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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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도 다 아시는 지난 12월 3일 


누워서 유튜브 이것 저것 보고 있는데 갑자기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합니다.

순간 이거 혹시 누가 합성해서 만든 가짜 뉴스 아니야? 하고 생각하면서도 이 방송 저 방송을 확인했더니 이건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고향이 광주입니다. 5.18 당시 광주에 살고 있었고, 진압의 근원지인 광주 상무대 앞에 살고 있었습니다. 광주 상무대는 군부대로 전국에서 큰 부대 시설이며, 현재는 다른 곳으로 옮겼습니다.

상무대가 자리 잡고 있던 동네의 이름도 상무동이었지요.  저의 초등학교 이름도 상무초등학교였습니다.


당시 저는 중학교 1학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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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즉시 아이들에게 연락하였습니다.

이건 제가 겪고 알고 있었던 그 계엄이었는데 머리는 혼란이 왔습니다.

평생 계엄령으로만 알고 있던 저에게 계엄 선포는 계엄령과 다른 건가?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겪었던 계엄령은 살벌했고, 무서웠고 사람들이 많이 죽었고, 다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광명 천지에 그런 계엄령이 선포될 리가 없어... 이건 그 계엄령보다는 뭔가 좀 더 약한 계엄 선포라는 것이 따로 있을 거야 하는 생각까지 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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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이들에게 카톡으로 빨리 연락을 달라고 했는데 늦어져서 제가 다시 전화를 해서 아이들에게 빨리 내일부터 출타를 자제하고 학원도 다니지 말고, 집에만 있으라고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아는 그런 군인아저씨가 아니고, 지나는 사람 아무나 때리고 욕하고 괴롭히는 그런 사람들일 수 있으니 무조건 만나지 말도록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아이들이 제 말을 무시하고 돌아다닐까봐 걱정이 되어서 여러번 당부했습니다. 


저에게는 매우 급박했었습니다.  당일 저는 한숨도 못 잤습니다. 


제가 겪었던 5.18은 길거리의 도로를 자르고서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철조망으로 쳐놓고 차를 다 막고 통제하며 총을 든 군인들이 서 있었습니다.  하늘에서는 헬기들이 날아다니면서 유인물을 뿌리면서 하루 종일 "여러분들 사이에는 간첩이 섞여 있어서 여러분들을 선동하고 있습니다."라는 취지의 방송을 해가고 있었고, 종종 군인들은 총을 쐈습니다. 


어른들의 이야기로는 누가 누가 죽었다. 누가 누가 다쳤다 하는 이야기들이 가득했습니다.


우리는 좀 더 시골에 위치한 큰 아버님 댁으로 피신했습니다. 우리 부모님들은 6.25. 세대인지라 전란을 겪어봐서인지 얼른 피신하라고 하고 조심하라고 신신당부를 하십니다.  


며칠 큰 아버지집에 피신해 있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전화는 당시에 집에도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마 84년도 쯤 처음으로 집에 전화를 놓은것 같습니다. 만약 있었다면 끊겼을 것입니다. 


지하수를 쓰고 손으로 퍼올리는 펌프를 쓰고 있었기에 우리 집은 당시 수도는 끊기질 않았습니다.  그러나 전기는 끊겼습니다.  방송국은 불탔기에 당연히 방송도 나오지 않았겠지만 방송을 보냈어도 전기가 끊겼으니 필요도 없었을 듯 싶습니다.


다른 집들은 당연히 전기 전화 방송 등이 모두 나오 질 않았습니다. 수돗물은 끊겼는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모든 물류가 중단되었습니다.  식료품은 당연하고 담배나 술도 다 끊겼습니다.

민간인이고 군인들이고 우리 집으로 담배를 사러 많이 왔습니다. (당시 우리 집은 작은 식당 겸 담배를 팔고 있었고, 외부에 담배 간판이 달려 있었습니다.)  담배가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동네 분들도 혹시나 담배가 들어왔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자주 방문해서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술도 모두 판매가 안되었는데, 당시에 아버지가 어디선가 술을 구해오셔서 가게 앞에 두셨는데 공수부대들이 지나면서 차에서 내려서 술을 사갑니다.  수통에 가득 담고 마시고 하면서 가져갑니다.  아마 막걸리였던듯 싶고, 옛날 아버지가 양조장을 좀 하셨어서 양조장 어디서 구해오신 모양이었어요. 많지는 않았고 금방 팔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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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비상계엄날 한밤에 즉시 직원들 단톡방에 내일부터 우리가 관리하는 제주도 여행객들을 어떻게 챙길 것인가에 대해서 글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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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은 한밤에 올라온 저의 글에 아무도 댓글을 달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이미 비상계엄이 해제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었지만, 사실은 다들 계엄이 뭔지 잘 몰랐을 수도 있었습니다.


