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관련링크 : |
---|
지은이 :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
이 책은 퀴블러로스가 죽어가는 환자들을 지켜보며 그들의 말과 상태를 연구하고 육체이탈을 체험한 수많은 증인과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죽음을 밝힌 책이다. 죽음은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앎의 문 제라고 정의한다.
사람이 죽으면 무슨일이 일어날까?
우리의 몸이 회복불능 상태가 되면 몸을 벗어난 죽음은 정신적 에너지를 지닌 새로운 인식으로 옮겨간다. 마치 고치에서 나비가 태어나는 것으로 상징했다. 보통사람은 육체를 빠져나간 영혼을 볼 수 없는 반면 몸을 빠져나온 영혼은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죽은 우리영혼은 먼저 죽은 이들, 자신을 무척 아껴 주었던 누군가의 마중을 받는다. (느끼지 못할 뿐이지 모든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 까지 모두 영적존재의 도움을 받는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상상했던 천국, 터널이나 다리나 길 등의 아름다운 공간을 지나면 그길 끝에서 하얀 빛에 에워싸인다. 그 빛은 조건 없는 사랑으로 그를 감싼다. 예수, 하느님 혹은 사랑에 비유하고 있는 이 엄청난 빛의 출현을 통해 우리는 조건 없는 사랑을 경험한다. 근사체험을 겪은 사람은 이 빛을 본 후에 되돌아와야 한다.
이 빛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에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었는가를 생각하게 될 것이며 이 빛으로부터 심판하지 않고 이해하는 조건없는 사랑을 경험한다. 모든 사람은 자기가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기 전에 배워야 할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조건 없는 사랑’이다. 이것을 배우고 실행했다면 우리는 모든 교과과정을 훌륭하게 마친 것이다.
이 빛 앞에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앎의 단계로 간다. 지금 까지의 모든 인생의 고난들이 인간이면 반드시 배워야할 이해와 사랑속에서 우리자신의 성숙을 위해 존재했던 많은 가능성중의 몇몇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모든 것이 우리를 성장시키기 위한 기회이다. 이것이 지구라는 행성에 사는 유일한 목적이다.
죽음이란 나비가 고치를 벗어던지는 것처럼 단지 육체를 벗어나는 것에 불과하다. 죽음은 당신이 계속해서 성숙할 수 있는 더 높은 의식 상태로의 변화일 뿐이다. 유일하게 잃어버린 것이 있다면 육체이다. 그리고 죽어가는 순간은 혼자가 아니다. 반드시 누군가의 도움을 받게 된다. 사실 지금도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퀴블러로스가 가장 말하고 싶은 것은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은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것이고 모든 삶에는 긍정적인 목적이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일이다. 고통은 우리가 견딜 수 있을 만큼만 주어진다. 그것이 신앙이자 깨달음이다.
이책을 읽고 나는 문제를 잘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 보다는 이 문제를 통해 내가 어떻게 성숙될수 있을 까에 초점을 두는 연습을 하게된다. 왜냐하면 죽음이 끝이 아니고 더 차원 높은 삶으로의 변화이기 때문이다.
====================================================================================
예전에 이 책을 인상 깊게 읽어본 적이 있던 터에, 어느 사이트에서 짧게 요약한 감상문이 있어서 읽어보았더니 참 정리가 잘 된 거 같아서 퍼왔습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라는 죽음 학자가 수 많은 임사체험자들의 경험을 연구하면서 어떤 결론에 도달한 내용을 책으로 펴낸 내용인데... 죽음에 대한 어떤 체험적인 앎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신선했습니다...
단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결국 죽음 이후에 대해서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는 점이죠... 죽음에 직면해서 죽음으로 넘어가는 그 과정에 대해서는 아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죽음이란 것이 마냥 두려워할 것만은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객관적인 진술이 죽음 이후를 말하는 기독교적 관점과는 어떤 접점이 있을 수 있을까에 대한 궁금증도 가져보았구요... 이 책에서는 죽음이라는 것을 "존재 방식의 변화 및 향상" 으로 이야기 하고 있는데, 이 것이 성서에서 말하는 부활과도 통하는 것일까 생각도 해보게 되구요...
