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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예배 순서의 기원과 역사

조회 수 1010 추천 수 0 2022.11.13 21:5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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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프랭크 바이올라와 조지 바나가 함께 쓴 책 <이교에 물든 기독교: 현대 교회에서 행하는 관습의 뿌리를 찾아서>에서 개신교 예배순서의 기원과 역사에 관한 내용 중의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모임은 모든 지체가 기능을 발휘하고, 자발적이고, 자유스럽고, 역동적이며, 누구나 다 참여하도록 열려 있는 특징이 있었다(예를 들면, 고전 14:1-33과 히 10:25). 1세기 교회 모임은 수동적인 요식 행위가 아니라 역동적인 모임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현대 교회의 예배와는 달리 종종 예측할 수 없는 모임이었다. 더 나아가서, 1세기 교회 모임은 최근의 몇몇 저자들이 제시하는바 유대 회당의 의식에서 따온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완전히 독특한 문화를 형성했다.

 

개신교 예배 순서는 어디서 유래했나?

 

그렇다면, 개신교의 예배 순서는 어디에서 유래했는가? 그것은 중세 가톨릭의 미사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미사가 신약성서에서 유래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그것은 고대 유대교와 이교사상에서 생겨난 것이다. 윌 듀란트에 의하면, 가톨릭의 미사는 부분적으로는 유대 성전 제사와 부분적으로 그리스의 신비의식인 정결 의식, 대리 제사, 동참 의식 등에 기초하고 있다.”

 

수도사 출신으로는 최초로 교황이 된 그레고리(540-604)야말로 중세 미사를 완성한 장본인이라 할 수 있다. 그레고리가 아주 관대하고, 탁월한 행정가요 외교술에 능한 사람이라고 인식되어 있지만, 듀란트는 그레고리가 또한 이교의 마술적 개념들에 영향을 받은 지나치게 미신적인 사람이었음에 주목했다. 그레고리는 이교사상과 마술과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중세 사상을 구체화했다. 듀란트가 그레고리를 가리켜 최초의 완벽한 중세사람이라고 칭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중세의 미사는 그것을 시작한 사람의 사상을 반영했다. 그것은 이교와 유대교 의식이 합성되어 가톨릭 신학과 기독교 용어를 뒤집어쓰고 나온 것이다. 듀란트는 미사가 그리스의 연극뿐 아니라 이교의 마술사상에 깊이 관련되어 있음을 지적했다. 그는 그리스 사상에서의 죽음이 교회의 신학과 의식에는 환생으로 둔갑했고, 수 세기 동안 철학을 지배해왔던 그리스어는 기독교 문학과 의식의 전달수단이 되었고, 그리스 신비주의는 미사의 인상적인 신비로움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교 제사장의 제복, 정결의식용 향과 성수의 사용, 예배 때 켜놓은 촛불, 로마 바실리카의 건축양식을 본뜬 교회 건물, 로마법을 기초로 한 교회법’, 수석 감독의 칭호로 폰티펙스 막시무스(로마 대신관), 그리고 가톨릭 미사를 위한 이교의 제사의식을 받아들였다.

 

미사가 일단 제정되자 천 년 동안 거의 변함없이 이어졌다. 그러나 이런 의식의 정체상태도 마르틴 루터(1483-1546)의 등장으로 그 첫 번째 수정을 거치게 되었다. 각종 개신교 교파들이 출현하면서, 그들은 가톨릭 의식의 틀이 다시 잡히도록 도와주었다.

 

루터의 영향

 

1520년에 루터는 로마 가톨릭 미사에 반대하는 열렬한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했다. 가톨릭 미사의 극치는 언제나 영성체 또는 주의 만찬으로 알려진 성찬이었다. 모든 것은 사제가 떡을 떼어 회중에 나눠주는 순간을 중심으로 또는 그 순간을 향해서 진행되었다. 중세 가톨릭 사상에서는 성찬이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가톨릭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미사를 통해서 재차 희생되신다는 것을 이미 그레고리 교황 때부터 가르쳤다.

