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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교회

조회 수 683 추천 수 0 2016.10.06 10:2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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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교회]

어느 분의 글을 읽다가 문득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 글의 맥락에서 교회 건물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한다. 그 분의 글의 맥락은 교회를 처음 시작할 때 곧 개척 때 여러가지 어려운 여건 속에서 건물을 비롯한 모든 것을 갖추어 시작하는 것은 힘이 드니까 가정에서 시작하는 것이 어떤가 하는 의견으로, 마지막 결론은 그렇게 시작해서 교회가 성장하면 그 때는 계속 가정에서 할 것인지 건물교회로 변신을 할 것인지를 결정하면 된다고 했다. 결론이 심히 안타까웠다.

결국 그 분은 교회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내 생각이다. 그저 종교적으로 개념으로만 생각하고 그것을 근거로 성경을 대입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면 기초가 다르기 때문에 아무리 고상한 해석을 한다고 해도 역시 다른 것이다. 예수가 산상수훈에 마지막 부분에서 바로 그것을 지적한다. '반석 위에 세울 것이냐 모래 위에 세울 것이냐' 다. 실은 따지고 보면 반석이나 모래는 그 성질이 같다. 문제는 그것이 하나로 뭉쳐있는가 잘게 나누어져 있는가에 차이다.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은 오늘에는 교회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건물이 떠오르는 것이 사실이다. 종교적 신앙의 폐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잘못은 아니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시작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출애굽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나와서 바로 한 것이 금송아지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 중심에는 아론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죄라고 하기에는 문제가 있다. 그들의 그런 행동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400여년동안 애굽에서 보고 들은 것이 그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하나님이 모를리가 없다. 그것을 아는 사람은 그들 중에는 없었다. 아론도 알 수 없었다. 배운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애굽 생활은 바로 그 종교적 삶이 전부였다. 그들이 노예처럼  노역을 했다는 것이 그것이다. 바로 종교적 신전을 짓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들 중에는 오직 한 사람 곧 모세만이 알았다. 그는 바다를 건너 광야에 나갔다가 다시 들어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세례는 바로 이것을 의미한다. 이 세상이 아닌 바다 건너 다른 차원의 세상을 안다는 것이다.

그것을 죽고 다시 살았다고 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이런 기초를 전제로 신앙은 시작된다. 그런 신앙의 시작과 완성이 교회라는 표현으로 나타난다. 교회는 우리 성경적 신앙의 시작이고 결국 그 완성이다. 바울이 교회를 '그리스도가 머리'라고 하고 '우리를 그 지체'라고 하는 이유인 것이고 동시에 그 머리인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한 데까지 자라'라고 하는 이유다. 즉 교회는 진정한 신앙의 그 시작이고 그 완성이다. 교회를 제대로 아는 일은 우리 신앙의 관건인 것이다.

안타깝고 심각한 문제는 오늘의 거의 대부분의 신앙인이라는 사람들이 그 교회의 개념 이해가 절대 부족하다. 아니 잘못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하긴 교회라는 개념 이해만이 아니다.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전부가 다 잘못되었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럴 수밖에 없다고도 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마음 먹는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기도 하기 때문이다. 내가 그토록 강조하는대로 '그리스도의 임재' 곧 '말씀과 하나'되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는 이유가 있다.

이런 글이나 말이 곧 그리스도와 하나되는 통로 곧 그 길이기 때문이고, 동시에 그렇게 하나되면 비로서 눈이 열려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눈은 열렸는데 내용이 없으면 그것도 문제다. 그러기에 예수가 제자들이 전혀 알아 듣지 못해도 계속 진리를 설명하는 것은 그 후를 알기 때문이었다. 그러기에 '보혜사가 오면 내가 전해준 말을 기억나게 할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즉 그것이 동시적 사건인 것이다. 즉 이런 글이나 말이 없으면 결코 그런 개안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기도 하다.

성경에 교회는 절대 건물적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물론 건물처럼 비유된 곳이 있긴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이해하는 오늘의 그런 교회의 성전으로서의 건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비유적으로 건물을 사용한 것 뿐이다. 교회를 건물이라고 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말이다. 더구나 오늘 우리가 자꾸 건물적 개념으로 교회를 생각하게 된 것은 아마도 성전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한다. 건물이었던 성전을 교회로 대체해서 생각하기에 교회 건물을 짓고 성전이라 부르고 봉헌식을 한다.

