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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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글을 올립니다.
제 이름은 고강희입니다.
별명이 없으니 그냥 본명으로 글을 올리겠습니다.
아, 혹시 별명이 riverhee가 되는 건가요?
1.
서울에 오니 아주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2016년 1월 상경)
서울에 가야지, 하는 생각만으로 서울에 와버려서,
서울이 겨울이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 했습니다.
게다가 그 겨울은 대구의 겨울과 다를 것이라는 예상도 안 했고요.
너무도 추울 때는 스스로 주문을 겁니다.
아무 생각을 말자.... 아무 생각하지 말자..... 이건 추운게 아니다....
이건 착각이다.... 잘못된 감각이다...... 이건 곧 지나갈 구름이다....
스스로에게 이런식으로 최면(?)을 거는 것은 정말로 효과가 있습니다.
분명 무릎과 발은 까맣게 보일 정도로 검붉어지는데 아무렇지도 않다는 착각이 듭니다.
중학생이던 시절, 시험을 치다가 모르는 문제가 나왔을 때
전날 밤 책에서 분명히 스쳐지나가며 보았다고 생각하여
눈을 감고 스스로 최면을 걸었습니다.
"자,, 이제 나는 어젯밤으로 돌아갑니다.. 책상 앞에 있습니다.. 스탠드 불은 하얀빛입니다..
책상 위에 책이 펼쳐져 있습니다.. 00부분을 읽고 있습니다.. 어 그런데, 그 옆에 뭔가 작은 메모가 있습니다..
그 단어가 뭔지 희미하게 보입니다.. "
하다가, 답을 맞추었습니다.
물론 최면이라고 확신할 순 없고, 그냥 기억 더듬기정도이지만,
스스로에게 어떤 식으로든 말을 걸거나 던지는 것(후자와 전자)은 긍정적인 구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2.
도서관을 가려면
경사가 진 길을 20분 정도 걸어가야 합니다.
평평한 길이었다면 전혀 무겁게 느껴지지 않을 경로인데,
오르막길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몸을 무겁게 합니다.
그래도 일주일에 한번 이상은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옵니다.
요즘은 책이 정말 잘 읽혀서
물 들어왔을 때 노 저어야한다는 마음으로 읽고 있습니다.
시집과 단편이나 장편 소설, 에세이를 주로 읽습니다.
무거운 책도, 가벼운 책도 모두 좋습니다.
아버지
쥐를 물고 가던 옛날의 고양이가 오늘은 은행나무
밑 괭이밥꽃 핀 밭에서 회양목을 옹벽 삼아 네 발과
꼬리를 한 방향으로 두고 배를 들었다 내렸다 하면
서 오수를 즐기고 있다. 그 앞을 검은 비닐봉투에 담
긴 무거운 것을 들고 한 노파가 지나갔다. 노파 앞에
는 계단이 가파르다. 나는 아버지 뒤에 있었다.
이준규의 <네모>라는 시집에 있는 시 입니다.
단어의 나열만으로도 어떤 상황은 필연적으로 만들어지고
그건 또다시 감정으로 연결되는 것 같아요.
즉흥성과 우연성과 그것에 곁들어지는 개연성. 아주 멋집니다요.
3.
성경을 읽고 있습니다. 마태복음부터 읽기 시작해서 지금은 마가복음을 읽는 중입니다.
가끔씩 고민(불필요한 것들이 대부분)이 생기면
그냥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적당한 문장을 찾아냅니다.
이상하게도 궁금증은 항상 해결이 되더군요.
이게 누구야?
강희구나.
서정과 서사의 차이를 공부하느라
골치 아프다는 바로 그 아이 청년,
아직 투표권도 없으면서(ㅎㅎ)
까마득하지만 너무나도 확실한,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이 결국 가야할
죽음이라는 전망을 붙들고
자신의 인생을 홀로 유유자적 걸어가고 있는 한 인간.
어머니 닮아서(기분 나쁘지는 않겠지)
생각도 깊고 글도 잘 쓰는군.
부럽다.
현재의 삶을 읽고 생각하고 쓰는 것에
온통 투자할 수 있다니...
잘해봐라.
'나는 쓴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아, 그리고
저 이준규의 시,
정말 괜찮네.
어느 품격 있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진다.
좋은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