 

루터는 로마 가톨릭 지도층의 주교관과 지팡이와 성찬에 관한 가르침을 상대로 저주를 퍼부었다(때로는 아주 거칠게). 미사의 근본적인 오류는 그리스도의 희생을 잘못 이해한 것에서 비롯된 인간의 행위라고 루터는 주장했다. 그래서 1523년에 루터는 가톨릭 미사의 개정에 착수했고, 이 개정은 대부분 개신교 교회 예배의 기초가 되었다. 그 개정판의 핵심은 이것이다: 루터가 성찬이 아닌 설교를 모임의 중심이 되게 한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개신교 예배에는 제단 테이블이 아니라 강대상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제단 테이블은 가톨릭과 성공회에서 성찬을 올려놓는 자리임). 설교를 개신교 예배의 절정이 되게 한 장본인이 바로 루터이다. 그가 한 말을 읽어보라: “그리스도인 회중은 하나님 말씀의 선포와 기도 없이는 절대로 함께 모이면 안 된다. 아무리 짧은 모임일지라도”...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것이 신성한 의식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설교가 예배의식의 간판이라 할 정도로 가장 중요하다는 루터의 믿음은 오늘까지 요지부동 흔들리지 않고 있다. 한 역사가는 강단은 개신교 목사의 보좌이다라고 했는데, 이런 이유 때문에 개신교의 안수 받은 목사들을 흔히 설교자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변화들을 제외하고는 루터의 의식은 가톨릭 미사와 크게 차이가 없는데, 그것은 루터가 옛 가톨릭 방식 중 자신이 볼 때 기독교적이라고 생각되는 요소들을 보존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루터의 예배 순서와 그레고리 교황의 의식을 비교하면 그 둘은 사실상 똑같다. 그는 그 의식이 적합하다고 믿고 그대로 보존했다.

 

예를 들자면, 루터는 가톨릭 미사의 절정에 해당하는 절차를 그대로 유지했다. , 사제가 떡과 잔을 들고 올려 정결케 하는 절차 같은 것인데, 이것은 13세기 때 시작된 것으로서 대부분 미신에 기초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루터는 단지 이런 절차의 의미를 재해석하고, 그것을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확장시키신 은혜의 표현으로 보았다. 하지만 그것이 오늘날 많은 목사에 의해 여전히 지켜지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루터는 성찬 기도에서 성만찬 제정에 관한 말만 남기고 과감한 수술을 단행했는데, 그것은 고린도전서 1123절 이하의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는 말씀을 가리킨다. 오늘날까지도, 개신교 목사들은 성만찬을 거행하기 전에 이 구절을 경건하게 낭독한다. 결과적으로 볼 때, 루터의 예배 의식은 가톨릭 미사의 축소판에 불과하다.

 

루터 자신의 말을 인용하면, “지금이나 그 언제라도 하나님의 예배 의식을 통째로 없애버리자는 것은 우리의 의도가 아니다. 오직 지금 사용되고 있는 것에서 부패시키는 나쁜 부착물들을 씻어 깨끗하게 하자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루터가 가톨릭 미사에서 바꾼 그의 불후의 작품은 다음과 같다:

(1) 라틴어 대신 자국어로 미사를 거행한 것,

(2) 설교가 모임의 중심을 차지하게 된 것,

(3) 회중 찬송을 도입한 것,

(4) 미사가 그리스도의 희생을 의미한다는 개념을 폐기한 것,

(5) 회중이 떡과 잔에 참여할 수 있게 한 것(가톨릭 관습에서처럼 사제들만의 특권이 아닌).

 

이런 차이점들을 제외하고, 루터는 가톨릭 미사에 있는 예배 순서를 그대로 보존시켰다. 사실, 그는 성직 안수 제도에 대한 믿음이 아주 투철했기 때문에 다음과 같이 썼다: “공중 앞에서의 말씀사역이야말로 교회의 가장 고귀하고 위대한 기능으로서, 성직에 의해서만 수행되어야 한다.” 루터의 영향에 의해, 개신교 목사는 단지 가톨릭 사제를 대신하게 된 셈이다. 그리고 대체로 사제와 목사의 직분은 기능상 실제적인 차이가 별로 없다.