절대 오해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건물 교회는 결코 성전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사실이다. 텐트나 건물로 지어진 성전의 의미를 모르기에 하는 심각한 오해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예수가 '이 성전을 헐라'고 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 보이는 성전이라는 건물이 신앙에 심각한 방해가 되기 때문인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예수 자신도 죽이라고 하는 것이다. 예수가 바로 그 성전의 역활로 이 땅에 왔기 때문이다. 이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실은 성경적 신앙의 관건이기도 하다.

분명하게 알아야 하는 것은 그 눈에 보이는 곧 인간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건물인 성전은 건물 자체로는 전혀 의미가 없다. 즉 비유이고 상징일 뿐이다. 그 상징을 통해 그 본질인 그 하나님을 알게 하려는 의도일 뿐이다. 그러기에 그 뜻이 성취 되면 곧 그렇게 하나님을 알면, 그 성전은 쓸데 없는 것이다. 그렇게 된 사람은 분명하게  안다. 그러기에 당연하게 허무는 것이다. 마치 거프집의 역활이 끝나면 기다렸다는 듯 당연하게 허무는 것과 샅다. 허물기 위해 지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오해의 소지도 있지만 그럼에도 표현하자면, 오죽하면 그리스도를 안 사람은 예수도 그렇게 버린다. 그런 지적은 성경에 무수하다. 예수 자신이 '성전을 할라'고 할 떄 성경 자체가 해석해서 '그의 육신'이라고 분명하게 표현했다. 그가 십자가에서 죽을 때도 성전 휘장이 위로부터 찟어지는 장면이나 자기가 십자가에 못박혀야 한다는 발언도 다 마찬가지다. 부활 후에도 이 땅에 남아 있지 않고 사라져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예수는 곧 그리스도이기 떼문이다.

그 그리스도가 곧 교회의 머리라고 한다. 성경 어디에 조금이라도 건물로 추측할 수 있는 요소가 있는가! 실은 극단적으로 표현해서 교회는 건물이 되면 망한다. 건물은 그저 필요에 의해 편의적으로 사용할 뿐이다. 그저 공동체가 모이는 공간이면 족하다. 그런데 그 건물이 건물로 독립적이면 오히려 성경적 신앙에는 심각한 방해 요소가 된다는 것을 대부분이 알지 못한다는 실로 안타깝고 두렵기도 한 것이 현실의 기독교다. 너도 나도 건물이 성공의 척도요 증표라고까지 생각할 정도다.

바로 그런 모습이야말로 가장 비성경적 신앙의 전형이다. 곧 바리새인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심각하게 말하자면 곧 사탄적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적그리스도가 다른 것이 아니다. 거짓 것이 왕성하기 때문이다. 하긴 거짓이나 적그리스도 또는 사탄 또는 마귀도 성경과는 상관없이 종교적으로 이해하고 있으니 이런 설명이 설명이 될 수도 없을 것이다. 이런 표현들은 우리가 이해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성경의 거짓은 거짓말이란 의미가 아니라 형식, 곧 겉 보이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즉 영원 곧 영에 상대적 개념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즉 진리는 의미인데 그것을 어쩔 수없이 문자로 표현하면 그 표현된 문자는 거짓이라고 하는 것이다. 즉 영이신 하나님과 상대적으로 육인 인간을 비롯한 모든 보이는 육신적인 것을 죄 또는 악 그것을 거짓 또는 극단적으로 사탄이나 마귀로도 표현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과 같지 않은 것을 죄라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바로 그 죄로 태어나서 그 죄로 죽느냐 아니면 의를 알고 선으로 자라는냐로 갈라진다.

그것을 교회를 통해서 이룬다. 교회를 그리스도가 머리라고 하는 이유다. 그러기에 교회는 어떤면에서 건물이 필요없다고 해야 한다. 건물은 일종의 필요악이라고 할 수 있다. 있으면 좋겠지만 아니 그 좋다는 것도 결국 육신에 해당하는 표현이다. 그러나 그의 진정한 영원으로서의 성도에 성장에는 별 의미도 없고 오히려 방해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할 것이다. 공동체로서의 많은 인원도 마찬가지다. 교회가 많은 사람이어야 할 이유가 없다. 물론 종교는 그렇지 않을 것이긴 하다.

종교는 한마디로 자기들의 세 확장을 위해 보여지는 상징적인 큰 규모의 건물과 많은 인원이 절대적이다. 그러기에 신앙의 본질을 알면 그 종교가 신앙에 얼마나 심각한 방해가 되는가를 안다. 그럼에도 그런 종교적 곧 율법적 신앙 형태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이율배반적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진리이기도 하다. 그것을 선악과라고도 상징했고 하늘과 땅 곧 천지로 또는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교회는 결코 건물이 아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와 하나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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