죽음이란 것은 정말 신비인 거 같아요...
LSD는 스위스의 화학자 알베르트 호프만이 바젤의 산도즈사연구실에서 우연히 발견한 향정신성 물질입니다.
이 물질로 정말 많은 체험을 할수 있습니다.
이 물질뿐 아니라 전기충격으로도 많은 영적체험을 할수 있게 해줍니다.
체험을 했다고 하는것은 사실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 체험이 해석되어야할 당연한 이유도 아주 많지요...
당연히 임사체험도 그렇습니다.
기독교과학자이며 신비체험가로 잘 알려진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아주 많은 체험을 하는걸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유체이탈로 여러 곳을 구경하고 돌아왔다고 하지요...
그 사람의 이름은 스베덴보리입니다. "천상의 증언"이라는 책을 썼지요...
저는 아주 비성서적 체험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들의 체험이 대동소이합니다. 내가 본 천국의 저자 펄시콜레라는 사람의 이야기도 그렇지요..
약간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말씀드리자면..
죽거나 천사들등의 영적인 존재에 이끌려서 천국과 지옥을 봤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느끼는
비성서적인것은
그들이 지옥에 가니 죄를 짓거나 예수를 안 믿은 사람들이 당하는 고통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것입니다.
마귀들이 지옥을 지키고 그들을 괴롭힌다는것입니다.
쇠꼬챙이로 찌르고... 불로 지지고... 못 달아나게 지키고 있는것이 마귀라는것입니다.
웃기지요?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마귀는 이 세상에서도 사람들을 괴롭히고 지옥에 가서도 사람을 괴롭힌다고
하더군요...
근데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지옥은 마귀와 그의 부하들을 위해서 예비했다고 했습니다.
[마 25: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
인간은 그들을 따라서 지옥에 가게 되는것인데...
지옥이 마귀들을 벌할려고 만들어진것인데도 불구하고 마귀들은 지옥에 가서도 편하게 인간을 지배하며
인간에게 고통을 주며 살고 있다는것입니다.
이땅에서 마귀에게 속아 불쌍하게 산 사람들이 지옥가서 마귀때문에 지옥왔으니 마귀를 괴롭히는 자리에
있어야 앞뒤가 맞는 이야기가 될것 같은데.. 도리어 마귀에게 또 괴롭힘을 당한다는거죠..
사단은 뭡니까? 하나님을 배신하고 인간과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수많은 사람을 꼬여서 지옥가게 만든
장본인인데 지옥에 가서도 인간을 지배하며 산다면 하나님께서 사단을 심판하지 아니하신고 도리어 지옥
감시자로 임명하신건가요? 무지한 인간만 사단에게 속아서 이 세상이나 저 세상에서 고통받아야 하는건가요?
이것만 하더라도 엄청나게 비 성서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옥이 다른 의미를 말하는것을 굳이 설명하지 않고
그들 스스로의 주장대로 지옥이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그들의 주장이 체험과 큰 충돌을 일으키고 있지요..
길가메쉬로부터 오디세우스를 이어 수많은 저승 체험자들의 주장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니다.
하지만 스켑틱들의 대표주자인 로버트 T 캐롤은 "회의주의자 사전"이라는 책에서 신비적이고 오컬트적인 사이비
체험들에 대한 과학적 반박을 하고 있습니다.
"왜 사람들은 이상한것을 믿는가"를 쓴 마일클 셔머도 그러한 종류에 대해서 잘 반박하고 있습니다.
저는 임사체험자들의 이야기는 상당히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체험이 사후세계를 체험한것은 아니고
뇌의 작용에 대한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몇년 전에 저희 신대원 논술 자료로 제시된 적이 있다고 해서 뭔가 했는데,
글쎄요. 물론 여러 임상 체험들을 연구한 저자의 경험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저 임상 체험들이 과연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회의적입니다.
사후생이야 점잖게 쓰여진 책이지만 요즘 유행하는(아, 옛날부터 유행했었죠) '내가 경험한~' 류를 생각해본다면
과연 어느 정도의 가치를 두어야 할지는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다른 분들께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교회의 전도 전략으로 애들 유행하는 기절놀이를 도입해야 할까요?....뻐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