 

아래에 있는 루터의 예배순서를 보라. 전반적인 윤곽이 당신에게 아주 익숙하게 보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대부분의 개신교파 주일 아침예배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찬송

기도

설교

회중을 향한 권면

성만찬

찬송

성만찬 후의 기도

축도

 

츠빙글리의 영향

 

스위스의 개혁자 울리히 츠빙글리는 오늘날의 예배 순서가 정립되는 데 이바지한 몇 가지 개혁을 단행했다. 그는 떡과 잔을 놓아두는 성만찬 테이블이라 불리는 것으로 제단을 대체했다. 그는 또한 나무 쟁반과 컵을 사용해서 떡과 잔을 회중에게로 전달해서 돌리게끔 했다. 대부분 개신교 교회들은 아직도 그런 테이블을 사용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두 개의 촛불이 놓여 있는데, 그것은 로마 황실에서 직수입된 관습이다. 그리고 대부분 교회는 떡과 잔을 앉아 있는 회중에게 돌린다.

 

츠빙글리는 또한 주의 만찬을 석 달마다 거행하도록 권했다(일 년에 네 번). 이것은 매주 거행해야 한다는 다른 개혁자들의 주장을 반대한 것이다. 오늘날 많은 개신교인은 석 달마다 한 번씩 하는 것을 따른다. 한 달에 한 번 거행하는 사람들도 있다.

 

츠빙글리는 또 주의 만찬이 기념하는 것이라는 견해를 제시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이 견해는 미국의 개신교 주류에 의해 채택되었다. 그것은 떡과 잔이 단지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상징이라는 견해다. 그럼에도, 이런 양념을 제하면 츠빙글리의 예배 의식은 루터의 그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루터와 마찬가지로 츠빙글리도 말씀 선포가 중심이 되어야 할 것을 강조했다. 그와 그의 동역자들이 얼마나 설교를 많이 했는지, 일주일에 무려 열 네 번이나 했다.

 

캘빈과 동료의 영향

 

개혁자 존 캘빈(1509-1564)과 존 녹스(1513-1572), 그리고 마틴 부처(1491-1551)는 예배의식의 정립에 또 한 몫을 거든 사람들이다. 그들은 1537년에서 1562년 사이에 그들의 예배순서를 완성했다. 그들의 예배의식들은 서로 다른 곳에서 행해졌지만 사실상 똑같았다. 그들은 단지 루터의 예배의식을 조금 바꾸었을 뿐이었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설교 다음에 헌금 수거 순서를 넣은 것이었다.

 

루터와 마찬가지로 캘빈도 예배에서 설교가 중심이 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그는 신자 개개인이 성찬이 아닌 선포된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이라고 믿었다. 캘빈은 신학에 타고난 재능이 있었으므로 제네바교회에서 그가 한 설교는 매우 신학적이었고 학문적이었다. 그것은 또한 아주 개인주의적이었다. 개신교를 절대 떠난 적이 없는 특징.

 

캘빈의 제네바교회는 모든 개혁교회가 모델로 삼는 교회였다. 따라서 그 교회의 예배순서는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이것이 오늘날 대부분의 개신교 교회들, 특히 개혁교회와 장로교회가 가진 주된 특징의 원인이 된다.

 

신약성서에는 악기들에 관해 뚜렷하게 언급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캘빈은 파이프 오르간과 성가대를 멀리 했다. 찬송은 모두 무반주였다(현대 개신교 교단 중 그리스도의 교회 같은 데서는 아직도 캘빈처럼 악기의 사용을 금하고 있다). 이것은 19세기에 와서 개혁교회들이 악기와 성가대를 도입하면서부터 바뀌게 되었다. 그렇지만 청교도들(영국 캘빈주의자들)은 악기와 성가대를 둘 다 규탄하고 캘빈의 정신을 계승했다.

