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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조회 수 545 추천 수 1 2016.09.13 19:5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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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성경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직무 같은 개념으로 표현된 그 목사와 오늘 우리 시대에 직분으로서의 목사는 물론 전혀 다르다고 해야 한다. 그런면에서 오늘 그 목사의 가장 중요한 직무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나는 언제부턴가 이미 나름의 답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더도 덜도 아닌 말씀 사역이다. 아니 좀 더 강하게 말하자면 그것 하나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일부의 많은 목사님들도 거기에 동의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어떤 목사님들은 "목사는 설교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까지 말하지 않던가!

물론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오늘 이런 글을 만드는 것은, 요즘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우리 기독교가 질타를 받는 이유 중에 거의 대부분이 우리 기독교인들이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기 때문이라는데 아마도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삶의 문제가 나오면 또 거의 대부분 이구동성으로, '말씀만 들으면 뭐하냐? 그대로 살지를 않는데....'라는 비아냥과 자조 섞인 한숨을 내 쉬는 경우들을 종종 보게 된다.

말씀과 삶의 괴리가 진정 오늘 우리 기독교의 문제일까? 이 말은 어떤 뉘앙스를 내포하고 있는데, 그것이 말씀은 제대로 들었는데 우리가 들은대로 살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란 의미가 그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듣기는 제대로 들었는데 그렇게 안살거나 못사는 것이 맞는가?

우리가 그렇게 들은 그 말씀이 정확하게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 정말 맞는가? 만약 그렇다면 들었는데 못살고 있다는 지금 이 말이 과연 맞는가? 아니 진정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그 말씀을 들었는데, 진정 그 말씀을 들은 자가 그 말씀을 전할 때, 전하는 방법에, 어떤 스타일로 전하느냐에 그렇게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는가?

이런 여러 질문들에 대해서 나는 분명 아니라고 말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면에서 내 나름의 진단은 '오늘 우리 기독교의 문제는 말씀을 제대로 듣지 못한다'는데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 분명하게 말하자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그와 비슷하거나 다른 것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고 때로는 우기면서, 들었고 그래서 전하면서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굳이 종교적 표현을 쓰자면 성경을 율법으로 말하고 들었다. 곧 그 내용인 진리로 전하고 들은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마치 예수 당시에 바리새인들과 다름이 아니다.

그런면에서 한가지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하는 것은,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면, 우리가 과연 그 말씀에 대해 거부의 짓거리를 할 수 있을까? 다시 물어보자. 제대로 된 말씀이 제대로 우리에게 들려졌다면 과연 우리 인간이 그 말씀을 거부하거나 그 말씀과는 상관없이 다른 짓을 할 수 있을까?

물론 그럴 수 있다고 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에 그런 모습들이 보이고 있으니까 말이다. 특히 첫 인간 아담에게서 아주 확실한 그 모습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잖는가! 그렇다. 우리가 아담을 통헤서 정확하게 알아야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는데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죄라는 사실이다. 우리 기독교가 말하는 죄란, 윤리 도덕적 차원의 법을 어기는 것을 넘어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는 것이 죄의 근본이고, 그런 죄인이, 어쩔 수 없이 사는 것 전부가 그것이 우리가 볼 때 선하든 악하든, 그 모든 것이 다 죄가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교회에서도 말씀이 들렸는데 그 들은 말씀대로 살지를 못한다면, 그것은 교회에는 다니지만 죄를 짓고 있는 것이고 죄인인 것이다. 교회가 말하는 어떤 종교 의식들이나 행동들을 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없다. 그것은 목사도 일반 신자들도 예외가 없다.

그렇지만 바로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인간에게 왔고 십자가를 진 것 아니던가! 그리고 그 문제는 바로 거기서 완전하게 다 해결한 것 아니었던가? 그래서 이젠 말씀을 듣는다는 의미도, 귀로가 아니라 마음으로, 이미 구약에 예레미아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셨던대로, 그러니까 성령으로 심령 속에서 깨닫게 하신다는 것으로 이해하고, 그것은 더 나아가 우리의 의지와 어떤면에서 상관없이 그 말씀대로 움직이게 하겠다는 하나님의 의지적 뜻이 담겨있는 것 아니던가? 이것을 우리는 은혜라고 읽고, 예정이라고 이해하며, 믿음의 본질이라고 말하는 것 아니겠는가!

예수가 그리스도로 우리에게 임하신 후에는 -이 말은 정말 중요한 표현이다- 이제 말씀은 예사로운 그냥 말이 아니다. 우리 맘대로 들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하나님의 말씀, 아니 그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고 하나님이다.

그런면에서 그것을 전하는 자의 영광을 아는가! 굳이 그 영광스러운 사역을 티끌, 먼지 같은 나를 통해서 하는 그 하나님의 뜻을 아는가! 아니 이것 외에 이 보다 더 중요한, 아니 중요하다는 표현하기보다, 아예 다른 것이 더 이상 필요한가? 그러기에 이런 사역은 목사 만의 특권이 아니다. 전도하는 모든 성도들의 특권이기도 한 것이라고 믿는다. 그 하나님을 나를 통해 전하는 일, 이보다 더 영광스럽고 멋진 일이 또 있다고 생각하는가!