추후에 만나서 계엄 이야기를 하다 보면 서울 사람들이나 타 지방 사람들은 저처럼 그리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겪어보지 못한 계엄령에 대해서 두려울 수는 없었겠지요.


제가 86학번인데 87년 정도에 한번은 광주를 방문했을 때 조선대학교 앞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시위대와 경찰이 대치하고 있었고, 저는 아마도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골목을 지나고 있을 때 약 50미터 앞쪽으로 전경들이 길건너 학생들과 대치하고 있었는데, 저는 전경들 뒷 편에서 일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근처는 백골단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한 노인이 약 70대로 보였는데 갑자기 집에서 나와서 백골단을 향해서 욕을 합니다.

아마도 자신이 어른이고 백골단은 젊은 경찰이라서 훈계를 해도 별일이 없을 것으로 판단했을 듯 싶습니다.  아주 심한 욕도 아니었습니다.  뭐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야 이놈들이 왜 이렇게 시끄럽게 떠드냐는 취지였습니다.

이 노인은 말을 길게 하지 못했습니다. 한 백골단이 쓰고 있던 백골단 모자(단단했던듯 싶었습니다.)를 벗어서 그대로 노인의 머리를 후려쳤습니다. 근처 다른 백골단들은 상황도 모르는 상태로 다가오더니 그대로 노인을 발로 차고 넘어뜨리고 밟았습니다.  불과 10초도 되지 않았던듯 싶습니다.  노인은 기절했고, 백골단들은 욕하면서 뒤로 물러났습니다.


당시 백골단들은 뭔가 생각을 하지 않았고, 상황을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적을 대하는듯 했습니다.  노인은 피투성이가 되었습니다. 주먹으로 얼굴도 맞았거든요


저는 지나는 택시를 얼른 잡아서 노인을 택시에 태우고서 급하게 종합병원으로 가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택시는 전경과 학생 사이의 길로 달려야 했습니다. 시위중이라서 택시는 출발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치중인 전경과 학생들 사이에 달려가서 섰습니다. 둘 다 잠시 멈춰달라고 큰소리로 소리쳤습니다.


너 넓은 왕복 4-6차선 사이에 저만 홀로 서서 양쪽을 향해서 잠시 멈추라고 했더니 둘 다 잠시 멈추더라고요.. 그때는 용기고 뭐고 아무 생각도 없이 그냥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택시가 막 지나자 마자 학생 중 한 사람이 아마도 저를 프락치라고 소리친 듯 합니다.  엄청난 돌들이 날아 왔습니다만 저도 당시 젊어서 얼른 피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번 계엄선포 당시에 국회로 달려간 국회의원들 중 특히 지도자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 존경을 표합니다. 그들은 분명 목숨을 걸고 국회로 갔을 것이며, 가는 내내 자신이 죽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한 몸을 피해서 달아난 일부 사람에 대해서 엄청난 실망을 했습니다. 살려고 달아날 때의 상황을 웃으면서 간증하는 사람들에게서 많은 실망을 했습니다. 평소 안정적일때는 아무말이나 다 하더니 막상 죽으려고 하니까 후일을 도모한다는 핑계로 자신의 안위부터 챙겼더라고요 




광주민주화운동이후로 중학교에 다시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질 않으나 두달 정도는 휴교를 했던것 같습니다.


학교를 가서는 학교의 책상위에 꽃이 올려진 반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후 학교에서도 수업은 거의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방송에서는 총한자루 찾으면 1백만원 대검 하나 찾으면 10만원 수류탄을 찾으면 또 얼마 등등 다양한 무기에 다양한 현상금을 걸었습니다. 


학생들은 그 무기를 찾으러 동원되었습니다.  전 광주의 학생들이 다 동원된듯 합니다. 아마도 선생님들에게 지시 하달이 된 모양입니다.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닥달했습니다. 무조건 찾아내라는 식이었지요.  우리는 산 하나를 맡아서 샅샅이 뒤졌습니다. 


다음날에는 또 다른 산을 뒤졌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광주민주화운동 이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가까이서 본 광주민주화운동은 이 정도였고, 후에 방송과 여러 매체에서 다시 조합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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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광주민주화운동때 가족 중 두 사람을 부상자로 얻었습니다. 그 중 한 분은 이후에 앓다가 돌아가셨고, 다른 한 사람은 후유증으로 고생 중입니다.



