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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옥 장로님,
오늘 여러모로 수고했습니다.
강사 이길용 박사님을 경산역에서 모시고 오고,
점심으로 맛있는 손칼국수를 먹게 해주셔서 말이죠.
오늘 모임에 대 여섯 명이나 올까 하고 생각했는데,
예상 외로 많이 참석했습니다.
아마 스무 명 가까이 모인 것 같습니다.
조금 만 더 모였어도 앉을 자리가 없었겠지요.
이길용 박사님도 열강을 하셨고,
청중들도 수준급이었구요.
인류의 종교현상에 대한 연구는
가치론적 평가를 내리지 않는다고 하는군요.
그 이유는 '종교'라는 단어 자체가
원래 '경건한'이라는 형용사에서 시작했다는 데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모든 종교에는 이런 경건한 현상들이 있기 때문에
어떤 것이 더 우월하다고 평가를 내릴 수 없다는 것이죠.
이런 자세는 지나치게 독단론적인 자세로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에게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할 것입니다.
타종교에 드러나는 종교 현상을 백안시하고나 무조건 배척하지 않구요.
그렇지만 기독교 신앙은 우리 자신의 종교경험을
이런 종교학에서 말하는 종교적 현상만으로 간주하지는 않습니다.
비로 그런 현상의 범주 안에서 다루어질지 모르지만
그런 현상을 가능하게 하는 근원적 토대의 현실성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매우 미묘한 긴장이 놓어 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객관적으로 인식해야만 하지만
신앙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면 성립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히 우리 기독교는 역사적 예수를 절대적 하나님과 동일시한다는 점에서
종교적 현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철학적 결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종교적 감정에 뿌리를 두는 게 아니라
역사적 인식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물론 이 역사적 인식에도 여전히 종교적 현상이 담겨 있기는 합니다.
결론적으로 기독교 신앙은 감정이 아니라 인식이며 희망이며 결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후기:
오늘 모임에 참석한 모든 분들도 이번 여름에
신앙의 좀더 깊은 세계에 들어가려는 노력을 한번 해보십시요.
노력이라는 말과 기독교 신앙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것 같지만
수행과 큰깨우침의 관계라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정용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