 

캘빈의 예배의식에서 가장 파괴적인 요소는 어쩌면 그가 강단에서 예배 대부분을 인도한 것이었다. 캘빈이 예배순서에 영향을 끼친 또 다른 요소는 회중이 예배당에 들어올 때 가져야 할 엄숙한 태도이다. 그런 분위기는 근엄하고 군림하는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게 되는 심오한 감각의 하나이다.

 

마틴 부처는 이런 태도를 조장하는 데 일조했다. 예배의 시작 때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내려고 그는 십계명을 읊도록 했다. 이런 사고방식에서 어처구니없는 관습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뉴잉글랜드의 청교도들은 예배당에서 웃는 아이들을 찾아 혼내주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이것 말고도, 예배 도중 조는 교인들을 긴 막대기로 쑤시고 다니는 타이딩맨’(일종의 예배 봉사위원-옮긴이 주)이라 불리는 전담 요원을 두기도 했다.

 

그런 사고방식은 중세 후기의 경건에 대한 견해로 되돌아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캘빈과 부처에 의해 받아들여져 되살아났다. 많은 현대 오순절과 은사주의 그리스도인이 그 전통과 결별하긴 했지만, 많은 교회가 오늘날 생각 없이 그 전통을 따르고 있다. 그 메시지가 바로 여기는 하나님의 집이니까 조용히 하고 경건해야 돼!”이다.

 

개혁자들이 미사를 그대로 유지했던 또 하나의 관습은 예배 시작 때 회중이 서서 찬송하는 동안 성직자가 걸어 들어와서 지정된 자리에 앉은 관습이었다. 이것은 4세기 때 시작되었는데, 감독들이 웅장한 바실리카 성당에 걸어 들어오던 것에서 유래한 관습으로서, 이교의 황실 예식에서 그대로 본뜬 것이었다. 로마 대신들이 관청에 들어왔을 때, 사람들은 서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이 관습이 오늘날 아직도 많은 개신교 교회 안에서 행해지는 것이다.

 

캘빈주의가 유럽 전역에 퍼져 나가면서 캘빈의 제네바 예배의식도 대부분의 개신교 교회들에 의해 채택되었다. 그것이 여러 나라에 심어지고 뿌리를 내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 순서는 다음과 같다.

 

기도

자백

찬송(시편)

설교의 영감(성령의 감동)을 위한 기도

설교

구제헌금 수거

일반기도

성만찬(지정된 시간에): 시편을 읊으면서

축도

 

캘빈이 예배순서를 초기 교부들이 쓴 문서를 모델로 하려 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 특히 3세기에서 6세기 사이에 살았던 사람들소위 말하는 종교개혁이 교회 관습에 별로 개혁을 가져다주지 못했다는 사실은 별로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루터의 예배순서에서처럼, 개혁교회의 의식도 공식적인’(가톨릭) 의식의 구조를 바꾸려고 시도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추가로 경건 의식들을 만들면서 옛 의식을 보존하려고 했다.

 

청교도의 영향

 

청교도들은 영국의 캘빈주의자였다. 그들은 엄격한 성서주의를 받아들였고, 신약성서의 예배순서를 철저하게 고수하려고 했다. 청교도들은 캘빈의 예배순서가 충분히 성서적이지 못하다고 판단했다.

성직자의 복장, 성상, 장식과 결별한 것, 그리고 성직자 자신이 설교를 직접 써서 하는 것(남의 설교를 읽는 것에 반대해서) 등은 청교도들이 우리에게 긍정적으로 이바지한 것이다. 그렇지만, 청교도들은 또한 자연발생적인기도를 강조한 나머지 설교 전에 있는 길고 긴 목회기도라는 것을 우리에게 유산으로 물려주었다. 주일 아침 청교도들의 목회기도는 보통 한 시간 혹은 그 이상 계속되었다.

 

설교는 미국 청교도들에 와서 그 극에 달했다. 그들은 설교를 하나님께서 그분의 사람들에게 말씀하시는 일차적인 수단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설교가 거의 초자연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주일 아침 설교 시간에 빠진 교인들에게 벌을 주곤 했다. 뉴잉글랜드 주민 중 주일예배에 참석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벌금형이 부과되었고, 아니면 창고에 가두는 벌이 가해졌다.

