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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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이란,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국경에 위치한 아라랏 산 <고도 5,100미터> 발굴현장 사진)
성경은 참으로 신비한 기록문서(스크립쳐)입니다.
이 현장 땅 아래에 방주가 실재하건 아니건, 영화에서 본 노아 할아버지의 대단한 믿음의 모습 - 남들이 모두
미쳤다고 조롱하며 손가락질을 해대도 거기에 들은 척도 안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온 가족을
동원해서 햇볓이 쨍쨍한 멀쩡한 날 숲속에서 땀흘리며 배를 만들고 있던 모습 - 이 떠오릅니다.
성경은 "과거에 관한 기록"이 아니라, 항상 - 영원히 살아있는 것이라 했으니,
방주를 짓는 노아의 그 정신이 오늘 우리에게도 필요할 것인데...
그렇습니다! 방주 문제를 깊이 생각한다면 그런 의문을 당연히 가져야 하지요.
성경 기록대로 세상을 완전히 쓸어버렸더라도 홍수면이 5,000미터 이상이나 올라갈 필요가
있었겠나 하는 의구심이 생길 수 있는 일입니다.
어떻든, 이 사진에 표시된 해발고도는 아라라트산의 전체 높이이고, 지금 그 산에는 노아의
아크 유적 박물관이 있는데(아마도 위 사진 부근인듯) 그 곳의 해발 고도는 2,000여 미터라고
합니다.
다만, 우리가 이러한 것들을 굳이 실재로 눈으로 확인하려 든다는 자체가 아직도 우리(즉
현대를 살며 과학적 근거에 도취된 사람들)의 믿음이 온전치가 못하다는 증거일 것이고, 그냥
일반적인 관심거리라고 생각하면 그만일 것입니다.
과학적인 검증 결과를 소재로 전하는 얘기를 들은 바에 의하면, 노아의 방주를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성서상의 설계도대로 만들면 우리가 흔히 보는 일반적인 배의 모양이 아니라, 창이
위로 나고 길이가 약 150미터 정도이며, 현대적으로 계산한 톤수가 무려 13,000톤 이상인
엄청나게 큰, 마치 서양식 긴 목관처럼 생긴 모양의 것인데, 과학적 실제 실험 결과에 의하면
그러한 모양이 급박하고 거센 물살에서 어떤 모양의 배보다도 가장 잘 견뎌낸다고 하는 결론
을 얻었다고 합니다.
창세기는 모세가 기록했다고 하는데(손수 썻는지 세종대왕처럼 누구를 시켰는지는?) 그 당시
누가 그걸 실험해 봤을리도 없을 것이고, 성서는 참으로 신비한 기록말씀이지요. 더구나 우리
가 모두 알다시피 히브리인들은 해양활동이 거의 없었던 순 유목민족이었으니까 말입니다.
방주와 관련된 분석은 그 정도로도 우리 믿음에 충분하리라 생각됩니다.
믿는 자에게는 "사실 이상의 것"입니다.
여기서, "사실 이상"이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복된 일입니다.
그리고, 그 복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표현하는 데는 인간의 언어로써는 절대적으로
불가능할 것입니다.
보편적 개념으로, "사실"이라는 의미는 우리가 오감으로 어떤 걸 감지할 수가 있었다는
의미인데, 인간의 오감 자체가 한계성에 도착되고 마는 것이지요. 인간이 제아무리 영특
하고 똑똑해도 시각적 착시현상 하나도 스스로 없앨 수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마술을 보면 그게 실제인 것처럼 그대로 보이는 것을 생각해 봅시다. 그 순간 우리가 미치
거나 혹은 정신이 돈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게 바로 인간의 오감의 한계인 것이지요.
(불행이건 다행이건)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절대로 인간을 완벽하게 만들어
주시지를 않으셨어요. 완벽하지 못하다는 건 인간의 두뇌와 지적 한계성을 포함한 포괄적
개념인 것입니다.
믿지 않으려 하는 사람에게는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것을 보여주더라도 믿지 않는다고
예수님 말씀하셨지요. 대표적인 불신앙적인 모습인 것입니다. 언젠가는 그 얄팍한
한계성이 박살이나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날이 결국은 오고야 말 것입니다.
믿는 자는 (앞서) 그 때를 보면서 지금(즉, 우리가 "현실"이라고 말하는 시간)을 살아가는 것이지요.
signature님 : "안티기독교"를 자처하시는 분이라고 알고 있는데, 회원수도 얼마 안되는 이곳에는 왜 오시는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씨니컬한 코멘트 한두줄 남기지 말고, 안티활동을 하시려면 좀 더 적극적으로 하시든지, 아니면 뭔가 진지한 토론의 테마를 제시하시든지 하면 좋겠습니다. "두가지 문서가 조합되었기 때문에" 진실성이 없다는 식의 주장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습니다. 두가지 내용이 조합되었다는 사실이 두가지 내용의 전승이 일치하게 진술하는 내용 자체를 부정하는 근거는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즉, 두가지 문서가 조합되었다는 사실이 "큰 홍수가 있었고 이를 피해서 배에 들어갔다가 구출되었던 사람이 있었다"는 전승의 중심내용이 사실에 근거하였을 가능성을 부정할 수 있는 근거로 사용될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다비아 회원들 중에서 창세기가 여러 문서의 편집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성경이 편집되었으면 가짜다" 라는건 성경을 맹목적으로 문자적으로 신봉하는 근본주의자들이나 하는 이야기인데, 안티기독교인이라는 분도 그런 이야기를 하니 좀 의외군요. 그것은 결국 signature 님이 지향하는 안티기독교라는게 기껏해야 근본주의 기독교에 대한 공격일 뿐이라는 의미가 아닌가 싶습니다.
