 영적인 것들이 보여 성경을 통해 '부르심의 소망' 곧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는데 그것은 곧 우리를 향한 그 창조주의 '기업의 풍성함'이며 '능력의 지극히 큰 것'이다. 곧 그 능력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우리도 그 죽음을 초월하는 곧 죽음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되는 능력을 말하고 있다. 그러기에 그는 갈 2:20의 고백을 자신있게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로 사는 인생이 되는 것이다. 그것을 요한은 말씀 육신(요1:14)이라고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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