 

어떤 청교도 교회들에서는 예배 마지막에 평신도들로 하여금 말을 할 수 있게 허용한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설교가 끝난 직후, 목사가 자리에 앉아서 회중의 질문들에 답하는 시간이 있었다. 또 회중에게 간증하는 것이 허용되었다. 그러나 프런티어 부흥운동의 등장과 함께 이것은 점점 사라져갔고, 기독교 주류 안에서는 다시 도입된 적이 없다.

 

아래에 있는 청교도 예배의식을 보라. 루터와 캘빈의 그것들과 비교해 보면 주요 부분에서는 바뀐 게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에배로의 부름

개회기도

성서봉독

찬송(시편)

설교 전의 기도

설교

설교 후의 기도

(성만찬을 거행하는 경우에는 목사가 회중에게 권면하고 떡과 잔을 축사하고 나서 회중에 그것을 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청교도들은 여러 개의 분파로 갈라져 교단들이 생겨났다. 그들 중 얼마는 자유 교회전통 일부가 되었다. 자유 교회들은 찬송 샌드위치라는 것을 고안해 냈는데, 이것은 오늘날 대부분의 복음주의 교회들에서 사용되는 것과 매우 흡사하다. 그것은 아래와 같다:

 

세 개의 찬송가

성서 봉독

성가대 특송

합심기도

목회기도

설교

헌금

축도

 

많은 조정, 별로 이루어지지 않는 변화

 

지난 500년 동안 개신교의 예배 순서는 미미한 변화에 그쳤다. 결국에 가서는, 모든 개신교 전통이 예배순서에서 비성서적인 똑같은 요소들을 공유하고 있다: 예배가 성직자에 의해 인도되고, 설교가 예배의 중심이 되고, 회중은 수동적이어서 모임에서의 사역이 허용되지 않는다.

 

개혁자들은 로마 가톨릭의 신학을 꽤 많이 변화시켰다. 그러나 실제적인 관습에 관해서는, 예배를 신약성서의 모델로 돌이키기에는 한참 부족한 미미한 조정에 그쳤다. 그 결과 하나님의 사람들은 로마 가톨릭에서 물려받은 의식의 속박에서 전혀 해방된 적이 없다.

 

어떤 저자가 기술한 것처럼 개혁자들은 고대 가톨릭 예배의 방식을 사실상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들의 예배가 가진 기본적 구조는 중세 후기 여러 부류의 순서에서 거의 통째로 가져온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은 개혁자들이 가톨릭의 예배 의식을 그저 약간 개혁했을 뿐이다. 그들의 주된 업적은 중심이 되는 초점을 바꾼 데 있다. 어떤 학자의 말을 빌리면, “가톨릭은 의식을 교회활동의 중심에 두려고 더욱더 이교의 길을 따랐고 개신교는 성서를 예배의 중심에 놓으려고 유대교 회당의 길을 좇았다고 했다. 애석하게도, 가톨릭이나 개신교나 둘 다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 모임의 중심에 놓는 데는 실패했다. 또 그들은 신약성서가 그리는 바, 모임에서 서로 사역할 수 있도록 그리스도의 몸을 자유롭게 하고 해방하는 데도 실패했다.

 

종교개혁에 의해 성서가 성찬을 대신하게 되었고 목사가 사제를 대신하게 되었다. 그러나 회중을 침묵하는 구경꾼으로 만들어놓고 여전히 혼자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감독하는 사람이 있다. 성서의 저자를 중심에 놓는 것은 전혀 회복된 적이 없다. 그러므로 개혁자들은 원초적인 문제의 근원, 즉 성직자가 인도하고 수동적인 평신도가 참석하는 예배는 건드리지도 못하고 극적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그래서 개혁자들이 스스로를 개혁된 가톨릭이라고 여겼던 것은 하나도 놀랄 일이 아니다.

 

프랭크 바이올라/조지 바나, <이교에 물든 기독교: 현대 교회에서 행하는 관습의 뿌리를 찾아서>, 대장간,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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