하나의 모티브를 사용하여 여러 개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수법이
성경전체에 걸쳐 매우 흔히 나타납니다. 동일한 사건이 두 번 반복된다든가,
요셉-다니엘처럼 표절이라든가,
노아의 홍수 경우에는 아예
두 개의 다른 이야기들을 겹쳐서 하나처럼 보이도록 해 놓은 것이지요. 방주에 들어간 동물의
숫자등이 오류가 생기는 이유입니다.
근본주의자들이 뭐라고 하건 저의 관심사는 아닙니다만, 어쨌든
"편집되었으면 가짜다"..라는 정도의 단순하기만한 지적은 아닐 것입니다.
원하시면 창 6-8장이 어떻게 짜깁기 되어 있는지 제시해 드리겠습니다.
모세 오경에 대한 이론만 해도 4문서설로 출발해서 ("4문서설"에 대해서는 아시는지요? 고전적 4문서설에 의하면 노아의 홍수 전승은 P문서와 J문서의 두가지 이야기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합니다) 현재는 수십가지 문서설이 있을 정도로 매우 다양한 이론들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또한, 창세기 6-8장 뿐만 아니라 성경 전체가 여러 문서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을 signature 님은 뭘 그리 새삼스럽게... 성서신학자들은 그런 수준의 논의는 벌써 옛날에 다 끝냈습니다. 이제는 좀 더 심도깊은 차원의 논의를 하면 좋겠습니다.
성서신학은 구약학에 대한 입문서적부터 시작하는 것이 여러가지 면에서 유리하며, 이에 대해서는 수없이 많은 책들이 있지만 제가 다 읽지도 못했고 방대한 분량의 서적을 무턱대고 소개할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어디까지나 제 견해에서 볼때 평신도 혹은 비신자가 읽기에 어렵지 않은 입문서로 추천할만한 것은 한국신학연구소에서 출판한 "함께 읽는 구약성서" 라는 책과 역시 한국신학연구소에서 출판한 클라우스 베스터만 저 "천년과 하루 - 구약성서의 맥" 두가지 책입니다.
전자는 민중신학적 관점의 기술이 농후하다는 한계가 있습니다만 짧은 분량에 구약 전체를 리뷰하면서 핵심적인 사항들을 짚어준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signature 님이 생각하시던 기독교와는 매우 다른 시각의 신선한 (혹은 충격적인) 성서해석을 접하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어 몇가지 한계에도 불구하고 추천합니다. 후자는 구약학의 거장 베스터만의 저술로서 간략하고도 평이한 문체로 폭넓은 주제들을 다양하게 소개하는 입문서적입니다. 그러나, 저술된지가 좀 오래되어서 고전적인 이론들만 수록되었다는 한계가 있으며, 후반부에 조금 지루해지는 단점이 있습니다.
위의 두권은 학술서적은 아니기 때문에 만약 좀 더 학구적인 입문서적을 원하시면 버나드 앤더슨 저 "구약성서이해" (크리스찬 다이제스트) 혹은 김이곤 저 "구약성서의 신앙과 신학" (한신대학교 출판부) 도 좋습니다. 내용이 전문적이고 어렵기는 하지만 학문적 시각에서는 마지막 책이 가장 추천할만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구약학에 일천한 저의 추천이고, 이외에 저 말고도 다른 분들이 좋은 서적을 추천해주시리라 기대합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이라고 했으니, signature 님께서 제대로 된 안티 기독교 활동을 하시려면 편협한 기독교 지식보다는 좀 더 폭넓은 사고와 다양한 해석을 접해보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대홍수 전승이 가지고 있는 문서의 배경은 signature 님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이 부분의 문서분석과 고찰에 대한 논문만도 수백편이에요. 그걸 일일이 설명을 하자니 너무 양이 많고, 요약해서 설명할 능력도 부족하고, 먹고 살기 바빠 타이핑 할 시간도 없고 해서 친절하게 책 소개를 해드린 것이니 관심이 있으시면 제게 더 묻기 보다는 관련서적을 직접 읽어보시면 되겠습니다.
진상광님 안녕하세요? 지역적으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보통 고도 3500 meter(12000 feet) 가 넘으면 나무가 자라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Tree line) 이 사진이 정말 고도 5100 미터나(16735 feet) 되는 아라랏 산 정상인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