물론 이 일은 정말 두렵고 떨리는 일임에 분명하다. 그럼에도 80세의 모세를 부르셔서 이 사명을 맡기시며 '내가 너와 함께 한다.'시던 그 하나님의 말씀이 순간 순간 이 일을 감당하는 내게, 우리에게 들리지 않는단 말인가! 그리고 말씀을 펼쳐 그것을 읽을 때마다 그 음성을 듣지 않는가! 아니 그 말씀이 나와 하나된 것을 알지 못하는가! 모르면 아니다.

그런데 과연 오늘 우리가 그 그리스도, 하나님을 말씀으로 정말 제대로 듣고 있는가? 아니 내가 들었다는 읽었고 보았다는 그 말씀이 진정 그리스도 그 분이며 그 음성인가, 하나님이며 그 말씀인가? 만약 정말 그렇다면 과연 그런 존재가 인간의 그 윤리 도덕적 행위를 그 기준으로 그것을 열심히 지키라고 하겠는가!

기독교 만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종교에서도 그리고 일반 학교나 동화책에서도 상식처럼 나오는, 살인하지 말고 도적절하지 말고 간음하지 말고 거짓말 하지 말라고 하겠는가? 착하게 살고 이웃을 돕고 선한 사람이 되는 것이 내 뜻이라고 하겠는가? 정말 교회를 크게 짓고 많은 사람들을 교회로 불러 모으고 헌금을 걷어 세상을 돕는 일 정도가, 정말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신, 당신이신 예수를 죽여 우리를 구원하신 창조주 구원자이신, 그 분께서 우리에게 간절하게 원하시는 뜻이겠느냐 말이다.

그럴 수 없다는 생각이다. 분명한 것은 만약 그런 분이시라면, 나는, 내가 아는 그 하나님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된다. 그 분은 내가 이렇게 그 분이라고 말 할 수도 없는 존재, 아니 존재라고 할 수도 없는 영원이지만, 아니 우리의 그 어떤 것으로도 감지조차 할 수 없는 형태지만, 그럼에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알게 된 그 존재는, 내게 단 한가지 만을 요구한다. 아니 그것도 요구라기 보다 은혜로 깨우치신 것이, 곧 당신을 즉 "나를 알라"는 것이다. '내가 곧 너고 네가 곧 나다'를 알라고 한다.

그러기에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서 우리들을 위해 기도하셨던 그 대제사장적 기도에서 '영생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리고 황송한 것은 그것마저도 우리에게 '알아라'가 아니라 '알게 하겠다'고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우리에게서 이루어졌다. 이제 그리스도의 영(성령)이 임한 이 세상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것이 무슨 말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러기에 히브리서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의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한다'고 하잖는가!

그 이후부터는 전에 보았던 성경의 내용들이 그저 문자적으로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 문자 속과 자간 및 행간에 있는 하나님의 뜻과 그 의미 그리고 진정 그 하나님을 보고 만나고 아는 것이다. 그것을 찾아 읽는 자의 그 기쁨과 감격 그리고 그 영광 됨을 아는가!

나의 죄인 중에 괴수 됨, 곧 마귀, 사탄이 다른 존재가 아니라 자신 임을 보면서 오히려 그 모습을 보게 하신 은혜로 감격하여 무릎 끓는 그 느낌을 아는가? 그런 도저히 인간으로서는 이해되지 않는 그 은헤의 그 덮으심으로 베푸시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정말 아는가? 그것을 오늘 누리고 있는가? 날마다 더 깊게 그 분을 알아 가는 그 영광 됨을 아는가? 그것이 그 분과의 교제이며 사귐이고 성숙, 성결이 아니겠는가?

물론 아직 우리의 몸이 이 땅을 사는 동안 완전하지 않아 저지르는 실수가 그리 큰 문제가 되겠는가? 그것을 우리 주님도 큰 문제로 여기시겠는가? 물론 우리에게는 크고 작은 것으로 생각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은 바로 우리가 정하고 우리가 인식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런 것들로 서로를 그리고 자신을 평가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그런 것들로 평가하지 않으신다. 그러기에 히 11장에 믿음이신 하나님께, 어떻게 우리와 다를 바 없는 그런 존재들을, 어떻게 택하시고, 어떻게 만들어 가시는가를 그림을 그려가며 보여주고 있잖은가!

그런면에서 오늘 이 시대에 말씀을 듣고 받고 전하는 사명을 맡은 목사로 불려진 것은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아니 그런면에서는 성도로 택함을 받은 일, 역시 그 어떤 것들과도 비교할 수 없는 인간 최고의 복 받은 증거임도 분명하다. 이 사실이 믿어지는 그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가 된 사람이다. 이 영광된 사실을 전하는 그 사람이 보혜사이기도 한 것이다. 그 사람들에게는 이 말이 통할 것이고, 이 기쁨을 알 것이고 이 영광을 함께 찬양할 것이다.

그리고는 오늘도 역시 그 하나님을 알기 위해 그 말씀께 나를 부탁할 것이고 그 주님의 뜻을 더 깊이 알려 달라는 유일한 기도, 곧 오늘 우리에게 유일한 '일용할 양식'인 그 예수 그리스도를 구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서 서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기도를 하지 말라고 해도 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기뻐하고 감사하며 기도하는 복된 삶인 천국의 모습이며, 이것이말로 우리 성도들의 간증이고 찬송이며, 이것이 바로 우리 기도의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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