종종 사람들은 우리나라에서 요즘 같은 세상에 절대로 비상계엄령이 성공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유튜브 금 새 차단할 수 있으며, 전기 수도 전화 인터넷 등 당장 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해외에 아무리 많은 정보가 나가더라도 대통령의 멘탈은 그것을 이겨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이 죽게 생겼다면 인간은 누구나 최고 수준의 말도 안되는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시민들이 옛날 같은 저항을 할 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총칼이 뽑아지고 탱크가 밀어붙이면 시민들은 옛날 같은 저항을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우리는 이미 그전분들과 다르게 가진것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며, 이를 놓치기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연금도 받아야하고, 새차도 타봐야하고, 자식들 취업도 결혼도 새집에서 살아도 봐야 하고, 새로 사 놓은 부동산도 누려야 하고, 등등 우리는 옛날 분들과 다르게 가진 것이 많고 그것을 더욱 놓치기 싫어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경험했던 광주민주화운동때는 화장실이 푸세식이 많았습니다.   아마 지금 비상계엄 선포로 단수되면 제일 문제가 순간적으로 식수와 화장실이겠지요... 가스와 전기가 끊기면 당장 뭘 어떻게 할지는 당시와 사뭇 달라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핸드폰을 충전할 수 없으며 충전해도 막상 사진 찍는거 이외에 유튜브나 방송을 볼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사흘만 집에서 화장실 못쓰면 서울도심 사람들은 어떻게 처리할까요? 청계천으로 갈까요? 양재천으로 갈가요? 한강으로 갈까요? 


설마 못쏘겠지 설마 못때리겠지 지금이 어느시대인데 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막상 때리고 죽이고 쏘고 하면 저항하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피해버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군인들이 때리고 쏘고를 안할것이라고요? 

저는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위가 격해지면 군인을 공격할 것이고, 군인도 감정이 쌓이게 될것이고, 시위대를 가장한 군인이나 경찰이 군인을 심하게 공격하거나 경찰서 무기고를 털어서 그 총으로 군인을 쏘게 된다면 전쟁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길에서 군인들에게 맞아도 그가 누구인지 알수도 없을뿐만 아니라, 112로 신고해도 안되며 군인이 그대로 끌고가도 할말이 없으며 말려줄 사람도 없는것이 비상계엄입니다. 


수많은 작전이 있겠지요... 이는 2천년전에도 있었는데 유대전쟁사에도 나오더라고요.


저는 세상은 진보 보수 좌나 우로 나누어졌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상과 하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예수께서도 세상을 상하로 나누어진것을 봤습니다. 그분은 생각이 서로 다른 사두개파들이나 바리새파사람들 심지어는 에세네파 열심당원 등 보다 부자와 가난한자를 더욱 구분하셨습니다.  지상의 복지보다 하나님 나라를 더욱 설파하셨지요.


종종 미래 영화를 보면 미래영화는 지상세계와 지하세계로 사람들이 나누어져 살고 있는 모습을 더욱 많이 그립니다.  


세상은 상하로 나누어져 있지 결코 좌우가 아니며 좌우로 나누는 사람들은 윗 쪽 사람들이며 자신들의 정권 탈환을 위해서 아랫사람을 이용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드네요...


우리는 동물농장에 살고 있는 동물들입니다. 가축을 기르는 부부가 서로 싸운다고 해서 결코 남편이나 아내가 돼지의 편은 아닙니다.  남편이 돼지에게 백신을 주입하는것이 낫다고 하니 아내가 반대하며 백신이 더 해로울수 있다고 하면서 남편과 싸운다고 해서 그들이 결코 돼지를 사랑하는것은 아닙니다. 자신들의 재물을 더욱 더 알차게 보전하려고 하는것이지요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데 고래가 서로 화해하고 어깨동무하고 놀러갈때는 새우는 등터져 병원비도 없을지도 모릅니다. 


글이 많이 길었네요.....

생각이 다른것이니 욕보다 의견만 말해주세요 

감사합니다.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25.01.30 20:40:28
*.151.73.227

실감나게 잘 읽었습니다.

1980년 4-6월 세 달 동안 나는 광주 보병학교에서 훈련 받고 있었습니다.

세달에 불과하나 웃음님과 같은 지역에 있었던 셈이군요.

나는 12.3 그 장면을 딮페이크라고 생각하고 푹 잤습니다.


[레벨:4]웃음.

2025.01.30 22:01:40
*.201.98.55

예전에 한번 목사님께서 상무대에서 훈련 받으셨다는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으신 것이 지금 떠오르네요

부대밖과 부대안의 모습은 또 달랐을 듯 싶습니다.

아마도 군부대도 전기가 다 끊기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는 대략 초등학교 5학년부터 고등학교때까지 상무대앞 인근에서 살았는데, 늘 상무대 내부에서 들려오는 기상 나팔소리를 듣고 살았지요..

근처 송정역으로 달리는 기차와 기상 나팔 소리는 항상 제 귓가에 맴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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